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218)
성황의 아이들-218화(218/469)
218. 화원 (4)
순간 등줄기로 섬뜩한 오한이 달렸다.
성진은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빼며, 곁에 있는 루이제의 긴 망토를 휙 잡아당겼다.
덕분에 머리부터 뒤로 나동그라질 뻔한 그녀가, 바닥을 짚어 빙글 자세를 바로잡더니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저하? 갑자기 왜…….”
그와 동시에.
쿠콰앙!
루이제가 서 있던 빙판 위로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겼다. 바즈라가 휘두른 무식한 주먹이 고스란히 적중한 결과였다.
그 충격파가 어찌나 컸던지, 협곡 정상에 쌓인 눈 일부가 후드득,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다.
“왜 갑자기?”
돌변한 바즈라의 태도에 루이제가 크게 당황했다. 방금까지 구구절절한 사연을 호소하며 온갖 비통한 척을 하던 자가 아닌가.
“저건 바즈라가 아냐.”
성진이 그렇게 대답하며 호두까기를 뽑아 정면을 향해 겨눴다.
루이제 역시 흠칫 놀라더니 검을 치켜든다. 순식간에 돌변한 놈의 기척을 알아챈 것이다.
[…드디어 찾았다!]그런 두 사람의 뇌리에, 사나운 울림을 가진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 발로 기어들어 오는구나! 지그스문트령을 모두 헤집으려면 꽤나 귀찮았을 것을!]권속을 매개로 사념을 보내어 이뤄지는 의사소통 방식. 얼마 전까지 막스를 권속으로 다루던 루이제가 그 방식을 모를 리가 없었다.
“…라이칸슬로프 로드!”
그 말대로.
연기처럼 자욱하게 비산했던 얼음 안개가 걷히며, 방금까지와는 명확히 달라진 바즈라의 모습이 드러났다.
크게 부풀어 오른 근육들과 바짝 곤두선 붉은 털이, 놈의 몸집을 한층 거대하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그뿐인가. 어느새 이지를 잃고 흐려진 눈동자가 성진과 루이제를 노려보며 섬뜩하게 빛나고 있다.
명백하게 적대적인 태도였다.
[인간들. 너희들 중 누구냐!]바즈라를 지배하는 라이칸슬로프 로드, 아마도 베르세우스일 것이 분명한 놈이 두 사람을 향해 으르렁거리며 물었다.
온전히 드러낸 날카롭고 긴 송곳니 사이로, 거세게 뿜어져 나오는 입김이 차가운 공기 속에서 하얗게 번졌다.
[네놈들 중 누가 네브라스카의 피를 이은 잡종인가?]바즈라와 마찬가지.
그를 권속으로 조종하는 라이칸슬로프 로드 베르세우스 역시, 둘 모두에게서 미약하게나마 네브라스카의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네브라스카의 혈통이 단 하나뿐임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는 그 때려죽여도 시원찮을 잡종의 권속이 아니겠는가.
[어서 대답해라!]그런데 그 물음을 듣는 순간 번뜩, 성진의 머릿속에서 묘한 예감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것을 채 확실하게 인지하기도 전에, 성진은 라이칸슬로프 로드에게 이미 입을 열어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었다.
“그래. 왜 날 찾는 거냐? 이 별 볼 일 없는 잡종아.”
“……!”
[……!]성진을 바라보는 루이제와 로드의 눈이 동시에 휘둥그레진다.
“…저하?”
[뭣이? 네까짓 것이 지금 감히, 누구에게 잡종이라고……!]기겁을 한 것은 마왕 놈도 마찬가지였다.
흠. 그러게. 어쩐지 큰일을 저질러버린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인식과는 별개로, 성진의 입은 착실하게 놈을 도발하고 있었다.
“알 만한 놈이 왜 그래? 너나 나나 순혈 라이칸슬로프가 아닌 걸 세상이 아는데. 그럼 네놈이 먼저 잡종 소리를 꺼내질 말았어야지. 그런 단순한 계산도 못 하냐, 이 덜떨어진 잡종아?”
