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219)
성황의 아이들-219화(219/469)
219. 화원 (5)
성진을 붙잡는 데 성공했다는 말은, 반대로 놈 역시 더 이상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의미. 피차 서로에게 고정된 표적이라는 점은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온몸의 오러를 한 점에 집중해 베어내면 될 뿐.
‘괜히 내 개에게 눈독 들이며 쓸데없이 한눈을 파니까 이렇게 되는 거다!’
피를 뿜어내는 손목을 망연히 바라보고 있는 로드를 향해 성진이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마음 같아서야 크게 소리 내 비웃어주고 싶었지만, 숨을 들이쉴 때마다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져 여의치 않았다. 정말로 늑골 몇 대가 나간 모양.
성진은 호두까기를 놈에게 겨눈 채, 왼손으로 흉곽을 조심스럽게 더듬었다. 이후의 움직임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골절이 의심되는 부분에 세밀하게 오러를 두르기 위함이다.
그리고 강한 의도를 담아 개의 이름을 외쳤다.
“막스!”
그러자 성진의 의사를 기똥차게 알아들은 늑대개가, 로드의 팔뚝을 놓고는 바닥으로 껑충 뛰어내린다.
[……!]그러더니 빙판 위에 떨어진 로드의 손을 잽싸게 물고는 후다다닥 거리를 벌리는 것이 아닌가!
재생이 뛰어난 라이칸슬로프가 손을 도로 붙이지 못하도록 한 조치였다.
[크헝?]빤히 눈을 뜨고도 손을 되찾을 기회를 놓친 로드가 얼빠진 소리를 냈다.
아무리 회복이 빠른 라이칸슬로프라고 해도, 무에서부터 손을 온전히 재생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
놈은 낭패한 기색으로 개를 따라가기 위해 엉거주춤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그 찰나의 틈을 놓칠 루이제가 아니었다.
푸욱!
보랏빛 오러를 짙게 실은 바스타드 소드가, 놈의 어깻죽지를 꿰뚫고 쇄골 위로 삐죽 솟아나온다. 다량의 핏줄기가 다시 한번 치솟았다.
[크윽?]당황한 로드, 베르세우스는 남은 한 손으로 검날을 움켜쥐며 날이 더 파고드는 것을 저지했다. 동시에 그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왜 궁지에 몰리고도 변신을 하지 않는가 했더니, 할 필요도 없었다는 것인가!’
만만하게 생각하고 있던 인간들의 실력이 생각 외로 고강하다.
잽싼 몸놀림이 성가시다고만 생각했던 소년은, 일순 가진 오러의 몇 단계를 건너뛰는 절삭력으로 자신의 손을 단숨에 날려버렸다.
또 분수에 맞지 않는 무거운 검을 휘두르던 소녀는, 전투가 이어질수록 빠르게 적응하며 안정적으로 오러를 운용하고 있지 않은가.
[이것이… 네브라스카의 혈동이 가진 힘……!]심지어 저 소년은 이오니아의 늑대를 권속으로 삼아 자유자재로 조종하기까지 한다!
[제대로 변신까지 한다면, 저울추의 무게가 어디로 기울지 알 수 없다.]이미 성진을 라이칸슬로프의 후예라 굳게 믿게 된 로드는, 어쩌면 자신이 저 애송이들을 상대로 볼썽사납게 도주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사로잡혔다.
내심은 권속의 몸을 불사르는 한이 있더라도 둘을 때려죽이고 싶다. 그러나 여기서 라이칸슬로프들을 일괄 통제하는 바즈라를 잃을 수는 없었다.
[크르릉!]이를 악문 베르세우스가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어 날을 서서히 밀어내려 했다.
콰드드득.
하지만 온 체중을 실어 칼날을 밀어 넣는 루이제 역시 만만치 않았다.
“흐읍!”
뒤로 돌아있는 로드에게는 보이지 않았겠지만, 이미 루이제는 거의 변신하기 직전의 모습이었다. 입에서는 날카로운 송곳니가 조금 삐져나와 있고, 손발톱 역시 뾰족하게 자라 나와 있다.
아마도 성진이 제때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대로 라이칸슬프로 변신해서 놈에게 대항했으리라.
