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2)
성황의 아이들-2화(2/469)
002. 성황가의 망나니 3황자가 되었다. (1)
신성제국 델크로스의 3황자 모레스 클라인.
호부 아래의 견자.
성황가의 다시없을 수치.
이 돼지 개망나니 황자는 역대 가장 강력한 성황이라 평가받는 아버지와 달리 검의 재능도 신성력 한 줌도 이어받지 못한 못난 아들이었다.
무엇보다도 차분한 성정을 가진 성황을 조금도 닮지 않은 불같은 성미와 천박한 언행은, 단지 철없는 어린 황자의 치기라고 보기에는 지나친 감이 없지 않았다.
일부 추기경이나 고위 사제들이 어쩌면 모레스 황자는 성황의 친자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수군거리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영원히 망나니일 것만 같았던 모레스 황자에게도 변화의 계기가 찾아왔다.
어느 날 갑자기 지독한 열병으로 쓰러져 나흘간 생사를 오가는 고열에 시달리더니, 정신을 차리고 나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 것.
‘죽을 뻔하더니 사람이 저리 달라지는구나.’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실은 황자가 갑자기 개과천선하여 새사람이 된 데에는 남들에게는 쉽게 털어놓지 못할 속사정이 있었다.
열병으로 다 죽어가던 모레스의 몸에서 눈을 뜬 것은, 실은 이성진이라는 이름의 지구인이었기 때문이다.
* * *
이성진은 어린 시절부터 묘한 끈기가 있는 아이였다.
아기 때부터 한번 시작한 일에는 기어이 끝을 보는 그 고집에, 그의 부모는 외동아들임에도 불구하고 극도로 험난한 육아를 경험해야 했다.
“쟤는 도대체 누굴 닮아 저 고집일까?”
만 4세가 지나도록 고집스럽게 쪽쪽이를 빨고 있는 아들을 보면서, 그의 어머니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혹시나 치열이 망가질까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천만 다행히도 유치는 예쁘고 고르게 자라났지만.
유치원생이 되어 겨우 쪽쪽이에 대한 흥미가 떨어졌나 싶었더니, 이제는 하원 시간에 집에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기 시작했다.
집에서 과자를 주겠다, 또로로 보러 가자 어르고 달래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저렇게도 귀가를 싫어하다니 혹시 집에서 학대를 하는 건 아닐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유치원 선생님들에게 어머니는 그저 어색하게 웃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은 성진이 잠이 들 때까지 엄마 아빠가 교대로 아이를 업고 놀이터를 전전하다가, 밤늦은 시간 집으로 들어가는 일상이 이어졌다.
초등학생이 되어 조금은 의젓해진 아들을 보고 그의 부모는 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이제는 말은 통하는 나이가 되었구나 하고.
같은 반 친구의 크레파스를 빼앗아 집으로 돌아오고, 다음 날 담임선생님의 호출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짧은 평화였다.
“쟤가 내 크레파스를 엎어서 다 부러뜨렸는걸. 대신 받은 거야.”
“성진아. 형철이가 미안하다고 사과도 했다는데, 억지로 친구 물건을 뺏어 오는 건 나쁜 거야.”
아이의 눈이 뾰족해졌다.
“미안하다고 말로 때우면 다야? 내 크레파스는?”
“크레파스는 엄마가 또 사 주면 되잖아.”
“형철이가 잘못했는데, 왜 엄마가 나한테 사 줘? 사고 친 사람이 책임져야지.”
되바라진 아들의 대꾸에 엄마는 할 말을 잃었다. 아이의 입장에서는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잠시 망설이던 엄마는 결국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성진아. 친구들과의 우정은 크레파스 가격이랑은 비교할 수 없는 거란다. 앞으로 친구가 사과하면 일단 받아주고, 그래도 성진이 생각에 억울하다 싶으면 우선 어떻게 할지 엄마랑 의논하자. 응?”
아이는 불만스러운 표정이었지만,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부서진 크레파스는 24색인데, 왜 형철이 크레파스는 56색짜리를 뺏어 왔어?”
“그건 내 정신적 피해를 보상받은 거야. 당연히 더 좋은 걸 받아야 하잖아?”
아들이 독한 건지 똑똑한 건지 분간을 할 수 없었다.
이렇게 유별난 유소년기를 보내던 성진은, 중학생이 되자 거짓말처럼 조용한 아이가 되었다.
그의 부모는 혹시나 남들과는 조금 다른 아들이 학교생활에 적응을 하고는 있는 건지 조심스레 아들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아들의 교복과 교과서는 늘 말끔했고, 혹시나 모를 왕따의 증거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드디어 철이 들었구나.
