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199)
성황의 아이들-199화(199/469)
§ 199. 루이제 (2)
“막스! 뭐라도 좋으니 제발 말 한마디만 해 봐.”
웡웡!
“대체 무슨 일이야? 혹시 하루 사이에 머리를 크게 다쳤어? 기억상실이냐?”
할짝.
“아, 그만 핥고 얌전히 좀 있어 봐. 앉아!”
끼잉.
“오, 잘했어. 똑똑한데? 손! 이야, 착하다!”
낑낑 애교를 부리는 막스의 귀 뒤를 슬슬 긁어주며 폭풍 칭찬을 해주던 성진은, 문득 묘한 시선을 깨닫고는 고개를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루이제는 뭔가 알 수 없는 오묘한 눈빛으로, 사육사 노인은 그야말로 ‘이게 웬 미친놈이지?’ 하는 표정으로 성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야? 왜들 그래?
[이성진, 정신 차려.]마왕 놈이 한숨을 쉬었다.
[아무리 봐도 그 개는 일전의 그놈이 아니야. 일단 크기 자체가 너무 다르잖아?]‘그런가?’
성진은 막스의 콧잔등과 미간을 쓰다듬으며 개를 자세히 살폈다.
하긴. 설산에서 만난 막스는 거의 조랑말이나 송아지 크기는 되어 보였었지. 하지만 이놈은 덩치가 크기는 해도, 일반적인 늑대의 크기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도 눈이 달라…….’
성진을 올려다보는 말간 막스의 눈에는, 늑대혈통 특유의 호박빛 홍채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반면 설산의 막스는 어땠는가. 영 속을 알 수 없는, 지독하게도 새까만 눈동자가 아니었던가.
‘상식적으로 둘을 엮는 건 말도 안 되는 생각이긴 한데…….’
하지만 말이지.
“막스.”
성진의 부름에, 웡! 곧바로 힘찬 대답이 돌아온다.
봐봐, 역시 이놈이 막스가 맞는다니까.
* * *
성진은 조금 늦게 식당에 도착했다.
예기치 못하게 막스와 후원을 한참 뒹구는 바람에, 옷 이곳저곳이 흙과 개털로 엉망이 되었던 탓이다.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 착석하자, 백작 부인이 상냥하게 웃으며 물었다.
“저하께선 동물을 무척 좋아하시나 봅니다. 혹시 개를 기르십니까?”
하긴, 성진의 일거수일투족이 그녀에게 실시간으로 보고되고 있겠지.
하지만 그의 결례를 탓한다기보다는, 그저 귀여워 죽겠다는 반응이었다. 아무래도 또래의 자녀들이 많다 보니, 이런 문제에는 관대해지는 모양이다.
“한 마리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은 듭니다. 늑대개는 처음 봤습니다만, 대단히 인상적이군요.”
“호호. 그래요. 확실히 그들은 맹수의 위용을 고스란히 간직한 우아한 개들이죠.”
그렇게 대답한 부인은 와인 잔을 들어 올리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멋진 인상과는 달리, 늑대개는 안타깝게도 보통의 개처럼 기르기에는 그리 적합하지 않답니다. 여간해서는 인간에게 의지하지 않거든요.”
“그렇습니까?”
“네. 늑대개는 자존감이 강하며 딱히 인간에게 정을 갈구하지도 않습니다. 그리 독립적이고 냉담하니, 훈련 또한 대단히 어렵답니다.”
성진은 전채 요리를 씹으며 그녀의 설명에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인간을 주인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아마도 그것이 보통 개들과의 가장 큰 차이점일 겁니다. 마경의 마수들과 싸울 때는 분명 인간의 편에 서지만, 단지 같은 무리를 지킨다는 인식에 그칠 뿐입니다. 그들에게는 주인을 향한 충성심도, 또 주인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도 찾을 수 없답니다. 아무리 곁에 두고 귀여워 해주고 싶어도, 주인에게 애교 한번 부리지 않는 무심한 아이들이죠.”
…애교 엄청 많던데?
배를 뒤집으며 바닥을 굴러다니던 막스를 떠올린 성진은, 곧 고개를 저으며 생각했다.
‘하긴, 사념으로 말도 하는 놈인데, 보통의 늑대개와는 좀 다르지 않겠어.’
이후로도 식사 자리는 화기애애하게 흘러갔다.
거기에는 오르덴을 비롯한 백작가의 자녀들, 그리고 마사인 경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식사에 열중한 채, 성진과 백작 부인의 대화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주로 부인이 영지의 특색이나 독특한 요리에 관해 이야기하고, 거기에 성진이 열심히 맞장구를 치는 식이었다.
“처음 시집와서 곰 고기를 접했을 때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메인으로는 곰 고기 스테이크가 나왔는데, 이 역시 지그스문트령과 오르토나 북부 일대를 제외하고는 보기 힘든 요리라고 백작 부인이 설명해 주었다.
