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283)
성황의 아이들-283화(283/469)
283. 임펄스 소프트 (3)
손 대신 예의 작은 발굽이 붙어있는 것을 확인한 성진은 조금 착잡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오웬은 그저 쾌활하기만 했다.
“너 제법 일찍 자는구나! 어제는 꽤 느지막하게 접속했길래, 오늘은 아무래도 만나기 힘들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우리는 오늘 일찌감치 던전에 들어갈 생각이었거든.”
그는 그렇게 주억거리며, 경쾌한 발걸음으로 성진을 자리로 안내했다.
마침 그곳에는 처음 보는 두 사람, 아니 동물들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바로 통통한 문어 한 마리와 목이 과하게 긴 사슴이다.
“…….”
정황을 봐서는 어제 오웬과 함께 있던 그림자 친구들이겠지. 오라클의 단말을 가지고 있는 게스트 ID 유저들.
단지 이번에는 ‘모여라, 친구들’ 스킨에 힘입어 제대로 된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오웬. 괜찮을지? 초보와 함께 던전은 위험한. 우리는 아직 준비가 필요합니다.]빵빵한 문어가 찐빵 같은 주둥이를 움찔거리며 다섯 개의 다리를 꿈틀거렸다.
그 움직임이 어쩐지 대단히 기괴해서, 이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는 건지, 아니면 손사래를 치는 건지 당최 구별되지 않았다.
[나는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게임에 익숙한 우리가 그를 보호할 수 있으니까요. 환영합니다, 뉴비.]점잖게 대답하는 또 다른 친구는, 사슴인 것을 감안하고서도 몸이 과하게 길쭉해 보였다.
이들의 정체가 정말 인간이 맞기는 할까? 다시금 고개를 드는 강한 의구심에 성진이 그들을 빤히 바라보는데-
[그런데 그는 무척 귀여워졌다.] [꽤 깜찍한 아바타를 착용하셨군요, 뉴비.]성진을 마주 바라보던 둘이 동시에 사념을 보내왔다.
…내가 이놈의 스킨을.
* * *
“저것 봐. 침묵 빌런들이 또 모였어!”
“이번엔 어쩐 일로 테마 던전으로 가고 있는데?”
“아기양은 왜 데려가는 거지? 저놈들 뭔가 공양 의식 같은 걸 하나?”
“설마? 그냥 스킨 쓴 유저 아니야?”
성진은 사람들의 수군거림과 뒤통수에 내리꽂히는 시선을 무시하기 위해 무진장 애를 썼다.
대체 이놈들은 얼마나 유명한 거야?
[주위는 크게 신경 쓸 것 없습니다, 이성진. 일단 던전에 들어가고 나면, 저런 잡음도 완전히 사라지겠죠.]뾱뾱뾱.
성큼성큼 앞서 걷던 사슴이 성진을 안심시키듯 말했다.
자신을 ‘하타수 티티’라고 소개한 친구였다. 물론 성진에게 등록된 친구명은 ‘#A&**d#!#’라는 깨어진 텍스트다.
[역시 티티는 믿음직스럽지? 이래 봬도 우리 파티의 리더니까. 처음 이곳에 떨어져서 아무것도 모를 때, 나도 티티의 도움을 많이 받았지.] [하타수 티티라고 제대로 불러주십시오, 오웬.] [어, 왜? 친근감 있고 귀여운데?]현재 고정적으로 이곳에 접속하는 게스트 ID 유저 중에서는, 하타수 티티가 가장 오래된 유저라고 했다.
[하타수 티티. 왜 불만을 제기하나? 당신 역시 내 이름을 정확히 부르지 않는다. 그렇지 않습니까?]빵빵한 문어가 조금 퉁명스럽게 말하며 다리를 꿈틀거렸다.
