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243)
성황의 아이들-243화(243/469)
243. 귀환 (3)
콰앙!
공간을 비집듯이 밀고 들어온 침입자의 등장에 노인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하루 사이에 차원을 침략한 수백, 수천의 공세를 모두 물리치면서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오른 네이트였다.
그의 저조한 기분을 여실히 반영하듯, 실체화된 하얀 오러가 흉흉한 기세로 일렁거렸다.
[6인 회의를 소집해 주십시오, 어르신.]다짜고짜 내뱉는 그의 말에, 노인이 당황하여 눈을 끔벅였다.
이렇게 갑자기?
하지만 지극히 정당한 발의자의 요청이라.
[…안건은?] [베르세우스의 종족 대표 박탈 건입니다.]올 것이 왔구나.
노인은 참담한 심정으로 눈을 감았다.
언젠가 둘이 크게 부딪치리라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가급적이면 더 오랫동안 차원의 경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해 주기를 바랐었다.
[그의 결격 사유는?] [그자는 쓸데없는 충돌을 일으켜 많은 인간들의 목숨을 빼앗고, 자신의 얼마 남지 않은 종족에게도 거의 전멸에 이르는 타격을 입혔습니다. 그뿐입니까? 대륙 북부에 커다란 분란을 일으킴으로써 이 델크로스 차원에 심각한 인과의 뒤틀림을 가져왔습니다.] […….] [또한 현 델크로스 수호자가 협정을 위반하도록 유도하여, 감히 차원 전체를 전복시키고자 획책하였습니다. 그러니 이 어찌 차원에 해악을 끼치는 위험 분자가 아니라 할 수 있겠습니까?]그러자 네이트를 마주 보는 노인의 동공이 세로로 바짝 수축했다.
[그 결과에 관해서도 알고 있나? 종족 대표의 자리가 하나라도 공석이 되면, 그만큼 이 차원의 결계는 불안정해질 걸세.]그러자 네이트가 이가 드러날 정도로 환하게 미소 지었다. 물론 그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기에 더더욱 섬뜩하게 느껴지는 표정이었다.
[상관없습니다, 어르신. 누가 어떤 수를 써서 침입하든 지금까지처럼 멀쩡히 차원을 수호해 드리겠습니다. 누군가가 내 아이에게 쓸데없는 수작을 부리지만 않는다면 말입니다.]그때 노인의 눈이 네이트의 소매에 가 닿았다. 정확히는 흥건히 피에 젖어 있는 왼쪽 소매에.
흰 검을 쥐고 있는 오른손과 달리, 비어있는 그의 왼손은 주먹을 세게 쥐다 못해 거의 손바닥을 파고드는 중이다.
노인은 말문이 막혔다.
강대한 신성력 덕에 어떠한 치명상이든 순식간에 회복하는 저치가, 여태껏 소매가 저 지경이 되도록 주먹을 감아쥐고 있었다는 뜻이리라.
[그렇게 걱정이 되면 지금이라도 어서 가보지 그러나?]초조한 듯 입술을 짓씹는 네이트를 보다 못한 노인이 물었다.
[어차피 지금 당장 돌아가 봤자 달리 아이를 도울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 상태를 빠르게 안정화시키려고 여기서 시간을 때우고 있는 게로군.]네이트는 틈새에서 거의 하루 종일을 보냈다. 어차피 델크로스 차원으로 바로 돌아가더라도 오랜 시간 멀미로 고생하며 몸을 가누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현재 병상에 누워있는 아들의 상태를 제대로 봐주기 위해서는 아마도 그의 모든 힘을 쏟아부어야 할 터.
하지만 또 영혼인 채로 그런 짓을 했다가는 어떤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지 알 수 없다.
이번에야말로 인과가 완전히 넘치고 만다. 자신뿐만이 아니라 아들 또한 그 대가를 치르게 되리라.
결국은 샤론 경의 몸을 빌리는 방법뿐인데, 그러면 불쌍한 엑소시스트 또한 같은 증상으로 고통받지 않겠는가.
‘그러니 지금 그녀에게 가봤자, 샤론 경은 빙의 상태를 오래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네이트는 자신이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지금 그의 가슴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것과는 별개로.
