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272)
성황의 아이들-272화(272/469)
272. 꿈길에서 (1)
어르신의 공방에서 빙수들을 개조하던 날.
호문클루스 소스 편집기로 열심히 얼음 심장을 분석하던 덱스터가 갑자기 화들짝 놀라며 성진을 불렀다.
“저기, 이게 뭡니까?”
“네?”
“여기에 뭔가 이상한 게 하나 끼어 있는데요?”
덱스터는 한창 조정하던 화면을 성진에게 보여 주었다.
뭘? 이렇게 봐서는 잘 모르겠는데?
“여기 이놈 말입니다. 다른 개체들과 뭔가 많이 다른데요? 그동안 어딘가 이상한 점 없었습니까?”
아아, 빙수 3호 말인가?
성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 보니 다른 놈들에 비해 좀 덜떨어졌다는 느낌이 있긴 했지. 늘 한 박자 늦고, 평지에서 막 넘어지고 했으니까.
그리고 그에 대한 덱스터의 대답은 놀라운 것이었다.
“인공지능이 탑재되어 있습니다.”
“인공지능이요?”
“아, 지구에서는 익숙한 개념이지만, 당신에게는 조금 생소할지도 모르겠군요. 이름 그대롭니다. 사람이 만들어낸 일종의 전자 지성체죠.”
그때까지만 해도 성진을 드래곤 해츨링이라 철석같이 믿고 있던 덱스터가, 조심스럽게 인공지능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을 늘어놓았다.
“간혹 호문클루스 엔진으로 다른 세계의 소스를 무분별하게 끌어오다 보면 이런 경우가 생깁니다. 엉뚱한 것이 끌려와 뒤섞여버리는 거죠.”
그리고 빙수 3호를 조금 더 자세히 분석하던 덱스터는, 아무래도 그것이 가정용 로봇에 탑재된 어린이 돌보미 겸 학습 프로그램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럼 오히려 다른 빙수들보다 월등히 성능이 좋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꽤 기능 많은 인공지능이라며? 그런데 왜 이런 반편이가 된 거지?
“연산 자체가 복잡하다 보니, 적절하지 않은 상황에서 계속 오작동을 일으켰을 겁니다. 자율 판단과 명령이 서로 충돌하고 있었으니까요.”
어쨌든 개조하시는 데엔 쓸모없는 부분입니다. 이대로 삭제해 버릴까요?
덱스터가 수정 기판을 조작하며 물었다.
“어, 잠깐만요.”
성진은 갑자기 번뜩이는 영감을 느끼며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인공지능이라니, 뭔가 엄청 그럴싸하게 들리는데, 남겨둬도 괜찮지 않을까?’
처음에는 그냥 무난하게, 귀여우면서도 안고 있으면 시원한 얼음 곰인형을 만들 생각이었지만.
‘이왕이면 거기서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곰인형 쪽이 더 귀엽고 친근감이 들겠지?’
그리고 덱스터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그런 정도야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걸어다니는 작은 곰인형이었다.
하지만 충돌하는 부분을 제거하여 제대로 작동하리라는 기대와는 달리, 빙수 3호는 여전히 어정쩡하게 걷다가 바닥을 구르기를 반복했다.
잔뜩 실망한 성진에게, 덱스터가 위로하듯 덧붙였다.
“몸의 형태와 크기가 완전히 바뀌었지 않습니까?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좀 필요합니다.”
“흠.”
“게다가 조금씩 주변 환경에 대해 학습을 할 겁니다. 점점 더 능숙하게 움직이지 않겠습니까?”
그 말대로, 처음에는 어색하게 뒤뚱거리던 작은 곰인형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그럴싸하게 걷기 시작했다.
곧 온 공방을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는 빙수 3호를 바라보며 성진이 흡족하게 웃었다.
“좋아! 빨리 배우네.”
그러다가 문득 생각했다.
그런데 기껏 있는 고급 인공지능을 그냥 걷는 것에만 쓰는 것도 아깝지 않나?
“혹시 말입니다. 여기 말하는 기능을 넣을 수 있을까요?”
그러자 덱스터가 얼굴을 찡그렸다.