그러자 로드의 얼굴이 험악하게 이지러졌다.
[네놈이… 네까짓 것이……!]“그러게 왜 그런 짓을 했어? 난 그냥 조용히 지내려 했는데, 웬 빌어먹을 잡종이 날 찾겠답시고 온 영지를 깽깽거리며 시끄럽게 들쑤시더란 말이지. 귀찮게 말이야. 그런데도 지금 내 입에서 고운 소리가 나오겠냐?”
물론 모두가 루이제에게 들은 이야기였지만.
그것만으로도 놈은 성진을 그의 표적이라 완전히 확신한 듯했다.
[크허어어엉!]온 협곡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포효를 내뱉은 놈이 성진을 노려본다. 이제 놈의 눈은 분노로 활활 불타다 못해 불똥이 튈 정도였다.
스멀스멀, 놈의 온몸에서 번져 나오는 짙은 보랏빛의 오러가, 분노의 정도를 반영하듯 점차 거세지기 시작했다.
[…네놈, 죽여주마!]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쿠웅!
묵직한 충격음과 함께 뛰어오른 로드가 성진과 루이제를 향해 쇄도한다. 둘은 약속이나 한 듯 양쪽으로 갈라지며 놈의 공격을 피했다.
그 와중에 성진의 눈짓을 받은 루이제는 잠자코 입을 다물었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눈에 떠오른 의문은 명확했다.
‘대체 왜?’
뭐, 지금은 설명하기 힘들지만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어.
어차피 놈을 상대하는 것이 우리 둘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지. 그렇다면 본체가 따로 있는 놈이 차후에 움직이는 데 있어서, 이 오해가 큰 변수로 작용할지도 모르잖아?
[여기서 네가 크게 다치거나 해서 네 아버지 손에 끝장날 변수는 없는 거냐?]마왕이 한숨을 쉬며 주억거렸지만 성진은 태평하기만 했다.
괜찮아, 괜찮아.
나 저번에 라이칸슬로프 보스, 한 번 잡아 봤다고.
콰앙! 쾅! 우르르르!
좁은 협곡이 큰 충격으로 흔들거리고, 정상에 쌓인 눈이며 산악 빙하들이 우레와 같은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린다.
순혈 라이칸슬로프의 육체 능력이란 것이 참 무식할 정도여서, 오러를 온몸에 휘감고 돌진하는 게 불도저가 따로 없다.
그리고 한참 놈을 상대하며 성진이 내린 결론은 이랬다.
‘…움직임이 너무 생소하잖아! 이건 블라타 멘티스랑 완전히 다른데?’
[그럼 곤충형 마물과 라이칸슬로프가 같겠냐!]보다 못한 마왕이 격앙된 목소리로 성진을 윽박질렀다.
‘하지만 미궁에서 잡은 놈은 이렇게 움직이지 않았다고!’
사실 성진이 오르덴과 잡았던 보스몹은, 라이칸슬로프의 외형에 블라타 멘티스의 데이터가 씌워진 녀석이었다. 물론 성진이 그 사실을 알 리가 없었지만.
쿠앙!
놈이 마구잡이로 휘두른 주먹질에, 협곡의 얼음이 날카롭게 부서지며 사방으로 튀어 오른다.
핏핏.
그중 일부가 성진의 뺨을 스치며 몇 개의 붉은 실선을 그렸다.
충분한 거리를 두며 적당히 상대하고 있음에도, 놈은 오러를 최대로 발산하며 집요하게 성진을 쫓아왔다.
그런 놈을 상대로 자잘한 생채기들이 생기는 것은 성진으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러게 대체 뭐 하는 짓이야! 왜 괜히 그런 거짓말을 해서 저놈의 주의를 끌어 오냐고!]‘아니. 어쩐지 그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그래. 다시아노 후작은 단순한 라이칸슬로프들의 로드가 아닌, 인간들 사이에서 큰 권력을 가진 귀족이다.
오늘이 아니더라도 기회가 생기면 언제고 평민인 루이제를 노릴 수 있잖아.
