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292)
성황의 아이들-292화(292/469)
292. 유스티티아 (4)
“오러를 더 능숙하게 다루고 싶습니다.”
한동안 루이스의 완벽한 멜보른을 음미하던 성진은, 달칵 찻잔을 내려놓으며 첫 운을 뗐다.
“지금도 충분히 마음껏 다루고 있지 않더냐? 네 또래의 수준을 크게 웃도는 것으로 아는데.”
“그것만으로는 많이 부족합니다.”
오러 고갈을 딛고 겨우 쌓아 놓은 오러 층이 아닌가. 이왕 힘들게 배웠으니, 다른 오러 유저가 보는 혜택을 공유하며 삶을 좀 날로 먹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예를 들자면, 며칠 밤을 새워도 끄떡없는 체력 같은 거 말이지.
“…….”
그러자 성황은 입을 다물고, 조금 깊어진 눈으로 성진을 응시했다. 도통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냉막한 눈빛.
하지만 지금의 성진은, 그의 침묵이 단지 적절한 설명을 위해 말을 고르는 과정일 뿐임을 알고 있다.
“…뭍에서 공기를 마시며 자유롭게 날던 새 하나가 있었다.”
호록.
성진은 아직도 따뜻한 차를 들이켜며, 가만히 성황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까마득한 절벽에서도 겁 없이 활강하고, 거센 폭풍 속에서도 몸을 밀어내는 난류를 오히려 추진력 삼아 하늘로 솟구칠 줄 아는 비범한 새였지.”
“…….”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알 수 없는 연유로 하늘이 무너지고, 세상의 모든 것들이 삽시간에 바닷속으로 잠기고 말았다. 많은 이들이 물속에 내던져져 그대로 목숨을 잃었지만, 다행히 이 새는 곧 자신이 물고기처럼 아가미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
거기까지 말한 성황은, 찻잔 속을 들여다보며 잠시 뜸을 들였다.
“모레스. 만일 네가 그 새였다면 어찌했을 것 같더냐. 그대로 안심하고 마음 편히 바닷물을 들이켜겠느냐? 아니면 부리를 닫고, 익숙해질 때까지 최대한 호흡을 아끼려 하겠느냐?”
“……!”
새의 입장을 일부러 상상할 것도 없었다. 이 적나라한 비유를 알아듣지 못할 리가.
성황은 성진이 델크로스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지내왔음을, 그래서 아직은 델크로스의 대기에 익숙하지 못하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졸지에 물속에 빠진 새처럼.
‘그래. 나는 오랜 시간 지구에서 살던 이성진이고, 이 세계에 온 지는 얼마 되지 않은 영혼이다. 그것만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고, 아버지도 이것을 잘 알고 있어. 그런데 어떻게 내가 그의…….’
그러자 성진을 응시하는 성황의 눈에서, 얼핏 예의 신비한 은회색 광채가 어린다.
“아들아. 단지 예시일 뿐이니라. 그러니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고.”
“아, 예.”
전에 없이 단호한 어조.
덕분에 팽팽 머리 굴릴 준비를 마쳤던 성진은, 순순히 하던 생각을 싹 비우고 멋쩍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여튼 귀신이라니까.
“다행히 새의 비범함은 물속에서도 발휘되었다. 날개를 지느러미처럼 움직이는 법을 흉내 내기 시작한 새는, 곧 어느 물고기보다도 바닷속을 빠르게 유영할 수 있게 되었지.”
성황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똘똘한 새는 바닷속 생활에 금방 적응해 나갔다. 물고기처럼 날쌔게 움직이는 데다 뾰족한 부리를 무기로 삼을 줄 알았던 녀석은, 다른 상위 포식자들을 제치고 금세 바다의 무법자가 되었다고.
하지만 모든 것이 순탄치만은 않았는데, 아가미를 제외한 다른 기관만은 영 새의 뜻대로 기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고막은 여전히 물속에서 먹통이었으며, 보송한 깃털의 촉감은 물고기의 비늘처럼 수압이나 수온을 느끼기에 지나치게 무뎠다.
“그럼 그것은 태생적인 문제로, 새는 절대 극복할 수 없다는 뜻입니까?”
성진이 심각한 표정으로 묻자, 성황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가 되겠구나. 필요에 의해 급히 아가미를 만든 것처럼, 새에겐 다른 기관들 역시 원하는 대로 적응시킬 능력이 있었단다. 단지 그에게 있어 바닷속 물은 여전히 극복해야 할 외부의 힘이었고, 자연스럽게 호흡할 무언가로 인식되지는 못했던 게지.”