[무엇을 망설이십니까, 어르신?]그 대신 네이트는 이 기다림의 시간을 조금 더 유의미하게 쓰기로 결심했다.
그의 적이자, 아이를 위협하는 위험 분자를 단숨에 쳐내는 데 말이다.
[전 이의 없습니다. 그놈은 본래부터 심각한 자격 미달이었잖습니까. 우리에게 대안이 없는 것도 아니고.]미트라가 술잔을 기울이며 말했다.
로드 네브라스카의 혈통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6인 회의의 구성원에게는 공공연한 비밀이 되어 있었다.
[그대의 독단적인 일 처리는 언제나 마음에 들지 않소. 하나 자신의 종족을 위험에 처하게 만든 자를 종족 대표로 인정할 수 없는 것도 주지의 사실. 이번만큼은 나도 찬성표를 던지지.]섬 하나를 거센 바람으로 뒤덮고 있던 여인이 말했다.
[하다못해 그대의 마음만은 평온하기를…….]거대한 고목 역시 스스럼없이 의견을 주었다. 단지 언제나처럼 뜬금없는 소리라는 것이 문제였지만.
그래도 찰떡같이 의미를 해석한 자가 있었으니.
[찬성 감사합니다.]네이트가 나무를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자네, 지금…….
노인이 당황하고 있는 사이-
[끄랴뱍라락! @#댜심;쎄락!]거대한 가오리가 [열쇠]를 와그작 물어뜯으며 뜻 모를 소리를 외쳤다.
[로드 만타도 찬성이라는군요. 이제 어르신만 찬성하시면 만장일치입니다.]이번에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거짓말을 입에 담는 네이트에, 순간 노인은 어이가 없어 입을 쩍 벌렸다.
아니, 이보게, 자네! 그래도 지금까지는 나름 정도를 지켜오지 않았나?
[틀렸습니다, 어르신. 지금 저 녀석의 상태를 모르시겠습니까? 열 받아서 아예 눈에 뵈는 게 없지 않습니까.]미트라가 술병을 들이켜며 킬킬거린다.
[누구 하나라도 반대하면 단칼에 우리 모두를 썰어버릴 각오라고요!] [……!]과연, 네이트는 이를 부정하지 않고 담담히 노인을 마주 보고 있다.
결국 노인은 결심을 굳히고 베르세우스를 호출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네가 이렇게 나올 줄 알았다! 이런 영악하고 오만한 것!]그렇게 어르신의 [틈새]로 소환된 베르세우스는, 네이트의 얼굴을 보자마자 바짝 열이 올라 길길이 날뛰기 시작했다.
[그래, 언제부터 준비했더냐? 기어이 라이칸슬로프의 혈통까지 빼앗아가며 종족의 [열쇠]를 장악하려 들어? 또 어떤 종족의 혈통을 몰래 빼돌렸느냐! 설마 이성을 잃은 만타의 종족까지 건드린 것은 아니겠지?] [????] [모두 잘 알아두시오! 저 의뭉스러운 놈이 우리 모두를 속였소! 자신의 ‘잡종’ 자식을 앞세워 종족 열쇠를 빼돌리고, 홀로 ‘6인 회의’의 권능을 독차지하려 들었단 말이오!]베르세우스의 뜻밖의 억지에 회원들은 적잖이 당황했다. 정작 당사자인 네이트는 가만히 그가 하는 양을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지만.
그럼에도 회원들은 그의 기분이 더할 나위 없이 나빠지고 있음을 느꼈다. 통상적인 물리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공간이건만, 주변의 온도가 확연하게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흥분한 베르세우스만이 그것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다.
[하! 나를 몰아내고 나면 네가 다음 종족 대표로 누구를 추대할 셈인지 모를 줄 알고? 네놈의 그 골칫덩어리 아들이 아니냐! 그렇게 ‘잡종’인 아들을 조종해 라이칸슬로프들을 손아귀에 넣고 대체 무엇을 할 속셈이냐! 어엉?] [아니, 베르세우스. 자네 그게 대체 무슨……?]6인 회의의 구성원 모두가 얼이 빠진 가운데, 네이트가 나직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자, 모두가 보시다시피 저자는 이미 정신조차 온전하지 않습니다. 결국 마경의 마기에 완전히 정신을 잠식당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대로 차원의 경계 한 축을 맡기는 것은 더 이상 무리입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 열쇠의 봉인을 부탁드립니다.]회원들을 돌아보는 메마른 시선에 묘한 은빛의 한기가 서린다.
