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269)
성황의 아이들-269화(269/469)
269. 참회의 제물 (1)
선물 아닌 선물을 구경하고 함께 숙소로 돌아온 로건은, 성진이 입구로 들어서자 갑작스럽게 말했다.
“먼저 들어가서 쉬도록 해, 이성진. 난 지금부터 어디 들러볼 데가 있어서.”
“응? 어디 가는데?”
“오랜만에 레지나에 왔는데, 그래도 교회에는 가 봐야지.”
처음부터 교회를 방문하고 교구장을 만날 생각이었다고 로건이 덧붙였다.
“뭐? 그럼 진작 말하지. 완전 반대 방향 아니야? 여기까지 왔다가 또 시내로 돌아가야 하잖아.”
“그래도 네가 숙소로 무사히 들어가는 건 봐야지. 마사인 형님께 네가 사고치지 않게 제대로 챙기겠다고 약속했거든.”
“…….”
성진은 어이가 없었다.
어쩐지. 떼놓고 외출하겠다고 해도 순순히 보내주더라니. 그게 다 로건이 있어서였나?
한데 대체 어디까지 날 철없는 애 취급할 셈이야? 마사인 경. 나이 차이도 나지 않는데, 나랑 로건의 차별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심지어 정신연령은 내가 훨씬 더 높은데!
[헛소리가 가히 중증 치매급이잖아, 나름 어르신 대접일 수도 있지?]‘닥쳐!’
로건은 성진에게 교회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레지나의 교회는 북부를 순회하는 엑소시스트들과 인퀴지터들이 반드시 한 번은 거쳐가는 장소다.
변변한 교구가 없고 치안도 엉망인 북부에서, 이들 성기사들은 제대로 된 보조를 받지 못하고 홀로 떠돌곤 했다. 그러다 겨우 레지나에 도착하면, 지친 몸을 추스르며 모아온 정보들을 푸는 것이다.
그러니 북부의 암흑 교단은 물론, 악마숭배자들의 근황에 관한 신빙성 있는 정보들을 가장 먼저 파악할 수 있는 장소라는 거지.
“아무래도 조만간 다시 토벌대를 꾸려야 할 것 같으니, 사전에 북부의 정보를 취합해서 경로를 잡아야 할 것 같아.”
그 말에 성진이 눈을 깜박거렸다.
“잠깐만. 너 올해는 황도에 계속 붙어있기로 하지 않았어?”
“본래는 그럴 생각이었지만…….”
말끝을 흐리는 로건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성진 일행과 합류한 후, 로건은 약차와 밀로 상단, 그리고 마계수의 출현에 대해 자세하게 듣게 되었다. 그것의 배후는 암흑 교단임이 거의 확실시 되고 있다는 것도.
어쩌면 그가 예상한 것보다도 오래전부터, 암흑 교단의 마수가 북부 곳곳에 깊이 뻗쳐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무엇보다도 지그스문트령에서 악마가 외쳤던 말이 계속해서 마음에 걸렸다.
-그대의 죽음에는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걸려 있었다오! 수호자가 그대를 빼돌리지만 않았어도, 지금은 많은 것이 바뀌었을 거요.
이미 성 아우렐리온 기사단과 공조하여 조금씩 그들을 파헤쳐 들어가고는 있다지만, 과연 그것만으로 충분한 걸까?
어쩌면 토벌대를 조직하여 제대로 장기 조사에 들어가야 할지도 모른다.
“너, 황도에서 마물 전담반 일을 돕는 조건으로 용돈 올린 거 아니야? 다시 깎이면 어쩌려고? ‘베르트란 & 리’에 투자하고 나면, 이제는 남는 것도 거의 없을 건데?”
성진의 뚱한 얼굴에 어린 걱정스러운 기색을 읽어낸 로건이 미소 지었다.
“조금만 기다리면 네가 세 배로 불려준다고 했잖아? 그런데 뭐가 걱정이야.”
“아니, 그건 그렇지만…….”
“그리고 네 말이 맞기도 하고. 아바마마께서는 좋은 분이야, 이성진.”
그러니까 올린 용돈을 도로 깎지 않으실 거란 걸 알아.
