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268)
성황의 아이들-268화(268/469)
268. 베르트란 & 리 (2)
처음부터 성진이 북부 경제를 살리는 원대한 사업을 계획한 것은 아니다. 아무리 아이템과 기획이 좋아도 운과 시류에 따라 망하기 십상인 것이 사업 아닌가.
벤처 하나를 말아먹고 울며 겨자 먹기로 회사에 입사한 후배를 보며, 성진은 평생 사업에는 손도 대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했더랬지.
그저 작은 참연어 전문점.
산지 직송의 신선한 참연어를 매일 접할 수 있는 맛있는 요리점.
오직 그 하나를 원했다. 신성 제국의 황자이자 대륙 제일의 금수저가 되었는데, 그런 작은 가게 하나 정도는 용돈으로도 충분히 감당 가능하리라 여겼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슈미트 지부장의 의견은 회의적이었다.
“아무래도 수지 타산이 맞지 않습니다.”
참연어가 주로 잡히는 곳은 오르토나의 북부, 바를레타.
차가운 해수가 흐르는 지역으로, 담수를 거슬러 올라가기 전의 통통한 참연어들이 풍부하게 서식하는 곳이다.
한때는 어업이 성행했지만, 오르토나가 멸망한 후에는 점차 축소되어 이제는 어민들도 많이 남지 않았다고.
“대부분은 난민이 되었고, 남은 자들도 거의 도적이 되었습니다.”
당연히 잡히는 참연어의 수도 대폭 줄었다.
아직도 현지와 인근 지역에서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유통되지만, 키프로스의 해상무역을 거쳐 내륙의 상단을 통해 소량 공급되는 제국은 사정이 달랐다. 연어 한 점이 같은 무게의 은보다 더 비싼 가격으로 껑충 뛰어오르는 것이다.
그마저도 공급이 일정하지 않아, 교회 납품 물자에 섞여 비정기적으로 간간히 들어오는 실정이었다.
‘아, 하지만 참연어 전문점, 정말 가능할 것 같은데…….’
성진은 머리를 싸맸다.
어쩐지 될 것 같았다. 조만간 해결책이 생길 것이라는 강력한 예감이 든다!
하지만 이번에는 성진도 감만 믿고 무턱대고 일을 벌일 수가 없었다.
사업에는 아예 문외한인 데다, 전문가인 슈미트의 의견이 저렇게 부정적이다. 이러다 수틀리면 자신은 물론 지부장인 슈미트도 쫄딱 망하는 거다.
“키프로스를 빙 돌아오는 것 보다는, 내륙을 바로 직선으로 내달리는 쪽이 저렴하고 안정적일 거라 생각했는데…….”
“이미 안전하게 확보된 유통 경로와, 새로 뚫어야 하는 위험한 유통 경로의 비용이 같겠습니까? 게다가 오르토나가 망한 이후 북부의 치안은 엉망입니다. 제대로 된 영주가 없는 지역은 아예 무법지대나 마찬가지죠.”
“그래. 그렇겠지.”
어쨌든 참연어 하나만 보고 유통 경로를 개척하기에는 너무나 타산이 맞지 않는 부담스러운 투자라는 거다.
‘그러면 다른 생산성 있는 사업을 함께 곁들이면 현상 유지는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 성진은, 이번에는 주변의 다른 자원들에 눈을 돌렸다. 마침 상인연합의 지부장인 슈미트는, 예전 오르토나에서 거래하던 물자들과 성행하던 산업에 대한 많은 자료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바를레타 근처에 채산성 높은 구리 광산이 있는 것을 확인한 성진이 외쳤다.
좋아! 구리 채광이다. 이번엔 어떠냐!
그리고 이에 대한 슈미트의 반응은 비교적 긍정적이었다.
“뭐, 나쁘지 않습니다. 낙후된 갱도를 보강하는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래도 3년 내에는 적자를 면할 겁니다. 저하께서 참연어 유통만 포기하신다면요.”
그럼 적자 물타기를 위해 규모를 좀 더 늘리자.
그렇게 눈에 불을 켜고 자료를 뒤지던 성진은, 바를레타를 흐르는 강의 상류에 거대한 벌목장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있는 나무를 베어다 팔자! 이거면 초기 투자가 광산만큼이나 많지는 않을 거야!’
그리고 이 의견을 들은 슈미트는 상당히 반색을 했다.
“2년이면 어느 정도 투자금을 회수하고 이익을 볼 수도 있겠군요. 물론 저하의 참연어가 그 수익을 지속적으로 갉아먹겠지만요.”
에잇!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
성진은 서류들과 씨름했다.
그러다가 발상을 조금 전환하여, 남부 아나톨리아의 썩어나는 곡물을 반대로 북부로 공급하는 방안까지 강구하고 나자, 겨우 슈미트의 미간에 패여 있던 주름이 펴졌다.
“이 정도의 사업 규모라면 새 유통망을 개척해 볼 법도 합니다. 규모가 너무 겁나게 커진 것이 문제지만요. 한데 저하.”
“응?”
“그놈의 수익성 없는 참연어는 이제 좀 내려 두시면 안 되겠습니까?”
