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224)
성황의 아이들-224화(224/469)
224. 공습 (1)
정식 토벌대를 꾸리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거액의 국고가 소진되는 일인 만큼, 목표와 일정을 정하고 인원을 소집하는 데만도 보통 한세월이 걸리기 마련.
그러나 릴리움 별동대의 경우라면 사정이 달랐다.
워낙 토벌행이 잦은 부대이기도 했고, 로건 황자와 함께라면 지옥의 불구덩이에도 뛰어들 광신도들이 모여 있는 곳.
거기다 그들을 이끄는 로건 황자가 전에 없이 서두르고, 이에 성황의 입김까지 살짝 더해지니 진행은 그야말로 일사천리였다.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후다닥 준비해서 황도를 벗어나는 별동대를 배웅하며, 수석 시종장 루이스는 식은땀이 흐르는 이마를 훔쳤다.
‘최근에는 참 별일이 다 있구나. 뭔가 대륙에 심상치 않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음이야. 그렇지 않다면 폐하께서 이리 서두르실 리가 없건만…….’
최근 루이스의 걱정은 또 있었다.
카트리나 벨파인.
성황의 방패로 알려진 충직한 기사단장이, 수일간 도통 성황의 옆을 떨어지려 하지 않는 것이다.
제법 오랜 세월 성황을 보필해 온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카트리나가 그렇게 유난을 떠는 경우는 단 하나, 성황의 상황이 그리 여의치 않을 때뿐이다.
아니나 다를까.
전날 아침에는, 정무회의에 참석할 준비를 하던 성황이 갑자기 일언반구 없이 도로 의자에 앉는 거다. 그러고는 책상에 엎드리는 듯하더니 그대로 의식을 잃어버리는 게 아닌가!
화들짝 놀란 루이스가 달려가자, 옆에 있던 카트리나가 그를 진정시켰다.
“폐하께서 일이 생겨 잠시 몸을 떠나신 것뿐입니다. 자주 있는 일이 아닙니까. 안심하십시오, 수석 시종장.”
그녀의 말대로 잠시 후 성황은 정신을 차렸지만, 루이스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성황을 오래 모셔왔기에 그 역시 이런 경우를 모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최근에는 예고 없이 몸을 떠나시는 일이 너무 잦았다.
게다가 며칠 전에는, 이렇게 몸을 떠나고선 한동안 의식을 차리지 못하신 적도 있지 않나!
‘그러니까 아마, 그 시작은 모레스 황자님이…….’
루이스의 걱정스러운 시선을 알아챈 성황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손을 들어 보였다.
“별일 아니야. 잠시 모레스를 보고 왔네. 어쩐 일인지 일행과 멀리 떨어져 있더군. 그 아이답다고 해야 할지, 잠깐 사이에 또 이상한 짐승 하나를 곁에 들였지 않았겠나.”
조금 피로해 보이는 얼굴과는 별개로, 성황은 제법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러나 그의 얼굴 한편에 스쳐가는 찰나의 우려를 수석 시종장이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이리 계속 조바심 내며 살피실 거였다면, 차라리 라이칸슬로프가 움직일 때 바로 황도로 돌아오라 하시지 그러셨습니까?”
루이스의 질문에 성황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아이가 넘어지는 것이 무섭다 하여 평생을 품에 안고 다니면, 결국 그 아이는 걸음마를 배울 수 없지 않은가.”
“…….”
라이칸슬로프의 대규모 준동을 해결하는 것이 성황에게는 ‘걸음마’에 비할 일인 모양이었다.
성황은 대수롭지 않은 투로 말했지만, 여기에는 두 가지의 맹점이 있었다.
하나는 그 ‘아이’가 넘어져 다치는 수준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치명적이라는 것.
또 다른 하나는, 뒤뚱거리며 아무 데로나 뛰어다니는 아이를 보살피려면, 우선 부모가 모든 일을 제쳐두고 아이의 뒤를 하루 종일 따라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거기다 최근에는 너무 자주 기도실에 드시지 않는가!’