[그럼 넌 괜찮다는 거냐?]그야 난 어엿한 신성제국의 황자니까.
제까짓 것이 후작이면 다냐? 감히 날 건드릴 수 있을 것 같아?
[…기가 막혀서!]마왕이 혀를 찼다.
“저하!”
그때 놈의 뒤에서 루이제가 소리치며 바스타드 소드를 휘둘렀다.
부웅.
크게 휘둘러진 무거운 검이 놈의 대퇴부를 향해 내리꽂힌다.
오직 충격량만을 고려한 공격. 워낙 표적이 크다 보니 빗맞을 일은 없으리라는 판단이다.
하지만-
콰직!
보랏빛의 오러를 휘감은 손톱이 그녀의 검을 손쉽게 막아냈다. 그러고는 휘익, 털어내듯 팔을 휘두르자, 검을 맞대고 있던 루이제의 가벼운 몸이 손쉽게 튕겨져 날았다.
“큭!”
거의 반대편 절벽 근처까지 날아간 루이제가 몸을 빙글 돌리며 맨발로 얼음 바닥을 디딘다. 비록 오러 운용은 큰 차이가 없더라도, 애초에 신체 조건이 너무나 달랐던 것이다.
“……!”
그녀가 허락을 구하듯 다급한 얼굴로 성진을 바라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라이칸슬로프로 변신하고 싶은 모양.
하지만 성진이 이미 놈에게 거하게 약을 친 상태라, 이제 와 독단으로 정체를 드러낼 수가 없는 거다. 좋은 판단이다.
성진은 루이제를 향해 작게 고개를 저었다.
‘그냥 가보자고.’
승산은 충분했다.
일단 놈은 순혈 라이칸슬로프의 육체를 제대로 활용한다고 보기는 어려웠으니까.
‘다시아노 후작은 주먹을 제대로 쓰는 놈이 아니야!’
양손을 쓰는 것에는 익숙하다. 협곡을 사정없이 때려 부수는 두 손은 비슷한 강도로, 고르게 휘둘러지고 있으니까.
하지만 일생을 주먹만 휘두르고 살아온 성진은 알 수 있었다, 저건 평소에 제대로 주먹질을 배운 놈의 움직임이 아니다.
[이런 쥐새끼 같은 놈!]로드가 분통을 터뜨렸다.
성진이 매번 미꾸라지처럼 몸을 빼내는 것은 물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깔짝깔짝 큼직한 상처들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라이칸슬로프의 재생력으로 상처는 금세 호전되었지만, 그럼에도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크와앙!]신경질적인 울부짖음과 함께 또다시 박살 나는 절벽.
발을 박차고 반대편으로 몸을 날린 성진이, 눈을 가늘게 뜨고 놈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게다가 저놈의 간격…….’
주먹보다 조금은 먼 곳에 있는, 가볍게 휘두를 수 있는 한 손 무기의 간격.
하지만 주먹질과 마찬가지. 놈의 팔 움직임을 보건대, 섬세한 각도의 조절이 필요하지는 않은 무기.
‘본래는 둔기를 쓰는 놈인가…….’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이를 갈며 성진을 향해 몸을 돌리는 놈에게서, 성진이 뭔가를 발견한 것은-
“엇, 저거…….”
성진이 눈을 크게 뜨며 뚫어져라 그것을 바라보는 사이.
번개처럼 땅을 박찬 로드가 순식간에 그의 코앞으로 쇄도했다.
‘…아차!’
뒤늦게 몸이 반응했지만, 찰나의 주춤거림이 가져온 결과는 뼈아팠다.
재빨리 성진을 따라잡은 로드가, 그를 잡아채는 데 성공하여 바닥에 세차게 메다꽂은 것이다.
[이성진!]콰앙!
“…컥!”
마치 중장비와 충돌하는 듯한 충격과 함께, 일순간 호흡이 턱 멎었다.
“저하!”
멀리서 루이제의 비명 같은 외침이 들렸다. 순식간에 시야가 하얗게 물들었다가 돌아온다.
쿨럭!
