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332)
성황의 아이들-332화(332/469)
332. 살롱 (2)
그날 일찌감치 마물 전담반 일을 끝낸 성진은, 이른 점심시간이 되어 참연어 전문점에 들렀다. 직접 본궁에 가져갈 요리를 포장하기 위해서였다.
-베르트란 & 리 참연어 전문점
데스테 거리에서도 가장 번화한 곳에 개점한 이 요리점은, 그리 규모가 크지 않음에도 벌써부터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는 중이었다.
예약 손님을 상대로 고급 요리를 내오는 2층은 점심부터 이미 만석이다.
“세상에! 스카르차피노가 분들이 오셨어! 인사라도 드리도록 어서 지배인님께 말씀드려!”
“지금 너무 바쁘셔요! 저쪽 테이블에는 추기경께서 두 분이나 앉아 계신다고요!”
작정하고 이윤을 남기려 만든 고급 섹션이었지만, 그럼에도 종전의 가격에 비해 대단히 저렴한 것만은 사실. 황도 인사들이 대거 몰려들 수밖에 없었다.
1층의 상태는 더욱 심각했다.
“우리는 대체 언제까지 줄을 서야 하는 거요?”
품질이 조금 떨어지는 부위를 모아 가성비 좋은 요리를 판매하는 덕에, 손님들의 줄이 식당 밖으로 밀려나다 못해, 아예 거리 한 편을 빼곡하게 메우는 중이었으니까.
어디 그뿐인가.
-성황 폐하께서도 인정하신 바로 그 맛!
발레리 경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내걸린 현수막 아래, 많은 황도 시민들이 몰려들어 웅성거리고 있었다.
-참연어? 듣자 하니 그냥 생선 같은데, 1인분이 그렇게도 비싸단 말인가?
-이 사람, 모르는 소리! 저 요리점이 아니었다면, 어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참연어를 평생 구경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나? 본래라면 좋은 날 귀족님들이나 한 번씩 입에 넣을 수 있는 귀한 요리라고!
-아하! 그래서 사람들이 저렇게들 줄을 서고 있구먼.
-그렇다니까! 무려 은보다 비싼 참연어를, 우리 모레스 황자님께서 황도 신민들을 위해 싼값에 팔아주시는 거라네!
제법 넉넉하게 들여왔다 생각했지만, 이 속도면 조만간 참연어 물량이 동이 나는 게 아닌가 걱정해야 할 판이다.
‘무난하게 본전만 치자고 생각했는데, 이거 어쩌면 효자 사업이 될지도 모르겠는데?’
성진은 흐뭇하게 생각했다.
‘슈미트 지부장에게 언질을 줘야겠군. 한동안 저온 마차를 참연어로만 꽉꽉 채워 오라고 말이야.’
이 열기가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모르겠지만, 이왕 물이 들어오고 있으니 제대로 노를 저어야 할 게 아닌가.
어서 투자금을 회수해서 조만간 다른 사업에도 투자를 해야 하고 말이지.
“저하께서 굳이 직접 가지러 오실 필요가 있으십니까? 원하시면 매일 종업원을 시켜 요리를 황궁으로 보내겠습니다.”
주방장이 손수 도시락을 준비하며 말했다. 이번에는 각종 야채와 향신료를 넣어 촉촉하게 찐 참연어찜 요리였다.
“아니면 레시피를 드릴 테니, 차라리 황궁 사람들이 직접 요리하는 것도 좋겠지요. 아무래도 가는 동안 식어버리면, 처음 내왔을 때보다는 맛이 떨어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일리 있는 말이었다.
성진 역시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했었지. 이번에 들여온 좋은 참연어들은, 최우선적으로 황궁 냉장고에 잔뜩 채워두기도 했고.
하지만 막상 그것들을 식탁에 올리라고 지시했을 때, 생각 외로 아버지는 거의 요리에 손을 대지 않았다고 들었다.
‘하지만 내가 포장해서 들고 가면, 같은 요리라도 잘 드시잖아?’
어제 점심으로 가져간 참연어 그라브락스 샐러드는 또 말끔히 비우셨단 말이야.
어쩌면 이건 편식의 문제가 아닐지도 몰랐다. 혹시 아버지는 본궁에서 만드는 요리 자체가 싫으신 걸까?
‘다음에는 참연어가 아니라, 다른 요리들도 한 번씩 포장해 가 볼까?’
꽤 괜찮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든다. 어디 사람이 매번 생선만 먹고 살 수 있나.
마음을 굳힌 성진이 주방장에게 말했다.
