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241)
성황의 아이들-241화(241/469)
241. 귀환 (1)
“꺽?”
노사제의 입에서 나온 괴상한 비명에, 작은 소녀가 눈을 왈칵 찌푸렸다.
“이건 또 뭐 하는 짓거리지? 체통을 지켜라.”
“아니, 그런 혐오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지 말아 줄래? 아무래도 상처가 된다고.”
손을 휘휘 내저은 파종이 심각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방금 내 권속이 죽어버렸다. 이럴 수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제법 능력 있고 쓸 만한 권속이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죽어버리다니?
탐욕은 어울리지 않게 호들갑을 떠는 고위 마왕을 한심하다는 눈으로 노려보았다.
“그가 남긴 것은 없나?”
“음…. 전혀?”
파종이 북쪽을 향해 정신을 집중해 보았지만, 감지되는 것이라고는 너무나도 미약한 잔존 사념뿐이었다.
[아아, 어서 내 주인께 이 사실을 알려드려야…….]그야말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다잉 메시지였다.
대체 뭘 알려?
너를 죽인 게 도대체 누군데?
“수호자가 돌아왔나? 나는 감지하지 못했다만.”
탐욕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지그스문트령을 치기 위해 준비한 전력은, 수호자가 직접 오지 않는다면 결코 당해낼 수 없을 규모였으니까.
그러나 파종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델크로스의 수호자는 아직 틈새에서 돌아오지 못했어. 거참, 생각대로 되는 게 없네.”
본래라면 발목이 잡혀있던 델크로스의 수호자가, 다급한 상황에 몰려 어쩔 수 없이 [협정]을 어기도록 유도하려 했더니만.
파종은 휑하니 비어가기 시작하는 정수리를 긁적거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일을 좀 적당히 벌일 것을 그랬지. 애열이 생각보다 너무 화끈하게 저질러 버렸다고.”
설마 그 강력한 수호자가 하루 종일 붙잡혀 있을 만큼 많은 차원을 만들어낼 줄이야!
덕분에 그들의 계획은 이도 저도 아니게 되어 버렸다.
지그스문트령을 점령하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델크로스의 수호자를 몰락시키기에도 역부족이었지.
“아!”
그때 갑자기 파종이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얼음 심장! 그것들을 어떻게 하지? 애열이 꼭 돌려달려고 말했는데.”
뭐라더라? 그 서버…라는 세계에서 대단히 희귀한 물건이라고.
다 쓸어오느라 자금을 다 털어 넣었다고 들었다 했어.
“몇 개나 빌렸기에?”
애열의 성정이 보통이 아님을 익히 아는 탐식이, 드물게도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보였다.
“다섯 개. 내 권속은 제법 유능한 놈이라 믿고 몽땅 맡겼는데 이렇게 소리 소문 없이 죽어버리다니. 이제 그것들을 어떻게 되찾는다지?”
애열은 어떻게 해서든 그 값을 다 받아낼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며, 파종은 우울한 얼굴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 *
목표로 했던 악마를 잡고 나니 그다음은 일사천리였다.
로건은 전선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낌없이 검을 펼쳤다. 더 이상 뭔가를 숨길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가 이동하는 경로를 따라 글래쳐 트롤들의 얼음 무덤이 하나 둘 쌓이고, 수백에 이르는 라이칸슬로프들의 주검이 나뒹굴었다.
그러던 중 로건은 뜻밖의 광경을 목격했다.
비탈 한가운데서 빈스가 허공을 바라보며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것이다.
“…이성진?”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반쯤 부서진 글래쳐 트롤 하나가 주먹을 휘두르고 있음에도, 빈스는 조금도 대응하지 않고 있었다. 마치 혼이 빠져나간 듯한 모습이었다.
잠시 그런 빈스를 응시하던 로건은 황급히 울프 기사단을 찾았다.
“저것이 언제부터 저러고 서 있는 건가?”
갑자기 나타난 어린 소드 마스터의 물음에, 울프 기사들은 순간 당황했다. 그러나 곧 일마 경이 나서서 침착하게 대답했다.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움직임이 조금씩 느려지더니 아까부터 저 상태군요. 전장의 상황도 어느 정도 정리되었으니, 저하께서 조종을 멈추신 게 아니겠습니까?”