“부끄럽지만 그때는, 북부 사람들은 모두 무서운 음식만 먹는구나, 하고 남몰래 울기도 했답니다. 하지만 웬걸, 막상 먹어보니 사슴고기보다 담백하고 맛있지 뭐예요.”
“확실히 그렇습니다. 풍미가 무척 훌륭하군요.”
강한 향신료에 덮여 바짝 구워진 고기는 그냥저냥 먹을 만한 정도였지만, 성진은 다시없는 진미를 접하기라도 한 듯 탄사를 내뱉었다.
다분히 백작 부인을 위한 서비스였다.
‘황도에서 지내면서, 아무래도 내 미식의 기준이 높아진 것 같단 말이지.’
물론 진심으로 감격한 놈도 있었다.
[아! 이거 너무 맛있다! 역시 고기는 강렬한 불맛이지! 이성진, 이거 좀 더 달라고 하자, 응?]뭐, 어쨌든 마왕 놈이 만족하고 있으니 그걸로 된 거 아닐까.
하지만 그런 평화로운 시간도, 후식을 곁들인 차가 나오는 순간 끝나고 말았다. 트레이에 담긴 내용물을 본 오르덴이 사색이 되어 백작 부인에게 소리쳤기 때문이다.
“어머니!”
“아이, 깜짝이야! 갑자기 왜 그러니, 오르덴?”
갑작스러운 고성에 모두가 화들짝 놀란 가운데, 오르덴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다.
“제가 전에도 분명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이 차는 건강에 좋지 않으니 멀리하시라고요! 그새 제 경고를 잊으신 겁니까?”
가주 몰래 비밀리에 차를 조사하고 있다지만, 차마 다른 가족들이 마시는 것을 잠자코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그러자 백작 부인이 크게 당황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니, 얘가! 오르덴! 네가 그렇게 말하면 접대하는 내가 뭐가 되니? 자칫 저하께서 크게 오해하시지 않겠어?”
“그러니까 왜 하필 이 자리에서 이걸!”
“모처럼 방문해 주신 모레스 황자님께 지그스문트령의 특색 있는 음식들을 소개해 드리고 싶었을 뿐이야. 다들 수년째 잘만 마시고들 있는데, 넌 대체 왜 이리 유난이니?”
황가의 일원 앞에서 체면에 금이 가게 되자, 백작 부인의 언성도 조금씩 높아지기 시작했다.
“오르덴! 너무도 부끄럽구나! 대체 귀한 손님 앞에서 예의범절은 다 어디에 두고 이런 짓을 하는 것이니?”
“정말 부끄러운 것은 저입니다! 제 초청으로 친히 영지를 방문해 주신 황자 저하십니다! 이런 출처 모를 것을 대접하다니, 이 무슨 결례입니까?”
“출처 모를 것이라니! 가주께서 직접 물건을 살피시고 공급받기로 계약한 물건 아니니? 이번 일은 내 필히 가주님께 말씀드릴 것이야!”
이제 어쩔까.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백작 부인은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 같고, 가주 몰래 움직여야 하는 오르덴은 지금 온 백작저가 떠들썩하도록 자신의 의심을 토로하는 중이다.
손님인 마사인이야 당연히 아무 말도 못 하고 쩔쩔매고 있고, 백작가의 나머지 자제들은 두 사람의 언쟁을 말릴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구경만 하고 있었다.
보기에는 얌전한 척 점잔 빼고들 있지만, 그들의 눈에 스쳐가는 옅은 조소와 희망의 감정을 성진은 놓치지 않았다.
굳건하던 후계자의 입지가 혹여 이 일로 흔들려 주지는 않을까, 오르덴의 동생들은 내심 그런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성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후계를 두고 경쟁하는 형제들이란, 보통은 다들 이런 분위기인 거겠지. 썩 정이 안 가는 오르덴 놈이지만, 그래도 이 상황이 조금 불쌍하긴 하네.’
어쨌든 여기서 성진이 할 일은 하나뿐이다.
가만히 앞에 놓인 찻잔을 내려다보니, 거기에는 말간 분홍빛이 도는 액체가 잔잔한 들꽃 향을 품은 채 찰랑거리고 있었다.
‘이것이 그 마약과 같다는 약차…….’
처음 몇 번은 그저 가벼운 고양감과 행복감을 주는 정도랬지.
그렇게 속으로 되뇐 성진은, 찻잔을 들어 천천히 입으로 가져갔다.
[…이성진? 야, 너 지금 뭐 하려고…….]마왕 놈이 크게 당황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모두가 시끄러운 언쟁에 정신이 팔려 있느라, 성진의 돌발 행동을 눈치챈 사람은 단 하나뿐이었다.
‘백작 부인…….’