그렇게 덧붙인 로건의 미소가 일순 흐려졌다.
“그래. 생각해보니 나는 그 사람에 대해 제법 잘 알고 있구나. 그러고도 어색하게 거리를 두려 했다니, 이것도 따지고 보면 전부 내 어리광일 뿐이겠지.”
“…….”
“아니, 쓸데없는 소리를 했다. 신경 쓰지 마. 그럼 나중에 숙소에서 보자.”
* * *
그렇게 로건과 헤어지고 한가해진 성진은, 오후에는 마사인 경을 대동하고 물류 중계소를 찾았다. 미리 지부장 슈미트에게는 찾아가겠다고 연락을 보낸 뒤였다.
그런데 아무 생각 없이 건물을 오르던 성진은 문득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왜 사람의 기척이 거의 느껴지지 않지?’
기분 탓이 아니라, 정말로 물류 중계소의 최상층은 텅 비어 있었다.
오직 그곳에 숨 쉬는 자라고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사무실을 지키고 있는 슈미트 지부장뿐이었다.
“릴리움의 로건 저하께서 레지나에 납셨는데, 감히 이 근처에 남아있을 자가 어디 있습니까?”
성진이 로건을 떼놓고 왔다는 것을 확인한 슈미트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물류 중계소의 악마 계약자들과 악마들이 로건을 피해 모조리 자리를 떴다는 말이었다. 성진의 방문 통보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덜덜 떨고 있었던 지부장은, 어찌나 마음 고생을 했는지 이미 눈가가 퀭하게 다크서클이 내려앉아 있었다.
“하지만 악마 계약자들이 평소에도 마기를 내뿜지는 않잖아. 다들 탄신연에는 잘도 참석하지 않나?”
“그날 하루를 위해 우리가 얼마나 마기 은폐에 심혈을 기울이는지 아십니까? 황도로 출발하기 한 달 전에는 악마와 제대로 소통하는 것도 피하며 준비를 합니다.”
예전에 로건은, 악마 계약자였던 오르토나 귀족 하나를 귀신같이 찾아내 즉결 처분한 적이 있다고 한다. 하급 악마와 계약하여 마기의 흔적이 거의 없는 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어찌나 녀석의 신성력이 강대한지, 최근 단 한번이라도 악마의 힘을 쓰거나 권속을 부른 자라면 어김없이 그의 기감에 걸릴 거라나.
로건이 교회로 간답시고 물류 중계소로 따라오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그래서, 그게 정말입니까?”
슈미트는 사무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마사인 경의 기척을 살핀 후, 조금 목소리를 낮춰 소곤거렸다.
“음? 뭐가?”
“정말 로건 황자님께서 소드 마스터입니까?”
“…자네가 그걸 어떻게 알았어?”
성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보자 슈미트가 헛웃음 소리를 냈다.
“상인 연합의 정보력을 우습게보시면 안 됩니다.”
변경백이 쉬쉬해도 결국 소문이 나긴 하는구나. 하긴 대륙 최연소의 기록을 몇 차례 갈아엎고도 남을 엄청난 일이긴 했지.
어쨌든 성진에게서 확답을 들은 그는 묘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분이 천재라는 말은 종종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약관도 되지 않은 인간이 소드 마스터라니, 그게 가능하기는 한 일입니까? 다시 태어난 것도 아닐 텐데, 수명이 긴 다른 종족이나 마족이 아니고서야 어찌…….”
“어, 으음, 뭐. 로건은 특별히 남다른 천재잖아.”
아버지의 아들이니까.
성진이 뜨끔하여 어물거리자 슈미트가 미심쩍은 눈으로 빤히 쳐다본다. 하지만 성진이 계속 시선을 피하며 딴청을 부리니, 결국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뭐, 그렇다고 칩시다. 하지만 이번에 참회목이 출현한 사건도 그렇고, 갑자기 대륙 최연소 소드 마스터가 탄생한 것도 그렇고. 여러모로 십여 년 전의 일들이 떠오르니 무척 공교롭다 싶습니다.”
“십여 년 전?”
