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30)
성황의 아이들-30화(30/469)
030. 검은 선지자들 (5)
‘X됐다…….’
조나단 맥캘핀이 [그것]을 보자마자 머릿속에 떠올린 말이다.
사흘 전 마지막으로 봤을 때만 해도 저것은 그저 사람의 크기만 한 검은 덩어리였을 뿐이었다. 건드리면 꿈틀거리며 이따금 ‘꾸에엑’ 하고 괴상한 신음을 토해내는.
한데 지금은 어떤가. 거의 방의 삼분지 일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부피가 커져 있었다. 며칠 사이에 6배 이상 부풀어 오른 것이다. [그것]의 표면은 이제 풍랑이 이는 호수의 표면이라도 된 듯이 계속해서 검게 물결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것]에서 뻗어 나간 촉수인지 뿌리인지 모를 것들이 거미줄처럼 빽빽하게 방 안에 얽혀 있었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괴상하게 빛나는 이끼들이 그 주위를 뒤덮듯이 새파랗게 번져 있다.
무언가 잘못됐다. 무언가 대단히 잘못되고 있다. 대체 지난 사흘간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놀란 것은 비단 조나단만이 아니었다. 다른 선지자들도 처음 보는 광경인 것은 마찬가지인 듯, 당황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다.
오직 케네스 디고리, 이 비현실적인 풍경을 만든 장본인만이 잔잔한 미소를 띠며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부터 이런 곳에 발을 들여서는 안 되는 거였어…….’
조나단이 식은땀을 흘리며 뒷걸음질 치는데, 모레스 황자가 그를 지나쳐 케네스의 앞으로 다가섰다.
“반트라 모스의 애벌레. 다행히 아직 채널을 열기 전이군.”
그는 생각보다 침착한 모습이었다. 얼굴이 살짝 굳어 있기는 했지만, 긴장했다기보다는 조금 화가 난 듯 보인다고 조나단은 생각했다. 어쩌면 살이 빠진 후 더 사나워진 눈매 때문일지도 몰랐다.
모레스 황자.
성황가의 수치, 델크로스 최고의 개망나니.
두 달 전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와 비교하면, 지금 황자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변한 모습이었다. 처음에는 조나단도 본인이 맞는지 긴가민가했더랬지.
변한 것은 겉모습만은 아닌 듯, 이전이라면 호들갑을 떨며 조나단을 찾아댔을 그가 지금은 그저 조용히 시선만을 움직여 방 안 전체를 훑어보고 있다.
이윽고 다시 케네스를 마주친 회색 눈에 어린 것은, 공포도 경악도 아닌 순수한 의문이었다.
“어째서 게헤나의 마물이 이곳에 있지?”
아하하하. 케네스는 기쁜 듯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것을 아십니까? 현자님의 말씀 대로군요! 아마도 황자님이라면 우리의 신비를 함께 나눌 수 있을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과연 당신을 이곳으로 모신 것은 틀린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현자?”
“예, 곧 저하께서도 그분을 뵐 수 있을 겁니다.”
케네스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천천히 [그것]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바닥에 뒤엉켜있는 뿌리 같은 것들이, 그의 발에 밟히는 순간 마치 지렁이라도 된 것처럼 거세게 꿈틀거렸다.
“형제들이여, 선택받은 선지자들이여.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 없네! 우리의 신비가 조금 더 진리의 순간에 다가가고 있다는 증거가 이제야 모습을 드러냈을 뿐이야.”
[그것]의 지근거리까지 다가선 케네스가 선지자들을 향해 돌아서며 말했다.“모든 것은 현자님의 예언대로일세.”
그의 단단한 얼굴은 전에 없는 확신으로 가득 차 있어, 순간 조나단은 자신이 지나치게 겁을 먹고 있는 건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어찌할 바를 몰라 눈치만 살피던 회원들이 눈에 띄게 안정을 되찾는다.
“모든 것은 현자님의 예언대로.”
“모든 것은 현자님의 예언대로.”
하하하하.
커다란 웃음소리가 넓은 공간 안을 쩌렁쩌렁 울리며 퍼져 나간다.
“황자님은 참으로 운이 좋으십니다! 이 세계의 신비가 문을 여는 바로 이 순간, 저희 선지자들과 함께 하실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케네스의 눈에는 마치 광신도와도 같은 기이한 안광이 서려 있었다.
아아, 모든 것이 미쳐 돌아간다. 조나단은 바닥에 주저앉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조금씩 움직임이 거세어지는 괴생명체의 뿌리들. 내심 불안에 떨면서도 한편으로 무언가가 시작되기를 기대하는 선지자들의 기이한 열기.
오직 하나, 아직은 어린 모레스 황자만이 평정을 유지하며 그 난장판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가 싸늘한 어조로 케네스를 향해 입을 열었다.
“현자라는 자가 말하던가? 사람 셋만 채우면 뭔가가 열릴 거라고.”