그래, 오직 그녀 하나다.
오르덴과 말싸움을 하는 중에도, 힐끔힐끔 이쪽을 바라보는 부인의 눈은 차분하기 그지없었으니까.
아들이 선의로 해준 경고를, 단순히 집안과 가주에 대한 반항의 의미로 여긴 것일까?
아무튼 확실한 것은, 그녀가 완벽한 가주의 편이라는 것.
그리고 그녀는 현재, 성진 일행이 이곳에 온 목적이 혹시 이 차가 아닌지에 대해 강하게 의심하고 있는 거다.
[야야, 멈춰! 너 지금 이게 무슨 짓이야? 이건 로페룸의 알을 우린 거라고! 회색 역병을 만드는 물이란 말이야!]훗. 마왕아, 알아둬라. 사람의 위장은 생각보다 튼튼하단다.
지구 종말을 경험해 본 바, 이 세상에는 아예 못 먹을 음식이 그리 많지는 않더라고.
호록.
이내 달큼한 꽃향기가 옅은 흙내음과 함께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
성진을 주시하고 있던 백작 부인의 눈이 커다래졌다. 설마 이런 과격한 언쟁 중에 거리낌 없이 차를 들이켜리라고는 꿈에도 예상치 못한 모양.
그녀가 입을 다물고 뚫어져라 성진을 바라보자, 식당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자연히 그녀를 따라 성진에게 집중되었다.
“저하? 지금 이게 무슨!”
기겁한 오르덴이 성진 쪽으로 달려오는데, 그사이에 차를 모조리 입안으로 털어 넣은 성진이 타악, 하고 찻잔을 내려놓았다.
“향이 참 독특하군요. 목 넘김이 부드럽고 쓴맛이 강하지 않아, 썩 나쁘지 않은 차입니다. 이름을 알 수 있겠습니까?”
성진의 태연한 물음에, 백작 부인이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건강에 좋다고 하여, 저희는 그냥 [약차]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래요. 건강에 좋은 차입니까. 제 입맛에는 아무래도 멜보른이 익숙합니다만, 가끔은 이런 특색 있는 차도 괜찮은 듯 하군요.”
고개를 끄덕이며 그리 대답한 성진은, 이제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자신을 응시하는 오르덴을 향해 점잖게 나무랐다.
“맛만 좋은 차인데 왜 그러나? 대공자, 확실히 자넨 좀 유난스러운 데가 있어. 백작 부인께서 어련히 알아서 해주시려고.”
“…….”
“이리 만찬에 신경 써주신 어머님을 그만 괴롭히고, 이제 다른 이야기를 좀 해보게. 난 사실 이곳에서 마경을 가장 기대하고 있다네. 정말로 마경에는 그 전설의 글래쳐 트롤이 나오는가?”
그리고 성진은 동시에, 창백하게 질려있는 마사인을 향해 조용히 눈짓했다.
‘마사인 경, 표정 관리 좀 하지. 내가 독약을 마신 것도 아닌데, 우리 목적이 다 들통나겠어.’
하여튼, 둘 다 은근히 세상 물정 모르는 티가 난다니까. 내가 돌봐주지 않았다면 둘 다 어쩔 뻔했어, 그래.
식사가 끝난 후에도, 다과와 함께 한동안의 담소가 이어졌다.
처음과 같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화제가 마경으로 옮겨가자 백작가의 자제들도 한두 마디씩 말을 보태기 시작한 것이다.
성진은 잠자코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며 이따금 손으로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어지러워…….’
이상하다. 이건 전혀 예상했던 반응이 아닌데.
왜 이렇게 독한 술을 마신 것처럼 눈앞이 빙빙 돌지?
[야, 이성진. 괜찮아?]이따금 물어오는 마왕 놈의 목소리가 저 멀리서 울리는 듯 멀게만 느껴진다.
‘역시 약차 탓인가?’
하지만 이런 증상이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는데. 백작 부인이나 다른 자제들도 다 같이 차를 마셨지만, 다들 멀쩡해 보이지 않는가.
게다가 문제는 또 있었다.
[신성제국의 황자라도 애는 애구나. 마수와 싸우는 이야기에 통 정신을 못 차리네. 가소롭긴.]어지럽다 못해, 이제는 이상한 환청이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아쉽다. 조금만 더 싸우지. 이대로 가주님의 눈 밖에 났으면 오죽 좋았을까.] [오르덴 저 자식, 끝도 모르고 잘난 척하는 게 정말 꼴 보기 싫어 죽겠군. 어디 가서 콱 죽어버렸으면.] [황자님과 친해지면, 황궁에도 초청해 주고 그러실까? 어서 이 촌구석을 떠나고 싶다.]성진은 눈을 깜박거리며 멍하니 생각했다.
오르덴 이 자식. 단순 무식한 놈이지만, 그래도 형제들 중에서는 네가 젤 낫다.