그 묵직한 압박감에 회원들이 하나둘 자신들의 [열쇠]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에 대응하여, 베르세우스의 [열쇠] 역시 점진적으로 빛을 잃어갔다.
봉인되어가는 열쇠를 부여잡은 베르세우스가 절망적인 표정으로 발악했다.
[그건 내가 할 소리다, 이 천하에 둘도 없는 난봉꾼아! ‘잡종’을 낳아 혼란을 부추긴 너 같은 것이, 감히 이 세상의 수호자를 자처하고 있다니! 나는 용납할 수 없다!]그때 베르세우스를 향한 서릿발 같은 호통이 울렸다.
[닥쳐라, 잡종!] [!!!!]화악.
사위에 얼음물을 끼얹은 듯 차가운 오러가 퍼지며, 베르세우스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이미 발악하던 기세가 완전히 꺾인 뒤였지만, 그를 향한 네이트의 압박은 계속되었다.
기분 나쁜 빈정거림과 함께였다.
[네까짓 것이 감히 누구더러 ‘잡종’이라 하느냐! 잡종!]이 친구가 이런 성격이었나?
6인의 회의에 관여하게 된 후, 이오니아 관련 일들로 수많은 혼혈들을 상대하면서도 단 한 번도 입에 올린 적 없는 막말이다.
봉인을 마친 회원들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있는데, 베르세우스에게 성큼성큼 다가간 네이트가 한 손으로 그의 멱살을 와락 움켜쥐었다.
[커헉!]비명을 지르고 나니, 어느새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종족 열쇠까지 빼앗긴 뒤였다.
이어서 내리꽂히는 태산과도 같은 압박감.
맹수를 마주한 생쥐라도 된 듯 옴짝달싹하지도 못하고 숨을 헐떡이고 있는데, 은회색의 빛이 점멸하는 서늘한 눈동자가 가만히 베르세우스를 마주 보았다.
[잘 들어두거라. 너의 그 꼴사나운 만행에도, 내가 당장 너를 쳐 죽이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아느냐?] [컥! 크헉!] [이런 너에게도 아직 약간의 쓸모가 남아있기 때문이라.]그리고 네이트는 나직한 목소리로 놈의 귓가에 속삭였다. 어떻게 들으면 상냥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부드러운 어조였다.
[그러니 가라. 이대로 다시아노령으로 돌아가 쭉 진흙 속에서 발버둥 치며 살아라. 그리고 끝내는 내 아이가 디딜 바닥을 이루는 한 줌의 흙이 되어 죽거라.]그 말과 함께.
쉬이이익-
베르세우스의 신형이 형체를 잃고 이지러진다. 열쇠를 잃은 그가 [틈새]에서 추방되고 있는 것이다.
[으아아아! 잠깐만, 잠깐……!]그가 지르는 비명 소리 또한 순식간에 멀어졌다.
잠시 후.
반쪽짜리 라이칸슬로프 로드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그가 있던 자리에는 봉인된 종족 열쇠만이 덩그러니 남겨진 채였다.
[틈새] 내에 일순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이렇듯 또다시 그대의 장단에 보기 좋게 말려들었군. 불쾌하다. 참으로 불쾌하도다…….]폭풍을 머리에 인 여인이 이윽고 그렇게 뇌까리고는, 열쇠를 조작하여 [틈새]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밀주를 입에 머금은 미트라 역시, 자조적인 웃음을 보이며 자신의 영역으로 휑하니 사라져버린다.
이어서 나무가, 그리고 가오리가…….
결국 회원 모두가 공간 도약을 하고 나자, 틈새에 남은 것은 처음과 마찬가지로 네이트와 노인 단 둘뿐이었다.
그때까지도 허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던 노인은 곧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든 막아보려 했으나 결국은 모두 자네가 원하는 대로 되었네. 어떤가. 이제 만족하는가?] [어디까지 제 탓을 하실 셈입니까. 그자는 그저 자신이 만든 인과를 고스란히 돌려받았을 뿐입니다.]네이트는 노인을 돌아보지도 않고 냉랭하게 대답했다.