멈칫. 케네스가 흠칫 놀라며 황자를 돌아본다. 그의 반듯한 얼굴에 일순 험악한 표정이 어렸지만 모레스 황자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그건 네놈들이 말하는 신비 어쩌고 하는 것이 아니야. 열리는 건 채널이다. 저놈의 의식을 공동체에 연결하기 위한 좌표, 다른 반트라들을 이곳으로 불러들이는 신호.”
“…뭐라고?”
“너희는 델크로스를 개혁하고 싶은 게 아니라 멸망시키고 싶은 건가?”
순간 케네스 디고리의 얼굴이 무시무시하게 일그러졌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그 현자라는 자가 자네를 속였다고 말하는 거다.”
“헛소리! 그런 헛소리를……!”
몸을 부들부들 떨며 케네스는 황자를 향해 막말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아카데미에서 나름 촉망받는 수제였던 그가, 지금은 숫제 이성이라는 것을 완전히 상실한 광인으로 보였다.
“네놈이 이 세계의 신비를 부정할 셈이냐! 저 위선적인 성직자들과 한패인 것이냐! 역시 네놈을 이곳으로 부르는 것이 아니었어! 결국은 너 역시 저 더러운 성황가의 핏줄이구나!”
그러나 자신을 정면으로 겨눠 오는 난폭한 분노를 앞에 두고도, 황자의 시선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럼 대답해 보게. 케네스.”
사람의 눈동자가 검 날의 쇠붙이보다도 시리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조나단은 처음 알았다.
“자네는 정말로 저것에게 사람을 먹이로 던져 주지 않았나?”
뭐?
순간 믿을 수 없는 말을 들은 조나단의 정신이 멍해졌다.
사람을? 뭐?
그러다가 찬물이 스며드는 듯 서서히 이성이 돌아온 그의 머리가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거의 일 년에 걸쳐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던 지하의 검은 덩어리가 며칠 만에 갑자기 저렇게 커지는 데에 정말 아무런 대가가 없었을까?
그러고 보니 이 석실을 방문할 때마다 문을 지키고 서 있던 하인은 어디로 갔나.
매번 선지자들의 회의실을 청소하고 차를 가져다주던 시녀가 왜 오늘은 보이지 않았나.
흉흉하게 일그러져 있던 케네스 디고리의 얼굴에서 썰물처럼 표정이 사라져 나간다. 조나단은 그의 얼굴에서 알고 싶지 않았던 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미친!”
선지자들 중 하나가 후드를 벗어젖히며 케네스를 향해 소리쳤다. 처음 그와 함께 검은 선지자들의 모임을 창설한 후배, 애슬리 베쳐였다.
“저것에게 사람을 먹였다고요? 제정신이에요, 선배?”
“…뭐라고?”
얼굴에서 완전히 표정이 사라진 케네스가 눈동자만 빙글 돌려 애슬리를 응시한다. 조나단은 그것이 뭔가 터지기 직전의 폭약 같아 보여 저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지만, 평소 언제나 격정적으로 의견을 표출하곤 했던 열정 넘치는 후배는 거침이 없었다.
“저런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정말 우리가 찾던 신비라고 어떻게 장담하죠? 그저 현자의 말일 뿐이잖아요! 그런데 거기에다 사람을 던져 줘요? 그게 사실이에요?”
“…….”
“정신 차려요, 케네스 선배! 그 현자라는 자 어딘가 수상하다고 제가 항상 말했잖아요?”
애슬리가 케네스의 바로 앞까지 다가선 것과, 그가 애슬리의 검은 로브를 잡아챈 것은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컥!”
멱살을 잡힌 채로 버둥거리는 후배를 향해 케네스 디고리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평소 그렇게 의문이 많았다면 진작 말하지 그랬어? 애슬리. 어쩔 수 없지, 너에게 가장 먼저 신비를 접할 기회를 주는 수밖에.”
“…뭐!”
애슬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본능적으로 케네스가 무슨 짓을 할 것인지 깨달았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후배를 멱살째 질질 끌며 그 불길한 덩어리를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세 사람. 진리의 문을 여는 데 세 사람의 목숨이 필요하다고 그가 말했지.”
“자, 잠깐……!”
“사양할 것 없어. 자, 자랑스러운 선지자의 일원으로서 이 위대한 순간을 완성하는 마지막 열쇠가 되어 주게.”
허우적거리면서 속절없이 끌려가는 애슬리를 바라보며 조나단은 이를 악물었다.
며칠 만에 엄청나게 몸집을 불린 놈이다. 사람 하나를 더 먹은 저것이 무엇이 될지 도무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저걸 말려야 하는데…. 그런데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모레스 황자가 입을 연 것은 그때였다.
“미안하지만.”
스르릉. 검은 로브 속에서 잘 갈린 검이 뽑혀 나온다.
“자네가 무얼 하든, 저것의 채널이 열리는 일은 없을 거야.”
무심코 그의 얼굴을 쳐다본 조나단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황자는 이를 드러내고 웃고 있었다.