성진의 부모는 크게 기뻐했다.
사실 표면적으로 잠잠했을 뿐, 성진의 학교생활은 실제로는 공사로 다망했으나 부모는 전혀 눈치챌 수 없었다.
아들은 부모가 원하는 무난한 사회성을 얻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적어도 담임과 부모 몰래 사건, 사고들을 은폐하는 노련함은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운 나쁘게 일진에게 찍혔다가, 석 달 내내 한 놈만 죽자고 팬 끝에 결국에는 일진 무리가 치를 떨며 휴전을 선언했다거나.
괜히 시비를 거는 선도부원 하나를 1주일간 스토킹한 끝에 대인 기피 및 피해망상으로 만들어 한동안 장기결석하게 했다던가.
정의 구현과 범죄의 중간 그 어디쯤을 넘나드는 파란만장한 학창 생활이었다.
그리 뛰어난 학생은 아니었으나 나름 성실한 학교생활을 한 끝에, 성진은 서울에 있는 적당한 4년제 대학에 입학했다.
적당히 연애를 하다가 2학년이 되어 군대를 다녀오고, 졸업 후에는 적당한 중소기업에 취직을 했다.
-이 대리, 어딘가 모르게 싸한 구석이 있단 말이지.
-그래요? 부지런하고 일 잘하지 않나요?
간혹 꼰대 상사들로부터 미심쩍은 시선을 받긴 했지만, 성진은 겉으로는 성실한 회사원의 역할을 무난하게 수행해 냈다.
슬슬 주위에서 선 자리도 들어오고, 같은 회사의 여직원 하나와 썸을 타는 등.
아마도 별다른 일이 없었다면 그대로 무난하게 결혼한 후 평범한 여생을 보냈을 터였다.
2035년 8월.
게헤나 게이트 사태.
마계 게헤나와 이어진 스타 게이트들이 예고 없이 전 세계 동시에 출현하면서, 그곳에서 수천, 수만 마물들의 군세가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멀쩡한 도시와 기간 시설들이 박살 나고, 세계가 수일간 일시적인 무정부 사태에 빠졌다.
아비규환 끝에 방어선을 구축한 일부 군대를 중심으로 체제를 재정비한 인류는 반격에 나섰지만, 고작 며칠 만에 발생한 인명 피해의 규모는 천문학적인 숫자에 달했다.
대부분의 주요 도시를 파괴당한 인류의 문명 또한 크게 퇴보하고 말았다.
당시 지방 출장을 갔다가 우연히 방어선 내 방공호에 대피할 수 있었던 성진은 운 좋게 살아남았다. 그러나 졸지에 가족을 포함하여 그의 일생의 터전을 모두 잃고 말았다.
이 인류의 거대한 비극 앞에서 이성진은 울지 않았다. 그저 게이트로부터 끝도 없이 밀려 내려오는 마물들을 보면서, 이번에는 과연 누구에게 이 빚을 받아내야 하는지 차분하게 되짚었을 뿐.
마물들은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었지만, 이 집요한 남자는 한 번 표적으로 삼은 것은 절대로 포기하는 법이 없었다.
이성진은 헌터가 되었다. 전문적으로 마물을 사냥하는 사냥꾼이 된 것이다.
사람이 마물을 죽인 직후 그 사체에 손을 대고 있으면 묘한 기운 같은 것이 몸속으로 빨려 들어왔는데, 헌터들은 이것을 마물의 정기라고 불렀다.
이것을 흡수한 사람들은 곧 인간을 벗어난 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마치 마물의 힘의 일부를 흡수하는 것처럼.
그 능력은 단순한 물리적 힘일 때도 있었고, 단단한 외피를 만드는 강화계일 때도 있었으며, 혹은 염력 같은 초능력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많은 마물들의 정기를 흡수할수록 헌터들은 더욱 강해졌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홀로 능히 수천의 마물을 죽이는 초인들이 탄생하기 시작했다.
벼랑 끝까지 밀리던 인류는 조금씩이나마 전선을 밀어내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수십 년 동안의 지난한 소모전이 이어졌다.
야심차게 지구를 침공한 마계는, 결과적으로는 어이없게도 수십 년 후 지구와 함께 멸망을 맞았다.
헌터가 강해지는 만큼 인간을 죽인 마물 역시 더욱 강해지기는 마찬가지. 꾸준한 힘의 밸런스를 유지하는 전선은, 양측 진영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많은 생명력을 그저 지독하게 소모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마침내 인류의 마지막 초인 부대가 마계의 중심부 깊이 은신한 마왕 앞에 당도했을 때, 시무룩한 표정으로 이들을 맞이한 마왕은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은 이 꼴인가. 지난 수십 년간 뭘 한 건지. 자괴감이 드는군.”
