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312)
성황의 아이들-312화(312/469)
312. 물밑 (3)
“지난번에도 그러더니, 이번에도 또 정신을 놓고 있네. 뉴비야, 너 어디 아프냐?”
오웬이 성진을 졸졸 따라오며 집요하게 물었다.
“별거 아니라니까. 신경 쓰지 마.”
“하지만…….”
성진을 걱정하는 것은 비단 오웬뿐만이 아니었다. 침묵 빌런들과 덱스터 역시 우려가 가득한 얼굴로 그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으니까.
파티 리더라는 자가 던전에 들어오기만 하면 넋을 놓고 있으니, 그들의 걱정도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었다.
“어쩔래? 너, 이번에는 그냥 쉴래?”
쯧, 호들갑은.
성진은 오웬을 돌아보지도 않고 귀찮은 듯 손만 휘휘 저어 보였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아까 덱스터한테 들었잖아? 이번 던전은 마법사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그런데 나 없이 어떻게 여길 클리어한다는 거야?”
테마 던전 B랭크, 마녀들의 집회.
여러 클래스의 몹이 고르게 분포되어 있던 ‘오크왕의 미로’와는 달리, 이곳은 정신계 마법이나 소환을 이용하는 마법사 계열의 몹이 주축이 되는 던전이었다.
자연히 ‘유스티티아의 조건’을 푸는 데 마법사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수밖에.
유형만을 놓고 본다면 아이스 밴시의 던전과 비슷하리라. 그 D랭크 던전에서, 성진과 침묵 빌런들은 하마터면 죽을 뻔하지 않았던가.
‘거기다 덱스터가 이번에 짜온 전략은, 아마도 내 능력치를 바탕으로 보완된 것일 테니까. 나 없이 클리어하는 건 절대 무리일걸?’
성진은 속으로 코웃음을 치며 덧붙였다.
“잊지 마, 오웬. 우리는 아직 타임 챌린지 중이야.”
“그건 그렇지만. 괜히 무리했다가 위험한 일이라도 생기면…….”
“아, 쓸데없는 걱정 말라니까? 괜찮아. 이번 던전은 오히려 오크왕의 미로보다 안전할 거라고.”
성진의 말은 진심이었다.
어떤 던전이든 단숨에 쓸어버릴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누가 뭐래도, 지금 그의 컨디션은 최상이었으니까.
암흑의 유스티티아.
이제까지 크고 작은 오차들을 만들고 거머리처럼 성진을 갉아먹던 그것이, 지금은 완전히 힘을 잃었다. 그러니 한동안은 돌발 상황도 일어나지 않을 테고, 성진의 피로도 역시 전보다 훨씬 덜할 예정이었다.
‘거기다 유스티티아로부터 이것저것 뜯어온 것도 있고 말이지.’
하지만 성진의 확답에도 오웬의 표정은 쉬이 풀리지 않았다.
어째서일까. 아까 검붉은 불꽃 옆에 서 있는 뉴비를 보는 순간, 불현듯 묘한 기시감이 일었던 것이다.
‘뭐지? 언젠가 이 비슷한 광경을 본 적이 있던가?’
오웬이 골똘히 기억을 되짚어 보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자, 그만 집중해.]계속 딴생각을 하고 있는 오웬을 향해, 성진이 주의를 주었다.
그러는 사이, 그들은 드디어 첫 번째 몹들과 마주쳤다. 검은 망토를 두른 마녀들이었다.
크흐흐흐흐…….
불길한 웃음소리와 함께, 검은 기운을 뭉게뭉게 피워 올리는 여인들.
아마도 저들의 인식 범위에 들어서는 순간, 일행을 향해 사정없이 정신계 마법이 쏟아지리라.
덱스터가 긴장된 목소리로 주문하자, 성진이 자신만만하게 앞으로 나섰다. 마법계 공격으로 조건 해제를 하기 위함이다.
뾱!
하지만 이번에 성진이 꺼내든 것은 헤이즈의 악령이 아니었다.
“발화.”
아기 산양의 입에서 처음 듣는 짧은 시동어가 읊어진다.
[……?]모두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있는데, 순간 그들의 눈앞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무리지어 있는 마녀들에게서 일제히 검붉은 화염이 일었던 것이다!
