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330)
성황의 아이들-330화(330/469)
330. 21호의 나날 (6)
“이건 자네의 탓은 아니네. 어디까지나 카이엔의 말썽을 경계하고 단속했을 뿐인 것을, 멋대로 자신을 향한 적의라 단정 지은 그 아이의 문제이지.”
성황이 위로하듯 덧붙였지만, 21호는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자신의 존재가 필요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건만, 오히려 카이엔의 칼날을 성황을 향해 돌리는 구실이 되었다니.
“저는… 그럼 저는 어떻게…….”
“이곳의 일은 아세인 지부에 맡기고, 자네는 지금이라도 황도로 돌아가게.”
“……!”
절대 그럴 수는 없다!
저 미친 자식과 성황을 단둘이 남겨 둔다고?!
21호는 고집스럽게 입을 꾹 다물었다. 하지만 그 역시도 내심은, 그 외에 다른 방법이 없음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었다.
결국 카이엔을 어찌할 수는 없으니, 그가 말썽을 피우는 원인이 사라지는 것이 옳으리라.
체벌이 줄어들자 말썽도 줄어들었듯, 그렇게 자신의 아버지에게 독을 먹이는 일이 자연히 줄어들기를 바라면서.
“폐하, 저는…….”
그럼에도 21호가 망설이자. 그런 그를 잠시 내려다보던 성황이 말투를 바꾸어 나직하게 명령했다.
“엔리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것은 네 탓이 아니며 네가 걱정할 일도 아니다. 그러니 이만 황도로 돌아가거라.”
성황은 매번 이런 식이었다. 21호가 정식으로 암살자 일을 시작한 후, 처음에는 그를 다른 길드원들과 마찬가지로 대하는 듯 보였지.
그러나 때때로 방심하거나 급한 일이 생길 때면, 대번에 어린 시절 키케를 어르고 타이르던 때의 말투가 튀어나왔다.
처음에는 워낙 함께 한 시간이 길어서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되고 보니 뼈저리게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성황에게 있어 21호는 어엿한 정보원이 아닌, 여전히 돌봐줘야 할 애송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21호는 완전히 체념했다.
“명을 따르죠. 황도로 돌아가 기다리겠습니다. 그러나 폐하, 이대로라면 당신은…….”
몸을 일으키고도 차마 발을 떼지 못하는 21호를 향해, 성황이 안심시키듯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카이엔의 일은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너도 짐작하고 있지 않느냐? 결국 이 끝은 정해져 있다는 것을.”
“……!”
“내가 끝내 카이엔을 감당할 수 없게 된다면, 적어도 저 아이를 위해 아비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하겠지. 그럴 각오는 되어 있느니라.”
21호의 눈이 잘게 떨렸다.
사실 이 저택에 올 때마다, 그는 매번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당신을 괴롭히는 저 미친놈을 당장이라도 베어버렸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카이엔이 느꼈다는 적의의 정체는 그것이었을지도 모르지.
그러나 막상 성황의 입에서 기다리던 말이 튀어나오자, 그 참담함의 무게에 짓눌려 당장이라도 질식할 것만 같았다.
“폐하. 그것은…….”
일그러진 얼굴로 말을 더듬는 21호를 향해, 성황이 미약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마치 예전에 어린 키케가 틀린 답을 했을 때, 그가 늘 보여주던 위태로운 미소를 닮은 표정이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인 것을. 세상의 인과는 언제나 그런 식으로 흘러가곤 한단다. 그러니 네가 저 아이의 미래를 그리 슬퍼할 필요는 없느니라.”
* * *
21호가 그렇게 떠난 후.
어딘지 멍한 눈빛을 하고 있는 길드원들에게 둘러싸여, 부자는 조용히 식사 시간을 가졌다.
성황은 식기를 건드리지도 않고 그저 자리를 지켰을 뿐이지만,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카이엔은 더는 그에게 식사를 종용하지 않았다.