세워 든 검 끝에서 가벼운 바람이 이는가 싶더니, 순간 황자는 땅을 박찼다.
* * *
쿠웅-
갑자기 전해진 약한 진동에 낡은 저택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복도에 앉아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마사인과 쿠르트가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쿠웅-
연이어 진동이 바닥을 타고 전해진다. 후두둑 천장에서 흙먼지가 쏟아져 내렸다.
“…땅에서 울리는 거 같은데?”
설마 지진인가.
두 사람은 만류하는 하인을 밀쳐내고 황급히 연회장을 향해 달려들었다. 지진이 드문 델크로스였지만, 만에 하나의 가능성에 대비해 일단 황자를 낡은 저택에서 피신시켜야 했다.
“저하!”
그러나 연회장은 텅 비어 있었다. 곧 연회장 귀퉁이에서 지하실로 연결되어 있는 비밀 계단을 발견한 마사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설마…….”
쿠웅-
또다시 진동이 울린다. 진원지는 분명 저택의 바로 아래쪽.
두 사람은 서로 시선을 마주친 다음, 너나 할 것 없이 빠르게 계단 아래로 달려 내려갔다.
꾸에에에엑!
칼침을 몇 대 쑤셔 줬더니 반트라의 애벌레가 미친 듯이 꿈틀거리며 토하는 듯한 비명을 내질렀다. 제대로 된 발성 기관도 없는 놈이 어떻게 저런 소리를 내는지 참으로 미스터리한 일이다.
고무처럼 두꺼운 외피 때문에 그다지 검이 깊이 들어가지도 못했는데 죽겠다고 버둥거린다. 튼튼해 보이는 석벽에서 푸슬푸슬 흙먼지가 떨어져 내렸다.
놈이 꿈틀거리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 두고, 성진은 축 늘어진 케네스 디고리의 로브를 질질 끌어 당겼다.
이놈, 괜찮으려나? 몸에 흐르고 있는 오러를 잊어버리고 있는 힘껏 뒤통수를 후려갈겼더니, 빠각 하고 뭔가 영 좋지 않은 손맛이 느껴졌는데.
“야, 거기서 정신 팔지 말고 어서 이쪽으로 나와.”
멍하니 넋 놓고 주저앉아 있는 선지자 놈에게 말했다.
막 애벌레의 밥이 될 뻔한 충격에서 아직까지 헤어나지 못하는 듯한 모습인데, 그래도 좀 서둘러 줬으면 싶었다. 발광하고 있는 애벌레에게 실수로라도 삼켜지면 이쪽이 곤란했다. 번데기로 변하면서 채널이 열려 버린다고.
나머지 선지자 놈들은 이미 통로 쪽으로 내뺀 다음이었다.
비틀비틀 일어나는 조나단에게 눈짓을 했더니, 다행히도 눈치가 빠른 그가 재빨리 주저앉은 놈을 부축하러 나섰다. 물론 꿈틀거리는 촉수 같은 것을 밟고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굳어 버렸지만.
“괜찮아. 그냥 더듬이나 뿌리 같은 거야. 아직은 위험하지 않아.”
그는 성진의 말에 다소 안심한 듯 조심스럽게 뿌리를 피해가며 선지자 놈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뭐, 번데기로 변하는 순간 움직이는 모든 것을 휘감아 죽이는 괴물 촉수가 되겠지만, 지금 그걸 말해줘도 역효과겠지.
다행히 곧 충격에서 회복한 똘똘한 선지자 놈이 제 발로 걷기 시작하자, 일행은 힘을 합쳐 케네스 디고리를 석벽의 방 밖으로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제 이놈 데리고 위로 올라가라. 가서 내 호위들을 불러와.”
성진의 말에 조나단이 깜짝 놀라며 그를 바라보았다.
“네? 황자님은요?”
“나는 저놈을 일단 좀 어떻게 해야겠어.”
성진의 대답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 조나단이 대단히 감동한 얼굴을 했다.
아니, 그런 거 아냐. 네가 생각하는 그거 아냐.
여기서 마사인 경과 쿠르트 경이 오길 기다려도 되겠지만, 성진은 우선 자신이 먼저 손을 쓰기로 했다.
번데기가 되기 위한 최후의 영양 공급을 막긴 했지만, 위기를 느낀 애벌레가 불완전 변태를 하면서 채널을 열 가능성 역시 미약하게나마 존재했으니까.
무엇보다도 헌터 이성진은, 이제까지 마물이 살아서 꿈틀거리는 꼴을 절대 그냥 두고 본 적이 없었다.
조나단과 선지자 놈이 양쪽에서 케네스 디고리를 부축하는 동안, 성진은 검을 다잡고 다시 석벽의 방으로 향했다.
“어, 케네스 선배 코에서 피가 줄줄 흐르는데요?”
“뒤통수를 맞지 않았나? 혹은 뒤에 나 있는데 왜 코피가 나지?”
“혹시 뇌 손상…….”
여긴 위험하다. 빨리 자리를 피해라 이것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