물론 마왕의 허탈함 따위는 알 바 아니었다. 이제 와서 소모전을 멈추고 숨을 고르기에는 양측에 남은 것이 전무하다시피 했으니까.
어느 한쪽의 완전한 말살.
마계와 인류 사이에 남은 것은 오직 그뿐이었다.
뭔가 자포자기한 태도와는 별개로 마왕의 저항은 마지막까지 끈질겼다.
초인 부대와 마왕은 사흘 밤낮을 쉴 새 없이 싸웠는데, 3일째의 밤이 찾아올 무렵 마왕은 모가지 위쪽만이 겨우 형체를 유지하고 있었고, 초인 부대원 중 살아 있는 인간은 단 하나뿐이었다.
바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남자, 이성진.
그는 이제는 잘 움직이지도 않는 주먹을 억지로 들어 마왕의 머리통을 향해 겨누었다. 머리만 남은 마왕은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
“이 끈질긴 놈. 제일 별 볼 일 없는 놈이라고 생각했건만, 설마 내가 네놈 손에 죽게 될 줄이야.”
그래서 뭐 어쩌라고.
성진은 코웃음을 치며 주먹을 내리찍었다.
콰앙!
하나밖에 남지 않은 마왕의 암적색 뿔에 쩌적 금이 갔다.
“…엥?”
콰앙!
다음 일격에 마왕의 콧대가 왕창 주저앉았으나, 이번에도 단번에 머리를 으깨기에는 힘이 부족했다.
성진은 숨을 몰아쉬며 다시 후들거리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어이! 잠깐! 잠깐만!”
쌍코피를 흘리는 마왕이 기겁을 했지만, 그는 입을 꾹 다물고는 재차 주먹을 내질렀을 뿐이었다.
콰앙!
“켁! 야 이건 좀…….”
쿠아앙!
“…잠깐 좀 기다리라고, 이 자식아!”
주먹은 더 이상 날아오지 않았다.
물론 마왕의 말을 들어주었다기보다는, 더 이상 힘이 들어가지 않는 주먹을 추스르기 위해 잠시 숨 고르기를 했을 뿐이었지만.
놀랍게도 그사이에 납작해진 마왕의 콧대가 살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처음보다 속도는 현저히 느려졌지만, 이세계 마왕쯤 되면 능히 모가지만 남은 채로도 몸을 재생하는 능력이 있게 마련이다.
마지막 일격이 생각보다 길어지겠구나 하는 불길한 예감이 마왕과 이성진 모두를 스쳐 지나갔다.
“그 되도 않는 주먹질은 그만하라고. 전혀 힘이 들어가질 않잖아! 이봐, 인간. 어차피 이대로는 날 죽이지 못할 거야. 차라리 잠시 휴전을 하고 몸을 좀 추스른 후 다시 싸워 보는 건 어때?”
개소리였다.
만전이 된 둘이 싸우면 누가 불리할지는 불 보듯 빤한 일.
이성진이 부들부들 떨며 팔을 다시 들어 올리자, 마왕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니, 그냥 더는 싸우지 말자! 내가 지구와 게헤나를 영원히 떠날게.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테니까, 어?”
“…….”
“나는 목숨을 건지고, 너는 지구와 마계를 둘 다 가지는 거야. 융합된 두 세계가 품은 잠재력을 생각해 봐! 넌 마왕에 필적하는 힘을 가질 수도 있어!”
“…….”
“이대로 날 죽이면 주인 없는 게헤나는 소멸하고, 지탱하는 축을 잃은 지구 역시 게이트 안으로 서서히 빨려들어 갈 거야. 두 세계가 다 끝장나는 거라고! 그게 너에게 무슨 의미가 있어?”
성진이 마침내 마왕에게 대꾸했다.
“나한테 중요한 건 이 세계가 아니야. 네 놈이 끝장나는가 아닌가, 그뿐이다.”
어차피 결과는 변하지 않을 테니, 어쭙잖은 회유 따위는 사양이다.
그가 주먹을 천천히 말아 쥐는 것을 마왕은 창백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대체 저 주먹을 얼마나 맞아야 끝장이 날 수 있을까.
“야, 야! 아니면 적어도 내가 스스로 죽게 기다려 줄 수는 없어? 자동 재생하느라 자꾸 힘이 빠져서 그래. 잠시만 시간을 주면, 게헤나의 불꽃으로 영혼을 스스로 불태울 수 있어. 네가 애를 쓸 필요도 없이 알아서 사라져 줄 테니까!”