“결국 그놈은 그렇게 가 버렸네? 생각보다 오래 버티지 못했잖아? 재미없게…….”
어딘가 후련한 표정으로 소년이 입을 열자, 성황이 엄하게 주의를 준다.
“카이엔. 음식을 입에 넣고 말하는 것은 큰 결례가 된다.”
“어, 음. 알았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 카이엔이 열심히 음식물을 씹어 삼켰다.
우물우물, 꿀꺽.
“…그렇게까지 그를 몰아세울 필요가 있었더냐?”
이윽고 소년의 입이 완전히 비워지길 기다린 성황이 질문을 던진다.
그러자 카이엔은 미간을 와락 찌푸리며 불쾌한 듯 성황을 쏘아보았다.
“당연하지! 그 자식은 정말 건방져. 왜 하필이면 나 같은 게 아부지의 아들인지 모르겠다고, 맨날 날 보며 투덜거렸단 말이야!”
“…….”
설마 엔리케가 대놓고 그런 욕을 했을 리는 없었다. 단지 카이엔은 타인의 영혼이 내는 목소리를 쉽게 잡아내기에, 자신도 모르는 속내를 들키고 말았을 뿐이겠지.
“어디 그뿐이야? 내가 아부지를 괴롭히기 시작하니까, 그때부터는 날 잡아먹지 못해 그렇게 안달이었다고! 정신 나간 거 아냐? 아부지는 내 꺼지, 그놈 것은 아니잖아?!”
“내 신변을 지키는 것이 그의 임무이기에 그런 것이다.”
“뭐어? 웃기지 마! 그 자식의 영혼이 아부지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제대로 알기나 해?”
그렇게 소리친 카이엔은, 다시 생각해도 기분 나쁜지 대놓고 입을 삐죽거렸다.
“게다가 그 자식은 어쩐지 아슬란 놈을 닮았어! 예전 화전촌에서 사사건건 날 방해하던 그 성가신 놈 말이야.”
“…….”
“뻔질나게 들락거리면서 저택 여기저기를 휘저어 놓는다고! 거기다 실력은 또 쓸데없이 좋아서, 영혼을 건드리기도 쉽지 않고 말이지. 물론 내가 그럴 때마다 아부지가 나서서 막은 탓도 있지만…….”
거기까지 말하던 카이엔은, 새삼 뭔가를 깨달은 듯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아, 그래! 그러고 보니, 아부지가 유난히 옆에 끼고 도는 것도 어쩐지 아슬란이랑 비슷한 것 같고…….”
“…….”
“역시 그 자식 맘에 안 들어! 그냥 곱게 돌려보내는 게 아니었는데!”
성황은 별다른 대꾸 없이 식탁을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바로 자신의 앞에 버젓이 놓인 검은 독약 병을.
엔리케가 당장 치우라고 명령했지만, 그가 사라지자마자 고스란히 식탁 위로 되돌아와 있었다. 이미 저택 내 길드원들 대부분이 카이엔의 명을 따르게 되었다는 증거다.
“그쯤 했으면 됐다. 아마도 큰 상처가 되었을 테니, 이제 그에 대해서는 그만 잊어버리는 것이 어떠냐.”
그러자, 피식-
입가심으로 음료를 들이켜던 카이엔이 비소를 흘렸다.
“잠깐만? 상처라니. 아부지가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 그놈 앞에서 순순히 내가 주는 독을 먹은 건 아부지잖아?”
“…….”
“아니, 아니지. 그 자식을 이곳에서 완전히 빼돌릴 구실이 필요했던 건가?”
그렇게 중얼거린 카이엔은, 가만히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어려워. 아부지는 참 알 것 같으면서도 어렵단 말이지. 뭔가를 할 때마다 목적이 한 가지가 아니라서, 나도 종종 헷갈린단 말이야.”