[미안합니다, 구릅. 하지만 당신의 본명은 사념으로도 정말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그래, 구릅. 난 아직도 댁의 풀 네임을 제대로 외우지 못했어.] [오웬! 그걸 그대로 말하는 것은 예의의 문제입니다. 게다가 줄임말도 발음이 다른!]대충 ‘구릅뺘랍구르릅 비뺘릅릅’이라고 발음하는 이름을 가진 문어가 투덜거렸다. 역시 친구 추가된 ID는 ‘!N;3$$ti0m@’라는 알 수 없는 글자.
물론 텍스트가 깨지지 않았더라도, 저 친구의 본명이 제대로 표기되었을지는 의문이지만.
[그래서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건데?]성진이 사념으로 묻자, 오웬이 뒤를 돌아보며 친절하게 대답했다.
[테마 던전으로 갈 거야. 지금까지는 인원수 제한으로 들어가지 못했지만, 이제 우리에게는 뉴비가 있으니까. 새로운 곳으로 지평을 넓힐 때가 온 거지.]그들의 설명에 따르면, 이곳에는 일반 던전과 달리 ‘테마 던전’이라 불리는 상급 던전이 있다고 한다.
특별히 난이도가 높은 것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 테마와 다양한 클리어 조건들을 가진 이색 던전이라고. 그리고 보상도 일반 던전에 비해 좋다는 평이었다.
문제는 참가 인원이 4인 이상이어야 한다는 것.
[아직까지 게스트 ID 유저가 동시에 4인까지 접속한 적은 없었거든. 우리도 뉴비 덕분에 처음으로 시도해보는 거지.]오웬의 설명에 성진이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이거 괜찮은 건가?’
그들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지만, 성진은 사실 제대로 된 게스트 ID 유저가 아닐지도 모른다.
게다가 4인이 동시에 모인 것이 처음이라니? 그건 아마도 이들의 접속을 제어하는 단말이 모종의 영향을 미치는 결과일 텐데, 혹시 거기에는 뭔가 중대한 이유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성진. 당신이 처음인 것을 감안해서 난이도 F로 시작할 테니까요.] [그래그래. 우리는 A급 일반 던전도 안정적으로 클리어하는 전력이야. 혹시나 하고 몸을 사려서 그렇지, 조금 위험을 감수하면 S급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처음은 우리가 합니다. 과도한 긴장은 오히려 해로운. 긴장을 풀다.]성진의 탐탁잖은 기색을 눈치챘는지, 빌런 녀석들이 뒤를 돌아보며 한마디씩 거들었다.
[어, 그래.]성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이곳에서 오래 부대낀 놈들이니 알아서 잘들 하겠지.
‘그런데 말이지…….’
역시나 한 가지 걱정거리가 남아있었다.
뾱뾱. 뾱뾱.
성진은 걸음을 옮기며 뒤를 돌아보았다.
작은 꽃잎 모양으로 점점이 찍히는 발자국들이, 그의 행로를 따라 일렬로 길게 이어지는 광경.
‘이거, 유아용 스킨이라며?’
근데 전투가 가능해? 대체 몹이 어떤 식으로 구현되는 거지?
설마 놈들 역시 귀여운 동물들로 변하거나 하는 건 아니겠지?
* * *
그리고 성진의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다.
오웬과 빌런 친구들을 따라 요상한 게이트 같은 곳으로 발을 들이자, 어디선가 작은 창이 계속해서 솟아오르며 성진의 시야를 집요하게 가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우리 어린이 친구들! 접속하기 전에, 먼저 이 게임의 폭력성과 사행성 등급을 제대로 확인했나요? 부모님을 불러 한 번 더 여쭤보아요. 혹시 이 게임은 친구가 즐기기에 폭력성이 많이 높은 것은 아닐까요?〛
쿠륵쿠륵!
쿠에에에!
뭔가가 울부짖으며 다가오는 기척이 여럿 느껴졌지만, 텍스트 창 너머로 얼핏 보이는 던전의 광경은 아예 큼직한 모자이크 그 자체.
