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27)
성황의 아이들-27화(27/469)
027. 검은 선지자들 (2)
“사실은 나도 최근에 딤로스 부관님한테 간단하게 오러 연공법에 관해 배우고 있었어.”
식전 빵을 찢으며 아멜리아가 말했다.
최근 성황의 권유로 이것저것 공부를 시작한 김에 덩달아 배우게 되었단다.
딤로스 경은 친위대 1기사단의 부관이다. 전장의 경험이 풍부한 장년의 기사로, 황궁 내에서는 창술과 위로즈 연공법의 대가로 유명하다나.
델크로스에서 성황을 제외한 최강의 검사를 묻는다면, 누구나 의심할 여지없이 친위대 1기사단장 발타자르를 꼽는다.
그가 한창 전장에서 날뛰던 시절, 남부 전선에서 홀로 포위망을 뚫으며 이교도의 대군을 쓸어버린 무위가 아직도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으니까.
그러나 그런 발타자르도 창술에 관한 한 딤로스가 한 수 접어 줄 정도라니, 적어도 순수한 창술로는 대륙의 최강자를 논할 정도의 경지임에는 분명했다.
“그런데 왜 하필 위로즈에요? 마사인 경 말로는 초심자가 배우기 좀 부담스러운 연공법이라고 하던데?”
성진이 빵을 씹다 말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기사단의 대부분이 바나하스 연공법으로 입문을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검술의 흐름과 오러의 흐름이 서로 상충되는 부분 없이 일관적이고 직관적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오러를 따로 조정하랴 검술을 제대로 펼치랴 정신없는 상태에서, 오러의 방향까지 제멋대로 돌아간다면 입문 난이도가 그야말로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갈 테니까.
반면 위로즈는 다르다.
-신성 제국 표준 연공술에 대고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위로즈는 조금 음흉한 연공술입니다.
마사인은 뭐 씹은 얼굴을 하며 그런 평가를 내렸다.
가장 기본적인 찌르기 동작 하나에 오러가 순차적으로 두 방향으로 나뉘어 돌아간다. 돌파력을 극대화하기 위함이다.
여기에서 오러를 무기에 덧씌우는 과정 또한 기본적으로 두 방향. 창술의 최종식에 이르러서는 무기에만 네 방향의 오러를 덧씌워 회전시켜야 한다니, 그야말로 괴악하기 짝이 없는 연공술이 아닐 수 없다.
이러니 위로즈의 극의에 닿는 기사가 그렇게나 드문 것이다.
아멜리아가 풀이 죽은 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그런 걸 미리 알았겠니? 나는 그저 뭘 배우고 싶냐는 아버님 폐하의 질문에 창술이라고 대답했을 뿐이야.”
아, 그래서 창술의 최강자를 붙여준 건가.
그 양반이야 오러를 ‘마음 가는 대로’ 돌리는 경지이니 네 방향이든 열 방향이든 크게 개의치 않았겠지. 애초에 초심자의 애로사항이 뭔지 이해는 하고 있는 걸까.
“근데 왜 뜬금없이 창술입니까? 보통은 검이 더 익숙하지 않나요?”
“음…….”
그녀는 묘한 눈으로 성진을 바라보더니 생긋 웃음을 흘렸다.
“내가 아는 누군가가 창을 좀 잘 던지더라고. 꽤나 멋있어서 나도 그거 한번 해보고 싶었어.”
막막 손을 한번 휙 하니까 막 성벽이 부서지고.
적군의 병사들이 막 으아아아 하고.
아멜리아가 손을 파닥파닥거리며 설명을 시작하자, 뒤에 서 있던 호위기사는 물론 식사 시중에 한창이던 에디스까지 볼이 발그레해지며 그녀를 바라본다. 마냥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얼굴이다.
어이, 여러분. 당신들의 귀여운 황녀님이 지금 제 손으로 적군의 성을 한 방에 날려 버리고 싶다는 과격한 발언을 하고 있습니다. 네?
“그래서 일단 창술을 시작은 했는데, 수련은 해도 영 내가 뭘 하고 있는지 감이 없었거든. 딤로스 님의 설명은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고.”