평생 물속 세상을 깊이 알지 못했던 새였다. 그러니 당장 자신의 호흡을 위협하는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공기와 마찬가지로 편하고 자연스러운 세상의 흐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또한 바닷속에도 그가 느낄 수 있는 소리가 있음을, 맡을 수 있는 냄새와 느낄 수 있는 온도가 있음을 짐작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물론 비범한 아이니 언젠가는 성공적으로 적응할 게다. 하지만 그리 생소한 것을 서서히 체득해 나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느냐.”
성황이 그렇게 덧붙였다.
“제가 오러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는 말씀이군요. 하면, 역시 시간의 문제입니까? 새가 물을 공기처럼 자연스레 받아들일 정도로, 저에게도 오랜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는 말씀인가요?”
“왜. 시간을 두고 기다리는 것이 그리 내키지 않으냐?”
그러자 성진은 열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저는 최대한 빠르게 이 세상에 적응하고 싶다고요!
판게아 클로니클에 줄기차게 간섭할 거고, 그러면서도 건강을 지키며 델크로스의 일상까지 제대로 영위해낼 겁니다.
그러니 물속의 소리든 냄새든 뭐든, 어서 제가 이해하고 적응할 수 있게 설명을 해달라고요!
“…….”
성진의 강하게 이글거리는 눈빛을 마주한 성황은, 조금 난감한 듯 턱을 쓸어내렸다.
“그래. 하면 네게 재미있는 걸 보여주마, 아들아.”
그렇게 말한 성황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러자 그를 휘감고 있던 오러 또한, 주변의 공기를 내리누르며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이 양반이 또 무슨 일을 하려는 거지?’
성진이 영문을 몰라 눈을 깜박이던 그때.
“…어?”
기분 탓인가, 어디선가 음악 소리 같은 것이 들려왔다. 어찌나 작은지, 성진의 예민한 기감에도 겨우 들릴 듯 말 듯 희미한 소리가.
‘…오르골?’
마치 유리잔을 두드리듯 청명한 타악기의 공명음. 그러면서도 현악기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는 묘한 소리였다.
띠링, 띵.
통. 통.
그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화음이 집무실을 감싸며, 주위의 모든 공기들을 여리게 진동시키고 있었다!
“어디선가 음악 소리가 들립니다, 아버지.”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성진이 그렇게 말하자, 성황이 천천히 눈을 뜨며 대답했다.
“그래. 이것은 아멜리아가 자주 연주하는 곡이다. 그 아이는 악기에도 제법 출중한 재능을 가진 듯하더구나.”
그랬다. 분명 성진의 기억 속에도 남아있는 곡이었다. 언젠가 아멜리아가 진주궁에서 연주를 들려주며, 자신이 좋아하는 곡 중 하나라고 했었지.
“하지만…….”
출처를 알 수 없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근처에서 연주를 하는 자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을뿐더러, 이건 황궁에 존재하는 그 어떠한 악기의 소리도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한 방향이 아닌, 모든 방향에서 들려오고 있다는 것은-
“…오러 실체화!”
성진은 금세 그 소리의 정체를 파악해냈다.
분명했다. 성황의 주위를 휘감은 정제된 오러들이, 섬세하게 움직이며 공기를 진동시키는 것이다!
오러를 이런 식으로 활용하는 게 가능하다고?
“으음…….”
일단 알게 되면 한번 해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성진이 눈썹을 찌푸리며 그처럼 공기를 진동시키려 안간힘을 쓰는데, 옆에서 나직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리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모레스. 나는 아멜리아가 연주했던 복잡한 화음들을 한 음 한 음 분리하여 오러를 움직이지는 않는단다.”
“네? 그럼…….”
“그저 기억을 토대로 강한 의념을 일으켜 완전한 염상을 만드는 것이다. 그곳에 실린 오러가 염상을 따라 자연히 흘러갈 수 있도록.”
의념을 일으키는 방법.
그것이라면 탄신연의 밤, 틈새에 빠졌을 때 성황에게 딱 한 번 배운 적이 있기는 했다.
당시 성진이 만든 마왕 2호가 제법 화려한 불꽃을 일으켰더랬지.
물론 그것은 틈새가 대단히 특수한 공간이기 때문이고, 나중에도 몇 번 시도해봤지만 또다시 마왕 2호가 나타나는 일은 없었는데.