성황은 요즘 들어 거의 매일을 황궁 심처의 기도실에 들었다.
[틈새]가 이전보다 자주 열리기도 했지만 단지 그것뿐만이 아닐 것이다. 분명 영혼을 어딘가로 옮겨가며 뭔가 다른 일을 병행하고 있는 것일 터.본래도 표정 변화가 없고 무감각한 얼굴을 하고 있는 성황이었지만, 심처에 다녀온 뒤에 유독 메마른 눈을 하고 있는 것은 루이스가 보기에 결코 좋은 신호가 아니었다.
‘…이런 상태가 언제까지고 계속될 수는 없는 일이다.’
시종장은 카트리나 단장이 하루 종일 성황의 곁을 떠나지 못하는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 역시 현재 성황의 상태에 대해 일종의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그들의 불안은 현실로 드러났다.
오전 정무회의를 위해 대회의장으로 걸음을 옮기던 성황이 갑자기 발을 멈추고 나직이 탄식했던 것이다.
“이런…….”
어딘가 먼 곳을 응시하는 그의 눈에 예의 기이한 은빛 안광이 스친다.
성황은 그대로 발길을 돌렸다.
“카트리나, 지금 기도실로 가겠네.”
“…[틈새]입니까?”
“그래.”
충직한 기사단장은 조금 놀란 듯했지만, 곧 고개를 숙여 보인 뒤 부하들에게 이런 저런 지시사항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성황이 루이스에게 빠르게 명령했다.
“루이스.”
“예, 폐하.”
“갑작스럽지만 타티아나에게 정무를 부탁한다 연락하게. 베니투스에게는 준비해 둔 ‘나대지 말라’는 공문 하나를 보내두고. 카프란과 체사레에게 이전처럼 외부 대소사를 위임하되, 가급적 마이어 추기경과 사전에 의논하라 이르게나. 그리고…….”
거기까지 말한 성황은 잠시 뜸을 들이다, 곧 묘한 표정으로 입꼬리를 비틀었다.
“늘 이곳에 오는 길드의 정보원을 보거든 이리 전하게. 내 한동안은 ‘그 아이’를 보러 가지 못할 것 같다고.”
…그 아이?
루이스가 채 의문을 가질 새도 없이, 할 말만을 간략하게 전달한 성황은 곧바로 자리를 떴다. 그런 그의 뒤를, 카트리나를 위시한 성 아우렐리온 기사단이 줄줄이 따른다.
이윽고 그 자리에는 시종장 루이스와, 카트리나에게 모든 업무를 위임받은 부관 프란시스 경만이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휴우.”
안경을 추슬러 올리며 작은 한숨을 내쉰 프란시스가 중얼거렸다.
“단장님이 언제까지 이렇게 고생하셔야 하는지. 어서 모레스 저하께서 황도로 돌아오셔야 할 텐데 말입니다.”
언뜻 듣기에 인과 관계를 알 수 없는 소리였지만, 루이스는 대번에 알아들었다.
그래. 모레스 저하다.
이 불안한 기류는 그 분이 떠나신 후로 서서히 표면화 되기 시작했지.
‘…하지만 그게 다일까?’
언제까지고 변하지 않을 듯 평화롭기만 하던 황도에, 이런 저런 소동들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였던가. 폐하께서 눈에 띄게 바빠지기 시작한 것은 또 언제부터였나.
사실 황자님께서 열병에서 깨어나신 뒤가 아니었던가?
‘대체 그분께, 아니 이 델크로스에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겁니까, 폐하!’
모호하고도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 채, 루이스는 한동안 성황이 사라진 기도실 방향을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
* * *
기도실에 든 네이트는, 곧장 사람들을 물리고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언제나처럼 그의 의식이 크게 확장되며 대륙 전역을 빠르게 휩싸고 돌았다.
가장 먼저, 그는 멀리 떠나있는 자신의 아들을 살폈다.