“후우…….”
몸을 추스른 성진은 호두까기를 똑바로 치켜들고 비소를 지었다.
“조종당하는 놈이 불쌍해서라도, 가급적이면 신체 손상을 입히지 않으려 했는데 말이지…….”
지금까지는 손속에 사정을 두고 있었다는 투다.
철저하게 아래로 깔아보는 태도. 분노한 로드의 눈에서 투두둑 핏줄이 불거졌다.
[…웃기지 마라!]오러로 방어 가능한 신체 외부와 달리, 내부의 기관은 극도로 취약하기 마련.
약간의 움직임만으로도 등과 어깨가 헤집어지기 충분했지만, 이미 악에 받친 로드에게는 그 정도의 부상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크르르르-
몸을 꿰뚫은 검이 심장으로 향하지 않도록, 놈은 검 끝을 손으로 고정한 채 억지로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러자 드드드득, 쇄골에 닿아있는 루이제의 검이 뼈를 긁어내는 거친 소리를 냈다.
들썩들썩.
결국 버티고 있던 루이제의 검이 조금씩 뽑혀 나오기 시작한다.
“이대로는 정말로 바즈라를 죽이게 될지도 몰라.”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성진이 입을 열었다.
라이칸슬로프 로드를 노려보며 한 말이었지만 정작 목표로 한 청자는 따로 있었다.
-이대로라면 말이 통하는 네 유일한 동족을 해치게 될지도 모르는데 괜찮을까?
그러자 성진의 의도를 알아들은 루이제가 이를 악물고 외쳤다.
“…상관없습니다! 권속으로 강하게 매여 있는 한, 이자는 결코 로드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오히려 편히 보내주는 것이 그를 위한 일일 겁니다!”
“그래.”
고개를 끄덕인 성진이 명했다.
“그럼 지금 그놈을 놔.”
“……!?”
생각지도 못한 명령에 루이제는 일순 당황했다.
어째서? 자신이 잡고 있는 동안 최대한 놈에게 타격을 주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녀는 혼란스러운 눈으로 성진을 바라보았지만, 마주 보는 황자의 시선에는 일말의 흔들림도 없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 그 결과를 온전히 인지하고 있는, 루이제로서는 가늠하기 어려운 그 어딘가에 닿아있는, 확고한 자신으로 가득 찬 회색의 눈.
스륵-
무심코 손에서 힘이 풀리며 절로 검이 뽑혀 나왔다.
[어딜!]갑자기 몸이 자유로워지자, 로드가 노호성을 지르며 완전히 몸을 일으킨다. 눈앞의 인간이 뭔가 심상치 않은 짓을 하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놈은 하나 남은 손을 치켜들고, 그대로 진득한 살기를 흘리며 황자를 향해 짓쳐들어왔다.
“저하!”
[이성진!]그렇게 흉흉한 손톱이 막 황자의 머리에 도달하기 직전이었다.
사악-
소리도 없이 호두까기가 휘둘러진다.
바나하스 연공법, 2식 2형.
불세출의 천재 바나하스가 평생에 걸쳐 다듬어낸, 황실 기사단 표준 검술 중 가장 넓은 횡 베기 범위를 가지는 검형.
“저……!”
순간 루이제는 호흡을 멈췄다.
비스듬한 각도로 변형되어 휘둘러진 그 공격은, 단출한 롱소드의 간격 내에서 펼쳐진 것임에 자명했다.
그럼에도 어쩐지 루이제의 눈에는, 그 검의 끝이 협곡 전체의 공기를 가르고 저 침엽수 너머까지 닿아있는 듯 느껴졌다.
그 아름답기까지 한 검로 위에, 차가운 공기가 얼어붙고, 시간이 얼어붙는다.
지척에 있던 로드의 목 또한 그저 그 길 위에 있었을 뿐.
휘익-
몸에서 깔끔하게 분리된 머리통이 가볍게도 허공을 날았다.
마법같이 멈춰있던 시간이 흐르며, 이윽고 로드의 몸이 서서히 바닥으로 무너져 내린다.
쿠우웅!
육중한 로드의 몸이 성진의 옆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 충격에 자욱한 눈안개가 사방으로 비산한다.
“…….”
