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301)
성황의 아이들-301화(301/469)
301. 코드 제로 (6)
잠에서 깨야겠다고 강하게 생각하는 순간, 판게아 클로니클의 접속은 쉽게 종료되었다.
[음? 뭐야, 오늘은 일찍 돌아왔네?]침상에서 눈을 뜨니 마왕 놈이 드물게 반기는 소리를 한다. 혼자 있는 동안 제법 심심했던 모양.
하지만 성진은 당장 놈을 상대할 시간이 없었다. 곧바로 공방으로 향하는 은빛 디스크를 들어 올리자, 마왕이 시무룩하게 중얼거렸다.
[그럼 그렇지. 넌 좋겠다. 맨날 혼자서만 재미있는 데 놀러 다니고…….]아니, 노는 거 아니야. 어디까지나 해야 할 일을 하러 가는 거지.
거기다 내가 아까 어떤 징그러운 놈을 만났는지 알게 돼도, 네가 쉽게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을까?
‘…주방장에게 곰 고기가 좀 남아있는지 물어볼까?’
하지만 놈을 타박하는 대신, 성진은 엉뚱한 소리를 했다. 영혼을 바로 접해서일까, 놈의 쓸쓸한 기분이 여과 없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뭣? 정말? 좋아!]다행히도 마왕의 기분은 급격한 상승곡선을 그린다.
[곰 고기~ 곰 고기~ 향이 강하고 불 맛이 살아있는 곰 고기~]‘…….’
그렇게나 먹었는데, 질리지도 않냐? 이런 단순한 놈.
어쨌거나 내심 안도한 성진은, 서둘러 열쇠를 조작해 포탈을 열었다.
“여, 빨리 왔네.”
공방에 도착하니, 덱스터는 이미 다이브 캡슐에서 나와 노트북을 켜고 있었다.
“그래서 뭐야? 나와 긴히 의논해야 할 일이라는 게?”
성진은 대답 대신, 턱으로 까딱 그의 노트북을 가리켜 보였다.
“아아, 그래. 공략집과의 시간 오차. 나도 그걸 좀 자세히 조사해 봐야겠다고 생각하긴 했어.”
그렇게 말하는 덱스터의 표정은 제법 심각했다.
“보스룸이 그냥 열린 것도 문제지만, 그 외에도 자잘한 시간 오차들이 너무 많았지. 호문클루스 엔진의 기동 방식상, 유저가 한번 접속하면 절대 렉이 생길 수가 없단 말이야. 한데 오늘은 이상한 점들이 너무 많았어.”
“시간뿐만이 아니잖아?”
성진의 지적에, 난쟁이 공학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뭐?”
“근거리 전사의 색적 범위가 늘어나고, 궁병의 사정거리에도 제법 큰 오차가 있었는데. 심지어 오크 마법사는 저렙 몬스터에게 불가능한 상위 마법을 캐스팅하려고까지 했어.”
캐스팅 전에 악령 헤이즈가 죄다 박살을 내서 그렇지.
“시간뿐만이 아니야, 덱스터. 물리적인 거리는 물론, 레벨이나 문의 개폐 조건까지 모든 게 엉망진창이었어.”
다행히 성진의 예감대로, 모두 대응 가능한 범위였기에 큰 피해를 입지 않았을 뿐.
아마 그들이 아닌 다른 파티였다면 필시 전멸을 면치 못했을 거다.
“…그래, 맞아. 그것들도 있지.”
고개를 끄덕이던 덱스터가 조금 황당한 듯 물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하네. 어떻게 그런 걸 일일이 다 캐치했지?”
“갑자기 무슨 소리야? 네가 처음에 전략을 자세히 얘기해 줬잖아?”
“아니, 그건 그런데…….”
그걸 모조리 외우고 있다고?
덱스터가 미심쩍은 얼굴로 바라봤지만, 성진은 그런 중요하지 않은 의혹은 가뿐하게 무시해 주었다.