과연 그 아이답다고나 할까. 하루 만에 또 못 보던 얼음 괴물들을 꽁무니에 달고는, 마사인과 함께 열심히 어딘가를 달리고 있다. 부디 더는 무리하지 않아야 할 텐데.
릴리움 토벌대는 전속력으로 지그스문트령을 향하고 있다. 로건이 아슬아슬하게 시간에 맞추겠구나.
푸른 꽃이 흐드러진 화원에, 망연자실하여 서 있는 소녀가 보인다. 그래, 너는 결국 그리할 수밖에 없을 테지.
네이트의 시선이 다시 남쪽으로, 그리고 황도로 이동한다.
늪지에서 사냥한 거대한 해수를 앞에 두고, 야만전사들과 담소를 나누는 그의 대자가 보인다. 강한 전사로 자란 것은 좋으나 이제 슬슬 황도로 돌아와 주면 좋으련만.
책을 펼쳐든 아멜리아가 근심 어린 얼굴로 작은 나무 조각상을 어루만진다. 제법 감이 좋은 아이이니 책에 영 집중을 못하고 있는 거겠지.
인퀴지터들과 함께 훈련을 하는 시슬레도 보였다. 최근 표정이 많이 밝아진 딸이지만, 심상치 않은 예감을 느끼는 듯 이따금 걱정스러운 얼굴로 북쪽 하늘을 돌아본다.
정무회의에 참석하는 타티아나, 온실 정원에 앉아 기도하는 멜로디, 그리고… 리자베스.
[성황 아빠! 우리가 모레스에게서 눈을 떼지 않을게!] [아빠 폐하! 우리가 아렌쟈를 잘 단속할 테니 다녀와!]가장 어린아이 같으면서도, 또 누구보다 어른인 척하는 쌍둥이들이 그에게 사념을 전해온다.
이에 조금 안도한 네이트는, 언제나처럼 열린 [틈새]를 크게 비틀어 자신을 향하도록 공간을 왜곡했다.
그러자 이리저리 뒤얽힌 날카로운 공간의 단면 너머로, 그가 아는 면면들이 강한 사념과 함께 훌쩍 다가왔다.
[자네는 알고 있었네. 처음부터 모두 예견된 일이었지 않나.]멀리서 어르신이 네이트를 바라보고 있다.
[네놈이 해온 일들이 얼마나 오만한 짓이었는지, 이제는 뼈저리게 알게 될 것이다!]베르세우스가 [열쇠]를 손에 들고 비틀린 미소를 짓는다.
[언제든 마음이 바뀌면 나를 찾아오게. 결과는 비록 고통스러울지라도, 또한 더없이 아름다울 것이라네.]술병을 높이 치켜든 미트라가 말했다.
[끄랴ㄹ라락! ㅈ매;뺘라#각!]이지와 함께 말조차 잊어버린 거대한 가오리가 날카로운 이빨로 [열쇠]를 갉작이며 소리를 질렀다.
[그대가 우리에게 한 일들을 나는 결코 납득하지도, 또 인정하지도 않을 것이오!]거센 폭우를 등에 진 여인이 말했다.
[돌이킬 수 없다면, 하다못해 그대의 마음만은 평온하기를…….]헤아릴 수 없는 세월을 살아온 나무가 속삭였다.
그리고 그것을 끝으로.
쿠웅!
겁도 없이 단신으로 델크로스에 침입해 온 외계의 마왕이, 무저갱의 입구와 함께 그 거대한 모습을 드러냈다.
* * *
“……!”
“어찌 그러십니까, 저하?”
문득 성진이 발을 멈추자, 마사인이 뒤를 돌아보며 의아한 듯 물었다.
‘뭐지? 왜 느닷없이 이렇게 섬뜩한 느낌이 들지?’
성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의 기분을 반영하는 것일까, 통로를 막고 있던 가슴께의 오러가 크게 출렁거리다 잠잠해진다.
“…아냐, 아무것도. 시간이 없으니 서두르지.”