루이제는 눈앞에서 펼쳐진 그 거짓말 같은 광경에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정작 그런 엄청난 일격을 날린 성진만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호두까기를 허리춤에 갈무리할 뿐이다.
“끄응…….”
잠시 옆구리를 부여잡고 앓는 소리를 낸 성진은, 저쪽에서 불안한 듯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막스를 향해 가볍게 손짓했다.
“막스, 이리 와!”
웡!
성진의 말을 귀신같이 알아들은 늑대개가, 물고 있던 바즈라의 손을 바닥에 놓고는 잽싸게 달려왔다.
붕붕.
녀석의 들뜬 기분을 반영하듯, 복슬복슬한 꼬리가 부산하게 흔들린다. 성진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야, 인마. 지금 뭘 잘했다고 그렇게 신이 나 있는 거야?”
성진은 짐짓 엄하게 꾸짖은 후, 눈치를 보며 그의 앞에 다소곳이 앉은 개를 향해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알겠냐, 막스? 빤히 위험한 게 보이는데, 그렇게 생각 없이 막무가내로 달려들면 안 되는 거야. 옆에서 보는 사람의 기분이 어떻겠냐? 너, 내가 아까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그러자-
끼잉?
막스는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며 성진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내가 쟬 물리쳤어. 나 잘하지 않았어?
그저 해맑기만 한 얼굴.
“에휴, 이 철없는 것아…….”
성진은 한숨을 쉬며 막스의 머리를 토닥이다가, 문득 이상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루이제의 시선을 알아챘다.
“뭐? 왜? 뭐?”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뭐야. 어쩐지 기분 나쁜데?
그러자 마왕 놈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거 참. 가슴에 손을 얹고 너 자신을 한번 돌이켜봐라, 이 철없는 사고뭉치야!]‘…닥쳐!’
불쌍한 바즈라는 그 마지막 일격으로 완전히 숨통이 끊어졌다.
초점을 잃고 활짝 열린 놈의 동공을 루이제가 말없이 내려다보는 동안, 성진은 깨끗한 눈 한 줌을 집어 얼굴에 쓱쓱 문지르며 말했다.
“바즈라를 구하지 못한 건 애석한 일이지만, 낙담하고 있을 틈이 없어. 아직 루이제가 조사할 것은 남아 있으니까.”
“…조사할 것이요?”
“응.”
그렇게 대답한 성진은 협곡 아래에 있는 큰 바위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남은 라이칸슬로프들 말이야.”
“…남아 있다고요?”
“응. 저놈이 이성을 찾은 걸 보니, 혹시나 해서 나머지도 어떻게 살려 놓긴 했어.”
그래서 해치우는데 시간이 좀 걸렸지.
그런 성진의 말을 뒤로 하고, 루이제는 재빨리 바위 뒤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곳에 펼쳐진 처참한 광경에 일순 경악하며 숨을 멈추고 말았다.
“이건…….”
거기에는 팔다리가 모두 잘려나가고, 몸통만 남은 두 마리의 라이칸슬로프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단면을 얼려 재생을 막기 위해서였는지, 놈들의 몸통은 꼼꼼하게 눈 속에 파묻혀 있었다. 그리고 잘려나간 팔다리들은 모두 높은 바위 위에 멀찍이 걸쳐져 있다.
눈 위에 겨우 머리만을 멀쩡히 내놓은 두 마리의 라이칸슬로프가, 흐린 눈동자를 하고 루이제를 향해 이를 드러낸다.
으르르르-
컹컹!
그녀는 넋이 나간 얼굴로 성진이 만들어 놓은 참상을 바라보았다.
재생이 빠른 데다 결박이 불가능한 상황이란 것은 이해했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나 참혹하지 않은가.
“별다른 방법이 없었어. 혹시 이성을 되찾게 만들 수만 있다면 붙여주려고, 일부러 사지도 근처에 고스란히 놔뒀다고.”
성진이 다가오며 변명하자 루이제가 힘없는 소리로 대꾸했다.
“…차라리 단칼에 죽여주시는 쪽이 좋았을 겁니다.”
“그건 네 생각이고. 이놈들의 의견은 조금 다를지도 모르잖아?”
