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257)
성황의 아이들-257화(257/469)
257. 레지나의 갈림길 (1)
대단히 신기한 일이었다.
당장이라도 몸을 박차고 나가 눈앞의 모든 것을 휩쓸 것만 같던 강한 기운이, 성황의 차분한 은회색 눈을 마주하는 순간 마치 물을 끼얹은 듯 서서히 사그라진다.
걷잡을 수 없이 용솟음치던 분노가 아예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 통제하기 어려운 감정에 한 겹 울타리를 치고, 한 발 떨어져 가만히 관조하는 자신의 또 다른 시야가 있음을 깨달았을 뿐.
발작적으로 흘러나오던 웃음이 잦아들고, 빠르게 점멸하던 안광 또한 서서히 가라앉았다.
“…아버지.”
그러자 성진을 가만히 살피던 엑소시스트가 두어 번 더 어깨를 두드렸다.
툭툭.
어쩐지 잘했다고 칭찬하는 듯한 느낌에 성진의 기분이 미묘해졌다.
“…저하? 샤론 경?
옆에서 오르덴이 조심스레 그들을 불렀다. 심상찮은 기운을 뿜어내며 웃음을 터뜨리던 황자나, 평소와 다른 묘한 분위기를 두르고 어디선가 나타난 엑소시스트나 혼란스럽기 이를 데 없었던 것.
그러자 성황이 냉막한 눈으로 잠시 그를 일별하더니 성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하.”
의심할 여지 없는 평소 샤론 경의 목소리였다. 일순 그가 다시 샤론 경으로 돌아왔나 착각이 들었을 정도.
그럼에도 눈에서 점멸하는 밝은 빛을 보건대, 여전히 거기에 있는 것이 성황임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주변 사람들의 눈을 의식한 것이리라.
“노부인께서 많이 편찮으신 것 같으니, 대공자는 이대로 부인을 보필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후는 제가 수행할 테니, 저하께서는 저와 함께 방으로 돌아가시죠.”
아니, 아버지. 연기에 정말 소질 없으시네.
샤론 경인 척하시려는 거라면 말투나 분위기가 너무 진중하신데요.
“…….”
오르덴 역시 놀란 듯 눈을 끔벅거렸다. 제법 오래 함께 여행하며 부대낀 터라, 평소 이 정신 나간 엑소시스트의 언행을 잘 알기 때문이다.
상황을 어서 수습해야 할 필요성을 깨달은 성진이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지. 이만 돌아가자.”
오르덴은 잠시 망설였다. 제법 기감이 좋은 놈이다 보니, 방금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는 정도는 알아챈 듯했다.
하지만 영혼에 새겨진 낙인, 사념으로 새긴 저주를 그가 알아볼 방도가 없었다. 오르덴은 결국 불안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하를 부탁드립니다, 샤론 경.”
그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샤론 경에게 빙의한 성황은 냉정하게 몸을 돌렸다. 게거품을 물고 바닥에서 바르작거리고 있는 노부인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로.
“꾸륵꾸륵꾸륵.”
“아아, 이게 다 무슨 일이람? 마님! 정신 차리십시오!”
언뜻 보기에도 대단히 위중해 보이는 모습이다. 단지 영혼이 받은 타격만으로 사람이 저 지경이 될 정도로 성진의 저주가 무거웠다는 방증이라.
“의사를! 아니, 사제부터!”
“아, 여기 성기사님이 계시… 성기사님?”
뒤늦게 누군가가 엑소시스트를 알아보고 불렀지만, 성황은 뒤돌아보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멍하니 노부인을 바라보던 성진 역시 화들짝 놀라 한 발 늦게 그의 뒤를 달리듯 따랐다.
“아버지, 제가……!”
“주의하십시오, 저하. 주변에 보는 눈이 많습니다.”
전혀 샤론 경답지 않은 말투로 그렇게 대답한 성황은, 백작저 구조를 훤히 꿰뚫고 있는 듯 척척 앞장서서 걸었다.
‘아니, 황자를 수행하는 기사가 혼자 앞서서 그렇게 가버리시면 어떡합니까?’
성진은 불퉁한 얼굴로 생각했지만, 더는 별다른 말없이 걸음을 재촉했다. 빠르게 걷고 있는 그의 뒷모습에서 어쩐지 대단히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날듯이 백작저를 가로지른 그들은 곧 성진이 묵고 있는 방으로 도착했다.
타악.
그리고 문이 닫히자마자 입이 근질근질하던 성진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아버지, 아버지! 뭔가 이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방금……!”
[모레스.]그때 성황이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 머릿속을 동시에 울려오는, 성진이 익히 아는 성황의 목소리였다.