“그래?”
로건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아까까지만 해도 그렇게 신나게 날뛰었는데, 여유가 생겼다고 당장 그만둔다고? 그 녀석이?
‘설마 그럴 리가.’
틀림없다. 이성진에게 뭔가 문제가 생긴 거다.
“이런 젠장!”
로건은 그에게 덤벼오는 라이칸슬로프를 본 척도 하지 않고 빠르게 후방을 향해 내달렸다.
부디, 부디 별 일이 없어야 할 텐데!
* * *
훌쩍, 훌쩍.
어디선가 작은 울음소리가 들린다.
성진은 늘 듣는 노랫소리인 양 그 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걸음을 옮겼다.
[이성진, 이 멍청아! 내가 결국 이럴 줄 알았다고.]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작은 영혼이었다.
훌쩍임에 맞춰 붉은빛을 점멸하는 영혼은, 성진의 뒤를 졸졸 따라오며 계속 울먹거렸다.
[몸을 떠난 영혼이 얼마나 오래 버틸 거라 생각했어? 넌 뒷일은 생각도 안 하지? 네 아버지도 오지 않는데, 이제 어떻게 돌아가려고 그래?]‘…….’
성진은 조심스럽게 마왕의 티끌 같은 영혼을 감싸 쥐었다.
이전과 달리 부쩍 작아진 손아귀에서조차, 놈의 연약한 영혼은 한 줌 거리밖에 되질 않았다. 너무 하찮고 약한 것이 되어버려서, 더는 예전처럼 미워할 수도 없는 놈.
[이제 어쩌면 좋지? 훌쩍, 훌쩍.]뭘 그렇게 슬퍼하냐, 마왕아.
성진은 의아하게 생각했다.
원래 우리는 처음부터 이렇게 될 예정이었다고 했었잖아? 게헤나의 겁화에 휩싸여 그대로 영혼까지 완전히 흩어지며 죽어버렸을 거라고.
[그때와 지금은 달라. 예전의 너는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돌아가고 싶어 하잖아.]내가 돌아가고 싶어 해?
뭐, 그럴지도 모른다.
근데 마왕아, 왜 네가 그렇게 구슬프게 울고 있어? 예전에 너 혼자 차원의 미아가 되었을 때도, 그렇게까지 서러워했던 것 같지는 않은데.
[그거야 네가 슬퍼하니까 그렇지! 쿨쩍.]‘…….’
…그런가?
사실 지금에 와서는 잘 모르겠다.
[모레스! 모레스! 어서 돌아와!] [모레스! 모레스! 멀리 가지 마!]봐봐. 언제나처럼 귓가에서 시끄러운 꼬맹이들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어. 하지만 난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고.
그나저나 이 녀석들아. 둘이서 같은 말 좀 반복하지 마. 그거 은근 귀 따갑고 성가시단 말이다.
[저하, 돌아와 주십시오. 부디 이 브루노를 버리지 말아 주십시오!]멀리서 누군가의 절절한 당부도 들려 온다.
아, 맞아. 저기에는 나한테 속한 인과가 남아 있어.
세계에서 추방당한 지가 오래니, 아마 내가 없으면 저 사람은 세계에 더 이상 발붙일 수 없겠지. 역시 저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겠는데.
‘하지만 연연하기에는 더없이 미약한 인력이다.’
그것도 그렇지.
성진의 걸음이 조금 느려진다.
그다지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마음 한편이 무거워지는 것만은 어쩔 수가 없었다.
[저하! 저하! 제발 눈을 떠 주십시오!]그때 다급한 기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우뚝, 걸음을 멈춘 성진이 뒤를 돌아보았다.
마사인 경. 성진의 뒤를 따라다니느라 늘 마음고생이 심한 사람이지. 이대로 헤어지면 상심이 클 텐데.
‘어쩌면 지금이라도 놓아주는 쪽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래. 그럴지도 몰라.
서로가 이게 무슨 사서 고생이람.
지금에 와서 생각하는 거지만, 모레스로 살아나가는 것이 조금은 힘에 부친 것 같기도 하다고. 혼자 있을 때보다 신경 쓸 것들이 너무 많아져 버렸거든.
그렇게 다시 걸음을 옮기려고 할 때였다.
딸랑. 딸랑.