“…….”
그렇게 슈미트에게 공급망 확보에 대한 다각도의 모색을 지시해놓고 성진은 레지나를 떠났다.
하지만 지그스문트령으로 향하는 길에도, 또 영지에 도착해서도 성진의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조금 더 멋지게. 그러니까 어떻게 짠! 하고 아버지한테 보여드릴 수 있을 만한 건 없을까?’
그러다가 탄생한 것이 인근 영주들을 끌어들인 대규모 협력 방안이었다. 정상적인 유통 구조가 망가진 오르토나에서, 자급자족하거나 비정기적인 상단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영지들을 겨냥한 것이다.
도축업에서부터 염색업까지, 몇 가지의 자잘한 사업과 관련 인력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대규모의 기획.
‘내가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지?’
어쨌든 다샤를 통해 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담신 서신을 보내자, 마침내 슈미트로부터 대단히 긍정적인 반응을 끌어낼 수 있었다.
-저하께 이 정도의 상재가 있으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과연 그 철혈 상인 아세인 대공의 손자라 할 만하군요. 아마도 이 정도의 기획이라면 수개월 내에는 안정적인 수익이 나올 겁니다.
비록 답신이 이렇게 끝나긴 했지만.
-물론 참연어만 빼면요.
‘이런 젠장! 이건 어디까지나 황도에 신선한 참연어를 공수하기 위해 벌인 일이란 말이야!’
하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살아있는 물고기를, 혹은 죽은 물고기를 신선하게 유통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으니까.
상단이 교회 납품 물자와 섞어 유통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신선도를 지키기 위해 성력이 담긴 물품이나 담당 사제의 신성력을 이용해야 하는 것이다.
‘이제는 정말 답이 없어…….’
그렇게 황도에 참연어 전문점을 여는 일은 무기한 답보 상태가 된 채, 성진은 지그스문트령에서 마수의 대공습을 맞게 되었다.
그러다가 예기치 않게 획득하게 된 얼음 심장.
성진은 상온에서도 녹지 않는 빙수들을 가지고 드래곤의 공방에서 이들을 개조한 냉장고를 탄생시켰다.
심지어는 특정 조건이 없으면 절대 도난당하지 않는 규상세계 물건의 특징까지 갖춘 완벽한 이동 창고였다.
‘…대체 내가 지금까지 뭘 한 거지?’
밀려오는 것은 기쁨보다는 허탈함이었다.
이제까지의 노력이 허무하리만치, 문제가 간단하게 해결되어 버린 것이다. 어쩐지 예감에 알아서 잘 될 것 같더라니.
“분명 멋진 물건이긴 합니다만…….”
슈미트와 성진 사이에서 연락책이 되고 있었던 다샤 역시, 완성된 냉장고를 보고 조금 김빠진 얼굴을 했다.
어쨌든 이후로는 일사천리였다.
백작저에서 두문불출하며 지내는 동안, 성진은 슈미트와 부지런히 서신을 주고받으며 참연어 전문점 계획을 점점 구체화시켰다.
그러던 중이었다. 어느날 밤, 다샤가 성진에게 그렇게 말을 건넨 것은.
“저하의 추진력에 힘입어 제법 근사한 일이 되어가고 있었는데, 조금 아쉽긴 합니다.”
“역시 그렇지?”
“네, 오르토나가 조금이나마 안정되고, 떠도는 난민들도 일부 자리 잡을 좋은 기회가 되었을 텐데요.”
“음… 으응?”
갑자기 찬물을 뒤집어 쓴 듯 정신이 번쩍 든 성진이, 허공을 바라보며 눈을 깜박거렸다.
‘오르토나가 안정되고, 난민들도 자리를…….’
그러자 지금까지 씨름하던 수많은 서류들이, 성진의 머릿속에서 역순으로 최르륵 펼쳐지기 시작했다.
참연어를 위시로 한 어업의 재활성화, 채산성 높은 탄광의 개발. 그리고 버려진 벌목장의 운영.
남부의 곡물을 싼값에 공급하고, 인근 영주들의 협력을 얻어 유통망 근처의 경제를 안정화시키는 것.
‘…잠깐, 이거 정말 모두 가능한 거 아냐?’
순간 성진의 등줄기에 전율이 흘렀다.
바를레타라는 북부의 한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 등불이, 황도를 향해 내려오며 이윽고 오르토나의 전역을 서서히 밝히기 시작하는 그림.
그 짧은 비전이 일순 성진의 뇌리를 강하게 강타하는 것이다.
‘그래. 이게 맞아! 오르토나에 언제까지고 로건의 용돈을 퍼부을 수는 없잖아?’
로건은 이미 몇몇 상단을 수배해, 이름을 숨긴채 난민들에게 구호물자를 보내고 있었다. 최근 늘어난 용돈으로 그 물량이 대폭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난민에게 가는 것 보다는 중간에 착복하는 놈들이 더 많을 텐데! 이걸 일일이 감시할 수도 없고. 역시 오르토나가 재건되고 난민이 구원 받으려면, 일단 경제를 자생하게 만드는 것밖에 방법이 없어!’