“그래서 뭐야? 오크 왕이 말하던 그 ‘썬더스톰 본’이라는 건.”
“아아, 그래. 아까의 보스도 뭔가 이상하긴 했지. 그럼 거기부터 시작할까?”
덱스터는 떨떠름한 얼굴로, 판게아 클로니클 메인 화면을 띄웠다. 천으로 눈을 가리고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여신, 유스티티아가 전면에 등장하는 화면이었다.
성진에게도 낯이 익은 금빛 창과, 긴 금발 머리가 돋보이는 일러스트.
“썬더스톰 본은 전에 설명했듯 ‘유저’를 지칭하는 말이야. 오랜 질서를 파괴하고 세계의 파멸을 가져오는 안티 히어로지. 뭐, 그게 결과적으로는 세상의 새로운 질서와 번영을 가져다준다는 설정이지만.”
“그다지 신선하지는 않네.”
성진의 솔직한 감상에, 덱스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지. 사실 판게아 클로니클은 내용만 보면 그다지 특별할 게 없는 게임이야. 메인 스토리도 그저 그렇고, 세계관 역시도 어디서 한 번쯤 본 듯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는 양산형 게임이거든.”
단지 호문클루스 엔진으로 만들어진 유일한 온라인 게임이다 보니, 전에 없이 생생한 플레이 감각을 제공하는 것이 타 게임과의 차별점이었다.
실제 규상세계 하나를 창조한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그렇다 보니, 유저에게 3D 멀미가 생길 여지도 없는 생생한 현실감을 주겠지.
“이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설정, 유스티티아 여신의 경우도 그래. 예전에 임펄스 소프트가 출시한 게임에서 몇 차례 우려먹은 적 있는 고리타분한 인물이거든.”
게임 디렉터가 동일하니 별수 없는 일이지, 라고 덱스터가 덧붙였다.
달칵달칵.
그가 몇 번 사이트를 클릭하자, 성진의 눈앞에 고전 RPG 게임을 소개하는 사이트 하나가 떠오른다. 한데 정말로 거기에는, 도트로 이루어진 어설픈 유스티티아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아스트리아 연대기?”
“유스티티아의 또 다른 이름이야. 1편 ‘여신의 부름’을 시작으로 8편 ‘암흑의 아스트리아’까지. 꽤나 긴 시리즈를 출시했던 인기 게임이지.”
“흐음.”
성진은 그중에서도 마지막 편인, ‘암흑의 아스트리아’의 타이틀을 잠시 눈에 담았다.
“유저를 지칭하는 ‘썬더스톰 본’ 역시 마찬가지. 비슷한 게임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어. 따지고 보면 몬스터나 던전은 물론이고, 세계 지도에 나오는 왕국이나 지명도 이전에 존재하는 게임들을 약간씩 수정한 것들에 지나지 않아.”
그 밖에도 NPC를 수집하여 부하로 기용하는 시스템이라든지, 주점에서 할 수 있는 미니 카드게임이라든지.
온갖 형태의 인기 게임들이, 약간의 수정을 거쳐 판게아 클로니클 시스템에 고스란히 안착되어 있었다.
개중에는 그 점을 여실히 비꼬는 사람들도 많았다.
덱스터가 지나가듯 보여주는 사이트들 중, 누군가가 장난처럼 올린 그림 하나가 눈에 띈다.
본 헬름을 쓴 전사가 불꽃에 휩싸인 채, ‘퍼스타드 로스!’라고 외치는 타 게임의 장면. 그리고 그 아래에는, 뇌우에 휩싸인 채 ‘머스타드 소스!’라고 소리치는 썬더스톰 본의 이미지가 마치 밈처럼 합성되어 있다.
“이 정도까지 비슷한 것들이 많다면…….”
