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225)
성황의 아이들-225화(225/469)
225. 공습 (2)
쿵쿵.
지축을 울리는 진동이 멀리서부터 빠르게 다가온다.
긴급 퇴각 신호에 따라 요새로의 발걸음을 서두르던 몇 명의 병사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보았다.
글래쳐 트롤이 돌아다닐 시기도 아닌데,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 걸까?
그리고 그들은 곧 진동의 정체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굽어진 협곡의 귀퉁이에서 불쑥, 거대한 얼음 괴물들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으아악! 글래쳐 트롤이다!”
“도망! 도망쳐라!”
말단 병사에 불과한 그들이 저 거대한 마수를 상대할 수 있을 리가.
병사들은 슈니슈헤를 최대한 펼쳐가며 혼신의 힘을 다해 도주를 시작했다. 다행히도 금방 끝이 나기는 했지만.
“어어, 멀리 가지 마!”
“멈춰라! 지그스문트령의 아군이다!”
…뭐?
얼음 괴물로부터 들려온 외침에 주춤거리며 뒤를 돌아본 병사들은 또 다른 의미에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가장 선두에 서있는 괴물의 어깨 위에, 그들이 익히 잘 아는 자의 모습이 보였던 것이다. 얼굴이 핼쑥하게 질린 대공자, 오르덴이었다.
“이들은 빈스…들이라고 한다. 자네들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다.”
빈… 뭐라고요?
“퇴각을 도우러 왔다. 시간이 없으니 어서 여기 올라타라!”
“…타라고요? 글래쳐 트롤을 말입니까?”
“황자님께서 잘 통제하고 계시니 안심하도록.”
귀를 의심하게 하는 말이었지만, 정말로 세 마리의 괴물이 일제히 무릎을 꿇으며 자세를 낮추는 것이 아닌가!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입을 쩍 벌리고 있는데, 놀랍게도 얼음 괴물의 위에는 선객들이 있었다. 황자와 근위대 기사, 인퀴지터, 심지어는 동료 병사 몇몇의 겁에 질린 얼굴들까지 보였다.
그때 빙수 1호의 머리에 붙어있던 황자가 빼꼼 고개를 내밀며 주의를 주었다.
“적어도 어깨 위까지는 올라와! 그나마 달릴 때 낙차가 가장 적은 부분이야!”
“…….”
“아! 세 번째에 있는 녀석은 타지 말고. 걘 오는 길에 몇 번이나 넘어졌거든. 자칫 잘못하면 얼음 더미에 깔릴지도 몰라!”
병사들은 뭔가에 홀린 기분으로 주춤거리며 얼음 괴물의 몸체를 타로 올랐다. 그렇게 그들이 어깨 부근에 자리를 잡자-
“자, 그럼 출발한다.”
황자의 말을 신호로.
쿠르르르.
묵직한 소음을 내며 글래쳐 트롤 세 마리가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꽉 잡아! 오러로 머리와 목을 보호하는 것 잊지 말고!”
황자의 뒷말은 바람 소리에 뒤섞여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갑작스러운 괴물들의 가속에, 그들의 얼굴에 훅 하고 거센 바람이 불어 닥쳤기 때문이다.
아무렇게나 잡히는 얼음 덩어리를 부여잡고 병사들이 으아아 비명을 질렀다.
쿵쿵!
그렇게 또다시 협곡의 공기가 거세게 흔들리며, 절벽 위의 눈들이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시간을 너무 지체했다!’
한편, 빙수 세 마리를 조종하는 성진의 마음은 여러모로 다급했다.
지금이야 선객도 있고 요령도 생겼지만, 처음 마주친 병사들을 빙수에 올라타도록 설득하는 데 예상보다 많은 시간을 잡아먹은 까닭이다.
하긴,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평생을 마경에서 마수들과 대적하며 살아온 이들이니까.
그래서 급한 마음에 빙수들을 전속력으로 달리게 했더니, 이번에는 승차감이 극도로 나빠졌다. 오프로드 레이싱이라도 하면서 옆 차를 계속 들이받는다 해도, 이보다는 충격이 덜하리라 감히 장담할 수 있을 정도다.
‘이거 두 번은 못 할 짓이네. 어린 시절에는 나름 거대 로봇에 대한 환상이 있었는데 말이야.’