밭은기침을 내뱉으며, 성진은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애써 굴려 상황을 파악했다.
재빨리 오러를 둘러치긴 했지만, 순혈 라이칸슬로프가 온 힘을 다해 내려찍은 충격량은 만만치가 않았다.
‘척추는 괜찮은 것 같고. 어쩌면 갈비뼈는 두어 개 나갔을지도…….’
꾸드드득.
놈이 오러를 쏟으며 얼음 바닥으로 성진을 세게 내리눌렀다. 이대로 짜부라뜨리고 싶은 모양이지만, 저항하는 성진의 오러 또한 만만치는 않았다.
하지만.
[드디어 잡았다!]이제는 움직이지 않는 표적.
크르릉, 웃음을 흘린 로드가 남은 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단숨에 성진의 머리를 뭉개기 위해서였다.
이를 악문 성진은 온 신경을 집중해 타이밍을 쟀다. 놈의 주먹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호두까기의 손잡이를 세게 움켜쥔다.
바로 그때.
타타타탓!
가볍게 눈밭을 달리는 소리와 함께.
크왕!
갑자기 뒤에서 달려든 개 한 마리가 위로 쳐들린 로드의 팔뚝을 물어뜯었다.
막스였다.
“……!”
[이건 또 무슨!]로드는 갑자기 나타나 대롱대롱 팔에 매달린 개를 황당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보통의 개와 비교하면 막스는 덩치가 월등히 큰 늑대개였지만, 아무래도 3미터를 훌쩍 넘어가는 라이칸슬로프에 매달려 있으니 고목나무의 매미가 따로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글이글 불타는 늑대개의 눈은 용맹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강하다! 나는 거대하다!
어쩐지 막스로부터 그런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성진은 속으로 작게 혀를 찼다.
이 녀석, 지금 자기가 변신한 상태인 걸로 착각하고 있는 건가?
“막스!”
허둥지둥 달려온 루이제가 검을 휘두른다.
그러나 로드는 개가 매달린 팔을 가볍게 휘둘러 다시 한번 그녀를 멀리 쳐냈다.
그런 커다란 일련의 움직임에도, 팔뚝에 이를 박고 늘어진 막스는 꿈쩍도 하지 않았지만.
[…뭐지, 이건?]로드는 어이없는 얼굴로 막스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다 일순, 놈의 눈이 슬쩍 가늘어졌다.
[그래. 이오니아 늑대의 피를 이었나. 비록 어설픈 잡종이긴 하지만, 이 차원에서는 이제 보기 힘든 혈통이겠지.]스르륵.
늑대개를 매단 채로, 놈이 팔을 자신의 주둥이 쪽으로 곧장 가져간다. 삐죽 드러나는 날카로운 송곳니를 보건대, 당장이라도 늑대개를 물어뜯을 심산이다.
[뭐, 권속으로 만들면 쓸 만할지도 모르겠구나.]바로 그때였다.
서걱!
섬뜩한 파육음과 함께.
최아악!
갑자기 거센 피의 분수가 허공으로 솟구치며 그의 시야를 가린다. 동시에 순식간에 한쪽 팔이 허전해진다.
로드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잘려나간 자신의 팔뚝을 바라보는데.
휘이잉.
바람을 휘감은 호두까기를 쥔 성진이,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웃기지 마!”
라이칸슬로프의 피를 흥건히 뒤집어쓴 얼굴에서, 오직 보이는 것이라곤 사납게 빛을 발하는 옅은 은회색의 눈동자뿐이었다.
그 서늘한 시선을 마주한 순간, 덜컹, 베르세우스는 심장이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어디선가 네놈을 본적이 있던가?]네브라스카의 혈통이기 때문일까? 왜 이리 저 인간이 낯익은 느낌이 드는가.
크르르르-
반사적으로 이를 드러내고 경계하는 로드를 마주보며, 성진 역시 씨익 입꼬리를 올려 사납게 이를 드러내 보였다.
“막스는 내 꺼다. 이 ‘잡종’ 새끼야!”
보자 보자 하니까 이게 지금 어딜 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