성진은 찜찜한 기분을 애써 무시하고는, 발걸음을 재촉해 마사인에게로 다가갔다.
그들은 이제 막 4번째의 초소에 들러 병사들을 퇴각시키고 있었다.
매번 초소를 들를 때마다, 병사들이 빙수 3마리에 혼비백산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반복되었다.
그래도 오르덴이 차분하게 설명하자 어떻게든 납득하는 눈치긴 했다. 여간한 일에는 동요를 보이지 않는 것이, 과연 마경의 파수꾼들답다고나 할까.
그렇게 그들이 늘어난 병사들을 이끌고 다음 초소로 향하려 할 때였다.
“…대공자님!”
뒤에서 누군가가 빠른 속도로 그들을 향해 달려오며 소리쳤다. 초소를 퇴각시키는 대신, 마경을 경계하기 위해 남은 가장 발이 빠른 기사였다.
“대공자님! 헉헉! 그, 글래쳐 트롤!”
기사의 다급한 외침에 성진 일행이 멀뚱히 그를 돌아보았다.
그래. 보이는 대로 글래쳐 트롤이지.
하지만 이제는 빙수 1, 2, 3호라고 부르라니까.
그러나 겨우 일행 앞으로 달려온 기사의 얼굴은 심각하기 그지없었다. 가쁜 숨을 헐떡이며 그가 빠르게 오르덴에게 보고를 올렸다.
“글래쳐 트롤들의, 헉, 대규모… 공습입니다! 헉헉! 그 수가 빙벽 기지보다 결코 적지 않습니다!”
“……!”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헉, 놈들의 뒤에는 그, 라이칸슬로프들이 있습니다! 설원으로 향한다고 생각했던 500여 마리가 죄다 협곡으로 방향을 튼 것 같습니다!”
“이런! 놈들이 실제 목표로 한 것은 협곡 쪽이었나!”
오르덴이 이를 악물며 외쳤다.
영지 전력의 대부분을 빙벽 기지로 집중한 탓에, 협곡의 요새는 현재 텅 비다시피 한 상태다.
“거리는?”
“채 한 시간도 되지 않습니다.”
절망적이었다.
이미 경비대장에게 추가 병력을 요청한 상태지만, 그들이 영지를 출발하기도 전에 적의 군세가 먼저 요새로 들이닥칠 형국이었다.
“일단 퇴각을 서두른다! 협곡 요새 쪽에도 미리 신호를 보내고!”
그들의 대화를 잠자코 듣고 있던 성진이 고개를 들었다. 곧 다급한 성진의 시선과 초조한 마사인의 시선이 마주친다.
-마사인 경. 자네도 알잖아? 나라면 저들의 틈에서 글래쳐 트롤을 조종하는 자를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몰라. 그놈을 잡기만 하면 아군의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거다.
성진의 눈빛만으로도, 마사인은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지 알아챘다.
그리고 그에 대한 마사인의 대답은 단호했다.
-어림없습니다, 저하!
그 흉흉한 눈빛을 마주한 성진은 찔끔 고개를 돌렸다.
그래.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대공자님. 서두르면 어떻게든 시간에 맞게 요새에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제3빙벽에 댈 것은 아닙니다만, 협곡 요새의 높이도 그리 만만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도착하기만 한다면 아마 한동안은 놈들의 공세를 견딜 수 있을 겁니다.”
오스카 경의 말에 오르덴이 근심스로운 얼굴로 대답했다.
“그렇겠지. 문제는 외곽에 있는 초소들이다. 신호를 보내뒀지만, 아마도 그들이 제시간에 모두 퇴각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겠나.”
이제까지 동고동락한 영지의 병사들을 버릴 수밖에 없는가!
그렇게 오르덴과 기사들이 한껏 고뇌하고 있을 때였다.
문득 성진의 뇌리에, 순간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아! 혹시 이러면 어떨까?”
그리고 그의 설명을 들은 마사인과 오르덴의 얼굴이 삽시간에 창백해졌다.
“…네? 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