“저 인형이 애초에 성대나 호흡기관을 만들 만한 구조가 아니잖습니까? 하지만 간단한 녹음 음성을 내는 정도라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작은 얼음 곰은 ‘알라뷰’를 외치며 돌아다니기에 이르렀다.
“오오, 귀엽다. 좋아, 이왕 말하는 김에 노래하고 춤도 출 수 있으면…….”
“…네?”
잠시 후, 덱스터의 삽질에 힘입어 곰은 정체불명의 엉덩이춤을 같은 것을 출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러고도 성진의 주문은 끝이 없었다.
“근데 말이죠. 이건 애초에 아이 돌보미였다면서요? 그럼 혹시 아이를 해치려는 놈이 있으면, 나서서 경호하는 기능을 넣는 것도…….”
“무기를 제대로 휘두르려면 크기가 훨씬 더 커져야 할 것 같은데, 아예 크기 변환 기능을 추가하면…….”
그 끝도 없는 요구 사항을 참다 못한 덱스터가, 결국은 고글을 바닥으로 집어던지며 화를 내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당신은 도대체 뭘 만들고 싶은 겁니까! 이게 정말 어린아이에게 줄 선물이 맞기는 한 겁니까?”
* * *
“…그럼, 선물이지. 어릴 때 다들 갖고 싶어 하는 선물…….”
중얼거리던 성진은 번쩍 눈을 떴다.
“헉?”
그리고 멀뚱히 자신을 보고 있는 로건과 눈이 마주쳤다.
“잠 좀 깼어? 자장 차를 마시면 쥐도 새도 모르고 곯아떨어지는 건 여전하구나? 이제 오러도 익혔겠다, 그 정도 술은 괜찮을 줄 알았는데.”
“…로건? 네가 왜 여기 있어?”
내가 옆에 사람이 있는데도 전혀 기척을 느끼지 못하고 잠을 잤다고?
성진이 당황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니, 옆에 놓인 안락의자에 기대어 자고 있는 마사인 경이 눈에 들어왔다.
이 양반은 또 궁상맞게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마사인 형님과 교대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형님이 많이 걱정했어.”
어? 걱정할 게 뭐가 있다고? 그냥 술에 취해서 잔 것뿐인데.
성진이 의아한 얼굴을 하자, 로건이 잠자코 그의 뒤를 가리켰다.
“저것과 너 둘만 놔두고 어떻게 쉬러 갈 수가 있었겠어?”
그의 말대로, 침대 반대편에는 거대한 곰인형이 흉악한 가시를 드러낸 채 멀뚱히 서 있었다.
성진과 눈이 마주치자, 곰이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며 예의 전자음을 뱉어냈다.
[알~라~뷰!]“…….”
그제야 어제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술김에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갑자기 이는 두통에 머리를 감싸쥐는데, 로건이 조심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저걸 저대로 황도로 가져갈 거야?”
“응. 어쨌든 선물이니까. 왜?”
“황도 사람들이 조금 놀라지 않을까?”
로건은 돌려 말했지만, 성진은 그가 하고 싶은 말을 바로 알아들었다.
엄밀히 말하면 빙수의 원본은 글래쳐 트롤. 어엿한 마수지. 자칫 정교회의 경계를 살까 걱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성진에게도 생각이 있었다.
이미 그들은 ‘은총의 기사’를 성유물로 받아들였다. 거기에 하나 정도 비슷한 걸 더 가져간들, 두 번째 납득시키는 일이니 쉬울 테지.
“괜찮아. 내가 여기 제대로 문양도 새겨 놨다고.”
성진이 자신만만하게 빙수 3호의 가슴을 가리켰다.
확실히 곰의 가슴팍에는 ‘은총의 기사’와 마찬가지로 작은 주신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신성 제국에서는 이런 문양 하나로, 마수가 하루아침에 주신의 기적으로 탈바꿈되기도 하니까.
“그리고, 정 사람들의 눈이 걱정되면 크기를 줄일 수도 있어.”
성진이 얼음 심장을 조작하자-
뾰오옹.