다행히 깜찍한 동물을 잔인하게 때려잡는 사태가 벌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저래서는 도무지 배경과 몹을 구별할 수가 없잖아.
몹이 공격을 해온들, 그 움직임을 알아볼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이다.
[테마 던전이라더니, 굉장히 신기하네? 처음에는 그냥 고블린 동굴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요란한 동굴은 정말 처음 봐! 못 보던 벽화가 잔뜩 있는데?]안 보여.
너는 뭐가 그리 신난 거야, 오웬.
[몹 역시 고블린을 상대할 때와 비슷한 느낌입니다. 단지 이 친구들은 노란색이고, 방어구 대신 화려한 깃털 옷을 입고 있군요.]응, 안 보여.
하지만 깃털 옷을 입은 노란 고블린이라니, 안 보이는 쪽이 나을지도.
[화려하다. 보상이 무척 기대되는!]안 보인다.
이거 설마, 클리어 보상도 안 보여서 못 받는 거 아냐?
성진이 암담한 예상으로 인상을 구기고 있는데, 의기양양하게 앞으로 나선 빌런 삼총사가 사냥을 시작했다.
퍼억! 퍼억!
번쩍! 번쩍!
뭔가를 찰지게 타격하는 소리와 함께 여기저기서 오색의 별무리가 튀어 오른다.
[테마 던전이라고 해도 별것 없는데? F급이라서 그런가?]경쾌하게 한손도끼를 휘두르던 붉은 여우, 오웬이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평소에도 파티에서 근접 딜러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 같았다.
큰 키에 비해 가벼운 움직임을 보이는 오웬과 제법 어울리나 싶기도 하고.
[확실히 그렇습니다. 게다가 기분 탓인지, 일반 던전보다 오히려 공격이 잘 먹히는 느낌이 드는군요.]사슴, 하타수 티티의 목소리에도 역시나 옅은 안도감이 어려있다. 진중한 성격으로 보이더라니, F급 운운해도 내심 불안감이 남아있었나 보다.
그런데 그는 얄팍해 보이는 몸체와 어울리지 않게, 거대한 방패와 묵직한 메이스를 들고 있었다. 바람 불면 하늘하늘 날아갈 것처럼 보여서는, 이 파티에서 탱커를 맡은 모양.
[뒤로 물러나, 이성진. 이번 차례는 보는 차례입니다.]그중에서도 의외인 것은 문어, 구릅이었다.
굴러다닐 것 같은 빵빵한 연체동물처럼 생겨서는, 전장의 외곽을 빠르게 오가며 쉴 새 없이 화살을 날리는 것이다.
심지어는 다리의 빨판을 이용해 천장이 붙어, 남은 다리로 요령 있게 화살을 쏘기도 했다.
문어는 그저 스킨이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본모습도 정말 빨판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겠지?
[대단한 움직임인데? 구릅뺘랍구르릅 비뺘릅릅.]성진이 솔직한 감상을 담아 사념을 전하자, 문어가 대단히 감동한 표정으로 돌아보며 볼을 씰룩거렸다.
[이름, 전부 외웁니다! 이성진은 친절한!] [어, 알았으니까 앞을 봐.] [알겠습니다!]번쩍! 번쩍!
A급 던전도 쉽게 클리어하는 파티라더니, 과연 그 말은 허풍이 아닌 모양이었다. 여우와 사슴, 그리고 문어가 날뛸 때마다 화려한 오색 별무리의 향연이 이어진다.
그와 동시에-
띠링.
띠링.
성진의 뇌리에 계속해서 레벨이 오르고 있다는 알림음이 울려 퍼졌다.
‘아바타의 신체 능력이 조금은 오르려나…….’
덕분에 할 일이 없어진 성진은 뒤로 물러나, 눈앞에 떠 있는 상태창을 훑어보았다.
〚Lv. 3〛
〚직업 : 무직 (전직 Lv.10)〛
〚체력 : ??? 근력 : ??? 지력 : ??? 마력 : ??? 행운 : ???〛
레벨은 순식간에 올라 3.