갑자기 머리 위에서 방울 소리가 들려왔다.
‘……?’
[호우호우호우!]호우호우? 뭐지? 누가 웃고 있지?
의아해하고 있는데, 머리 위에서 웬 신형 하나가 하늘하늘 떨어져 내렸다.
그 경쾌한 움직임만 보면 마치 요정과도 같은 가벼운 몸짓이었다. 단지 그 주체가 빨간 모자를 쓴 대머리 영감이어서 그렇지.
[…뭐야? 이 영감은?]훌쩍거리던 마왕이 울음을 그치고 황당한 듯 물었다.
[호우호우! 어딜 가느냐, 꼬마야!]영감이 소리치며 가뿐히 성진의 앞에 내려선다.
와! 아멜리아 누님! 이것 좀 보세요! 드래곤이 실존하는 것도 놀라운데, 이 세계에는 정말 산타도 있어요!
어릴 때도 믿어본 적 없는데, 동심이란 것도 지키고 볼 일인가 봅니다.
그러자 성진의 생각을 어떻게 알았는지, 영감이 인상을 쓰며 외쳤다.
[이것아! 작작 좀 하거라! 난 그 산타란 것이 아니란 말이다!]아, 그러세요?
확실히 영감을 찬찬히 살펴보니, 기억 속의 산타와 조금 다르긴 했다.
빨간 고깔을 쓰고 흰 수염을 기르고 있긴 했지만, 풍채가 산타에 비해 뭔가 많이 빈약한 것이다.
거기다 그가 입고 있는 것은 빨간 외투가 아니라, 붉은 주신의 문양이 새겨진 화려한 사제복이었다.
응? 사제?
[그렇다! 이 몸께서 바로 그 유명하신 성 아우렐리온이시다!]영감의 당당한 자기소개에 성진이 황당한 얼굴로 그를 마주 보았다.
저기, 보통 자기 스스로를 성인이라고 말합니까? 그나저나 동화책에서 읽은 이미지랑은 많이 다르신데요?
그러자 영감은 뭔가 못마땅한 얼굴로 성진을 쏘아보았다.
[이게 다 너 때문이 아니냐! 에잉! 쯧쯧쯧.]저 때문이라니요?
[그래, 아이야. 날 처음 봤을 때 너는 무슨 생각을 했더냐?]성진은 얼마 전에 있었던 일들을 찬찬히 떠올렸다.
그러니까, 성 아우렐리온의 모습을 제대로 접한 것은 아마도 레지나라고 하는 큰 도시였지.
노점상에 빽빽하게 진열되어 있는 작은 영감들이, 마치 어린 시절 상점에서 봤던 대량생산 된 산타 인형 같다고 생각했었다.
…어라, 산타?
[이제 알겠느냐?]그러니까 이게 저 때문이라는 겁니까? 제가 산타 같다고 생각해서?
그러자 영감이 가슴을 치며 한탄했다.
[그야 당연히 너 때문이다! 그렇게 강렬한 염상을 덧씌워 보내 놓고는, 또 받은 놈들이 죄다 거기에 강한 염원들을 퍼부어대니 염상이 점점 더 강해지지 않고 배기느냐!]염원이요?
[그래. 돌아가서 네 가족들을 말려 봐라. 특히 네 아비를 좀 어떻게 하란 말이다! 신의 대리자가 올리는 축성을 매일 받다보면 염상이 점점 더 강력해지는 것이라. 이러다 내 이미지가 정말로 배불뚝이 영감으로 바뀌기라도 하면 어쩔 테냐!]흠. 그건 좀 곤란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대머리는 면하실 텐데…….
성진이 그런 무례한 생각을 하는 동안 영감은 계속해서 투덜거렸다.
[그나저나 네 가족들 속 좀 작작 썩여라! 에잉! 가장 착한 아이들의 소원이, 가장 나쁜 아이를 구해주는 거라니! 쯧쯧쯧!]아니, 영감님. 산타가 아니라면서, 왜 착한 아이 타령입니까?
거기다 제가 왜 가장 나쁜 아이죠? 그래도 저는 이 낯선 세상을 위해 나름 최선을 다했다고요!
그러자 아우렐리온 영감이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성진을 쏘아본다.
