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261)
성황의 아이들-261화(261/469)
261. 소스 편집기 (1)
“혹시 이거, 그겁니까? 오라클이 만든, 오라클의 정신을 반영한다는 그 [이정표]가 맞습니까?”
펜던트를 보고 경악한 덱스터가 고글을 벗어들며 소리쳤다.
“맙소사! 여기 이 파장의 변화를 좀 보십시오! 이론으로만 들었던 그 물건이 정말로 세상에 실재하고 있었다니!”
“어?”
이론으로 들어?
성진이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덱스터가 부서진 선홍색의 보석을 그의 눈앞으로 바짝 들이밀었다.
“이게 왜 당신의 호주머니에서 나옵니까? 어떻게 이걸 잡동사니들과 함께 둘 수 있습니까?”
방금까지만 해도 지극히 조심스럽던 그가, 지금은 잔뜩 흥분하여 성진을 잡아먹기라도 할 듯 다그친다.
덕분에 이대로 겁주고 얼러가며 골수까지 뽑아먹을 계획이 틀어진 성진은 당황하여 눈을 깜박거렸다.
“…이정표가 맞긴 합니다만.”
이게 왜 여기 끼어 있담?
아마 네브라스카의 아뮬렛과 함께 가지고 다니다 보니 섞여 나온 모양이다.
“지금은 그걸 볼 건 아니니까, 이리 주시…….”
성진이 손을 내밀자 덱스터가 화들짝 놀라며 얼른 보석을 뒤로 감추었다. 귀중한 가보를 훔치려는 강도를 만나기라도 한 듯 잔뜩 긴장한 태도였다.
“…….”
성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를 지그시 노려보았다.
좋게 대할 때 내놓으시지. 호주머니에 쑤셔 넣고 다닌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그거 나름 중요한 거야. 조모님의 유품이라고.
“…이, 이것부터 찬찬히 봐 드리면 되는 겁니까?”
떨리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묻는 덱스터를 향해, 성진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아뇨, 그건 그냥 돌려주십시오. 오늘은 규상세계의 물건들을 보러 왔습니다.”
“하지만 내친김에 이것도 분석하시면 좋을 텐데…….”
“그건 됐다니까요. 여기 이 ‘얼음 심장’들이나 좀 봐 주십시오. 등급이 제법 높은 물건인 것 같다고 들었는데요.”
그러나 덱스터는 얼음 심장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오히려 정색을 하고선 성진을 향해 버럭 화를 내는 게 아닌가.
“아니, 지금 그런 걸 보느라 괜한 시간 낭비 할 때입니까? 여기서 가장 분석할 가치가 있는 물건을 앞에 두고 말입니다!”
…분석하다니, 그냥 보석 아닌가?
성진이 떨떠름한 얼굴을 하고 있자니, 덱스터가 재빨리 손에 들고 있던 기계를 영혼석 하나에 갖다 대며 성진을 불렀다.
“자, 여기 이걸 잘 보십시오!”
그가 보여준 기계는 일종의 핸디형 스캐너 같은 것이었다. 거기에는 작은 화면이 하나 있었는데, 분홍빛과 파란빛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묘한 그래프를 그리고 있다.
“…이게 뭡니까?”
“당연히 에이온의 반사를 측정하는 기계 아닙니까.”
몰라, 에이온이 대체 뭔데?
학교를 졸업한 지 이미 수십 년은 지났다지만, 적어도 그런 게 지구의 과학 상식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자, 여기 이 그래프들이 보이십니까? 이게 영혼석을 분석한 고유 파형입니다. 본래 모든 물질은 그 성분에 따라 특이한 에이온의 파형을 보이게 마련이죠.”
성진의 반응에는 아랑곳없이, 덱스터는 열정적인 설명을 이어갔다.
“또 여기, 여기에 분홍과 파랑이 넓게 분리되는 구간이 보입니까? 이것은 바로 이 영혼석이 쌍축을 가지고 에이온을 굴절시키는 물질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이것이 규상세계의 산물이라는 증거가 되는 거죠!”
응. 성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자! 그런데 잠깐! 이걸 좀 보시죠!”
하지만 덱스터는 성진의 심드렁한 반응에도 개의치 않았다. 이번에는 뒤로 숨겼던 조모의 펜던트를 기계에 갖다 대며 정신없이 떠들어대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 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믿어지지 않는 물건이 있습니다. 바로 오라클의 [이정표]죠! 이것이 그려내는 변화무쌍한 파동을 한번 보십시오!”
확실히 아무것도 모르는 성진의 눈에도 나타나는 차이가 확연했다.
