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31)
성황의 아이들-31화(31/469)
031. 채널링 (1)
쿵 쿠웅 쿵-
두터운 위족들이 이리저리 튀어나오며 석벽을 두드린다. 먹이를 빼앗기고 졸지에 칼침까지 맞은 애벌레가 적을 배제하기 위해 최대한의 공격태세로 전환된 것이다.
부웅.
횡으로 크게 휘둘러진 위족 하나를 피해 잽싸게 자세를 낮추며 성진이 혀를 찼다.
전성기의 성진이었다면 단걸음에 거리를 좁혀 주먹질 한 번으로 놈의 핵을 박살 냈을 텐데, 지금의 상태로는 애벌레 근처로 파고드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더욱 출렁거림이 심해진 뿌리 덕분에 제대로 발을 디디는 것도 여의치 않고.
삐죽 코앞으로 날아오는 위족 하나를 빙글 옆으로 몸을 돌리며 검으로 쳐낸 성진은, 뒤이어 날아오는 위족을 피하며 백덤블링을 하듯 뒤로 미끄러졌다. 이렇게 깔짝깔짝 두드려 패다가 놈이 진짜로 불완전 변태를 시도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엄습했다.
일단 어디가 놈의 머리통인지만 알 수 있어도.
연이어 쏘아져 오는 위족들을 피해 옆으로 구르면서 성진이 인상을 썼다.
누군가 씹다 뱉은 껌처럼 생긴 놈이지만, 놀랍게도 저놈에게도 기본적인 소화 기관과 신경계가 있었다. 입과 눈이 있고, 머리라고 할 만한 부분도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놈의 후두부에는 그가 우선적으로 부숴야 하는 중요한 기관이 있다.
바르토시. 정식 명칭은 바르톨로메오 기관.
군집을 이루는 마물들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신경계의 변형 기관이다.
게헤나 게이트 사태 초기에는 그래도 마물들을 해부하고 표본을 분석하는 등, 나름의 연구들이 활발하게 진행될 때가 있었더랬다.
물론 초인들이 다 때려잡는 것 외에 해결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연구는 시들해졌지. 체계적인 연구가 가능한 지식층들이 하나둘 죽어나간 것도 원인이었고.
어쨌든 마물의 후두부에서 발견되는 투명한 관처럼 생긴 결정이 채널링을 하는 기관이라는 것이 알려진 후, 헌터들은 제일 처음 사냥을 나설 때 우선 저 바르토시의 위치와 그것을 부수는 방법을 배웠다.
마물들이 채널링을 통해 연계 공격을 시작하면 사냥의 난이도가 곱절로 까다로워지기 때문이었다.
‘일단 뒤덮인 살들을 좀 최대한 깎아 내자.’
길게 내쏘아진 위족 둘을 한칼에 잘라내며 성진이 결심했다. 저 고무찰흙 같은 살덩어리들이 대부분 벗겨져 나가면 어디가 대가리인지 정도는 구별이 가겠지.
그나마 다행한 것은, 들고 있는 검의 날이 제법 잘 들어서 애벌레의 외피를 자르는 데 큰 무리가 없다는 점이었다.
물론 기사단의 보급품 질이 좋은 것도 있지만, 단순한 쇠붙이만으로 저 두터운 마물의 살덩이를 쉽게 베어낼 수 있을 리는 없었을 터. 이는 검 날에 오러가 씌워져 있기에 가능했다.
성진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는 어느새 마물의 정기를 다루는 요령으로 검 날에 오러를 덧씌우고 있었던 것이다.
‘어쩐지 나, 예전에 비해 칼질하는 솜씨가 좀 좋아진 거 같은데?’
정식으로 검술을 배운 효과인 걸까?
막연하게 그런 생각을 하며 애벌레의 잔뿌리들을 서컹서컹 다듬고 있는데, 저 멀리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마사인이 방 안으로 달려 들어왔다.
“저하아!”