그리고 황도에서 잘 나가는 공화파 이적 단체 하나를 잡아 상단과 연결하고, 이들을 전면에 내세우면…….
성진의 머리가 오랜만에 팽글팽글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면 비록 적국의 황자라도, 언젠가 로건이 오르토나인들의 앞에 당당하게 서는 날이 오게 될지도……!’
* * *
“이렇게 된 거야! 그런 식으로 오르토나의 경제는 서서히 살아날 거라니까! 난민들도 더는 떠돌아다니지 않아도 된다고!”
그간의 장렬한 기록들을 들은 로건은 멍한 얼굴이었다.
성진의 열의에 호응해주고 싶지만, 워낙 스케일이 거대하다 보니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는 눈치였다.
“자, 그리고 이건 그 위대한 시작인 저온 마차다!”
성진이 건물 입구에 서 있는 짐마차 한 대를 가리켰다.
새로 제작하여 아직 하얗게 빛나는 포장에는, 도료로 커다랗게 ‘베르트란 & 리’라고 쓰여 있다.
“저온 마차?”
“응, 냉장고를 실을 마차야.”
“냉장고?”
“길게 설명하자면 끝이 없고, 간단하게 은총의 기사와 비슷한 물건이지.”
그러자 로건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성유물을 그런 곳에 쓴다고?”
“그렇다고 참연어의 신선도를 유지하겠답시고 24시간 사제를 교대로 붙일 수는 없잖아? 교회에서 가만있지도 않을 거고, 수지 타산도 영 맞질 않아.”
“흠.”
로건이 떨떠름하게 수긍하고 있는데, 그런 그에게 바짝 다가가며 성진이 눈을 반짝였다.
“그래서 말인데, 로건.”
“응?”
“너도 이 상단에 좀 투자해라! 너무 일을 크게 벌였더니 아무래도 초기 자금이 많이 모자라. 하지만 내가 몇 년 안에 투자금의 두 배, 아니 세 배를 벌게 해줄게!”
“…어?”
뜻밖의 말에 당황하는 로건에게 성진이 쐐기를 박았다.
“잘 생각해보라고. 이익은 단지 그것뿐만이 아니야. 오르토나의 경제 부흥 효과를 제하고도, 너에게만 세 배의 이익이 떨어질 거라고! 그럼 넌 그걸로 또 다른 부흥 사업을 할 수 있어. 이 이상 형편 좋은 이야기가 어디 있어?”
입꼬리를 쭉 찢는 성진은 앞으로 보고 모로 봐도 사기꾼의 모습이었다.
졸지에 빈 깡통 같은 선물을 받고, 그 대가로 거액의 투자 계약을 하게 생긴 로건이 얼떨떨하게 물었다.
“…그러니까 이성진, 이게 정말 선물은 맞는 거지?”
“그럼, 당연하지!”
[뭐가 당연하냐, 이 사기꾼아.]마왕 놈이 머릿속에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로건 역시 만만치 않은 호구 기질을 갖춘 자.
“그래. 네가 그렇다면 뭐.”
쓱쓱.
로건은 성진이 은근슬쩍 내민 계약서에 시원하게 서명을 휘갈겼다.
“탁월한 선택이야, 로건. 내가 장담할게.”
그렇게 희희낙락하며 계약서를 품에 갈무리한 성진이, 갑자기 무슨 생각을 했는지 흠칫 로건을 돌아보았다.
“근데, 로건?”
“응?”
“너 나중에 누가 너더러 어디에 사인하라고 하면, 다음에는 꼭 나를 불러. 알았지?”
“……?”
* * *
그날 오후, 행정관 도리안이 엄청난 서류뭉치를 들고 성황의 집무실을 찾았다.
유약한 반면 일처리에는 똑 부러지는 데가 있어, 평소 성황이 아끼는 젊은 행정관이었다.
그런데 집무실에 들어와서도 한참을 주저하던 도리안이, 이윽고 들고 온 서류들을 성황의 앞에 내밀며 말하는 게 아닌가.
“폐하, 황도를 오가며 영업을 하겠다는 한 상단의 허가 문제입니다. 그 외에 이런저런 사업 계획이 동시에 인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만.”
“그런 문제라면 행정부 선에서 상인 연합과 논의하면 될 것을.”
“하온데, 상단주 명의가, 그, 모레스 황자님과 로건 황자님 공동 소유로 되어 있어…….”
“…….”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은 성황이 말없이 서류를 받아들었다.
“황자님을 사칭했다고 보기에는, 내용이 대단히 구체적이고 자금의 규모가 큽니다. 그래서 일단 폐하께는 보고를 드려야 할 것 같았습니다.”
찬찬히 서류의 내용을 검토하던 성황의 눈동자가 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집무실에서 한동안의 정적이 흐른 후.
“사업…….”
탁.
이윽고 서류의 마지막 장을 넘긴 성황은 천천히 손을 들어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래. 어디 가서 다치는 것보다는 백번 낫구나. 낫긴 한데…….’
그래도 이건 작은 나라의 한해 운영 예산을 아득히 초과하는 규모가 아니냐.
대체 어디까지 일을 크게 벌일 셈이냐, 아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