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326)
성황의 아이들-326화(326/469)
326. 21호의 나날 (2)
카이엔의 태도가 처음부터 이런 식이었던 것은 아니다.
번화한 대도시에서의 삶을 누리고 싶다는 의사에 따라 아세인 공국에 좋은 저택을 구해주었을 때만 해도, 소년은 성황의 원조를 내심 달갑게 여기는 듯 보였으니까.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기회를 십분 활용했다. 번듯한 옷과 좋은 음식 그리고 기본적인 교육이 제공되자, 지저분하던 시골 소년이 귀티 나는 귀공자의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그 예쁘장한 외모와 비상한 머리를 보고, 과연 그 사람의 자식은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하던 때도 있었지.
물론 소년과 우연히 시선을 마주칠 때면, 간혹 그 끝도 없이 어두운 삼백안이 대단히 섬뜩하게 느껴지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21호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 또한, 그저 부모의 보살핌 없이 험하게 자란 탓이려니 여겼을 뿐.
오히려 이상한 것은 당시 성황의 태도였다. 소년을 돌보는 길드원들은 물론이거니와, 저택을 자주 오가는 21호에게도 과하다 싶을 정도로 신신당부를 했던 것이다.
-가급적 아이를 사무적으로 대하도록. 쓸데없는 감정을 내비쳐 괜한 주의를 끌 필요는 없다. 무엇보다도 절대로, 저 아이와 섣불리 신체 접촉을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네. 알겠나?
그때만 해도 21호는 성황의 조바심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보기에 카이엔은 그저 못 배워먹은 애새끼일 뿐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버릇없이 굴고, 이따금 날 선 기세를 흘리기도 하는 거겠지.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약속 시간에 호문클루스의 몸으로 들어온 성황이, 일순 심각한 표정이 되더니 카이엔을 불러 호되게 야단치기 시작했다.
“카이엔. 기어이 내 당부를 어겼구나. 왜 그런 짓을 했느냐?”
모두가 의아해했다. 그들이 보기에 소년은 하루 종일 얌전히 일과를 따르는 듯했으니까.
그런데 성황은 이에 그치지 않고, 몸소 회초리를 들어 아이를 매섭게 다그치는 것이 아닌가!
“내 누누이 강조했느니라. 절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그럼에도 이를 어겼으니, 이제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 하지 않겠느냐?”
갑작스러운 사태에 모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한데 더욱 신기한 것은 카이엔의 태도였다. 그는 뭔가를 알고 있는 듯, 성황을 향해 이렇게 항변했던 것이다.
“그냥 좀 입이 심심했을 뿐이야. 난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다고! 거기다가 봐봐. 난 그에게 별다른 해를 끼치지는 않았어. 아부지의 말을 어기지 않았단 말이야!”
“해를 끼치지 않았다니, 사람의 머리카락이 죄다 사라졌지 않느냐! 그런데도 내 눈을 피할 수 있을 줄 알았느냐?”
“아니, 팔다리가 아니라 머리카락도 문제야? 그거 좀 없어지면 뭐 어때? 살아가는 데 무슨 대수라고?”
그때만 해도 21호는 부자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성황이 아이를 몇 대인가 체벌하고, 길드원 하나를 황급히 다른 업무로 돌렸을 때만 해도 그랬다.
‘……?’
하지만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21호는 뭔가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부서를 이동한 그 길드원이,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하나둘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이마가 눈에 띄게 시원해졌던 것이다.
이대로라면 조만간, 그는 완전한 대머리가 될 것이 분명했다.
-아니, 팔다리가 아니라 머리카락도 문제야? 그거 좀 없어지면 뭐 어때?
문득 카이엔의 항변을 떠올린 21호는 조용히 식은땀을 흘렸다.
그때가 되어서야, 그는 성황이 왜 그렇게나 사람들을 엄중히 단속했는지 알 수 있었다.
‘…뭔가가 있다! 카이엔에게는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보이고, 또 그걸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어쨌거나 이후로도 그런 식의 자잘한 사고는 계속되었다. 아무래도 어린 사내아이다 보니, 아무리 주의를 준다 한들 매사 얌전하게만 지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카이엔은 때때로 또래 아이들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고, 혹은 눈치를 보며 길드원들의 보이지 않는 뭔가를 뜯어내기도(?) 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성황은 어김없이 매를 들었다. 당연히 그를 향한 카이엔의 반감도 점점 심해져 갔다.