기세 좋게 소리치며 달려온 마사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황자가 요동치는 시커먼 반죽 같은 것들 사이를 껑충껑충 뛰어다니며 검을 휘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뒤를 따라 방으로 뛰어든 쿠르트 경 또한 성진과 애벌레를 발견하고 멍청한 얼굴로 입을 쩍 벌렸다. 턱 떨어지겠다.
성진은 방의 입구를 향해 재빠르게 달렸다. 새로운 침입자를 감지한 애벌레가 있는 힘껏 거대한 위족을 내질렀던 것.
서걱.
다행히 위족의 움직임이 그다지 빠르지 않아, 마사인과 쿠르트 경에게 닿기 전 손쉽게 베어낼 수 있었다. 성진이 그들의 앞을 막아서며 주의를 주었다.
“되도록 저 검은 것에는 닿지 않도록 조심해. 순식간에 몸통 쪽으로 끌려들어 간다고.”
순간 화악 하고 몸이 뒤로 당겨졌다. 마사인이 성진의 로브 자락을 잡고 재빨리 뒤쪽으로 끌어당긴 것이다.
그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성진과 애벌레 사이에 끼어들며 검을 뽑아 들었다.
정신을 차린 쿠르트 경 역시 검을 뽑더니 반사적으로 위족 하나를 베어내며 물었다.
“…저게 대체 뭡니까?”
“반트라 모스의 애벌레야! 마물이지!”
“마물이요? 뭡니까, 그게? 해수와는 다른 겁니까?”
아마 다르지 않을까? 일단 마물은 이 세계의 존재가 아니니까.
다시 검을 곧추세우고 애벌레를 향해 달려들려는 찰나, 갑자기 강한 악력에 어깨를 잡혀 몸이 옆으로 휙 돌아갔다. 성진을 돌려세운 것은 마사인이었는데, 당장이라도 그에게 떽 하고 소리칠 것 같은 흉흉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대체 여기서 뭘 하고 계셨기에 저런 게 튀어나옵니까?”
아니, 왜 내 탓이라고 생각하지, 마사인 경?
난 억울하다! 이거 케네스 디고리가 키우던 거야! 어디서 튀어나온 건지 나도 잘 모른다고!
그러는 동안 쿠르트 경이 애벌레를 향해 용맹하게 돌진하며 외쳤다.
“일단 전부 베면 되는 겁니까, 저하?”
“아! 거기 조심……!”
위족을 이리저리 피하며 애벌레의 중앙을 향해 달려 나가던 쿠르트 경이 순간 기겁을 하며 물러났다. 몸통 중앙에서 갑자기 동그란 입이 나타난 것.
갈고리처럼 흉측한 이빨이 두 겹으로 나 있는 커다란 입구가 빠르게 맞물리며 무시무시한 마찰음을 냈다. 따악!
한순간에 애벌레의 입속으로 뛰어들 뻔한 쿠르트 경이 신음처럼 중얼거린다.
“주신이시여…….”
마사인이 재빨리 쿠르트 경 옆으로 달려가 그를 노리고 달려드는 위족 하나를 베어냈다. 그 사이에 애벌레의 입은 언제 나타났었냐는 듯 검은 살 속으로 다시 자취를 감춘다.
성진이 석벽 입구 너머로 고개를 빼꼼 내밀며 때 늦은 훈수를 뒀다.
“몸통 가운데서 가끔 입이 튀어나와! 혹시라도 물려서 조금이라도 영양분이 공급되면 번데기가 되어 버릴지도 모르니까 주의해!”
“…저게 입 같은 것도 달린 생물입니까, 저하?”
마사인이 창백한 얼굴로 물었다.
뭘, 입을 가지고 놀라나.
성진은 문득 이들에게 애벌레의 후두부를 지나는 중추 신경계 끝에 달린 직경 5cm짜리 기관만 정확하게 찾아 부숴달라고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무척 궁금해졌다.
애벌레의 저항은 끈질겼다. 처음보다 확연히 느려지긴 했지만, 여전히 많은 수의 위족이 쉴 새 없이 날아든다.