“아부지의 영혼은 분명 내게 속죄하고 싶다고 해. 그리고 내 영혼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말하지. 영혼은 절대 거짓을 말하지 않으니까, 단지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동시에 그 건방진 놈을 지키려고도 하는구나? 내가 빨리 흥미를 잃도록 일부러 놈을 괴롭히는데 기꺼이 동참한 거야. 그리고 적당한 시기가 됐다고 판단하자마자 놈을 저 멀리 빼돌려 버린 거지. 어때? 내 말이 틀려?”
성황은 애써 부정하지 않았다. 그것은 피차 마찬가지였으니까.
카이엔 역시 뭔가를 할 때마다 여러 가지 목적을 단번에 관철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소년은 성황을 몹시도 괴롭히고 싶어 했고, 그가 식사를, 무엇보다도 독을 극도로 싫어한다는 것을 금세 알아챘다. 동시에 엔리케를 못살게 굴어 저 멀리 내쫓아버리기를 바랐지.
엔리케가 싫은 것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길드원들을 제 입맛대로 굴리는 데 방해가 된 탓이 컸을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표현 방식만이 다를 뿐, 이들 부자의 사고방식은 결국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었던 것이다.
달그락.
성황은 한 손으로 검은 병을 집어 들며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그가 이 자리에 있고 없고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듯 보이는구나. 우리에게 남아있는 ‘문제’는 여전하고, 그 ‘치료’ 역시 임시방편이기는 하나 효과가 있으니 말이다.”
“그건 그렇지.”
“그럼 어쩌겠느냐? 오늘 먹어야 할 것은 이것이 다인 게냐?”
그러자 카이엔은 조금 뜸을 들이더니, 이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뭐, 오늘은 됐어. 어째 그 자식이 사라지고 나니 별로 내키지는 않네? 아부지도 전처럼 슬퍼하지는 않는 거 같아서 이제는 재미없어.”
“…….”
“어차피 내가 먹어달라고 하면, 아부지는 언제든 그렇게 해 줄 거잖아. 그렇지?”
그렇게 물어온 카이엔이, 대답을 듣지도 않고 자신만만하게 입꼬리를 올린다. 사람 사이의 정을 모르는 아이의 웃음이 그리도 살가워 보이는 것은 참으로 기이한 일이었다.
“그래. 아부지는 나한테 그렇게 해 줘야지. 나에게서 하나뿐인 엄마, 마르타를 뺏어갔잖아?”
“그 여인의 영혼은 무사히 안식에 들었다. 내가 빼앗은 것이 아니란다. 이제는 누구도 그녀의 영혼을 가지거나, 휴식을 방해하지 못하게 되었을 뿐이다.”
“…뭐야, 그게?”
카이엔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식?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
“적어도 그녀의 영혼에게는 큰 의미가 있지.”
“말도 안 돼! 마르타는 내 엄마지, 아부지의 엄마가 아니야. 그녀는 죽어서 완전한 내 것이 되어야 했다고! 그런데 왜 아부지 멋대로 그녀의 영혼을 처분하는 거야? 아부지는 그럴 권리가 없어!”
누군가의 영혼을 소유할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
하지만 그렇게 설교하는 대신, 성황은 씨근덕거리는 아이를 달래듯 입을 열었다.
“그래. 오늘은 독이 필요하지 않다는 말이구나. 그럼 이제 내가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느냐?”
그러자 카이엔은 새까만 삼백안으로 가만히 성황을 쏘아보더니, 못이기는 척 대답을 내뱉었다.
“오늘은 그냥 체스나 두다가 가든지.”
“체스라. 일전에는 그다지 재미없다고 하지 않았더냐?”
“음. 그건 그런데…….”
말끝을 흐린 카이엔이, 곧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성미 고약한 미소를 흘렸다.
“아부지의 영혼이 질색하는 모습을 보는 건 꽤 재미있어서 말이야. 게임의 승패를 떠나, 게임을 한다는 사실 자체로도 이미 내가 이긴 거나 다름없지 않겠어?”
“…….”
