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305)
성황의 아이들-305화(305/469)
305. 마왕 2호 (3)
오웬은 남자의 앞에서 얼어붙었다. 그것은 아마도, 절대적인 포식자를 앞에 둔 생물이 본능적으로 느끼는 공포였으리라.
반가면을 쓴 이 이상한 남자는, 오웬으로 하여금 언젠가 산에서 맞닥뜨렸던 거대한 해수를 떠올리게 했다.
-오웬. 자세를 낮추고 가만히 숨을 죽이렴. 저것이 우리를 발견하지 못하도록.
입김을 내뱉을 때마다 위협적인 저주파를 울려대는 검치곰을 경계하며, 오웬의 머리를 바짝 내리누르던 아버지의 손을.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사냥꾼이라 생각했던 아버지조차도, 그저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지나가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무서운 포식자의 기억을.
-죽었어야 할 놈이 왜 멀쩡히 걸어다니는 거냐?
무엇보다도 남자가 한 말. 그것은 오웬에게는 다른 의미로 익숙한 것이었다. 그의 부모는 오웬이 잊을 만하면 버릇처럼 이렇게 되뇌곤 했던 것이다.
-그날 바트가 아니었다면, 엄마는 너를 무사히 낳지 못했을 거란다. 이 모든 것이 다 주신의 보살피심이 아니겠니. 그러니 오웬, 너는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말고 살렴.
이자는 대체 뭐지? 어떻게 자신에 대해 알고 있지? 무엇보다도, 왜 이렇게 온몸의 떨림이 멈추질 않는 거지?
주춤. 오웬이 사색이 되어 뒤로 한걸음 물러서자, 남자는 가면 아래의 입꼬리를 죽 찢으며 웃어 보였다.
[제법 감이 좋은 아이다. 하지만 그렇게 긴장할 필요는 없겠구나.]다행히도 남자는 당장 오웬을 해칠 생각은 없는 듯했다.
[나는 너처럼 젊은 아이들이 품고 있는 작은 불씨들을 좋아한단다. 비록 타오를 가능성이 없는 미약한 것이라고 해도, 그것이 품고 있는 일말의 가능성만은 참으로 찬란하게 빛나니까 말이다.]툭툭.
[물론 그것도 지금 한때겠지만 말이지.]오웬의 어깨를 성의 없이 두드려 준 남자는, 그런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고는 그대로 멀리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그의 작은 손길에도 바짝 소름이 돋았던 오웬은, 그로부터 한동안 남자가 사라진 방향을 멍청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후 남자와 엇갈려 교회로 들어간 오웬은 사제를 만났지만, 그와 정확히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자세히 기억하지 못했다.
그저 다음으로 또렷하게 떠오른 장면은, 거대한 불길에 휩싸인 읍내.
노랗고도 붉은 화마가 온 마을을 집어삼키며 거세게 타오르고 있었다. 오랜 가뭄으로 물을 길어 나를 엄두도 내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저 망연자실하여 그 광경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
-…어머니…….
경전 속 지옥처럼 활활 타오르는 불바다와, 자욱하게 퍼져나가는 연기가 지극히도 비현실적이다.
오웬은 홀린 듯 불길을 향해 나아갔다.
-아, 아버지! 어머니!
어이, 저놈 뭐야?
잠깐, 들어가겠는데? 어서 잡아! 말려!
허둥지둥 불길을 향해 달려가던 오웬은, 웬 장한의 손에 붙잡혀 거세게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툭!
바로 그때였다. 오웬의 주머니에서 웬 부싯돌 하나가 튀어나온 것은. 오웬 스스로도 왜 거기 있는지 알 수 없는 물건이었다.
…저게 뭐지?
그리고 동시에, 모두의 머릿속을 울리는 묘한 목소리가 있었다.
[저 거대한 불이 단지 사고로 일어난 것일까? 우연찮게도 화재의 현장에 부싯돌을 가진 녀석이 나타났구나. 무척이나 의심스러워.]순간 마을 사람들의 눈빛이 변했다.
-저건 보통의 부싯돌이 아니야! 오르토나 일부 지역에서 나는 귀한 돌이다!
-어린애가 왜 저런 값비싼 걸 가지고 있지? 저놈 혹시 방화범인가?
-뭔지 몰라도 일단 잡아!
대번에 거칠어진 사람들의 손아귀 속에서, 오웬이 사력을 다해 발버둥 쳤다.
-이거 놔! 저 속에 우리 부모님이……!
하지만 동요한 사람들의 만류는, 어느새 소년을 향해 쏟아지는 무자비한 폭력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오웬이 무력하게 불길을 향해 손을 뻗고 있을 때였다.