화르르륵!
캬아아아……!
불길은 짧고도 거세게 타올랐다. 마녀들은 그들의 단말마가 채 끝나기도 전에 그대로 연소되어 허공으로 사라졌다.
조건이고 뭐고 없이, 즉사에 이르는 대미지가 들어간 것이다.
[……!?] [음, 대미지가 너무 강한 것도 문제인데? 이래서는 파티 사냥의 의미가 없잖아?]모두가 당황하여 입을 쩍 벌리고 있는데, 오직 성진만이 엉뚱한 걱정을 하며 스킬 창을 확인했다. 그곳에는 방금 유스티티아로부터 얻은 새로운 스킬이 깜박거리고 있었다.
〚new! 유니크 스킬 – 발화〛
〚시전자가 목표물을 지정하면, 대상의 방어력에 상관없이 순식간에 자연 발화가 일어나 HP를 0으로 만든다.〛
〚가능한 최대 목표물 수 : 5〛
〚습득 조건 – □□□ □□〛
〚소모 MP : 개체당 1〛
〚랭크 : SSS〛
〚숙련도 : SSS〛
클래스도, 레벨 조건도 없는, 오직 성진에게만 허락된 스킬.
적의 생명력이 얼마든, 방어력이 얼마든 전혀 상관없다. MP 소모도 거의 없었다.
심지어 정밀한 조준도 필요 없는, 그야말로 사기적인 즉사기였다.
[…방금 그, 그건 뭐야?]겨우 정신을 차린 덱스터가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그러나 성진은 대충 대답하며 척척 앞으로 걸어 나갔다.
[어, 별거 아니야.] [잠깐만! 별게 아니라니, 어이!]성능이 지나치다 못해 조악하기까지 한 이 스킬은, 방금 유스티티아가 상당히 무리해가며 만든 것이었다. 성진이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자진해서 안겨주었지.
-이런 거 필요 없어. 나한테는 마왕 2호가 있으니까. 그냥 내가 말한 요구 조건이나 제대로 이행해.
성진은 지금의 전력으로도 충분하다 여겼지만, 유스티티아의 입장은 많이 달랐던 모양이다.
-이것은 당신의 요구와는 별개로 내가 선물하는 것이오, □□□ □□.
-선물? 조건 없이?
-그렇소. 조건 따위는 없다오. 그러니 제발 이 스킬들을 받고, 앞으로는 다시는 판게아 클로니클에서 그 위험한 화염을 꺼내지 말아 주시오!
제법 절실한 기색이 느껴지는 목소리. 유스티티아는 분명 마왕 2호를 극도로 경계하고 있었다.
왜 아니겠는가. 방금 자신과 동등한 이름과 신격을 가진 찰거머리가 허무하게 사라지는 꼴을 목도하지 않았나.
쌓이고 쌓여 아예 법칙이 되어버린 오류들을 일소할 수 있다면, 제대로 된 법칙은 물론이거니와 이 세상 자체까지도 어려움 없이 불사를 수 있을진대.
“이봐, 이성진!”
그때, 종종걸음으로 다가온 두더지 공학자가 성진의 귓가에 다급하게 소곤거렸다.
“너,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전에는 이런 스킬 없었잖아?”
하지만 성진은 다음 마녀 무리와의 거리를 가늠하며 여상하게 대꾸했을 뿐이다.
“다른 것도 있으니까 아직 놀라긴 일러.”
“…뭐?”
그래. 심지어 유스티티아가 안긴 스킬은 [발화] 하나가 아니었다.
〚new! 유니크 스킬 – 용암지대〛
〚시전자가 지정하는 범위의 바닥을 용암지대로 만든다. 딱히 지면뿐만이 아니라, 빙판이나 수면 위에서도 발동이 가능하다. 한번 필드 안에 갇힌 대상은 벗어날 수 없으며, 화염 방어에 상관없이 발동과 동시에 HP 30%, 이후 초당 HP 10%의 추가 대미지를 받는다.〛
〚습득 조건 – □□□ □□〛
〚소모 MP : 5〛
〚랭크 : SSS〛
〚숙련도 : SSS〛
이 또한 게임의 밸런스를 완전히 무시하는 장판기.