마치 바람 빠지는 소리 비슷한 것을 내며 곰인형이 작게 줄어들었다.
숙소 바닥을 아장아장 걸어다니는 작은 곰을 말없이 바라보던 로건이, 결국은 헛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뭐, 그래. 이렇게 보니 또 조금 귀여운 것 같기도 하고?”
“이제야 네가 빙수의 진가를 제대로 알아보는구나!”
다들 아닌 척하며 그렇게 곰인형 애호가가 되어가지.
두고 봐. 조만간 황도에도 곰인형 열풍이 불 테니까. 전 세계에서 사랑받은 테디베어의 매력에, 모두들 푹 빠지게 될 거라니까?
성진이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로건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괜찮으면 떠날 준비를 하자. 이미 일정이 조금 늦었어.”
그리고 그는 조금 주저하다 덧붙였다.
“…어서 집으로 가야지.”
* * *
황도에 들어오기 직전.
[은총]의 영향권에 들어선 일행은 잠시 길을 멈추고 깊은 감회에 젖었다.일반인들도 그랬지만, 성기사들의 표정 변화는 가히 드라마틱했다. 감히 인간이 헤아릴 수 없는 거대하고도 거룩한 신성에, 모두들 깊이 경도되었기 때문. 일부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자도 있었다.
특히 샤론 경은 그야말로 압도된 표정이었다. 늘 정신 나간 얼굴로 희죽거리던 그녀는 드물게도 차분한 얼굴로 성호를 그었다.
심지어는 그 날라리 발레리 경까지도 감격한 표정으로 조용히 기도문을 읊조리고 있을 정도였으니까.
신성력이 아예 없는 브루노 단장도 확실하게 그 차이를 느낀 모양이었다.
“황도에 가까워지니 정말로 뭔가가 다르군요. 칼멘 놈의 기척이 대단히 차분해졌습니다.”
분노조절장애인 제자 놈이 언제 사고를 칠까 늘 노심초사하던 그의 얼굴에 안도감이 어렸다.
물론 안타깝게도 이 변화가 기껍지 않은 놈이 하나 있었지만.
[으엑. 답답해서 죽을 것 같아!]마왕 놈은 염상 결정 속에 틀어박히며 신음 소리를 냈다.
은총을 벗어나 홀가분하게 돌아다니던 놈이, 또다시 성진의 머릿속에 갇혀 있는 신세가 된 것이다.
[와, 예전에는 내가 이 압박감을 어떻게 견뎠는지 몰라.]놈이 제법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연어를 들여오는 김에, 북부에서 곰고기도 좀 구해볼까.
그리고 연이은 화려한 개선식이 있었다.
활짝 피어난 꽃들과 색색의 리본으로 장식된 대로변의 건물들을, 성진은 조금 묘한 감흥에 젖어 내다보았다.
‘전에는 황궁에서 로건이 이렇게 들어오는 광경을 보고 있었는데…….’
하지만 이번에는 전과는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로건 황자님 만세! 모레스 황자님 만세!”
“마수로부터 언제나 신민들을 지키는 성황가에 주신의 축복을!”
“신민을 위해 은총의 기사를 내려주신 주신의 자비에 영광을!”
황도의 신민들은, 이전에는 불러본 적 없는 모레스 황자까지 거듭 연호하며 손수건을 흔들고 있었다.
“…….”
로건을 선두로 한 릴리움 별동대는 언제나처럼 위풍당당한 모습이었다.
특히 로건의 바로 뒤에서 나란히 말을 모는 오토, 엘리, 뒤상 삼총사는, 평소 그들의 행태를 아는 사람이라면 상상조차 못할 만큼 엄숙한 위엄이 넘쳤다.
“뭐니 뭐니 해도 이번 마수 공습의 가장 큰 영웅은 모레스 황자님이세요. 릴리움 별동대처럼 말을 몰고 선두에 계셨으면 좋았을 텐데. 모두가 저하의 멋진 모습을 볼 수 있게요.”
클로디아 경이 아쉬워하며 말하자, 옆에 있던 마리아 경이 고개를 저었다.