“도대체 아부지가 낮에 있었던 일을 어떻게 모조리 아는 거야? 감시하는 놈들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는데! 혹시 그냥 막 넘겨짚는 거 아니야?”
“말했지 않느냐? 카이엔, 내 눈을 속일 수는 없다.”
그런데 그 와중에 신기한 점은, 성황이 아이를 엄중히 단속함에도, 그에게 별다른 훈계나 설교를 시도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그저 아이의 행동에 따르는 피해만을 철저히 따지고, 다른 사람을 상하게 한 만큼 똑같이 체벌하는 방법을 고수했을 뿐이다.
물론 카이엔의 성질머리가, 이것을 순순히 받아들일 리가 없었지만.
“이씨. 왜 때려!”
“지금까지 계속 말해왔지 않느냐. 네 모든 행동에는 언제나 대가가 따른다고.”
“하지만 내가 뜯어먹은 건 다른 사람의 손가락이란 말이야! 근데 아부지가 대체 무슨 권리로 날 때리냐고!”
“나는 네 아비다, 카이엔. 너를 제대로 단속할 의무가 있단다. 그렇다고 내가 네 영혼을 똑같이 뜯어낼 수는 없지 않느냐. 진정 그것을 바라더냐?”
그러면 카이엔은 매서운 삼백안에 원망을 가득 담아 성황을 노려보곤 했다.
“우씨! 아부지 따위 평생 만나지 않는 쪽이 좋았어! 당신 정말 최악이라고!”
“글쎄, 어떨까. 내가 두 눈을 멀쩡히 뜨고 있는 한, 평생 나를 피해 숨어 지낼 수는 없었을 것이니라. 그러니 이만 포기하고 순순히 말을 듣거라.”
“젠장!”
그런데 21호가 아무래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아이가 저지르는 사소한 잘못들이, 정말로 그렇게나 고치기가 어려운 것들인가?
카이엔은 또래보다 머리도 비상하거니와, 굳이 타인과 부딪힐 필요 없이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었다.
한데 왜 잊을 만하면 남에게 시비를 걸고, 괜한 문제를 일으켜서 성황이 매를 들도록 만드는가.
‘…혹여 일부러 폐하의 체벌을 유도하는 건… 설마, 그건 아니겠지?’
아마도 그 무렵이었을 것이다. 성황의 체벌 방침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 것은.
그는 점점 카이엔에게 직접 매를 드는 대신, 잘못한 만큼 시간을 매겨 방에 가둬두거나, 아니면 아예 일정 시간 동안 외출 금지를 명하기 시작했다.
21호가 이를 의아해하자, 성황은 나직하게 한숨을 쉬더니 짧게 답해 주었다.
“카이엔이 스스로를 이용해 내게 복수를 하고 있기 때문이네.”
“…네?”
“아마도 자신이 받는 체벌보다, 내게 입히는 피해가 훨씬 크다고 생각하고 있을 테지. 벌을 받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내게 벌을 주고 있다 여기는 거네. 그러니 이 방법으로는 절대로 말썽을 멈추려 들지 않을 거야.”
당시에 21호는 성황의 말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참으로 신기하게도, 체벌 대신 방에 갇히는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카이엔의 말썽은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했다.
‘정말로 폐하에게 벌을 주려 했다고……?’
사실이야 어찌 됐건, 그로부터 한동안은 그들 사이에 평화가 찾아오는 듯했다.
그렇다고 카이엔이 성황에 대한 반항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타인을 향한 말썽이 줄어드는 대신, 성황을 겨냥한 직접적인 비난과 반발이 도를 더해갔으니까.
그러다가 이 똑똑한 아이는, 점점 성황을 상대하는 방법에 대해 감을 잡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건 불공평해! 지금까지 날 찾지 않은 건 아부지라고! 근데 왜 이제 와서 날 간섭하지 못해 안달인 거야?”
“번번이 일렀느니라. 네 영혼은 이미 임계점에 달해 있다고. 이 이상 죄를 짓거나 포식을 시도하면, 네 영혼이 어찌 될지 나도 더 이상 장담할 수 없느니라.”
“그럼 그건 전부 아부지 탓이잖아!”
“……!”
“내가 영혼을 보는 것도 다 아부지를 닮아서 그런 거잖아! 내 영혼이 이 꼴이 난 것도 전부 아부지 때문이고! 그런데 왜 내가 당신 대신 그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그건 너무 불합리하잖아!”