[아아, 오르덴이 나서는 통에, 아까는 체면이 완전히 구겨졌지 뭐야. 역시 내 괜한 의심이었을까? 황자는 정말로 그냥 놀러 온 것뿐인가?]백작 부인.
어머니처럼 마냥 푸근한 분인 줄 알았는데, 실망입니다. 이제부터 당신은 내 적이에요.
“…저하.”
아까부터 성진을 유심히 살피던 마사인이, 그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듯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백작 부인.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이만 저하를 방으로 모시겠습니다. 얼마 전 부상이 미처 완쾌되지 않아, 이제는 조금 쉬셔야 할 듯합니다만.”
그제야 졸린 듯 눈을 깜박거리는 성진을 알아본 백작 부인이 호들갑을 떨었다.
“어머, 내 정신 좀 봐! 대화가 너무 즐겁다 보니, 긴 여정으로 피곤하신 손님들을 이리 오래 잡아 두었군요!”
그렇게 해서 성진은 마사인의 부축을 받으며 방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 와중에도 몸은 둥둥 뜨는 듯 기묘한 부유감이 들고, 귓가에 울리는 환청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
[야, 이성진. 내 말이 들려?] […이게 다 뭡니까? 다 뭐예요? 제가 왜 이런 곳에 와 있습니까?] [참회하라! 참회하라!] [야, 정신 차려! 너 지금 뭘……!] [으아아악! 괴물, 괴물이다! 사람 살려! 커헉!]시끄러워 죽겠네. 대체 어디서들 이렇게 떠들어대는 거지?
마치 온 사방에서 확성기를 대고 일제히 그를 향해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았다.
제 발로 어디까지 제대로 걸었는지도 모르겠다.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성진은 방으로 돌아와, 따뜻하게 덥힌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마사인이 옆에서 검대며, 불편한 겉옷들을 빼내주며 물었다.
“어디가 불편하십니까, 저하? 혹시 아까 그 차가 문제였던 겁니까? 당장 의원을…….”
“어, 아냐. 한잔 가지고 뭘. 그게 원인이 아닌 걸 마사인 경도 잘 알잖아?”
아무래도 그게 원인인 것 같지만, 마사인이 어찌 반응할지 빤했기에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그냥 갑자기 엄청 졸리네. 그냥 조용히 잘래.”
성진이 침구를 끌어 올리며 냉큼 눈을 감았다.
“이제는 루이제가 날 봐줄 테니까 걱정 말고. 마사인 경도 이만 쉬어.”
그러고도 얼마간 침상 옆을 지키던 마사인은, 성진의 숨소리가 고르게 변하는 것을 확인하고는 겨우 자리를 떴다.
그리고 그가 방문을 나서자마자.
반짝.
눈을 뜬 성진이 구석에 서 있던 루이제에게 휘휘 손짓했다.
“……?”
루이제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침상 가까이 다가왔다. 그러다 무엇을 감지한 건지, 킁 하고 작게 코를 울리더니 미간을 슬쩍 찌푸린다.
“…약차?”
“응? 어, 맞아.”
머리가 빙빙 도는 와중에도 성진은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너, 그 냄새를 어떻게 알아? 그다지 진한 향도 없었는데? 거기다 난 아까 강한 향신료로 조리된 곰 고기까지 먹고 왔다고.
“대체 그걸 왜…….”
성진을 내려다보는 루이제의 표정은 조금은 어이없어 보이기도 했다.
얘가 약차에 대해 뭔가 아나?
일순 궁금해졌지만, 우선은 급한 일이 따로 있었다.
“루이제, 부탁 하나만 하자. 지금…….”
성진이 그렇게 입을 여는데, 핑 하고 도는 느낌과 함께 갑자기 코에서 뭔가가 주륵 흘러내렸다.
훅 끼쳐오는 피비린내에 흠칫 놀란 루이제가 외쳤다.
“저하! 지금 당장 의원을……!”
“아냐!”
날카롭게 소리친 성진이, 스스로의 목소리에도 쿵쿵 울리는 머리를 감싸 쥐며 작게 신음을 흘렸다.
“…끄응. 지금 소란을 일으키면 곤란해. 일단 모두에게는 비밀로 해.”
“하지만…….”
“그리고 내 일행 중에… 샤론 경이라고, 엑소시스트가 있어. 그녀만 조용히…….”
거기까지 말한 성진은 말끝을 흐렸다.
아까부터 점점 커지고 있던 환청은, 머리를 울리는 것을 넘어, 이제는 온 세상을 뒤흔들 정도로 쩌렁쩌렁 울려 퍼지고 있었으니까.
[참회하라! 참회하라! 참회하라!]“저하……!”
까마득하게 멀어지는 루이제의 목소리를 끝으로, 삽시간에 모든 것이 캄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