[너도 알지 않느냐? 더는 그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마라.]“어…….”
그리고는 성진이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뜬금없이 침상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그냥 여기 누워서 한숨 자려무나.]네?
성진이 어리둥절하며 그에게 물었다.
“아니, 자라니…….”
[일전에 규상세계의 물건들을 다루는 법을 알려준다 하지 않았느냐? 본래 그러려고 왔느니라. 지금 가르쳐 줄 테니 흥분을 좀 가라앉히고 잠이나 자거라. 그러면 염상이 쉽게 실체화되는 틈새로 네 영혼을 옮겨 주마.]뭐야, 이렇게 갑자기?
“잠깐만요, 아버지!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잖습니까! 누님이……!”
[하면, 지금 당장 그 어지러운 생각들을 멈추고, 그 사나운 감정들을 스스로 완전히 가라앉힐 수 있느냐?]“……!”
그가 무엇을 말하는지 모를 수가 없었다.
누님이 어린 시절 받은 학대들과, 그것을 알게 된 순간 치밀어 오른 거대한 분노, 그리고 온 힘을 다해 쏟아낸 무서운 저주.
당장 진정하라니, 무리한 요구다.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잖습니까. 아버지도 알고 계시죠? 이 저택에서 누님이 얼마나…….”
아멜리아 누님에 관해 떠올리자마자 다시금 속에서 뭔가가 울컥 하고 치밀어오른다. 겨우 가라앉았던 감정이 재차 풍랑이 이는 바다처럼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툭.
그러자 성황의 손이 재빨리 성진의 머리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일전에도 경험한 적이 있는, 일정한 간격으로 이어지는 작은 토닥임.
툭. 툭. 툭.
“어…….”
그러자 복잡하던 머릿속이 맑아지고, 울렁거리던 가슴이 순식간에 가라앉는다. 성진이 멍하니 성황을 바라보며 눈을 깜박거렸다.
‘거 참, 신기하네. 대체 뭘 어떻게 하는 거지?’
곧 성진이 진정한 것을 확인한 성황이 나직하게 한숨을 쉬었다.
[그래. 내 언제고 이런 일이 있을 것을 알았다만, 이렇게 갑자기, 이다지도 불안정한 상태로 일어날 줄은 미처 몰랐구나.]“그 말씀은, 역시 아버지는 오늘 일어날 일을 다 알고 계셨다는 거군요. 그래서 그 망할 노인네에게 굳이 축복을 내리신 거죠? 그, 인과…의 균형을 위해서요. 그게 맞습니까?”
그 물음에 성황은 대답하지 않고, 조금 복잡한 눈빛으로 성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 문제는 또 있습니다. 어쨌든 방금 제가 그녀에게 뭔가 엄청난 걸 했습니다. 그게 뭔지 아까까지는 분명 알고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지금은 또 기억이 흐릿해진 건지 전혀 모르겠단 말입니다.”
[…….]“이것들이 다 뭡니까? 아버지, 제가 방금 뭘, 어떻게 한 건가요?”
성진의 목소리에 조금은 절박한 기색이 어린다. 사실 정말로 그가 묻고 싶은 건 이런 것이었다.
-아버지, 저는 대체 뭡니까?
단지 그 질문을 직접 입 밖으로 내지 못하는 이유는 명백했다.
함부로 의심하지 말라는 성황의 당부도 있었지만, 그러는 순간 어째선지 정말로 자신이 끝장날 것만 같다는 막연한 불안감 때문이다.
‘하지만 대체 언제까지 이런 어정쩡한 상태로 지내야 하지?’
직접 물어볼 수 없다면, 혼자서 어느 정도 추측이라도 해 봐야 할 것이다.
왜 베니투스 추기경은 자신을 그렇게 경계하는가. 왜 마사인 경은 성진이 혹여 이단 논란에 휘말릴까 그렇게 걱정하는 것인가.
그리고 암흑 교단의 끄나풀이었던 헤이즈는 왜 자신에게 종속되어 있는가.
‘답은 그리 멀지 않아. 아마도 내가…….’
성진이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툭.
가볍게 이마를 치는 충격이 그 생각을 방해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올려다보자, 성황의 걱정스러운 시선이 그를 마주 본다.
[매사에 조심하거라, 모레스. 너 스스로도 자신을 함부로 정의하면 안 된다 이르지 않았더냐? 오라클이 가진 생각, 그 인식의 저변에는 네가 아직 알지 못하는 거대한 힘이 잠재되어 있다.]“…생각하지만 않으면.”
갑자기 울적한 기분이 된 성진이 고개를 숙이며 조금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뭔가 단정하지만 않으면, 그것을 건드리지만 않으면. 그러면 전 아직은 그 무언가가 아니게 됩니까?”