하지만 정확한 스탯 수치는 불명. 이것 역시 게스트 ID 유저의 특징이라고 오웬이 설명해 줬었다.
나중에 고레벨이 되면 확실한 신체 능력의 차이가 느껴지기는 한단다. 단지 그 격차가 다른 게임처럼 드라마틱하게 뛰어오르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처음에 다른 플레이어를 죽일 수 있었던 거겠지.’
방심하면 고레벨도 초보에게 죽을 수 있는 거다. 이 정도면 제법 현실을 충실하게 반영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덕분에 이곳이 게임이라기보다 현실감 있는 하나의 세계라는 느낌이 들기는 했다.
[클리어!]F급 던전은 순식간에 끝났다.
다행히도 마지막에 성진에게 제대로 보상이 떨어지긴 했다. 초보자용 방어구와 놀의 가죽, 그리고 소량의 캐시였다.
‘500P캐시라…. 이걸 언제 모아 스킨을 사지?’
적어도 만 단위에 육박하는 스킨의 가격들을 떠올리며 한숨을 쉬는데, 빌런 친구들이 기뻐 날뛰었다.
[해냈습니다. 일부러 온 보람이 있군요!] [역시 보상이 좋다!]‘……?’
엄청 짜다고 생각했는데, 기뻐하는 녀석들을 보니 그게 아닐지도.
그런데 이런 식으로 모아서 그 선물을 보내다니, 대체 오웬은 어디까지 삽질을 한 걸까.
[왜? 왜 그렇게 보는데?]붉은 여우가 의아한 듯 묻자 성진은 잠자코 고개를 저었다.
차마 면전에서 호구라고 면박을 줄 수는 없지.
그다음은 E급 던전이었다.
역시나 오색의 별무리를 휘날리며 날뛰는 세 친구들을 바라보던 성진이 문득 궁금해져 물었다.
[그런데 이 중에서 마법을 쓰는 사람은 없네?] [아아, 그것 역시 게스트 ID 유저의 한계지.]오웬이 고개를 돌리며 쾌활하게 대답했다.
[전에 말했잖아? 우리는 고급 시설을 이용할 수가 없어. 하지만 마법을 배우려면 도시에 있는 마탑으로 가야 하니까.] [어, 그래? 그래도 괜찮아?] [뭐, 파티에 마법사가 있으면 좋았겠지만, 우리는 일반 플레이어들과는 어울릴 수 없으니까. 지금까지도 우리끼리 충분했어. 속성에 따라 약간의 손해는 있지만, 결국 많이 때리면 다들 죽게 마련이거든.] […….]그래. 그렇기는 한데…….
…왜 이렇게 불길한 예감이 들지?
성진이 인상을 쓰고 있는데, 바람처럼 던전을 클리어한 빌런들이 신이 나서 외쳤다.
[오히려 일반 던전보다 공격이 잘 먹히는데?] [상급 던전이라고 해서 긴장했지만 그저 기우였나 봅니다. 이건 단지 유저를 위한 서비스 같은 것인 모양이군요.] [화려하다! 보상도 좋다!]이번에도 어묵과 진주, 그리고 소량의 캐시를 받아 챙긴 성진이 인상을 썼다.
어이, 잠깐만.
‘그거 이상하잖아? 상급 던전인데 왜 공격이 더 잘 먹혀?’
하지만 이상함을 채 토로하기도 전에, 기세를 올린 빌런 친구들은 기어이 D급 던전의 문을 열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다음은 지옥이었다.
[뭐지? 왜 공격이 안 먹히지?] [이건 이상합니다! 근거리 공격이 전혀 통하지 않는 느낌입니다!] [원거리도 무효다! 화려한데 무섭다!]신나게 달려 나갔다가 허둥거리며 되돌아오는 빌런들을 바라보던 성진은 이마에 빠직, 핏줄이 솟는 것을 느꼈다.
야, 이 대책 없는 것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