그나마 오러로 신체를 보호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진작 뇌진탕으로 나가떨어졌으리라.
“이제 얼마나 남았나?”
“초소 두 개만 더 돌면 됩니다, 저하!”
그렇게 대답한 오르덴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성진을 바라보았다.
따지고 보면 글래쳐 트롤의 습격 가능성을 생각한 것도, 그리고 이것들을 조종하는 방법을 알아낸 것도 전부 모레스 황자가 아닌가.
빙벽 기지가 미리 대비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자신이 포기할 뻔한 병사들의 생명까지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지그스문트가 저하께 또 한 번 큰 빚을 졌습니다.”
그 말에 성진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것도 저것도 다 빚이라네. 너 인마. 그러다 파산해.
“이게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그래, 처음 성진이 떠올린 생각은 지극히 단순한 것이었다.
만약 10여 미터가 넘어가는 빙수들이 전속력으로 달리면 얼마나 빠를까. 낮은 언덕쯤은 한걸음에 넘어갈 테니, 퇴각이 늦어지는 병사들도 모두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설령 시간에 못 맞춘다고 해도, 쳐들어온 글래쳐 트롤들 틈에 섞여서 은근슬쩍 넘어갈 수 있을지도 모르고.
물론 그 아이디어에 대한 반발은 극심했다!
특히 마사인은 펄펄 뛰다시피 하며 성진에게 화를 냈었지.
“저것이 어떤 악마의 술수인지도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한데 저 수상한 것을 저하께서 직접 타신다고요? 남들 눈에 그 모습이 어떻게 보이겠습니까?”
“그럼, 괜찮다는 증거로 발레리 경을 함께 데려갈게. 이단재판부의 대변인이라 할 수 있는 인퀴지터가 함께인데 뭐가 문제야?”
“네? 저는 왜 갑자기……?”
대체 언제부터 제가 이단재판부의 대변인이 된 겁니까? 저에게 거부권은 없는 겁니까?
뒤에서 힘없이 중얼거리는 빨강머리 인퀴지터를 무시하고, 마사인이 목에 더욱 핏대를 세웠다.
“저하께서 피투성이로 돌아오신 것이 바로 어제입니다! 한데 또 혼자서 위험한 짓을 하신다고요? 저는 절대로 반대입니다!”
“그럼 마사인 경도 나와 함께 타면 되지 않나? 위험한 일을 한다면 적어도 마사인 경 앞에서 할게. 혹시 무슨 일이 생겨도 경이 날 적절하게 도울 수 있잖아?”
“윽……!”
앗, 마사인 경. 방금 혹했지? 그렇지?
“…하지만 저하! 저희들은 그렇다 치고, 저 빈스…들을 처음 본 병사들이 이것을 순순히 탈지도 문제입니다. 애초에 마수에 탑승한다는 발상이 어떻게 나오시는 겁니까!”
“그럼 빙수들이 안전하다는 증거로 대공자도 데려가자! 공신력 있는 영지의 적장자가 그들에게 잘 설명해 줄 거야. 그렇지?”
“…….”
아니, 그건 뭔가 좀 싫은데, 하는 표정으로 오르덴이 입을 꾹 다물었다.
어딜 오르덴 주제에!
이곳 병사들의 목숨이 걸린 일이잖아? 애초에 너에겐 선택지가 없다!
그렇게 해서 단체로 우르르 빙수 1에 올라탄 채 여기까지 이른 것이다.
글래쳐 트롤 셋을 일괄적으로 움직이게 만드느라 조종이 투박해진 감은 있었지만, 다행히 빙수 3이 몇 차례 바닥을 구른 걸 빼면 계획은 별 무리 없이 진행되었다.
아, 오러 운용이 미숙한 병사 몇몇이 구토를 하거나 기진맥진해 뻗은 건 빼고.
그로부터 얼마간-
“으악! 글래쳐 트롤이다!”
“안심해라! 아군이다!”
“3호는 타지 말고, 오러로 몸을 보호해!”
등등의 과정을 반복한 끝에, 성진 일행은 마침내 초소의 병사들을 모두 구출할 수 있었다.
“저하. 이제 시간이 없습니다!”