화르륵!
갑자기 오웬의 눈앞에, 본래의 기억과는 조금 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마을을 태우던 거센 불길과 그를 구타하던 사람들은 온데간데없이, 이제는 온 세상이 화마로 뒤덮인 생경한 지옥의 광경이 있었다.
-…이건, 뭐야!
하늘과 땅, 모든 것이 그저 피처럼 검붉다.
오웬은 가쁜 숨을 들이켜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지금의 그는, 더 이상 그때의 어린 소년의 모습이 아니었다. 델크로스의 오웬. 남부 전선의 선봉에 서서 적을 도륙하는 무적의 전사.
그럼에도 이 완전한 지옥의 풍경 속에서, 오웬은 그때와 마찬가지로 철저하게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너무나도 분하고 절망스러웠다.
-……!
한데 오웬의 앞에, 언제부터인가 한 소년이 서 있었다.
처음 보는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묘하게 익숙한 느낌이 나는 뒷모습. 소년이 쥔 검에서 검붉은 오러가 피어오르고, 그의 옅은 금발 역시 화마를 반사하며 불길한 검붉은 빛으로 빛났다.
저벅.
소년이 앞으로 걸음을 옮기자, 오웬이 그를 향해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들어가지 마! 지금 거기가 어디라고……!
어느새 몸이 자유로워진 오웬은, 저도 모르게 그를 부르며 달리고 있었다.
-야! 거기 멈춰! 뉴비…….
“…비.”
“저하.”
“뉴비야.”
“저하!”
번쩍.
다급히 부르는 소리에 눈을 뜨자, 오웬을 흔들어대던 알리샤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묻는다.
“저하, 괜찮으십니까?”
“…알리샤?”
“네, 저하. 접니다.”
“…….”
더없이 절박했던 심정은, 현실을 자각함과 동시에 썰물처럼 자취를 감춘다.
안정을 되찾은 오웬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알리샤가 재빨리 모포를 들어 식은땀으로 흥건한 그의 이마를 훔친다.
지난 수년간 곁에서 오웬을 보필해 온 호위기사는, 간혹 그가 시달리는 악몽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저하, 외람되오나 잠시 나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오웬의 호흡이 가라앉는 것을 확인한 알리샤가 다급한 목소리로 고했다.
“아침부터 웬 바르샤인들이 저하를 찾고 있습니다.”
* * *
“나는 푸르마 부족의 전사, 바르토자! 델크로스의 오웬에게, 부족장의 목숨 값을 물으러 왔노라!”
목책 밖에는 한 무리의 바르샤 전사들이 모여 있었다. 장대한 장한 하나와, 그를 호위하는 다수의 전사들이었다.
도끼를 들고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장한, 바르토자는, 델크로스 진영이 다 울리도록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러니 어서 밖으로 나오라! 나와서 나와 무기를 맞대라! 설마 정당한 피 값을 묻는 결투를 피하는 형편없는 겁쟁이는 아니겠지, 오웬이여!”
오웬이 목책으로 다가가자, 중년의 기사 하나가 정중히 고개를 숙인다. 친위대 제4기사단의 단장이자, 남부 전선의 책임자인 아비게일 경이다.
“저 무식한 이교도 놈이 아까부터 저런 개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저하. 돌아가라 경고를 해도 도통 들어먹지를 않으니, 참으로 막무가내가 아닙니까.”
“흠.”
오웬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와 나란히 서서 목책 밖을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밖에서 그의 모습을 발견한 장한의 기세가 더욱 등등해진다.
“당장 이리로 내려와라! 델크로스의 오웬!”
그러자 발끈한 알리샤가 제법 능숙한 바르샤 어로 소리쳤다.
“함부로 귀하신 분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 너희의 부족장은 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 피 값을 이제 와 요구하는 것이 과연 정당하다고 보는가? 괜한 분란을 일으키지 말고 돌아가라!”
하지만 장한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닥쳐라, 오웬의 개야! 그의 옆에서 손발이 되어 움직이더니, 이제는 그의 입까지도 대변하려 하느냐! 자진해서 개가 되길 자처하다니, 어엿한 전사로서 부끄럽지도 않은가!”
푸하하하!
그의 뒤에서 다른 바르샤인들이 배꼽을 잡고 웃어댄다.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자들이었다.
“저들은 푸르마 부족이 아니야. 카라잔이군.”
그때 그들을 찬찬히 살펴보던 오웬이 말했다.
“확신하십니까, 저하?”