“저하께서는 남들 앞에 공치사받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으시지. 게다가 저 늑대개가 있지 않나?”
“아, 하긴…….”
클로디아 경은 조금 떨떠름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황궁 마차 옆에서 열심히 꼬리를 흔드는 거대한 늑대개를.
처음에는 모레스 황자도 로건 황자와 함께 말을 몰고 입성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곧 예상 못한 난관에 부딛혔는데.
-웡웡웡! 워우우우우우!
말에 오른 모레스 황자를 본 늑대개가 서글프게 울부짖기 시작했던 것이다.
-우어어어어어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나를 놔두고 지금?
권속의 각인이 아니라도, 보는 사람 모두가 저 울음소리의 의미를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구슬펐다.
-그래, 그래. 알았어. 이 귀여운 녀석.
‘전혀 귀엽지 않습니다!’
모두가 속으로 외치는 가운데.
모레스 황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늑대개에게 간식을 준 후, 홀가분하게 마차 안으로 틀어박힌 것이다.
그렇게 환호 속을 지나쳐 황궁에 이르자, 앞으로 나와 직접 그들을 맞이한 것은 아멜리아 누님이었다.
차분하게 서 있는 그녀에게서는, 평소에 보던 모습과 달리 조금 낯선 분위기가 흘렀다.
하늘하늘하고 가벼운 드레스 차람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정돈된 기도에는 대군을 이끄는 장수와 같은 일종의 당당함까지 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멜리아는 아멜리아였다. 점잖은 척 서 있는 황녀의 밝은 회색 눈이, 숨길 수 없는 기쁨을 띠며 반짝이는 것을 성진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으니까.
황녀가 사뿐사뿐 걸어서 성진과 로건의 앞에 서고.
곧 사르륵, 장미가 만개하듯 화사한 웃음이 번져나갔다.
“어서 오렴, 모레스.”
“어…….”
성진은 갑자기 얼어붙었다.
처음에는 적당한 인사말이나 던지려 했지. 지그스문트령에서 얻어 온 것들을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그녀를 위한 멋진 선물도 준비했다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아멜리아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 어째서인지 성진은 말문이 꽉 막히는 것을 느꼈다.
다정한 빛으로 그를 마주보는 눈동자.
생각해보면 아멜리아는 처음부터 그에게 한결같이 상냥하게 굴었지.
-너는 이미 나에게 사과를 했어.
모레스의 오랜 악행을, 마치 천사인 것처럼 용서해줬다.
-모레스는 앞으로도 내가 지켜줄 거야.
그가 무엇을 하든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여주지 않았던가.
그런 아멜리아가, 평소와 다름없는 지극한 사랑을 담아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정말 오래 널 기다렸단다.”
“…….”
하지만 성진은 이전과는 달랐다.
지금은 안다. 저 다정한 목소리로 그녀가 부르는 이름이,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온전한 자신을 일컫는 것임을.
“시슬레와 둘이서 매일 꼬마 성 아우렐리온을 보며 기도했어. 네가 무사히 돌아오도록 해 달라고.”
그녀가 손꼽아 기다린 것이 또 다른 모레스가 아닌 바로 자신임을.
“…….”
말없이 굳어있는 성진의 얼굴을 바라보던 아멜리아가, 일순 뭔가를 발견하고는 잠시 당황했다. 그러다가 곧 살포시 웃으며 그의 손을 잡아왔다. 가냘픈 손에서 전해지는 작은 온기가 그렇게 가슴에 사무칠 수가 없었다.
“황궁에 잘 돌아왔어.”
툭.
그리고 곧이어 로건의 하얀 기사단 정복이 성진의 머리 위로 덮인다.
“어서 안으로 들어가자, 모레스.”
툭툭.
위로하듯 어깨를 두드리는 사려 깊은 손길이 전해진다.
아마도 로건만이, 지금 이곳에서 성진이 느끼고 있을 복잡한 감정을 유일하게 제대로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여기서 이러고 있지 말고. 어서 시슬레와, 쌍둥이들, 그리고 아바마마도 뵈어야지.”
목이 잠긴 성진은 대답 없이 천천히 고개만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어, 그래.
그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