파장의 크기가 늘었다 줄어들고, 두 개의 그래프가 하나로 합쳐지기도 했다가 넓게 벌어지기도 하는 등 두서가 없었으니까. 기계가 고장 난 게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오락가락하는 그래프를 보며 멍때리고 있는데, 그 위로 덱스터의 속사포 같은 설명이 쏟아져 내렸다.
자, [이정표]와 스캐너가 닿는 각도에 따라 계속 변하는 그래프들이 보입니까?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이정표의 위치에 따라 반사 축의 수가 계속해서 달라진다는 말입니다! 게다가 두 그래프의 간격이 좁아졌다 멀어졌다 하지 않습니까? 그 말은 균일해 보이는 고체임에도 내부의 편광계수… 아, 실례. 이건 실제 이오니아의 용어는 아닙니다만 제가 그냥 편의상 쓰는 말입니다.어쨌든 에이온의 굴절률이 부분부분 계속해서 바뀐다는 뜻이 되는 겁니다! 맙소사! 세상에 어떻게 이런 물건이 존재한단 말입니까?
“오오.”
성진은 대단히 감탄했다
이렇게 길게 말을 했는데, 그 중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하나도 없다니!
“이런 꿈과 같은 물건이 실재하기에, 이오니아의 공학자들이 이론상으로만 가능하다는 법칙을 세상에 구현하기 위해 그리 오랜 시간 애를 쓴 것이 아니겠습니까!”
덱스터는 이제 감격으로 눈물까지 글썽이는 중이었다. 참다못한 성진이 눈썹을 슬쩍 올리며 그에게 눈치를 주었다.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하고 결론만.
그 무미건조한 표정을 본 덱스터가 가슴을 쾅쾅 소리가 나도록 치며 답답해했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당신은 정말 모르겠습니까? 그러니까 오라클의 [이정표]는 본상세계의 물건이면서도, 부분적으로 규상세계의 물질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고도의 정신이 만들어 낸 산물이나, 그럼에도 뚜렷한 실체를 가지는 것.
본래라면 본상세계의 법칙 내에서는 있을 수 없는 것이, 오로지 인간의 정신 능력만으로 멀쩡하게 세상에 존재하게 된 것이다.
“오라클의 정신세계를 바탕으로 고도로 정형화된 규칙을 만들고, 그것을 이용해 이 세상에 실체를 구현한다. 그 핵심적인 이론을 토대로 이오니아의 공학자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낸 것! 그것이 바로 이 오버-테크놀리지의 결정체, [호문클루스 엔진 소스 편집기]입니다!”
“네, 그런데요?”
“크악! 그러니까 이 엔진 편집기의 원리가, 바로 이 [이정표]에 모든 바탕을 두고 있다는 말입니다!”
오라클이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 그것을 비슷하게 본따 현실에서 안정적으로 구현되도록 만든 것이 바로 규상세계를 지배하는 궁극의 법칙, 호문클루스 엔진이다.
“흠. 뭐, 대충 이해는 했습니다, 덱스터 씨.”
성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데 그 [엔진]이라는 것은 전적으로 이오니아의 기술이 아닙니까? 하지만 이 이정표를 만든 오라클이란 자들은, 예로부터 코른시임 일족의 예언자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델크로스에 터를 잡고 있던 코른시임의 오라클이, 어떻게 이오니아의 오버-테크놀로지와 관련이 있을 수가 있나.
그러자 덱스터가 의아한 듯 되물었다.
“그건 당연한 게 아닙니까? 처음 이 연구를 시작했다는 이오니아의 전설적인 공학자 중 하나가 바로 오라클이지 않습니까.”
“네? 왜 오라클이 이오니아에?”
“코른시임 일족은 본래 이오니아에서 델크로스로 건너간 민족이었으니까요?”
“……!”
차원의 경계에 터전을 잡고 있던 경계의 종족들. 현재 ‘6인 회의’를 구성하고 있는 이들 외에도 이오니아 대륙 중앙에서 생활하던 중앙 종족들이 있었다.
그들 중 하나가 바로 코른시임 일족이라는 것이다.
-이오니아의 종족들은 인간과 다른 독특한 특징이 있었단다. 대개의 종족이 일족의 정신을 보호하고 지지하는 [정수]라는 것을 가지고 있었지.
언젠가 성진은 성황에게 그런 설명을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대개의 종족들이 외부에 정수를 두고 세심하게 관리하는 것과는 달리, 코른시임 일족에게는 고도의 정신 능력으로 그 정수의 역할을 수행하는 인간이 있었다.