무술에 대한 소양이 조금도 없는, 이제 막 오러를 느끼는 단계의 초심자에게 연공술의 설명이 얼마나 뜬구름 잡는 소리로 들리는지는 성진 역시 잘 알고 있었다.
비록 오러가 고갈된 상태였다고는 하지만, 마물 헌터로 잔뼈가 굵은 그조차도 마사인의 설명에 한참을 헤매지 않았던가.
“그런데 오늘 네가 수련하는 모습을 보니까 뭔가 알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아, 이런 게 오러 수련이구나 싶기도 하고…….”
소녀의 흰 뺨이 장밋빛으로 상기되며 맑은 두 눈이 별처럼 반짝거린다.
“어쩐지 연공이 점점 재미있어질 거 같다는 느낌이 들어.”
무언가에 잔뜩 매료된 자의 얼굴이다. 이런 사람은 뭐에 열중하든 간에 빠르게 성과를 내게 마련이지.
조만간 아멜리아가 오러 연공에 비약적인 성취를 보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성진은 흐뭇하게 웃었다. 이어진 다음 말을 듣기 전까지는.
“복수를 향한 모든 것들이 이토록이나 삶을 즐겁게 할 줄이야.”
아니, 누님. 설마 복수하려고 창술 배워요?
성을 때려 부수는 위력으로 사람을 치겠다고요?
의욕에 넘치는 아름다운 소녀를 향해, 호위 기사와 에디스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응원을 보내는 모습들이 보인다.
물어볼 것도 없이 ‘우리 황녀님 파이팅! 맞을 놈이 누군지는 몰라도 확 그냥 끝장내 버리십쇼!’ 이따위 생각이나 하고 있겠지.
문득 성진은 복수당할 그분이 누구인지 참으로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오후 수업에는 돌아오겠다던 마사인 경은, 이후로도 연무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뭐, 검술 복습이나 하고 있자. 성진은 혼자서 1식부터 5식까지 순서대로 한바탕 칼춤을 췄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신나게 목검을 휘두르는데 전과는 다르게 동작이 무언가 뚝뚝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음?”
성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1식과 2식을 다시 전개해 보았다. 배우는 데 가장 공들인 식이자 가장 자신 있는 식이었다. 휘익휘익. 훅.
“…음?”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이전까지 익숙해져 있던 박자가 미묘하게 뒤틀리면서 형을 연달아 전개하는데 방해가 되고 있었다. 갑자기 이게 왜 이러지?
음? 어? 어라?
갈피를 못 잡고 반복해서 1식을 휘두르고 있는데, 누군가가 옆에서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저, 모레스 황자님. 오러를 그렇게 막 엮으시면 안 됩니다. 처음 연공법 기초대로 전개하지 않으면 형의 연결이 틀어집니다.”
성진은 고개를 돌렸다.
그에게 말을 건 것은 오가며 제법 안면이 있는 상주기사였다. 체구가 작고 앞니가 조금 돌출되어 어쩐지 촐랑거릴 거 같은 인상이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그는 얼떨결에 지적해 놓고서는 자기가 더 깜짝 놀라며 황급히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다른 기사들도 하던 수련을 멈추고 이쪽으로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
“아, 대단히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수련하시는 데 방해를 드려…….”
“어, 아니, 그렇지 않아. 그런데 자네는?”
“네, 저하! 친위대 3기사단 소속 하벤입니다!”
기사가 재빨리 가슴에 손을 올리며 고개를 조아렸다. 그러나 성진이 주목한 부분은 다른 것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오러를 엮었어?”
성진은 그를 옆에 세워둔 채 천천히 1식을 전개해 보았다. 고개를 갸웃하고 한 번 더 전개한다.
자신을 하벤이라고 소개한 기사는 성진이 목검을 휘두를 때마다 반사적으로 몸을 움찔움찔 떨었다. 마치 그가 당장이라도 목검으로 자신을 내려치리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진짜네?”
성진은 3번이나 1식을 반복 전개하고 나서야 기사의 말을 이해했다.