아직은.
그 말이 내포한 서러움을 감지한 성황이 성진의 머리를 세차게 쓰다듬었다.
푸스스, 옅은 금발이 순식간에 엉망으로 흐트러진다.
[모레스.]“…네.”
[너는 내 아들이다. 그 사실만은 언제까지 변치 않는 진실이니라.]“음, 네.”
그렇다고 전에도 말씀하셨습니다만…….
성진의 떨떠름한 반응을 귀신같이 알아챈 성황이, 머리를 헝클어뜨리던 손을 멈추고 성진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왜?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더냐? 이를 부정하는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한 번 더 확인하고 싶은 게냐?]“뭐요?”
성진이 눈을 사납게 치뜨고 성황을 노려보았다.
이 양반이! 지금 자기의 몸뚱이를 가지고 또 사람을 협박하는 거야? 재미 들렸어?
그러다 잠시 후. 어라,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지금은 남의 몸이 아닙니까? 설마 이번에는 샤론 경의 몸으로도 자해 쇼를 하시려고요? 그녀에게 무슨 민폡니까?”
…아차.
평소 무감각하기 그지없는 양반의 얼굴에, 허를 찔린 듯 당황한 표정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내 참, 어이가 없어서…….’
울컥 하고 화가 솟구치는 것과는 별개로, 신기하게도 서러움과 불안감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푸시시 꺼져나간다.
성진은 머쓱한 표정으로 화제를 돌렸다.
“…음, 그래서, 일단 어떻게든 자란 말씀이죠?”
어쨌든 성진은 순순히 성황의 지시를 따르기로 했다.
얼음 심장을 사용하는 법을 익혀 누님에게 멋진 선물을 안기고 싶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한숨 자는 것밖에는 정말로 답이 없어 보였다.
지금도 조금만 누님에 대해 생각해도 울컥하고 제어할 수 없는 감정이 솟구친다고.
‘아냐, 근데 굳이 참을 필요가 있나? 내 이놈의 지그스문트를 아주 그냥……!’
저도 모르게 빠드득 이를 갈자, 툭툭, 역시나 늦지 않게 머리를 두드리는 손길.
성진은 문득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정말 돌이킬 수 없는 큰 사고를 칠지도 모른다.
“아버지, 적어도 이거 하나만 가르쳐 주십시오.”
다시금 진정한 성진이 얌전히 침상에 누우며 물었다.
“저는 제대로 누님의 복수를 한 겁니까?”
[그래, 너는 그 여인에게 네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를 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한 인간이 일생 동안 저지른 죄의 대가로는 과하다고도 볼 수 있는 벌이지.]그렇게 대답한 성황은, 조금 가라앉은 표정으로 덧붙였다.
[하나 완전한 복수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겠다. 그것이 어찌 온전히 그 여인만의 잘못이겠느냐.]“아, 물론 이 사태를 방관한 덜떨어진 데카론 나이트와 변경백에게도 큰 책임이 있습니다! 직접 위해를 가하지 않았다고 해도, 방관하고 묵인함으로써 백작저의 사람들을 부추겼으니까요!”
그러자 성황이 입꼬리를 조금 끌어올렸다. 어딘지 자조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표정이었다.
[아멜리아를 그리 방치한 것이 어디 그들뿐일까.]“……!”
성진은 기겁하며 입을 다물었다.
어쩐지 아까부터 이 양반이 대단히 우울해 보이더라니!
‘…이제 보니, 그게 모두 자기 잘못이라고 생각하는구나
성황은 미래에 성진이 무엇을 할지 미리 알고 인과를 채웠지만, 그럼에도 노부인에게 직접 손을 쓰지 않은 데에는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가 그녀를 벌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나?’
그렇다면 지나친 자책이 아닌가. 성진은 오르덴에게 대강의 사정을 들어 알고 있었다.
아멜리아의 모친은 본래 무척 몸이 약한 여인이라 들었다고. 젊은 나이에 폐병으로 요절하였기에, 설마 그 짧은 사이에 딸 하나를 남겼으리라 황도에서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을 거라고.
덕분에 아멜리아는 성황의 시야에서 벗어난 채, 쓸데없이 오랜 시간을 고통받아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게 일부러 방치한 것은 아니잖아?’
성진이 시무룩해 보이는 성황을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음, 아버지, 설마하니 신의 대리자는 매사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계십니까?”
그러자 성황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신의 대리자라는 명칭은 신성력을 적절히 세상에 행사하기 위한 허울에 불과하다. 스스로를 신으로 착각할 만큼 오만하다 생각하지는 않는다.]“아니, 그런데 왜 본인이 어쩔 수 없었던 일로 자책을 하십니까? 아버지가 그러는 걸 알면 천사 같은 누님이 대단히 슬퍼할 겁니다. 그게 더 큰 잘못이라고요!”