바로 오라클이 코른시임의 종족대표이자, 종족의 살아있는 [정수]라는 것이었다.
“…와우.”
성진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좋아, 이건 확실히 놀랄 만하네.
* * *
달칵.
오랜만에 성황을 대신해 정무회의에 들어갔던 타티아나는, 잠시 쉬는 틈을 이용해 집무실을 찾았다. 가급적이면 성황을 만나 언질을 듣고 싶은 안건이 있었던 것.
그러나 아쉽게도 그녀를 맞은 것은 성황이나 시종장 루이스가 아닌, 서류를 보고 있던 아멜리아 황녀였다.
하긴, 집무실에 있을 정도라면 그녀에게 정무회의를 미루지는 않았겠지.
“타티아나 어마마마.”
타티아나는 그녀를 향해 공손하게 인사하는 아멜리아 황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꼬박꼬박 ‘황후마마’라고 부르지만, 사석에서 황녀는 늘 자신을 ‘타티아나 어마마마’라고 불렀다. 처음 황궁에 들어왔을 때, 멋모르고 로건을 따라 하던 것이 그리 굳어진 게다.
엄밀히 말하면 제대로 격식을 갖춘 호칭은 아니건만, 그래도 건방지다기보다는 살가워 보이는 것도 재능의 영역일 것이다.
“최근 폐하의 일을 돕느라 수고가 많습니다, 아멜리아 황녀.”
“돕다니요. 그저 옆에서 폐를 끼치지나 않으면 다행한 일입니다.”
수줍은 듯 대답하는 모습 또한 꽃처럼 고왔다.
저 아름다운 황녀는 분명 폐하의 모습을 많이 닮았지만, 그만큼 그녀의 어머니를 닮은 구석도 많을 것이다.
대체 얼마나 아름다운 여인이었기에, 저렇게 한 떨기 꽃과 같은 딸을 두었을까. 지금은 죽고 없는 황녀의 어머니에 대한 질투심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이민다.
하지만 타티아나는 결코 그것을 내색하지 않았다. 그녀는 대륙에서 가장 고강한 제국의 황후였고, 지금까지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황후의 품격을 지켜왔다.
“아버님 폐하께서는 아직 기도실에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지금은 카트리나 단장이 곁에서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굳이 기도실에 드셨다면, 돌아오시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걸리겠습니다. 꼭 의견을 구해야 할 것이 있어 정무회의를 잠시 중단하고 왔건만…….”
타티아나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지금은 막연한 질투보다는 당면한 문제에 집중할 때다.
“아멜리아 황녀. 혹시 탄신연 전에 아세인 공국에서 올라온 장계들에 관해 알고 있습니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봤는데, 황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재빨리 서류들 틈에서 문서를 찾아냈다.
그 신속한 반응에 타티아나는 조금 놀랐지만, 곧 서류를 천천히 들춰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몇 달 전부터 요목조목 구색을 갖추어 여러 차례 보내온 장계들이 괜히 눈에 거슬렸던 것이라.
“아세인 대공은 기어이 적금을 황도에 밀어 넣고 싶은 모양입니다.”
최근 아세인 대공을 중심으로 한 서부와 남부의 귀족들이, 본격적인 적금 사업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있었다.
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황도에서 쓰는 제의 도구들을 모조리 적금으로 새로 마련하는 것.
한번 성황에게 반려당한 안건이었지만, 마침 그가 자리를 비우자마자 보란 듯 황후에게 재차 밀어 넣은 것이다.
-주신을 위해, 주신의 사랑받는 자식인 우리가 가장 좋은 것을 마련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베니투스 추기경을 비롯한 일부 고위 사제들까지 강하게 나오자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집행해야 하는 예산도 예산이었지만, 특히 모든 판세가 아세인 대공의 뜻대로 돌아가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지금은 마땅히 반려할 구실이 없다.’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려 해도 끝까지 밀어붙일 기세를 보이자, 타티아나는 결국 성황의 조언을 구하기 위해 집무실을 찾은 것이다.
그런데 그런 타티아나의 얼굴을 자세히 살피던 아멜리아가 입을 열었다.
“저런, 적금 제의 도구들이라니, 어린 사제들이 얼마다 곤욕스러울까요.”
“……?”
영문을 몰라 고개를 들자, 성황을 쏙 빼어 닮은 맑은 회색 눈동자가 명민한 빛으로 반짝였다.
“조사한 바로, 적금은 세공에 따라 1.5배에서 1.8배까지 무게가 더 나간다 하지 않습니까? 작은 장신구들이야 다들 모르고 걸고 다닌다지만, 제의 기구들은 무게가 만만치 않게 늘어날 테지요.”