오전 명상 중 엉겁결에 4층을 형성한 후, 이제는 오러의 흐름이 동작에 가시적인 영향을 미칠 정도로 강해져 있었다. 그래서 연공 입문 수련을 시작하는 구간이 3층부터라고 마사인이 말했었지.
그걸 저도 모르게 예전 마물의 정기를 운용하는 방식으로 멋대로 근육에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동작이 어색해지고 박자가 꼬이지.
성진은 아직까지도 잔뜩 긴장한 채 움츠리고 있는 기사를 향해 활짝 웃어 보였다.
“하벤 경이라고 했나? 대단한데? 오러를 흘리는 나도 모르고 있었는데, 자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챘어?”
순간 연무장이 확 밝아지는 느낌에 하벤은 저도 모르게 눈을 끔벅거렸다.
늘 뚱해 보이던 3황자는 제법 해사한 웃음을 웃는 소년이었다.
“그, 연공 기초를 소홀히 하고 넘어가다가 나중에 동작이 꼬이는 자들이 종종 있습니다. 1식과 2식 엮기부터 잘못되는 거죠. 그런 동작은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경험 없는 스콰이어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입니다.”
하벤은 저도 모르게 성진에게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한 대 맞을까 전전긍긍하던 모습은 이미 온데간데없었다.
“아아, 그래서 내가 맘대로 흘리는 걸 알았구나! 난 또 오러가 눈에 보이나 했네.”
“외기도 아닌데 몸에 흐르는 오러를 어떻게 봅니까? 그냥 오러를 옳게 움직이면 동작이 조금 달라지니까, 다들 그걸 보고 교정하는 거죠.”
“그렇군. 움직임만 보고도 오러를 어떻게 흘리는지 아는 건가…….”
성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각각의 식에 대한 이해가 높다는 거겠지? 역시 황궁기사 정도 되는 사람들은 대단하군.”
그는 진심으로 감탄하는 중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까지는 내심 상주기사들을 변변찮은 수준이라 무시하고 있었다. 체력만 조금 회복되면 오러 없이도 어느 정도 해볼 만하다고 여겼지.
그런데 이런 말단 기사조차도 오러 연공과 검술에 대해 대단히 전문적인 식견을 가지고 있었다. 상주기사들이 다시 보이는 순간이다.
혼잣말처럼 나직하게 하는 감탄을 들었는지, 하벤의 얼굴에 잠시 뿌듯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그럼 지금부터 어떻게 수련을 하지? 오늘 갑자기 층이 늘어나서, 아직 바르게 오러 엮는 방법을 마사인 경에게 배우지 못했어.”
오러에 대한 감이 생기기 전에 잠깐 두어 가지 형을 엮는 방법을 들은 적은 있는데, 그걸 가지고 제대로 된 식을 펼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마사인을 기다려야 하는 걸까…….
성진의 물음에 대답이 궁해진 하벤이 움찔거리고 있는데, 뒤에서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오러를 단전에 묶어 두는 것 자체가 수련이 됩니다. 저하.”
“자네는……?”
그녀는 조금은 생소한 얼굴의 기사였다. 밀 빛의 긴 머리를 아무렇게나 올려 묶어 잔머리가 이리저리 삐져나와 있지만, 얼굴 표정은 대단히 근엄한 것이 제법 연륜이 있어 보인다.
무심코 한 질문에 그녀의 얼굴이 조금 굳어지자 성진은 재빨리 사과했다.
“구면이라면 미안하네.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병 이후에 기억이 흐릿해서…….”
“아, 아닙니다, 저하! 저는 친위대 1기사단 소속 마리아입니다. 진주궁에 파견 나온 지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마구 손사래를 치는 것을 보니, 화가 나서라기보다는 긴장하면 표정이 굳는 타입인 모양이었다.
“그래서, 오러를 묶는다고?”
“네. 그렇습니다.”
대답하는 목소리가 높게 갈라지는 것을 보니, 경험 많아 보이는 겉모습에 비해 긴장을 잘하는 사람인가보다 하고 성진은 생각했다.