성진은 침상에서 벌떡 일어나며 항변했다.
“그 시간에 차라리 누님을 위해 뭔가 다른 걸 하는 것이 생산적입니다. 안 그래도 이 대륙에는 하루 종일 쓸데없이 참회만 하느라 시간을 보내는 정신 나간 것들이 판을 친다고요. 그렇다고 반성이란 게 나쁘다는 말은 아니지만, 그러니까 제 말은…….”
허둥지둥 두서없이 입을 움직이다 보니 말이 헛나온다.
그러자 가만히 그 말을 듣고 있던 성황의 얼굴에서 옅은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그래, 모레스. 그 모든 것이 어차피 자기만족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느니라.]“어…….”
전혀 알아들은 얼굴이 아닌데?
성진이 뭐라고 더 말하기 위해 입을 달싹거렸지만, 성황이 그의 이마를 꾹 눌러 도로 침상에 뉘이며 말했다.
[그래서 이렇게 너희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들을 하려는 것이다. 이제 너의 빙수들을 정교회가 납득할 만한 선물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납득할 만한?
“…빙수들은 마수들에 대항해 지그스문트 영지를 지켰습니다. 인퀴지터 발레리 경이 삿된 것이 아니라고 확인까지 해 줬죠. 게다가 황도에는 신의 [은총]이 펼쳐져 있으니, 그곳으로 빙수들을 무사히 가져가기만 한다면 안전을 보장받는 게 아닙니까?”
삿된 것은 발을 들일 수 없는 황도에 입성하는 것. 그 이상 무슨 증명이 더 필요한가?
그러자 성황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란다. 천 년간 마경의 마수로 취급되었던 글래쳐 트롤이다. 분명 정교회에서 문제 삼을 여지가 다분하지. 기록이 전무하던 마물을 받아들이는 것과는 아예 반발의 크기가 다를 것이다.]성황은 자세히 말하지 않았지만, 어쩐지 성진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걸 조종하는 사람이 바로 나이기 때문이구나!’
황자를 참고인으로 소환하겠답시고 진주궁을 포위했던 작자들이다. 떡하니 마수를 끌고 나타난 것이 바로 논란의 3황자란 사실을 알게 되면, 과연 어떻게 나올까.
성진이 골똘히 생각하며 미간을 찌푸리는데, 성황이 거기 대고 대경할 소리를 내뱉었다.
[그래서 빙수들을 먼저 성유물로 지정하려 하느니라.]“…네?”
방금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거지?
성진이 눈을 깜박거리는데, 듣고도 믿을 수 없는 엄청난 말들이 이어졌다.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를 끼워 넣는 데는, 우선 5대 성황의 집권 시기를 생각하고 있다. 사료를 찾기에는 너무 먼 과거이기도 하거니와, 한때 신학자인 그라니우스가 글래쳐 트롤에 대해 자세히 저술한 적이 있지. 하여 <신기한 대륙 탐방기>를 금서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함께 검토 중이다.]워워, 잠깐만. 잠깐만.
뭔가 너무 이야기가 급격하게 나가지 않는가!
[벌써 이 일에 착수하기 위해 프란시스가 황도를 출발했다.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을 테니, 그가 도착하기 전에 우리도 준비할 수 있는 일들은 미리 해 두는 것이 좋다.]성진의 입이 쩍 벌어졌다.
벌써 그런 준비를 하고 있다고?
넉넉잡아 편도 보름, 왕복 한 달을 존경하는 기사단장과 떨어져 있게 된 부관의 표정이 어떨지 알 만했다.
[글래쳐 트롤을 그대로 가져가려 한다면, 크기를 바꾸는 김에 외형을 조금 조절하는 것도 괜찮겠지. 발레리 경이 재미있는 생각을 했더구나. 가슴에 아예 주신의 문양을 새기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빙수들을 선물로 들고 가겠다고 했더니, 그 과정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그런 날조까지 한단 말인가? 고작 기념품들 따위를 위해 이토록 마음을 쓴다고?
-그래서 이렇게 너희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들을 하려는 것이다.
한데 그 ‘해줄 수 있는 것’의 한계가 너무나도 광범위하지 않은가!
‘이건가? 이게 바로 시슬레가 말하던 그 선동과 날조의 새로운 지평이라는 건가?’
성진은 은빛 눈을 빛내는 엑소시스트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이 양반. 은근히 허당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런 빈틈없는 점은 누님과 상당히 닮은 부분이 있는 거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