“그래. 도끼를 들고 소리 지르는 놈을 제외하면, 뒤에 있는 모두가 카라잔 부족의 전사들이다. 겉모습은 그럴싸하게 위장하고 있지만, 도끼를 쥔 운지법이 확연히 다르군. 저런 실수를 하는 걸 보면 아직은 애송이들인 모양이야.”
바르샤의 부족들은 대개가 비슷비슷했지만, 그래도 부족의 전통에 따라 간혹 독특한 차이점이 존재했다.
오랜 시간 볼란타 부족과 부대낀 오웬은, 제국인들이 쉬이 넘길 수 있는 그런 미세한 차이점을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는 것이다.
“카라잔입니까…….”
그에 아비게일 경의 얼굴이 조금 심각해졌다.
“저하의 말씀이 사실이라면 주의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와카나 투사이, 그 늙은 여우가 또 뭔가를 꾸미고 있다는 말이니까요.”
간혹 발생하는 국지적인 충돌 외에, 최근 남부 전선은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었다.
일부 온화한 부족과는 정기적인 문물 교환도 이루어지는 상황. 최근 오웬이 자주 방문하는 볼란타 부족 역시, 이런 온건한 부족 중 하나였다.
반면 카라잔의 경우는 사정이 달랐다.
바르샤에서도 가장 위세를 떨치는 대부족이자 호전적인 부족. 특히나 그들의 족장, 와카나 투사이는 한결같이 델크로스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는 자였다. 언제든 전장의 불씨가 다시 당겨지기를 조용히 숨죽여 기다리는 것이다.
“참으로 실망스럽구나, 오웬이여! 델크로스 부족장의 장자는, 여자의 뒤에 숨어 벌벌 떨기만 하는 겁쟁이인가!”
고래고래 소리치는 장한을 보며, 오웬이 허리춤의 도끼를 거머쥔다. 그러자 아비게일 경이 오웬을 만류했다.
“저하. 저들의 유치한 도발에 일일이 응하실 필요 없습니다. 어린 전사들만을 보냈다면, 아마도 와카나 투사이 역시 전멸을 각오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오웬은 고개를 저었다.
“바르샤의 추수 감사절이 다가오네, 아비게일 경. 조만간 바르샤의 모든 부족장이 모이는 대회의가 열릴 테지.”
수년간 전장에서 지켜본 바, 와카나 투사이는 호전적인 만큼 머리도 굴릴 줄 아는 자였다.
오웬이 볼란타 부족과 제대로 교류하기까지, 그녀로부터 얼마나 많은 방해 공작을 받았는지 생각하면 지금도 울화통이 터질 정도.
“카라잔의 입장은 언제까지나 확고하다. 응하지 않으면 응하지 않는 대로, 또 전멸하면 전멸하는 대로. 저들은 정당한 피 값을 빌미로 다시 한번 우리와 전쟁을 일으키자 주장할 거다.”
“그것은 억지 주장일 뿐입니다.”
“하지만 제국에 반감을 가진 다른 장로들에게는 효과적으로 먹혀들 테지. 이대로 저들을 무시하는 것은, 결국 와카나 투사이의 뜻대로 놀아나는 결과밖에 되지 않아.”
“…….”
아비게일 경의 눈이 황자가 쓰다듬는 도끼 자루에 잠시 가 닿는다. 하지만 그녀는 그 이상 황자의 뜻을 거스르지는 않았다.
오웬이 누군가.
혼란스러운 전장에서, 바르샤의 정예 전사들을 단신으로 여유롭게 돌파하고 부족장의 목을 따오는 황자가 아닌가.
저런 조무래기 전사들을 상대로 일일이 조바심을 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음?”
그때 갑자기, 뭔가를 발견한 오웬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건 갑자기 무슨 소리지? 뭘 수집하라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지금 오웬의 눈앞에는 새로운 퀘스트 창 하나가 반짝 떠올라 있었다.
[깜짝 퀘스트 – 신기한 독침 수집] [퀘스트 등급 : A] [카라잔의 한 기술자는 최근 새로운 무기를 개발했습니다. 방패 속에 몰래 숨겨 은밀히 암살을 꽤할 수 있는 혁신적인 무기지요. 바르샤의 모든 전사들이 이 무기를 보고 차마 수치스러움을 감출 수 없겠으나, 혹시 아나요? 카라잔의 늙은 여우에게는 제법 쓸모 있어 보일지도요. 독침의 견본을 수집하십시오.] [보상 : 60 P캐시] [*본 상품은 판게아 클로니클 상점 창에서 사용 가능합니다. 만일 앞으로도 당신이 살아남을 수 있다면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