* * *
황궁의 집무실.
정오가 되어, 언제나처럼 다과를 준비하려던 수석 시종장은 갑작스러운 성황의 제지를 받았다.
“기다리게, 루이스.”
“예, 폐하.”
“…….”
공손히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노인을 바라보며, 성황은 잠시 침묵했다.
음식을 입에 대지도 않는 자신을 위해, 매일같이 온 힘을 다해 최상의 멜보른을 올리는 자다. 그 정성이 갸륵하여 어지간해서는 외면하지 않으려 했으나.
‘역시 내키지 않는군.’
솔직히 말하면 최근에는 음료든 음식이든, 입에 들어가는 것은 그 무엇이 되었든 거들떠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쳐다보기만 해도 코에서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그래서 그리 말하려 했다.
“루이스, 당분간 차는…….”
멀리서 쏜살같이 달려오는, 익숙한 기척을 느끼지만 않았다면 말이지.
아아, 그러고 보니, 저 아이는 멜보른을 꽤나 좋아했던가.
“아니, 잊어버리게. 오늘은 차를 한 잔 더 준비해 주겠나?”
“예. 그리하겠습니다, 폐하.”
그렇게 루이스가 집무실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다다다다!
아니나 다를까, 달리다시피 빠른 걸음으로 누군가가 집무실을 향해 다가온다. 언제나 사건‧사고를 몰고 다니는 그의 철부지 아들이었다.
“아버지!”
벌컥!
자신만만하게 문을 열어젖힌 아이는, 한 손에 들고 있던 작은 상자 하나를 들이밀며 성큼성큼 그에게로 다가왔다.
“이것 좀 보십시오! 이게 뭔지 아십니까?”
힐긋 내려다보니, 고급스럽게 포장된 작은 식기가 눈에 들어온다.
“꼭 도시락처럼 보이는구나.”
“네, 맞습니다. 오늘 드디어 황도에 참연어 전문점이 개점했거든요! 무려 베르트란 & 리의 역사적인 첫 사업입니다!”
그래. 생각해 보니 그런 기획안이 있었지.
아무래도 수익성이 없어 진행에 어려움이 크리라 예상했건만. 내키는 일에만 추진력이 뛰어난 이 아이가, 기어이 참연어 유통 경로를 뚫어낸 모양이었다.
“그래, 장하구나. 고생했다.”
“하하, 별말씀을요. 근데 그거 아십니까? 벌써부터 우리 식당이 황도에서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예약 손님이 줄에 줄을 선다고요! 물론 며칠 전부터 대대적으로 광고 현수막을 쫙 깔아 놓은 덕이지만요!”
이어진 아들의 설명은 대략 이러했다.
-최첨단 저온 마차가 주는 신선함을 만끽하세요. 오르토나 현지인도 인정한 싱싱한 참연어! 성황 폐하께서도 극찬하신 바로 그 맛! 요리가 친절하고, 종업원이 맛있어요!
아이가 주억거리는 광고 문구들을 듣고 있자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맛을 극찬했다는 그 ‘성황 폐하’께서는 아직 시식하기도 전이 아닌가.
그 점을 지적했더니, 아들은 태평하게 웃으며 손수 도시락의 포장을 벗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개점하자마자 제일 먼저 아버지 것을 포장해 왔습니다. 아직 식사 전이시죠?”
“…….”
“자, 어서 한번 드셔 보세요.”
이내 작은 상자 안에 정갈하게 놓인 참연어 스테이크가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성황은 마음 편히 그것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뭔가를 먹는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당장이라도 질식할 것 같은 구역감이 밀려왔던 것이다.
‘하지만…….’
아들놈이 잔뜩 상기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다. 저 천진한 기대감을, 자신의 변변찮은 사정으로 무참히 박살 낼 수는 없지 않은가.
아이가 조금의 구역감도 눈치채지 않기를 바라며, 성황은 천천히 참연어 한 점을 입에 넣었다.
“……!”