성진이 썩 좋지 않은 예감에 말끝을 흐리자, 덱스터 역시 알만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네 생각이 맞을지도 몰라. 어쩌면 이건 단순한 차용이 아니라, 진짜로 있는 게임을 가져다 쓴 걸지도 모르니까.”
그래. 왜 아니겠는가.
호문클루스 엔진은 다른 세상의 소스를 가져다 입맛에 맞게 변형시키는 데 특화된 시스템. 그렇다면 이미 존재하는 게임을 그대로 가져다 쓴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이 세계는 채 준비되기도 전에 억지로 알에서 깨어날 수밖에 없었소. 하여 터무니없이 약해진 기조를 보완하기 위해 수많은 규칙이 무질서하게 덧대졌지. 그러한 거대한 혼돈 속에서 결국 세계의 뒤틀림이 생겨났다오.
문득 성진의 머리에, 유스티티아가 한탄처럼 내뱉던 말이 떠올랐다. 그게 말 그대로 날림 게임이라는 뜻이었어?
“내심 그렇지 않을까 짐작은 했어. 이건 정상적인 기획 단계를 거쳐 만든 게임은 아닐 거라고 말이야.”
덱스터의 설명에 따르면 그랬다.
호문클루스 엔진 이식이 완료된 후, 실제 판게아 클로니클이 정식으로 서비스되기까지의 시간 간격이 너무나 짧았다나.
“게임 하나를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인원과 작업들이 필요한지 짐작이 되냐? 그 시간을 줄일 방법은 단 하나뿐이지. 예전의 게임들을 소스로 이용해서, 호문클루스 엔진으로 모조리 합쳐 버리는 거야.”
음.
성진은 노트북 화면을 쏘아보다 입을 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어디까지나 우리의 짐작일 뿐이지. 혹시 그걸 확실히 증명할 방법이 있어?”
“글쎄? 본래라면 임펄스 소프트 내부 관계자 외에는 알 수 없는 일이겠지만…….”
그렇게 중얼거린 덱스터는, 자리에서 일어나 공방의 한쪽으로 다가갔다. 바로 일전에 한차례 대파된 적 있는 [호문클루스 엔진 편집기] 앞으로.
“하지만 우리한테는 게스트 ID 유저와 소스 편집기가 있지! 일단 네가 게임에서 빼돌린 아이템 몇 개를 편집기로 분석해 보면 되지 않을까? 만일 다른 게임에서 흘러들어 온 것이 있다면, 분명 그 흔적이 소스에 남아 있을 거야.”
“…그거 작동은 하냐?”
아직도 자리를 찾지 못하고 너덜거리는 수정 기판들을 보며 묻자, 덱스터가 기분이 상한 듯 미간을 팍 찌푸렸다.
이오니아 문명의 결정체라고도 할 수 있는 엔진 편집기. 그것이 파괴된 원인을 직접 제공한 장본인이 성진이다 보니, 그의 의심이 썩 기분 좋지는 않은 모양.
“내가 대충 손은 봐 놨어. 편집은 불가능해도, 소스를 읽어내는 정도는 가능하거든?”
“뭐, 그래. 좋아.”
그렇다면 마침 적절한 게 있지.
성진은 주머니를 뒤져, 판게아 클로니클에서 획득한 아이템 몇 개를 꺼내 들었다. 몇 종류의 귀속 포션과, 먹다 남은 작은 어묵이었다.
“…너 귀한 집 아들이라며? 근데 이런 정체불명의 음식을 잘도 입에 넣는다?”
덱스터는 황당한 표정으로 잇자국이 남은 어묵을 받아 들었다.
“내가 입맛은 까다로워도, 그다지 편식은 안 하는 편이거든.”
“아니, 편식이 문제가 아니라… 그나저나 먹다가 남기는 건 또 뭔데?”
“그나마 분석할 게 남은 걸 다행으로 여겨. 제법 맛있게 먹다가, 왠지 다 먹으면 안 될 거 같다는 기분이 들어서 겨우 남긴 거라고.”