[가족들의 가슴에, 특히 부모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놈이 나쁜 아이가 아니면 뭐란 말이냐!]‘…….’
순간 성진은 가슴에서 뭔가가 울컥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부모?
나한테?
갑자기 휘몰아쳐 오는 복잡한 감정에 멍하니 서 있는데, 영감이 큼큼 헛기침을 하더니 어딘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자, 저길 봐라. 네가 뭔가 잊은 것 같아 가르쳐 주러 왔느니라.]잊은 것?
영감의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돌리니, 멀리서 희미한 선 같은 것이 보였다.
그저 가느다란 실일 뿐이었지만, 사위가 어두운 가운데 홀로 반짝거리고 있어 묘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성진은 문득 작은 호기심이 이는 것을 느꼈다.
[훌쩍, 훌쩍.]마왕 놈이 다시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뭐야, 영감. 꽤 괜찮은 놈이잖아.]거기다 귓가에서 쉴 새 없이 떠들어대던 목소리가 한층 시끄러워졌다.
[엉엉엉! 대머리 영감님! 고마워요! 다들 멍청한 짓을 하고 있다고 놀렸었는데, 이제부터는 우리도 영감님 머리에 큰 고깔을 만들어 줄게요!] [아니, 그러지 말라니까! 소원도 들어 줬으니 우리 이걸로 그만 끝내자고!] [엉엉엉! 대머리 영감님! 감사해요! 저게 무슨 쓸데없는 낭비냐고 생각했는데, 지금이라도 당장 영감님을 장식할 꽃과 레이스를 준비할게요!] [아니, 그만 날 좀 놓아 달란 말이다! 언제까지 날 부려먹을 셈이야아아!]정신 사나운 그들을 뒤로하고, 성진은 반짝이는 실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무심코 한군데를 톡 건드렸는데-
-그의 검을 들고 노래하니-
실에서 묘한 노랫가락이 울려 온다.
음? 이게 뭐지?
성진은 길게 이어진 실을 밟으며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달의 요정 올리비에가 그의 검을 들고 노래하니-
아. 이거 뭔지 알 것 같다.
성진은 묘한 기시감을 느끼며 천천히 그 실을 밞아나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실이 기쁜 듯이 웅웅 울리는 소리들을 자아내기 시작했다.
-온 세상이 이에 감응하여 그의 여정을 감히 침범치 않으리라 맹세하였도다.
그래.
아멜리아 누님의 말이 맞았어.
이게 정말 시구가 맞았구나. 저주가 아니었던 거야.
하지만 괜찮습니다, 누님. 천사님은 손재주가 좀 모자라도 상관없으니까요.
[무사히 돌아오렴, 모레스.]노래에 뒤섞인 간절한 사념이 전해진다.
성진은 잠시 망설였다.
이 세계에서 눈을 떴을 때, 나를 가장 먼저 안아준 것은 누님이었지.
이 실을 놓아버리면 역시 그녀가 무척 슬퍼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하!”
“저하!”
…응?
귓가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에, 성진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러자 가물거리는 눈가에 어딘가 익숙한 사람의 형체가 흐릿하게 비쳤다.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응시하던 성진이 입을 열었다.
“…아, 마사인 형님?”
“…….”
그래. 형님이구나.
항상 청장미궁을 지켜주기 위해 기사가 되겠다고 했지.
그러자 그를 내려다보던 기사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이었다.
툭.
그때 누군가의 손이 성진의 눈을 가린다.
“아직 다 나은 게 아니니 좀 더 감고 있어.”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따뜻한 기운이 눈으로 스며드는 것이 느껴진다. 여간해서는 보기 어려운 강력한 신성력이었다.
“로건.”
“…그래.”
“악마는 잡았어?”
“…….”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곧, 여느 때와 같이 담담한 목소리가 대답했다.
“물론이다. 날 뭘로 보는 거지? 지그스문트 영지 일은 다 해결됐으니, 신경 쓰지 말고 그만 자라.”
“음…….”
그래. 그럴 거라 생각했지.
로건이 이곳에 온 이후로 어쩐지 모든 게 잘 해결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고.
“짜식, 거 믿음직스럽네…….”
형님이다, 인마.
희미하게 들려오는 대답을 들으며, 성진은 밀려드는 수마에 몸을 맡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