물론 그렇겠지.
문제는 그가 능히 이 모든 사태를 짐작하고 있었으리라는 점이다. 신의 눈을 훔쳤다 일컬어지는 오라클이 아닌가.
[그자의 처분 또한 모두가 찬성하신 일이 아닙니까? 이제 와서 저의 독단이라 말씀하실 셈입니까?] [아니, 그렇지 않네.] [그럼 됐습니다. 이제 돌아가려 하니 혹여 용건이 있으시면 지금 모두 말씀하십시오. 오늘부로 저는 한동안 ‘6인 회의’의 호출에 응하지 않을 예정이니까요.] [어째서 그런가?]네이트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의 차가운 눈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더 이상 당신들 따위에게 시간을 빼앗기느니, 한시라도 더 내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야겠다.
[이보게, 네이트.]미련 없이 몸을 돌리는 그를 노인이 불러 세웠다.
[자네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네. 이것까지 부정하지는 말게나. 처음부터 모두 예견된 일이었지 않나.] [저는 어디까지나 제 아이의 선택을 따를 뿐입니다.] [그것의 선택을 존중하겠다고?]노인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말게! 이번에는 다행히 무사히 넘어갔네만, 만에 하나 그것이 정말로 이 차원을 떠나버렸다면 그땐 어쩌려 했나?] […….] [자네는 순리를 어겨서라도 그것을 억지로 데려왔을 테지? 결국은 같은 실수를 반복했을 게 아닌가. 그래, 이번에는 또 무슨 대가를 치를 셈인가? 더 이상 지나간 인연에 연연해서는 아니 되네. 자네에게도 또 그것에게도 못 할 짓이야.]그러자 네이트는 몸을 돌리며 짓씹듯이 말했다.
[제 행동을 모두 이해해달라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경험하지 않고는 절대 납득할 수 없는 선택이란 것이 있게 마련입니다. 물론 오랜 세월을 살아오신 어르신께 드리기에는 조금 외람된 말씀입니다만.]마지막으로 노인을 쏘아보는 네이트의 눈이 싸늘한 빛을 뿜었다.
[자식, 없으시잖습니까? 애초에 연애는 해 보셨습니까?] […….]* * *
성진이 다시 정신을 차린 것은 점심때가 다 되어가는 느지막한 오전이었다.
[드디어 일어났구나! 이제 괜찮아, 이성진?]염상 결정 속에서 하릴없이 뒹굴거리던 마왕 놈이 반가운 목소리로 그를 맞이했다.
“…….”
성진은 대답 없이 천천히 손을 들어 아직도 지끈거리는 눈가를 더듬었다.
어쩐지 눈이 답답하다 싶더라니, 한때 질리도록 하고 다니던 붕대가 도로 눈에 돌돌 감겨 있다.
동시에 뻐근한 동통과 찌르는 듯한 두통이 그를 엄습해왔다.
그 상태가 의미하는 사실은 단 하나였다.
‘아버지는 아직 오지 않았구나.’
섭섭하다기보다는 더럭 걱정부터 앞섰다.
이 양반이 아직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을 리가 없는데,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 아냐?
“아, 이성진, 이제 좀 정신이 들어?”
그때 그의 옆에서 로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흠칫 놀라 가만히 기척을 느껴보니, 로건은 물론이고 마사인 경도 곁에 있는 것 같았다. 단지 피로가 쌓인 듯 곤한 잠에 빠져 있었지만.
그나저나 이들의 존재를 먼저 알아채치 못하다니,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 감각도 제법 둔해져 있는 모양이었다.
“조금 더 자도 좋을 텐데. 내가 할 수 있는 한 노력은 해봤지만 널 완전히 회복시키는 것은 무리였어. 어쩌면 영구적인 후유증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성진의 가슴 위로 이불을 바로 여며준 로건이 걱정스러운 듯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어떻게 된 거냐? 왜 몸이 그렇게 된 건지 기억은 하고 있어?”
“아니, 로건.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응?”
로건이 의아한 듯 되묻자, 성진은 침을 꿀꺽 삼켰다.
“실은 로건. 너한테 긴히 할 얘기가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