몸이 근질근질해진 성진이 혼란을 틈타 쭈뼛쭈뼛 방 안으로 들어가려 하는데, 용케도 이를 알아챈 마사인이 매서운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어 씨. 알았어, 알았다고. 얌전히 있는다고.
인류 최후의 헌터 이성진이 어쩌다 이런 꼴이 되었나.
마물을 처음 상대하는 것일 터인데 과연 상급기사라고 할까, 마사인과 쿠르트 경은 두서없이 날아드는 위족 공격에 금세 적응하며 능숙하게 검을 휘둘렀다.
그들의 검에는 성진의 눈에도 확실하게 구별되는 뚜렷한 외기가 맺혀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그의 어설픈 칼질과는 위력 자체가 달랐다.
날카로운 휘두르기 한 번에 위족 서너 개가 날아가고, 조금 떨어져 있는 애벌레의 몸통 자체도 썩둑썩둑 잘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이 마물에게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킨 모양이었다. 애벌레가 이따금 감전이라도 된 듯 파르르 떨리는 것을 발견한 성진이 침을 삼켰다. 저건 불완전 변태를 시도하려는 신호다!
“빨리 놈의 핵을 찾아서 부숴야 해! 마사인 경! 쿠르트 경!”
성진의 외침에 두 사람의 얼굴이 괴상망측하게 변한다.
네에? 저 썩은 반죽 같은 것에서 뭔가를 골라서 공격하라구요?
그러나 찬찬히 설명할 시간이 없다.
“저 외피가 한 번에 밀려나갈 정도로 강하게 한 방 먹여줄 수 있어?”
변형성이 좋은 두터운 외피에 감싸여 있어서 구별이 어려울 뿐, 일단 외피를 한 꺼풀 밀어내고 나면 저 애벌레도 나름 구조가 구별되는 일정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강한 공격으로 잠시 두부가 드러나기만 하면, 성진은 그 즉시 바르토시를 박살 낼 자신이 있었다. 물론 그 공격에 단번에 핵까지 부서지면 더할 나위 없고.
“강하게… 말입니까.”
마사인의 얼굴이 진중해졌다. 그가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자 눈치 빠른 쿠르트 경이 애벌레와 마사인의 사이를 막아서며 엄호를 시작했다.
우우우웅.
마사인이 정신을 집중하자 검 날이 희미하게 검명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날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오러가 점점 뚜렷해지나 싶더니 날을 둘러싸는 외기가 한층 더 강해진다.
그러고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밝은 금빛으로 빛나는 오러 블레이드.
그의 검보다 약 한 치는 더 길게 뻗은 외기가 깨끗한 검 날을 형상화하며 밝게 빛난다.
데카론 나이트를 앞두고 있다고 하더니 과연, 황실 기사들 중에서도 다다른 자가 손에 꼽을 정도의 경지였다.
그렇게 긴 금빛의 검을 들고 한 걸음 앞으로 내딛고는.
사악.
순간 가로로 노란 실선이 하나 생겼나 싶을 정도로 빠르게 휘두른다. 소리조차 없는 조용한 일격이었다.
콰과과과과과!
마사인이 검을 갈무리하는데 뒤늦게 거센 충격파가 밀려들었다. 석벽이 무너질 듯 흔들리고 잘려나간 위족의 파편들이 이리저리 내동댕이쳐진다.
그것은 전성기 성진의 주먹과 비교해도 크게 손색이 없는 대단한 위력이었다. 두터운 마물의 외피가 순식간에 뒤로 밀려나며 얇은 고무막에 쌓인 듯한 애벌레의 윤곽이 드러난다.
단지 외피만 밀어낸 것이 아니었다. 마사인의 공격은 애벌레의 흉측한 주둥이는 물론, 몸통의 약 삼분지 일가량을 단번에 베어내었다.
그러나 횡으로 길게 베어진 검로는 아쉽게도 핵을 아슬아슬하게 비켜 지나갔다. 뚜렷한 목표 없이 휘두른 검격이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일순 놈의 머리 쪽에서 밝게 점멸하기 시작하는 빛을 성진은 놓치지 않았다. 그는 검을 들고 애벌레의 머리를 향해 달렸다.