“…….”
성진의 당당한 대답에 덱스터는 대단히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성진의 예감이 맞았다는 것이 밝혀졌다. 귀속 포션을 모조리 허탕 친 덱스터가, 마지못해 속는 셈 치고 분석한 어묵에서 기어이 뭔가를 찾아낸 것이다!
“역시! 이성진, 이리 와서 이걸 좀 봐봐!”
그가 분석한 화면에는 다음과 같은 텍스트가 떠올라 있었다.
〚상등급 2*8d# 어묵 #% 따끈따끈 분식점〛
〚아이템 등급 : B〛
〚가격 : 2 다이아몬드〛
〚*현재 서버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가격 2 다이아몬드?
“뭐야? 이건 아예 판게아 클로니클의 아이템 설명이 아닌데?”
성진의 의문에, 덱스터가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연하지! 호문클루스 엔진으로 변형된 아이템은, 소스의 본질이 뒤바뀌면서 오히려 이전의 정보가 가장 바깥으로 떠오르게 돼! 마치 탈피하고 남은 껍데기가 표면에 남는 것과 마찬가지지!”
즉 이 어묵은 정말로 다른 게임에서 온 소스라는 거다.
그리고 그들은 곧 인터넷 검색을 통해, ‘따끈따끈 분식점’이라는 음식점 경영 시뮬레이션이 같은 회사에서 발매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건 대단한 발견이야, 이성진! 정말로 판게아 클로니클의 아이템 상당수가 다른 게임에서 온 걸지도 모른다고! 그렇다면 희귀 아이템 같은 것도, 원본 소스를 찾아내기만 하면…….”
그러다가 덱스터는, 갑자기 뒤통수를 맞기라도 한 듯 혀를 씹었다.
“음? 어라?”
“왜?”
“아니, 잠깐만…….”
그리고 덱스터는 뭔가에 홀린 듯 인터넷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찜찜해. 우리가 지금 뭔가 중요한 걸 잊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뭘?”
그러다가 덱스터는 곧, 성진에게 한 유저 게시판을 보여주었다.
“너, 이걸 보고 뭔가 느끼는 거 없냐?”
마침 그곳에는 온갖 유저들이, 희귀한 전직 아이템을 찾아 울고 있는 게시글로 도배되어 있었다.
-3차 전직 아이템 어디서 구나하요? ㅠㅠ
-전직 필수템 얼음 심장 정보
-얼음 심장 경매장 가격
‘…얼음 심장?’
자연히 성진의 뇌리에, 예전에 덱스터와 만지작거리던 얼음 심장의 정보가 생생하게 떠올랐다.
〚글래쳐 트롤의 얼음 심장〛
〚제라듀벨리 던전 보스, 글래쳐 트롤 킹에게서 얻은 신물. 등록된 개체의 활동 조건을 설정하고, 간단한 문장으로 명령이 가능하다.〛
〚아이템 등급 : A〛
〚*현재 노스랜드 서버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아니, 하지만 그건 완전히 다른 게임의 소스였는데? 그러니까 노스랜드 서버 어쩌고 하는…….”
그리고 성진은 말을 잇던 도중에 깨달았다.
아! 다른 게임의 소스!
“예전에 이 회사 초창기에…….”
덱스터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무료 미니 게임 하나를 출시한 적이 있어. 내 기억이 맞다면, 아마도 그때의 통합 서버가 ‘노스 랜드’였을 거야.”
그리고 화면에 떠오른 게임 타이틀.
거대한 유인원이 예티처럼 하얀 괴물과 싸우는 단순한 일러스트.
-콩: 쥐라기 아일랜드
“이성진…….”
난쟁이 공학자가 흔들리는 눈으로 성진을 올려다보았다.
“우리 대체, 그 희귀한 전직 아이템으로 무슨 짓을 저지른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