그렇게 대답하는 황자의 눈은 여상하다 못해 냉정해 보일 정도였다.
“일단 살아있기만 하면, 어쩌면 다음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
일리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어쩐지 마음으로는 동의하기가 어렵다.
그렇게 생각하며 루이제는, 그저 이지 없이 열심히 꿈틀거리기만 할 뿐인 가여운 것들의 머리 위로 손을 올렸다.
“…얼음을 타고 올라라. 진동이 있는 곳을 찾아라. 겨우 읽어낸 사념이 그 정도입니다.”
이변은 없었다.
권속으로 만들어 놈들의 의식을 조사하던 루이제는, 곧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미 정신이 너무 탁해져서 권속으로 만들어봤자 제대로 비집을 틈이 남아있지 않군요. 이들이 이성을 되찾을 방법은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손수 바스타드 소드를 휘둘렀다.
퍼걱! 퍽!
라이칸슬로프들의 머리가 단번에 박살이 난다. 뜨거운 피가 잠시 솟구치다 이내 얼음 바닥 위에 차갑게 얼어붙었다.
루이제는 말없이 그 광경을 바라보더니, 성진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초소까지 모시겠습니다, 저하.”
너무나 무미건조하여, 오히려 침통하게 들리는 목소리였다.
* * *
라이칸슬로프로 변신한 루이제의 발은 무척이나 빨랐다.
순식간에 몇 개의 얼음 절벽을 뛰어넘고 협곡을 가로질러 달린 그녀는, 이윽고 작은 초소가 내려다보이는 눈 언덕에 이르러 발걸음을 멈췄다.
“바로 저곳입니다, 저하. 지금쯤이면 빙벽 기지로부터 전갈이 갔을 테니, 저하를 알아보지 못해 공격하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렇게 설명한 루이제는, 등에 업고 있던 성진을 눈밭에 내려 주었다.
휙휙 바뀌는 시야에 약간의 멀미를 느끼고 있던 성진은, 그때까지도 두 팔로 끌어안고 있던 막스 역시 바닥에 내려놓았다.
웡웡!
겨우 불편한 자세에서 해방된 막스가 꼬리를 치며 눈밭을 여기저기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부상은 좀 어떠십니까. 걸으실 수 있겠습니까?”
“어, 괜찮아.”
마사인 경의 심폐소생술에 비하면, 이 정도는 가벼운 타박상이지.
“그런데 루이제는 가지 않을 건가?”
어쩐지 성진 혼자 보내겠다는 투였다.
그러자 루이제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예. 저하의 부상 때문에라도 끝까지 모시고 싶습니다만, 제가 모습을 드러내면 몰래 초소를 넘어 온 것을 들키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저하, 저는 마경의 그 꽃밭을…….”
거기까지 말한 루이제는, 고개를 들어 잠시 먼 곳을 응시했다.
깎아지른 협곡 너머에 있을, 여기서는 보이지 않는 마경의 깊은 중심부를.
“저는 그 [화원]의 실체를 이 눈으로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아니, 그냥 영지로 함께 돌아가면 좋을 텐데.
문득 성진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 거라면, 영지에서 제대로 정찰대를 꾸리는 게 좋지 않을까?”
“대규모 침입에 대비해 병력을 모으는 중이 아닙니까? 영지에는 그럴 여력이 없을 겁니다. 차라리 제가 혼자 달려갔다 오는 것이 빠릅니다.”
“…….”
성진은 뭐라고 더 말을 해야 그녀를 막을 수 있을지 잠시 고민했다.
그러나 결연한 빛을 띤 검은 눈동자를 마주한 순간, 그는 루이제가 어떤 말을 들어도 절대로 결심을 바꾸지 않을 것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뭔가가 크게 비틀리게 될 것을 알면서도, 때로는 함부로 손을 댈 수 없는 상황도 있는 것이다.
“그래. 조심해서 다녀와.”
네가 이곳으로 금방 돌아올지는 모르겠지만.
평소보다 조금 힘이 빠진 성진의 인사에, 루이제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부상이 부상이니만큼, 그러려니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럼 저하, 보중하십시오.”
그렇게 간결한 인사를 남긴 루이제는, 바람처럼 질주하며 이내 협곡 저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