오르덴의 외침에 성진은 바짝 정신을 집중했다.
나머지 일행을 이끌고 먼저 협곡 요새로 향한 오스카 경이, 아마 사람들에게 대강의 사정은 설명해 뒀겠지. 그럼 조금 요란하게 달려도 큰 소란은 없을 터.
“모두, 꽉 잡아!”
그와 동시에.
쿠웅!
세 마리의 얼음 괴물이 일제히 바닥을 박차고 뛰어 오른다. 얼어붙은 땅과 얼음의 다리가 거세게 충돌하며, 사방으로 흩날리는 작은 얼음 파편들이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도 반짝거렸다.
휘이-
“나, 날았……!?”
병사들의 경악한 외침과 함께.
콰아앙!!
단숨에 넓은 구렁 하나를 뛰어넘은 글래쳐 트롤들이, 영지의 경계를 향해 씩씩하게 내달리기 시작했다.
* * *
그때 협곡 요새에서는, 오스카 경이 한창 요새의 책임자와 실랑이를 벌이는 중이었다.
책임자는 한스 경이라고 하는 제법 나이 지긋한 기사였는데, 부상으로 현역을 은퇴한 후 지금은 협곡 부근의 경비 일체를 책임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요새 입구를 최대한 넓혀두잔 말입니다!”
“아니, 부단장.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요? 곧 마수들이 몰려올 거요. 입구를 닫아 단단히 얼리기도 모자란 시간이란 말이오!”
“하지만 대공자께서 낙오된 병력을 모두 데려온다 하셨단 말입니다! 그들 중 빠르게 도르래 줄을 타고 빙벽을 올라올 자가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렇다고 요새의 방어를 도외시 할 수는 없지 않소? 영지의 안전이 걸린 일이오.”
한스 경의 난처한 대답에, 오스카 경이 한껏 목소리를 낮추었다.
“일행 중에는 신성제국의 어린 황자도 계십니다! 그분께 줄을 타고 이 높이를 직접 오르라 말할 셈이오?”
“그건 그렇지만…….”
한스 경이 못마땅한 얼굴로 귀를 후비적거렸다.
그때, 쿵 쿵 쿵!
멀리서 어마어마한 진동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요새의 빙벽이 미세하게 흔들릴 정도로 강한 진동이었다.
“아, 보십시오! 드디어 대공자께서 오셨……!”
반색을 하며 돌아서던 오스카 경의 얼굴이 일순 딱딱하게 굳었다.
협곡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무리 지어 몰려오는 수십 마리의 글래쳐 트롤들.
적들의 공습이었다.
“…대공자님!”
오스카 경이 침통한 얼굴로 이를 악문다.
결국에는 시간에 맞추지 못했나!
“…옵니다.”
그때, 멍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던 엑소시스트가 나직하게 말했다.
하나같이 개성 강한 황자의 일행이었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음침한 기운을 풍기곤 하던 성기사다.
지금도 그녀는 히죽히죽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며 새된 목소리로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네에. 그러믄요.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흐흐. 왜냐하면 모레스는 모레스니까요? 아아, 네. 그래요. 모레스는 다름 아닌 모레스니까요. 흐으흐으.”
마치 귀신이라도 들린 듯한 괴상망측한 모습.
오스카 경이 질린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는데, 갑자기 클로디아 경이 팔짝 뛰어오르며 소리쳤다.
“앗! 저기 보세요!”
그녀는 이미 오러로 한껏 안력을 돋운 채였다.
“저기! 저하가 오십니다!”
그녀의 말대로, 남쪽으로 이어지는 협곡의 갈림길에 세 마리의 익숙한 얼음 괴물들이 나타났다. 사람들을 어깨에 옹기종기 싣고 달려오는 저 모습은.
“저하!”
“대공자님!”
하지만 일행이 기뻐하는 것도 잠시.
쿠웅! 쿵 쿵 쿵 쿵!
강한 충격음과 함께, 갑자기 적의 글래쳐 트롤 한 마리가 속도를 높여 요새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분명 황자 일행의 움직임을 알아채고 막으려는 의도이리라!
다급해진 오스카 경이 외쳤다.
“내가 내려가겠다! 어서 도르래를 내려라!”
“아, 아니, 하지만…….”