“…….”
그날 처음으로, 성황은 카이엔을 향해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21호는, 그 순간 기민하게 번뜩이던 새까만 삼백안을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다.
그날 이후, 카이엔은 서서히 자신의 공격성을 성황을 향해 직접적으로 표출하기 시작했다.
-절대 다른 사람에게 먼저 해를 끼치지 말거라.
성황이 아이에게 제시한 단 하나의 규칙.
하지만 성황이 임하고 있는 호문클루스는 일단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들 부자 사이에서 먼저 잘못을 저지른 것은 다름 아닌 성황이었다.
그의 규칙을 벗어나는 단 하나의 대상.
참으로 잔인하게도, 아이는 그 사실을 금세 알아차리고 만 것이다.
* * *
“휴우…….”
“21호 씨. 무슨 일 있습니까? 갑자기 웬 한숨이에요?”
길드의 아세인 지부.
오늘도 카이엔의 저택으로 향하기 전 잠시 그곳에 들렀던 21호는, 멀리서 다가오는 아슬란을 발견하고 반색을 했다.
“오랜만이다, 아슬란. 어떠냐? 요즘 검술 훈련은 잘하고 있고?”
“하하. 글쎄요. 잘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열심히 하고는 있죠.”
아슬란이 배시시 미소를 지으며 곁으로 다가온다.
내년 황궁 기사 시험을 목표로 훈련에 매진하고 있는 이 소년은, 알면 알수록 참 착하고 싹싹한 녀석이었다.
첫 만남이 대단히 각별했던 것도 있고 해서, 그다지 붙임성 없는 21호도 어느새 소년에게 조금씩 정을 붙여가는 중이었다.
“그새 키가 많이 자랐구나? 곧 나랑 비슷해지겠어.”
“길드에서 워낙 잘해주시는 덕분이죠. 매일 맛있는 밥을 먹고 있어요.”
“그래. 저스틴 지부장님이 검은 잘 가르쳐 주시고?”
“어, 음…….”
지부장의 이야기가 나오자. 아슬란은 난처한 듯 슬쩍 시선을 피했다.
“그분은 요즘 지부에 통 붙어있질 않으세요. 아마 많이 바쁘신 모양이죠.”
“그래?”
“하지만 참으로 감사하게도, 저보고 천부적인 자질이 있다고 해 주셨어요. 그래서 저한테는 스승의 가르침보다는, 혼자서 하는 훈련이 더 중요할 거라 하시더라고요. 천재는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 거라나?”
“저런…….”
그래. 그놈의 놈팽이 지부장이 어쩐 일로 순순히 검술 선생을 자처하나 했다.
최근에는 황도의 의상실에도 통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 같던데, 대체 그 인간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 거지?
“그런데, 저…….”
21호가 인상을 쓰며 생각에 잠겨 있는데, 그의 눈치를 살피던 아슬란이 슬며시 입을 열었다.
“바트…….”
“응?”
“아니, 폐하께서는 요즘 어찌 지내시는지…….”
21호가 빤히 바라보자, 이내 말꼬리를 흐린 아슬란이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인다.
“그분을 못 뵌 지도 제법 오래 된 거 같아서요.”
“…그래.”
그 사람이 그렇게나 좋은 걸까.’
얼굴을 마주한 건 고작 수일간에 불과할 텐데, 그 사람이 어지간히도 소년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모양이었다.
하긴. 세상 기댈 곳 하나 없는 아이에게 처음으로 생긴 보호자란 것이 어떤 의미가 되는지, 그 누구보다도 21호 스스로가 잘 알고 있지 않았던가.
“꼬박꼬박 네 안부를 물으시지. 네 성취에 대해서도 매번 폴라 씨로부터 보고를 받고 계신다 들었다.”
“그, 그래요? 그럼 실망시켜드리지 않도록 더 열심히 해야겠네요!”
원하던 대답이었는지, 소년의 얼굴이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환하게 빛난다. 성황의 사소한 관심에도 진심으로 기뻐하고, 또 이에 보답하고자 하는 모습.
21호는 씁쓸하게 생각했다.
‘어디의 누군가와는 완전히 다르단 말이지…….’
카이엔이 아니라, 차라리 이 소년이 폐하의 아이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무래도 그런 생각이 드는 것만은 어쩔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