타티아나는 눈을 끔벅거렸다.
…그랬나? 여간해서는 작은 장신구 무게 따위 신경 쓰지 않으니, 그녀로서는 알 도리가 없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성인의 축일에 적금으로 만들어진 제의 도구들을 들고 황도를 답보해야 하는 어린 사제들이 얼마나 힘들까요. 신성력도 미령하여 체력이 약한 하급 사제들일 텐데요.”
“……!”
황후가 눈을 둥그렇게 뜨고 있자, 아멜리아가 그녀를 바라보며 애석하다는 듯 미소 지었다.
“흉악범조차 사랑으로 용서하며 감화시키는, 용서의 성인이신 바스티안의 축일이 아닙니까? 이처럼 마음이 고우신 성인께서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겠습니까.”
“그… 그것이 사실입니까? 자료로 제대로 준비되어 있나요?”
“네, 타티아나 어마마마. 아버님 폐하께서 긴히 조사하라 명하신 서류가 있습니다.”
그렇게 대답한 아멜리아는 집무실 한쪽으로 척척 걸어가, 쌓여있는 서류 더미에서 종이 한 뭉치를 꺼내 들었다. 그 많은 서류 중에서, 조금의 탐색 작업도 없이.
그 모습을 타티아나는 홀린 듯 바라보았다.
한때는 신동으로 불리며, 당시에는 드물게도 홀로 브르타뉴에 유학까지 했던 그녀였다. 신성력이 없어 고위 사제로 출세하지는 못하더라도, 스스로도 유능한 행정관이 되리라는 꿈을 쉬이 이루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었지.
성황이 즉위한 이후에는 또 어떠했나. 황후의 자리에서 제국을 제대로 이끌어 보겠다는 야망까지 품지 않았던가.
하지만 뛰는 자 위에는 언제나 나는 자가 있었다.
-그 서류는 일주일 전에 처리가 끝났소, 타티아나. 괜찮으면 이쪽에 있는 서류를 좀 봐주겠소?
-그대가 찾는 서신은 왼쪽 끝에서 세 번째 책자 속에 들어 있소.
산더미처럼 쌓인 일거리 속에서 갈팡질팡 헤매다, 결국은 성황을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것이 돕는 일이란 것을 깨달았을 때, 타티아나가 느꼈던 자괴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비단 그것뿐일까. 성회에서 깐깐한 정교회 영감들을 상대로 말싸움하여 이기는 것이, 어디 보통 사람에게 가능키나 한 일인가.
아마도 성황의 머릿속에는 엄청나게 많은 사료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음이 분명했다.
정무가 안정된 최근에도 마찬가지. 능력 있는 신하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빈틈없이 돌아가도록 만들어 두었음에도, 타티아나는 간혹 성황이 자리를 비우면 그를 대신하기가 대단히 버겁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타티아나 황후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아멜리아를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최근 키프로스의 이상한 풍랑에 대한 보고 건이 여럿 올라와 있다 들었습니다. 그 자료를 찾아줄 수 있겠습니까?”
“네, 타티아나 어마마마.”
그러자 이번에도 아멜리아는 시원하게 대답한 후, 거침없이 서류들을 골라내기 시작했다.
‘틀림없어. 한 번 본 것들을 모두 외우고 있는 거다!’
이 얼마나 무서운 능력인가!
타티아나는 전율했다.
그녀를 둘러싸고 아부하는 자들은 항상 말하곤 한다. 강대한 신성력과 천재적인 검재를 타고난 로건이야말로 성황의 뒤를 잇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그러나 폐하께서는 검으로 이 제국을 지탱하고 계시는 것이 아니다. 그분의 진정한 힘은, 어디까지나 빠르고 정확하게 정무를 처리하는 능력에 있어.’
신성력은커녕 검술의 재능조차 없는 타티아나이기에, 오히려 아멜리아의 능력이 더욱 강하게 피부로 다가오는 것이다.
어쩌면 황녀의 저 능력이야말로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재능이 아닐까.
‘언젠가는 타국의 왕족과 결혼해서 로한이나 브르타뉴로 가버릴 거라 여겼건만…….’
어쩌면 황녀가 황위 쟁탈전에 새로운 경쟁자로 등극하게 될지도 모른다. 타티아나는 갑작스러운 깨달음에 충격을 받아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황녀가 속으로 흥얼흥얼 괴상한 콧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키프로스의 이번 분기 보고는 아마도… 빰 빠라 빰빰 쿵쿵 빰. 옳지! 이쪽 네 번째 인덱스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