발동시에 30%, 추가로 초당 10%가 깎인다고 하면, 어떠한 대상이든 7초 안에 잡는 것이 가능하다는 말이었다.
‘시험해볼까?’
지체할 필요는 없겠지.
성진은 마녀들이 시야에 들어오자마자 작게 읊조렸다.
“용암지대.”
그러자 저 멀리, 몹들이 모여 서 있는 바닥이 광범위한 용암 장판으로 변했다.
화르르륵!
키아……!
이번에도 마녀들은, 성진 일행을 채 발견하기 전에 비명도 내지르지도 못하고 전멸하고 말았다.
[……!?]눈으로 보고도 쉽게 믿을 수 없는 광경.
덱스터와 침묵 빌런들은, 마녀의 무리가 단번에 빛으로 화하는 모습을 그저 멍청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제법 쓸 만한데?’
그래. 성진이 마왕 2호를 꺼내들지 않도록 만들려면, 그에 버금가는 사기 스킬을 주는 수밖에.
비록 밸런스가 엉망이 되더라도, 마왕 2호가 또다시 무분별하게 펼쳐지는 것보다는 나으리라 여긴 모양이다.
〚new! 유니크 스킬 – 화염〛
〚시전자의 무기에 화염의 오러를 덧씌운다. 무기 고유의 속성에 마법 속성이 추가된다. 공격의 200% 대미지가 추가된다.〛
〚습득 조건 – □□□ □□〛
〚소모 MP : 초당 1〛
〚랭크 : SSS〛
〚숙련도 : SSS〛
캬아! 컥!
시뻘건 불꽃에 휩싸인 초보자용 검이 마녀들을 도륙한다.
[이성진! 근거리는 안 돼! ‘조건’을 풀려면 마법을 써야……!]당황하며 말리려던 덱스터가, 이내 빛이 되어 사라지는 마녀들을 확인하고는 입을 다문다.
근거리로 때려도 마법 판정을 받게 만들어주는 버프 스킬. 물론 대미지 증가치가 버프의 범위를 아득하게 벗어나지만 말이지.
‘어쨌든 이것이 있으면, 굳이 마법사가 없어도 유스티티아의 [조건]들을 풀 수 있겠군.’
그야말로 테마 던전을 돌기에 부족함이 없는 스킬들이었다. 그 의도가 참으로 투명하게 보여서 실소가 나올 지경.
‘어떻게든 마왕 2호만은 꺼내들지 말라는 거지?’
그렇게 마지막 스킬까지 시험한 성진은 만족했다. 일단 시동어가 거창하지 않고 직관적인 것이 마음에 든다. 아마도 대충 급조했기 때문일 테지만.
[다들 미안. 아무래도 여유 있는 초반에 먼저 시험을 해 둬야 할 것 같아서.]성진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일행에게 양해를 구했다. 작은 발굽을 습관처럼 앞으로 내민 채였다.
[이성진…….] [자세한 설명은 좀 있다 해 줄 테니까, 일단 지금은 던전을 마저 돌자. 아직은 타임 챌린지 중이니까.]그러자 경직되어 있던 일행의 분위기가 거짓말처럼 누그러졌다.
[그, 그렇다! 지금은 시간을 아껴야 하는!] [알겠습니다, 이성진.]허둥지둥 장비를 정비하는 일행을 바라보던 성진은, 문득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니. 말한 건 나지만, 다들 왜 이렇게 아무런 의심 없이 순순히 믿는 거야?’
호구들의 정신 세계는 때때로 정말 이해하기 어렵단 말이지.
어쨌거나 성진은 처음의 계획대로 헤이즈의 악령을 불러들였다. 스킬 시험도 다 끝났겠다, 덱스터가 애써 계획한 공략을 제대로 따라볼 참이었다.
‘게다가 저 녀석이 너무 조용하단 말이야…….’
이상하게도 성진이 여기저기 화려한 화염계 스킬을 난사할 때마다, 오웬의 표정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 아까부터 그것이 마음에 걸렸다.