그런데 오스카 경의 선수를 친 자가 있었다.
순식간에 그의 앞에서 줄을 낚아챈 기사 하나가, 20미터는 훌쩍 넘어가는 요새 위에서 겁도 없이 뛰어내린다.
평소 말수가 적고 조용하던 상주기사, 마리아 경이었다.
드르르르륵-
미친 듯이 돌아가는 도르래.
뒤늦게 병사들이 줄을 잡았지만, 낙하하듯 빙벽을 미끄러진 마리아 경은 어느새 바닥에 거의 당도해 있었다.
훌쩍. 남은 거리를 거침없이 뛰어내린 그녀는, 그대로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며 검을 뽑았다. 적의 글래쳐 트롤을 똑바로 마주한 채.
아마도 아직은 달릴 정도로 슈니슈헤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 절도 있는 움직임에는 어딘가 기사들의 마음을 강하게 잡아끄는 무게감이 있었다.
저도 모르게 그 모습에 넋이 나갔던 오스카 경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다음 도르래를 잡았다.
두두두두.
그때 황자의 빈스들은 거의 요새의 끄트머리에 이르러 있었다. 하지만 정면에서 홀로 달려온 글래쳐 트롤이 조금 더 빨랐다.
속도를 줄이지 않은 얼음 괴물이 그대로 앞을 막아선 마리아 경을 향해 달려들었다.
“마리아 경!”
분명 그녀는 마수를 처음 상대해 보는 황도의 온실기사.
그럼에도 스멀스멀 뚜렷한 외기를 흘리는 상급 기사의 기세는, 일순 쏘아져 오는 얼음 괴물의 기세를 압도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처억.
태산 같은 무게로 내디뎌지는 한걸음과 함께.
마리아 경의 날카로운 검이 동심원을 그리며 두꺼운 얼음을 깊숙이 파고든다.
바나하스 5식 6형. 벌통 찌르기.
콰콰콰콱!
번개 같이 내쏘아진 검 날이, 지척으로 다가온 글래쳐 트롤의 다리 둥치를 무참하게 들쑤신다. 황실 기사단 표준 검술에서도 손꼽히는 파괴력을 자랑하는 찌르기의 정수.
쩌엉!
발치가 거하게 터져나간 괴물이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때마침 놈의 바로 옆까지 다가온 빙수 1호가, 놈을 가볍게 앞지르며 슬그머니 발을 걸었다.
쿠당탕탕!
거대한 얼음 괴물이 요란하게 바닥으로 쓰러지며, 순간적으로 요새가 흔들거렸다.
“마리아 경!”
성진이 빙수 1호의 손을 뻗자, 잽싸게 그 위에 올라타며 마리아 경이 외쳤다.
“하마터면 늦을 뻔하셨습니다, 저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위험하게 이게 대체 무슨 짓이야?”
다짜고짜 소리치는 황자는 정말로 화가 난 얼굴이었다.
그 난데없는 꾸지람에, 잠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성진을 바라보던 마리아 경이 이윽고 푸훗, 가벼운 웃음소리를 흘렸다.
“저도 걱정했습니다, 저하.”
“…아니, 뭐.”
성진은 머쓱하게 고개를 돌리며 얼버무렸다.
“저하! 서두르십시오!”
“시간이 없습니다!”
그때 요새 위에서 일행들이 그를 향해 발을 동동 굴리며 소리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성진은 적과의 거리를 대충 가늠하며 오르덴에게 다짜고짜 통보했다.
“시간이 촉박하군. 아무래도 내가 알아서 요새 입구를 열어야겠어.”
“네? 저하. 어쩌시려고…….”
오르덴이 당황하며 물었으나, 대답 대신 옆에서 빙수 3호가 대열을 박차고 솟구쳐 나왔다.
슬슬 빙수들의 조종에 요령이 생긴 성진이, 사람이 탑승하지 않은 홀가분한 3호를 개별 조종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무서운 기세로 다가오는 얼음 괴물의 모습에 한스 경이 기겁을 하고 있는데.
“길을 열어라, 빙수 3호!”
황자의 명령과 함께.
쿠아앙!
쏜살같이 달려온 글래쳐 트롤의 강대한 주먹이, 좁은 요새 입구에 강하게 틀어박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