“오르토나 내전 말입니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검의 재능.
그것의 정점을 찍은 자라면 역시 단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는다고 슈미트가 말했다.
“바로 가엘 베르트란 장군이죠. 그는 출생부터 악마들 사이에서 대단히 유명했습니다.”
“유, 유명? 왜?”
이번에도 움찔하며 혀를 씹는 성진을, 슈미트는 조금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뭐, 그야. 그의 영혼은 무척 특별했으니까요.”
“특별해?”
“네. 악마들의 눈에는 그 이상 찬란할 수 없는 영혼이었다고 합니다. 당장이라도 무슨 계약이든 해서 타락시키고 저당잡고 싶을 정도로요.”
일개 악마의 눈에도 그러할진대, 다른 고위 마왕들의 눈에는 그가 어떻게 보였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가엘 베르트란이 무사히 성장하여 소드 마스터가 된 데엔, 이들 마왕들의 입김이 무척 컸다고 한다.
고위 마왕의 소유가 되리라는 것이 기정사실화 되자, 그때부터 어지간한 악마들은 그의 주변에 얼씬도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것들이 지금 남의 영혼을 누구 맘대로…….’
성진이 미간을 팍 찌푸리는데, 이를 눈치챈 마왕이 슬그머니 그를 달랬다.
[워워. 진정해, 이성진. 너 혈압 올라가고 있어. 일단은 무사히 다시 태어났잖아? 결국 아무도 그의 영혼을 가지지 못했다는 말이야.]그러는 동안 슈미트의 설명은 이어졌다.
“그리고 오랜 시간에 걸쳐 공들인 의식이 준비되었죠.”
“의식?”
마왕이 영혼을 가지는 데에 뭔가 특별한 절차가 필요한가?
성진의 의문에 슈미트가 고개를 저었다.
“단지 가엘 베르트란의 영혼만을 탐냈다면, 어떻게든 계약을 해서 갈취하면 그만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당시에 있어났던 일들은 뭔가 결이 많이 달랐습니다.”
악마들도 자세한 내막을 알지는 못했다. 모든 것은 당시 북부에서 득세 중이던 참회 교단의 손에서 비밀스럽게 이루어졌으니까.
어쨌든 내전이 한창 끝으로 다가가던 시기, 북부의 구석구석에 여러 개의 참회목이 출현했다고 한다. 보기면 하면 마치 오르토나 전역을 한번에 제물로 바치는 대규모의 공양 같았다나.
그리고 그 위에 가엘 베르트란의 영혼이 놓일 예정이었던 것이다. 마치 커다란 케이크 중앙에 장식하는 가장 탐스러운 과일인 것처럼.
“하지만 엑소시스트들이 보관한 자료에는 따로 참회목이 출현한 기록은 없다고 들었는데? 마지막으로 참회목에 대한 기록이 남은 게 수백 년 전, 그러니까 5대 성황이었나? 그때쯤이라고 했어,”
오르토나가 멸망할 당시면, 아버지가 젊은 시절이 아닌가.
“참회목은 작은 마을 다섯 개를 집어삼키며 동시에 소환되었습니다. 외진 곳인 데다 내전으로 온 대륙이 어지러울 때라 다들 모르고 지나갔을 겁니다. 어차피 목격자가 있어봤자 마계의 나무에 휘말려 모조리 죽었을 테고요.”
그리고 이후의 결과는 성진과 마왕이 짐작하는 그대로였다.
“한데 수년에 걸친 철저한 준비였음에도, 어째서인지 의식이 실패하며 참회목들은 그대로 마계로 역소환되었다고 하더군요. 남은 것은 폐허가 되어버린 마을들뿐이었을 테니 제대로 기록에 남을 수가 없었던 겁니다.”
“…….”
슈미트의 설명을 들으면서 성진은 동시에 엉뚱한 것을 떠올리고 있었다. 바로 시슬레의 몸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초대 성황, 카드모스의 말이었다.
-왜 나의 새로운 몸이 될 아이를 일부러 해친단 말이냐? 모든 것을 내게 바치게 될 터인데!
시슬레가 그랬었지.