“의념을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느니라. 네게는 특수한 하나의 힘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실은 이 세상의 모두가 알게 모르게 자연스럽게 의념을 사용하고 있단다.”
공기의 연주를 클라이막스로 이끌며, 성황이 나직하게 말을 이었다.
“오러 유저가 몸을 보호하는 것 역시 이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자들이 처음부터 오러에 감싸여 있고, 그와 더불어 호흡하고 자라난단다.”
아이들은 본능처럼 자연스럽게 자신의 몸을 지키려 하고, 그러한 성향은 자연스러운 의념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 모든 약한 의념들이 매일 쌓이고 쌓여 견고한 염상을 만드는 것이다. 오러 유저가 오러를 감지하고 층으로 쌓기 이전에, 이미 몸을 보호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관성처럼 여겨지도록.
거기까지 말한 성황은 똑바로 성진을 바라보며 물었다.
“하지만 너는 오러를 지금까지 무엇으로 생각하고 있었느냐? 그저 손아귀에 쥔 날카로운 무기처럼 생각지는 않았더냐?”
“……!”
“그것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대신, 자유롭게 흘러가게 놓아준 적이 있었느냐? 그것으로 너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고 강하게 열망한 적은 있더냐?”
“저는…….”
당황한 성진은 잠시 입술을 달싹거리다 말을 이었다.
“오러를 더욱 제대로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수련을 통해 오러를 강하게 이끌다 보면, 결국은 오러가 몸을 해치지 않도록 완벽하게 조종하는 게 가능하리라고요.”
자신의 오러가 거칠게 움직이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오러 통제에 미숙해서라 여겼다.
그래서 남들보다 시작이 늦은 만큼, 더 정신 차리고 제대로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조금 결은 다르지만, 로건 역시 그리 충고하지 않았나.
성진의 오러는 몸을 지키는 자연스러운 현상을 거스르면서까지 성진의 의지에 복종한다고. 그러니 이런 무의식적인 움직임까지도 통제하려면, 더욱 수련에 박차를 가하는 수밖에 없다고.
“그것 역시 틀린 말은 아니다. 완전한 통제 역시 하나의 해결 방법이며, 로건 같은 재능을 가진 아이는 능히 그것을 해낼 수도 있을 테지.”
하지만 그것은 마치 하나의 연주를 위해 모든 음들을 하나하나 분해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성황이 덧붙였다.
그것을 몸의 움직임에 비교하면 어떨까.
숨 쉬는 것 하나를 위해 호흡근을 움직이고, 소화를 위해 불수의근을 일일이 움직이는 것. 심지어는 사람이 인식하지 못하는 내분비 기능까지 일일이 의식해서 조절하는 것과 마찬가지.
“하지만 네게는 그 누구보다도 강한 의념을 일으키는 힘이 있다, 모레스. 네가 할 것은 이 음들을 하나하나 분해하는 것이 아닌, 그저 음악을 들었을 때의 기억을 강하게 떠올려 네가 느낀 감상을 구체화하는 것이란다.”
그리고 그에 맞춰 오러를 풀어주라. 더없이 자연스럽게.
‘뭔가 감이 오는 것도 같고…….’
성진은 당장 시험해보기로 했다.
‘아직 의념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힘을 빼는 데 집중하면 되는 거겠지?’
그래서 최대한 온몸에 힘을 빼고 의자에 축 늘어져 보았다. 체내에 흐르는 오러가 어떠한 간섭도 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돌도록 내버려 두려 애쓰면서.
그렇게 모든 힘을 빼는 데 열중한 나머지, 종래에는 얼굴 근육마저 흐물흐물 풀어진 모양이었다.
“저하, 차 맛에 그리도 감동하신 겝니까? 이 루이스, 참으로 저하의 시중을 드는 보람을 느낍니다.”
마침 새 차를 따라주러 집무실에 들어온 루이스가, 성진의 얼굴을 보고 움찔 놀라더니 고개를 돌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어, 그래. 언제나 훌륭한 차를 준비해줘서 고맙네.”
이게 아닌가 보다.
결국 성진은 포기하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거, 힘 빼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네. 어쨌든 시간이 조금은 필요하다는 거겠지?
“어쩔 수가 없네요. 그럼 의념 만들기에 좀 익숙해질 때까지, 한동안은 종종 집무실 신세를 지겠습니다.”
“…….”
역시 내가 버릇을 잘못 들였어.
나직하게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성진이 씨익 웃음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