[내 영혼의 주인이시여어어어어!]헤이즈의 악령이 기다렸다는 듯 나타나, 검은 안개를 풀풀 흘리며 마녀들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가자!]이어진 아기 산양의 신호와 함께, 일행은 보스 룸을 향해 힘차게 달리기 시작했다.
* * *
“일시적으로 게임 내 모든 오류가 사라졌다라…….”
“네, 그렇습니다.”
부하 직원의 보고를 받은 마틸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임펄스 소프트의 고위 임원이자, 호문클루스 엔진 개발부의 책임 엔지니어. 호문클루스 엔진이 적용된 최초의 게임, 판게아 클로니클에서 일어나는 이변을 실시간으로 보고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원인은?”
“아직은 파악 중에 있습니다.”
“그래…….”
마틸다는 그다지 기대하지 않는 듯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게임이 이미 꼬일 대로 꼬여, 로그를 조사하는 것도 만만치 않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까닭이다.
“이만 가보지. 특이 사항이 있으면 바로 보고 올리고.”
직원에게 손짓을 한 마틸다는, 갑자기 혈중 니코틴의 농도가 급격하게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곱게 립스틱을 바른 입술이 새 담배를 꼬나문다.
“휴우…….”
연기를 몇 모금 빨아들이자, 두통이 조금 가라앉으며 몸이 이완된다. 강한 중독의 조짐이었다.
그간 위태롭게 굴러가는 판게아 클로니클에 신경 쓰느라, 최근 눈에 띄게 담배가 늘고 말았지.
“망할 놈의 디렉터 같으니…….”
거대한 오류 덩어리가 신격을 갖추게 된 것은, 순전히 나태한 게임 디렉터의 실수였다.
급히 만들어진 게임을 가다듬는 과정에서, 그 작자는 결국 자신의 초기작인 아스트리아 연대기의 설정을 놓지 못했으니까.
그는 자신의 작품과 세계관을 사랑했다. 특히 마지막 시리즈인 ‘암흑의 아스트리아’에 대한 애착이 강했는데, 선한 여신이 이중성을 드러냄으로써 새로운 긴장감을 선사했다는 호평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고리타분한 작자의 최고의 전성기였다.
“그치 때문에, 기껏 서둘러 만든 세상이 허무하게 끝날 뻔하지 않았나…….”
어쨌거나 오류가 해결되었다니, 유저들에게도 또 임펄스 소프트에도 다행한 일이었다.
그렇게 잠시 머릿속을 환기시키던 마틸다는, 문득 부하 직원이 아직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는 고개를 돌렸다.
“뭔가 할 말이 더 있나?”
그러자 직원은 주저하다 입을 열었다.
“저… 다름이 아니라, 전직 아이템인 얼음 심장에 관한 일입니다만…….”
아아, 얼음 심장.
그건 또 그것대로 엄청난 골칫거리지.
“VIP께 조심스럽게 여쭸다고 합니다만, 아무래도 근시일 내에 다시 돌려주기 어려울 거라 하셨답니다.”
“이런…….”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바였지만, 막상 결과를 듣고 나니 더더욱 낭패였다. VIP라면 어지간해서는 문제를 만들지 않을 거라 굳게 믿고 있었는데 말이지.
하지만 그분만을 탓할 수는 없는 일. 다른 게임의 소스를 쏟아부어서라도 게임 완성을 서두른 것은 어디까지나 마틸다의 독단이었다.
“내가 대책을 강구해보지. 이만 나가봐.”
손을 저어 부하 직원을 물린 마틸다는, 말없이 담배를 피우며 모니터에 떠 있는 사진들에 잠시 시선을 주었다.
그것은 멀리서 관찰 드론이 찍은 게임의 스크린 샷이었다.
간혹 초점이 흐릿해 알아보기 어려운 것도 있었지만, 어쨌든 사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주인공은 고글을 쓴 작은 두더지였다.
“그래. 지구를 떠나고도 알아서 잘 지내는 듯 보이는구나.”
짤막한 마틸다의 손가락이 모니터를 조심스레 어루만진다. 일견 두려운 듯한 손짓이었지만, 그럼에도 그 손끝에 담긴 것은 분명한 애정이었다.
“그런데 왜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몸을 가지고도, 너는 여전히 전처럼 작은 모습을 하고 있는 거니, 덱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