그와 동시에 요리에 남은 온갖 잔류 상념들이 머릿속으로 밀려들었다.
-제국에서 참연어를 사준다고? 키프로스 놈들처럼 가격을 후려치치도 않고?
-그래. 조국의 원수면 어떤가? 어쨌든 이것으로 가족이 먹고 살 수 있다면, 참연어든 뭐든 팔지 않을 이유가 없지.
-메에에! 그만 돌아옵메에에! 어서 합체를 풀지 않으면 내용물이 죄다 흐트러진단 말입메메메!
한데 그 정신없는 상념들 어디에서도, 그가 이제껏 음식을 통해 받아왔던 진득한 살의는 느껴지지 않았다.
-가장 싱싱하고 좋은 부위로 줘! 지금 바로 황궁에 가져갈 거야!
-이걸 어떻게 요리할까요, 저하?
-자네가 제일 자신 있는 메뉴가 뭐지? 우선 기본적이면서도 맛있는 간판 메뉴부터 시작하자고!
놀랍게도 요리하는 과정에서 전해져오는 여러 상념들에서도, 지독한 피비린내를 연상시키는 것은 조금도 없었다.
-드디어 이날이 오는구나! 한때는 포기해야 하나 생각했는데 말이야.
그리고 아들이 이것을 집무실까지 들고 오며 느꼈던 감정은, 오로지 커다란 기쁨과 성취감, 그것뿐이었다.
그런 여러 가지 상념에서 겨우 헤어 나오자, 입안에서 느껴지는 것은 그저 바삭하게 구워진 겉면과 부드럽게 씹히는 고소한 속살 뿐.
구역감 따위는 없었다.
“…맛있구나.”
절로 흘러나온 그의 말에, 아들놈이 해사하게 웃어 보였다.
“하하, 역시 그럴 줄 알았습니다! 이게 아버지 입맛에 딱 맞을 줄 알았다니까요!”
“그래.”
놀라울 정도로 입에 잘 맞았다. 아주 오래 전, 그가 자유롭게 대륙 각지를 떠돌며 맛보았던 음식들처럼.
그렇게 묘한 감동에 젖어 또 다른 한 점을 음미하고 있자니, 아들놈이 직접 소스를 덜어주며 말을 이었다.
“앞으로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내일은 더 대단한 걸 들고 올 테니까요! 무려 키프로스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참연어 요리 전문가를 초빙했거든요?”
곧이어 갖은 구이와 조림, 그리고 훈제 필렛으로 할 수 있는 온갖 요리들이 아들의 입에서 줄줄이 흘러나왔다. 한때 참연어 좀 먹어봤다 자부하는 성황조차도, 그 다양한 메뉴에 어질어질해질 정도.
한데 그렇게 한참을 조잘조잘 자랑하던 아들놈이, 잘난 척하며 엄청난 소리를 내뱉는 게 아닌가!
“하하, 어쨌거나 이제 아버지도 맛을 한번 보셨으니, 발레리 경도 더는 잔소리를 못하겠죠?”
“…발레리 경.”
“네. 마물 전담반의 그 날라리 인퀴지터 말입니다. 글쎄 신의 대리자이신 성황 폐하를 가지고, 사실이 아닌 광고를 하는 것도 ‘배교’이자 ‘신성모독’이라면서 어찌나 떽떽거렸는지 말입니다. 하루 종일 시끄러워서 죽는 줄 알았지 뭡니까?”
“……!”
“그놈의 입을 막느라 참연어 한 조각을 처넣어 주고 오긴 했는데, 아무래도 재료가 아까워서요. 제대로 1인분 값은 받아야겠습니다.”
성황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발레리 경이라니, 당장 종교 재판에 회부되지 않은 것이 용할 정도였다.
무려 ‘신의 대리자’의 말씀을 멋대로 날조한 것이다. 이단재판부의 숨은 실세 앞에서 잘도 그런 짓을 했구나, 아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