“…….”
“그… 게이트도 닫아 줄게. 마계가 소멸해도 지구가 말려드는 일은 없을 거야!”
그 제안은 제법 솔깃한 것이었다. 이성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일단은 네놈을 쳐 죽이고 나서 생각해 보지.”
“죽었는데 어떻게 대화를… 그것보다 그렇게 해서는 날 못 죽인다니까! 아니, 뭐 이런 말이 안 통하는 놈이!”
마왕이 비명을 질렀다.
지난한 제로섬 주먹질이 얼마나 이어졌을까, 성진이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데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 이 망할 자식…. 내가 정말 이런 짓만은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화르륵.
갑자기 허공에서 시뻘건 불꽃이 이는가 싶더니 마왕의 머리가 불길에 휩싸였다.
그사이에도 꿋꿋하게 재생하고 있던 마왕의 피부가 검붉은 불길 속에서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이건…….”
게헤나의 불꽃.
사물의 존재 자체를 태워 없앤다는 마계의 깊은 염화.
끝없이 재생하는 마왕의 육신은 물론 그 영혼조차 소멸시킬 수 있다는 말은 사실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말인즉슨.
“힘이 모자라서 자살을 못 하네, 어쩌네 하는 것도 다 네놈 수작질이었구나.”
이성진이 씨익 웃으며 다시 주먹을 들어 올리자, 마왕이 움찔하더니 되레 버럭 소리를 지른다.
“…뭐! 왜! 뭐! 그게 뭐가 다른데! 그래도 죽은 듯이 곱게 다른 차원으로 사라져 주려고 했다, 뭐!”
찔끔 눈물을 짜고 있던 주제에 묘하게 당당한 그 태도에, 천하의 이성진도 순간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혔다.
“그런데 이제 다 틀렸어. 크흑! 그래. 소원대로 죽어주마. 그런데 나 혼자 가지는 않을 거야.”
마왕을 태우고 있던 불꽃이 서서히 커져가더니 성진의 몸으로 옮겨 붙었다.
후끈한 열기와 함께 순식간에 그의 몸 역시 검붉은 불꽃에 삼켜졌다.
“고귀한 이 마왕님의 영혼을 원료로 피운 겁화다! 내가 네놈 자식은 반드시 없애고야 만다! 영혼까지 싸그리 불태워 주마!”
불길 속에서 살이 일그러지고 뼈가 드러나는 주제에, 마왕은 무엇이 그리 기쁜지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오랜 시간 처맞은 것이 그렇게 억울했던 모양이다.
“뭐, 이런…….”
“으하하하하하! 어떠냐! 영혼까지 불타는 고통은! 음푸하하하하흐흐흑!”
자기 영혼도 불타고 있으면서.
광소를 하다못해 거의 흐느끼는 것 같은 마왕의 웃음소리를 흘려들으며, 이성진은 불타고 있는 자신의 몸을 훑어보았다.
과연, 수십 년간 마물의 정기를 흡수하여 단단해지다 못해 어지간한 물리력에는 상처 하나 입지 않던 육체가 허무하게 녹아내리고 있다.
강화에 강화를 거쳐 통증에 둔해진 몸에도, 진피가 타들어가고 근섬유가 드러나는 과정은 대단히 고통스러웠다.
지금까지 수없이 사선을 넘나들며 싸워 왔지만, 이성진은 이번에야말로 자신이 확실하게 죽어가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어찌 되었건.
드디어 이성진이 일생의 표적으로 삼았던 마계 침략의 원흉은 끝장이 난다.
“으하핫! 푸하하하하…….”
미친 듯이 웃고 있던 마왕이 순간 흠칫 놀라며 입을 다물었다. 불길에 휩싸인 채로 입꼬리가 비죽 올라가는 이성진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기 때문이었다.
“그래, 뭐. 결국은 나도 끝장이군.”
이제는 뼈대에 일부 남아있지 않은 근육이 천천히 움직이며 불길에 휩싸인 주먹을 들어 올린다.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한 대만 더 맞자.”
“뭐!? 너 이 새끼! 이 지경이 되었는데…….”
“정신적 피해 보상이라고 생각해라.”
쿠아아앙!
“끄아아아아악!”
찢어지는 비명은 이내 잦아들었다.
마왕의 얼굴이 완전히 허물어져 잿더미로 변하는 것을 확인한 성진은 눈을 감았다.
의식이 깜깜해지는 가운데, 머릿속에서 쨍그랑하고 뭔가 깨져 나가는 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다.
그것이 헌터 이성진의 마지막 기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