델크로스 연대기에서, 자신은 고위 마왕 강림의 열쇠가 되어 세상을 멸망시키는 원흉이었다고.
‘물론 델크로스 연대기라는 것은 시구르트 시구르슨이 꾸며내 쓴 질 나쁜 장난질이었지만,’
하지만 이게 과연 우연일 수 있을까?
실현되지 않는 예지몽이든, 실패한 계획이든. 하필 아버지의 자식 두 사람이 동시에 고위 마왕들의 표적이 된다는 것이?
성진이 깊이 생각에 잠겨 있는데, 슈미트가 목깃을 쓰다듬으며 머쓱하게 말했다.
“아. 어쨌든 지금 우리와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입니다. 마침 참회목 이야기가 나와서 생각하다 보니, 제가 쓸데없는 소리를 너무 길게 늘어놨군요.”
“…….”
성진은 내심 더 듣고 싶었지만, 그래도 화제를 전환하는 슈미트를 막지는 않았다.
관련된 놈들을 모두 찾아 족치고 싶은 마음과, 그래도 아직은 깊이 파고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공존했기 때문이다.
“괜히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저하께는 이제부터 보고드릴 일들이 많습니다.”
어쨌든 슈미트와는 자주 얼굴을 볼 수 없다 보니 이 기회에 할 수 있는 논의는 모두 해야 했다. 참연어 전문점의 준비 상황은 물론, ‘베르트란 & 리’의 운영에 대한 것도.
그 과정에서 헨드릭 변경백과 한 거래 얘기를 했더니 슈미트가 눈썹을 슬쩍 끌어올렸다.
“반독점의 기회를 물어와 주신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이참에 사업 초기의 투자 손실을 어느 정도 만회할 수 있겠군요. 하지만 헨드릭 변경백은 그리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닙니다.”
“확실히 마냥 손해만 볼 인물은 아니지.”
“네. 북부를 오가는 상인들에게는 제법 요주의 인물이었습니다. 그와의 대화에 휘말리다 보면, 저도 모르게 다른 상단과의 가격 경쟁에 열중하게 된다며 모두 혀를 내두르더군요.”
이전에는 어느 상단도 지그스문트령과의 독점 계약을 선뜻 맺지 못한 원인이었단다. 여러모로 밀로 상단과의 독점 거래는 이례적인 일이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자코모 밀로의 소식을 들었나? 그는 어찌 되었지?”
분명 상단이 그 꼴이 난 뒤로 레지나로 향했을 거라 짐작했는데. 그래서 그가 물류 중계소에 나타나자마나 억류해 두라고 지시한 바 있었다.
하지만 슈미트는 고개를 저었다.
“안타깝게도 자코모 밀로는 이곳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왔더라도 쉽게 얼굴을 드러내지는 않았을 겁니다. 레지나를 비롯한 인근 대도시에 대대적인 수배령이 떨어졌으니까요. 아마 어딘가 안전한 곳으로 몸을 피하지 않았겠습니까?”
“…대체 어디로?”
그자가 따로 의탁할 곳이 있던가?
다샤의 조사에 의하면 자코모는 밀로 백작가의 이름을 딴 상단을 운영하고 있지만, 정작 가문과는 완전히 결별했다고 들었는데?
그러자 슈미트가 건조한 시선을 들어 창가를 내려다보았다.
“글쎄요. 일단 지하로 몸을 숨겼다면 당장 떠오르는 것은 한 곳뿐이군요.”
성진은 그가 하는 말을 바로 알아들었다.
“…참회의 교단인가.”
“네, 아마 그렇지 않겠습니까.”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대꾸하던 슈미트는, 순간 무슨 생각을 했는지 성진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왜?”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전부터 생각한 거지만, 저하께서는 생각 외로 뭐든 쉽게 알아들으시고 쉽게 눈치채신다 싶어서 말입니다.”
저하와 대화하는 것은 그래서 편하구나, 생각했습니다. 슈미트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잠시 허공을 바라보다 덧붙였다.
“그런데 대체 참연어 사업이 안 된다는 말은 왜 그렇게 못 알아먹으셨던 건지…….”
“…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