물론 그 긴장의 대부분이 개망나니로 소문이 자자한 자신 때문이라는 것은 깨닫지 못했다.
“그, 연공 입문은 역시 마사인 경만큼 탄탄하게 가르치시는 분이 없습니다. 저희가 설명드려도 어차피 이상한 버릇만 만들기 쉬우니, 그럴 바에야 차라리 오러를 단전에 묶는 연습을 하시는 것이 어떤지 하고…….”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능숙한 기사들도 간혹 오러를 일부러 단전에 묶어두고 수련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오러를 엮기 전과 후를 확실하게 되새겨 올바른 오러 운용을 상기시키고, 오러를 엮는 버릇에 따라 틀어지기 쉬운 검술의 기본을 다시 바로 잡는 과정이라고.
게다가 몸 전체를 순환하려 하는 오러를 단전에 억류해 돌리는 것 자체도 오러 운용을 능숙하게 만드는 수련이 된단다.
“그거… 엄청 좋은 생각인데?”
성진의 눈이 빛났다. 오러가 멋대로 흘러 동작이 꼬인다면, 그녀의 말대로 일부러 흘리지 않는 수련을 하면 자연히 해결될 일이 아니겠는가.
그는 잠시 자리에 서서 단전을 관조했다. 오러는 단전에서 빙글빙글 잘 돌고 있다.
그걸 그대로 유지하려 애쓰면서 목검을 두어 번 내리그었다. 습관적으로 팔을 타고 흐르려는 오러를 다시 단전으로 끌어당긴다.
“이거…….”
조금 까다롭기는 하지만, 될 거 같은데?
“고마워, 마리아 경! 한번 시도해 보겠네!”
성진은 그녀에게 밝게 손을 흔들어준 다음 이내 새로운 수련에 몰입했다.
단전으로 당긴다. 습관적으로 온몸에 흘리던 오러를 단전에 갈무리한다.
뚝뚝 끊어지던 동작들이 조금씩 그 흐름을 되찾기 시작했다.
단전에서 흘러가는 오러뿐만 아니라 호흡으로 흡수하는 오러조차 팔다리에 한 톨 흘리지 않는다. 동작을 방해하는 모든 오러를 검술로부터 배제한다.
그것은 대단히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전에 그가 습관적으로 운용하던 기운들이 새삼스럽게 명확한 형태를 가지고 다가온다.
어떤 형태로, 어떤 순서로 흘려내렸는지가 오러를 완전히 차단하고 나서야 더욱 확실하게 인식되다니.
조금씩 이어져 가던 형들이 마침내 완전하게 연결되고, 식과 식이 물 흐르듯이 부드러워지기 시작한다. 성진은 다시 무아지경으로 리듬을 타며 칼춤을 추기 시작했다.
연무장의 상주기사들은 어느새 모두가 수련을 멈추고 정신없이 목검을 휘두르는 3황자를 구경하고 있었다.
“선배, 솔직히 얘기해 봐요. 말 던져 놓고 당황했죠?”
코가 빨간 기사 하나가 마리아를 향해 놀리듯 물었다.
“저걸 정말로 해낼 줄은 몰랐는데…….”
마리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얼떨결에 말을 했지만 오러 묶기는 결코 초심자가 시도할 만한 난이도가 아니었기 때문.
단전에 있는 오러를 팔다리에 뚜렷한 형태로 흘려내는 데에도 오랜 기간 애를 먹는 사람이 많았다. 괜히 연공 입문이 재능의 영역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이 아니다.
한데 저 어린 황자님은 3층 이상을 쌓자마자 그것을 흘리는지도 모르고 자연스럽게 팔다리에 순환시키고 있었다.
게다가 이미 부드럽게 흘러가는 데 길이 든 오러를 다시 완전히 단전에 묶어 둔다?
그것은 형태를 가지고 흘려내는 것보다도 한 차원 높은 영역의 오러 운용이었다.
모레스 황자님은 진짜 천잰가 봐.
홀린 듯이 그를 바라보는 상주기사들 사이에서,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던 젊은 기사 하나가 몸을 돌려 조용히 연무장을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