“저하!”
마사인의 놀란 외침을 뒤로하고 애벌레의 머리 위로 뛰어오른 성진은, 정확하게 몸의 마디와 후두부가 연결되는 지점에 검 날을 찔러 넣었다.
이미 밀려났던 외피가 제자리로 돌아와 점멸하는 빛은 순식간에 덮여 버렸지만, 그의 오랜 경험은 바르토시의 위치를 정확하게 짚어 낼 수 있었다.
까드득.
검 끝에 딱딱한 관 같은 것이 부딪히는 익숙한 감촉이 전해진다.
그러나 일격에 완전히 박살 내기에는 공격의 깊이가 조금 얕았다. 아무래도 운용하는 오러의 양이 너무 적은 탓이리라.
오늘 이성진이 체면을 여러 번 구기는데.
“마사인 경! 놈의 핵을 부숴!”
콰직.
박혀있는 검에 오러를 밀어 조금 더 깊게 찔러 넣은 성진이 외쳤다. 쩌적 하고 바르토시에 금이 가는 것이 느껴졌지만 안심하기는 일렀다. 채널링 시도를 완전히 막으려면 역시 핵을 부숴 놈을 완전히 없애야 한다.
다행히 마사인의 공격으로 몸통의 일부가 날아간 애벌레는, 외피로 뒤덮었음에도 빛나는 핵을 완전하게 가리지 못했다. 쿠르트 경이 본능적으로 몸통 안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지점을 향해 검을 내리꽂는다.
빠각.
순간 애벌레가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저하!”
꾸워어어어억!
비명처럼 부르짖는 마사인의 목소리와 함께, 죽는다고 토해내는 애벌레의 단말마가 석실 안을 뒤흔든다.
성진은 박혀 있는 검에 힘을 주며 놈의 머리 위에서 이를 악물고 버텼다. 바르톨로메오 기관이 부서지는 것이 먼저냐, 핵이 완전히 비활성화되는 것이 먼저냐. 놈이 완전히 침묵할 때까지는 조금도 방심할 수 없었다.
슬금슬금.
성진의 몸에 무언가가 감겨들기 시작했다. 번데기화가 진행되며 점점 활성화되기 시작한 놈의 뿌리들이다.
삐이이이. 기이한 이명소리와 함께 놈의 외피가 바르르르 떨린다.
데구르르. 갑자기 외피 밖으로 동그란 놈의 눈이 노출되더니, 그 눈동자가 오롯이 성진을 향해 시선을 맞추어 온다.
검이 박혀 있는 바르토시가 점멸했다.
놈의 핵에 맺혀 있는 옅은 푸른색의 빛 또한 점멸한다.
깜박. 깜박.
그리고.
애벌레는 어느 순간 완전하게 움직임을 멈췄다.
순식간에 거짓말처럼 사위가 고요한 침묵에 감싸인다.
“…헉!”
성진은 겨우 참았던 숨을 토했다.
아슬아슬했다. 막 채널이 열리려던 참이었다.
순간 다리에서 힘이 빠져 미끄러질 뻔한 성진의 몸을 지탱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여기저기서 감겨들던 반트라의 뿌리였다.
“저하!”
“괜찮으십니까, 저하!”
마사인과 쿠르트 경이 성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특히나 마사인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어, 오히려 그가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보였다.
이 인간 은근히 덩칫값을 못 한다니까. 성진은 그를 향해 손을 설레설레 흔들어 보였다.
“괜… 찮아.”
성진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잡힌 것은 그때였다.
[…성진… 이성…….]‘……?’
처음에는 긴가민가했다. 이 세계에서 누가 성진을 알아, 그의 이름을 부른단 말인가.
[이… 성진…….]그런데 정말 어디선가 그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성진은 고개를 두리번거리다 문득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바로 그의 검이 박혀 있는 바르토시. 뿌연 빛이 맴돌고 있는 마물의 채널링 기관.
[이성진…….]아직까지 희미한 빛이 남아 있는 반트라의 기관 너머에서 무언가가 성진을 부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