“일단 한동안은 이대로 포장해 주게. 어쩐지 내가 직접 들고 가면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것 같아.”
그러자 키프로스 출신의 주방장은 대단히 감동받은 얼굴을 했다.
“성황 폐하를 위하시는 황자님의 그 아름다운 마음씨에 어찌 감읍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폐하께오서도 분명 이를 잘 알고 계시기에, 저하의 도시락을 그리 기꺼워하시는 것이겠지요?”
소인, 미흡한 실력이나마 앞으로도 열과 성을 다해 요리를 만들겠습니다!
주방장은 그렇게 외치며 도시락 포장에 열을 올렸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는 언제쯤 황도로 돌아오시려나?’
포장을 기다리며, 문득 성진은 아세인 공국으로 떠나 돌아올 생각도 하지 않는 리자베스 황비를 떠올렸다.
생각해 보면 성진이 처음 참연어를 먹었던 날이, 마침 그녀도 함께했던 황궁 정찬 자리가 아니었던가.
‘적어도 식당이 개점할 때쯤에는 돌아오실 줄 알았는데…….’
아세인 공국은 완전한 내륙에 위치해있으니, 황도보다 참연어가 더 귀할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도시락을 여기서 아세인 공국까지 배달시킬 수도 없고 말이지.
‘물론 내가 가져다 드린다고 해서, 어머니가 기쁘게 받으실지도 의문이지만.’
성진이 짐작하지 못하는 모종의 이유로, 그녀와의 사이는 이미 완전히 틀어진 듯 보였다.
하지만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싶어도, 이전의 기억이 없는 그로서는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하는지 막막하기만 한 것이다.
-모레스! 아가! 엄마를 알아보겠니?
그럼에도 성진은 이곳에서 처음 눈을 떴던 순간, 눈물을 글썽이던 그 얼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네가 이렇게 건강히 일어나 준 것만으로도 어미는 기쁘기 그지없단다.
황비가 마주 잡아왔던 그 손의 온기 역시 아직은 기억에 생생했다.
그리고 이렇듯, 황궁 식구들과 뭔가를 나눌 일이 생기면, 때때로 ‘리자베스 황비 역시 함께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곤 하는 것이다.
* * *
다다다다다!
도시락을 들고 한달음에 집무실로 달려갔더니, 마침 카트리나 단장과 프란시스가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모레스 황자님을 뵙습니다.”
카트리나는 대단히 절도 있는 동작으로 예를 갖춰 보였다.
성 아우렐리온 기사단의 단장인 그녀는, 성황의 오른팔로서 여러 가지 업무를 담당하느라 매일같이 공사가 다망했다.
덕분에 ‘성황의 방패’라는 이명에도 불구하고, 그의 곁에서 진득하게 자리 지키는 모습을 보기가 의외로 힘든 사람이다.
“저하를 뵙습니다.”
뒤에 서 있던 프란시스 역시 떨떠름하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적당히 불경스러운 저 모습, 참으로 건방지기가 한결같은 부관이었다.
“아아, 그것이 소문에 자자한 참연어 요리군요.”
성진이 도시락을 성황의 책상 위에 올리자, 카트리나가 반색을 하며 물어왔다.
“맞아, 단장. 그대도 소문을 들었나?”
“예, 저하. 참으로 부끄럽습니다만, 휘하의 성기사들 대부분이 수련하는 것도 잊고, 그 새로 생긴 요리점 얘기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렇단 말이군.
신정일치하의 꽉 막힌 성직자들이다보니, 저온 마차라는 생소한 문물에 다소 거부감을 일으킬 줄 알았는데. 맛있는 음식 앞에서는 꼭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다.
“아쉽군. 그대들이 있을 줄 알았으면, 도시락을 조금 더 가져올걸 그랬지.”
그러자 카트리나가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그런 당치도 않은 말씀을! 어찌 감히 저하께 그런 수고를 끼친다는 말씀이십니까?”
“수고는 무슨. 아, 그래. 말 나온 김에 프란시스 경과 식당에 한번 들르게. 지배인에게 잘 대접하라 말해놓을 테니.”
“후후. 아닙니다. 말씀만으로도 황송합니다.”
그렇게 대답한 카트리나는, 책상에 있던 서류들을 모아 부관에게 넘기고는 성황에게 고개를 숙였다.
“하면, 적금에 관한 일은 하명하신 대로 진행하겠습니다.”
“그러지. 수고했네, 카트리나.”
“예. 폐하.”
하지만 그렇게 막상 자리를 뜰 줄 알았던 카트리나는, 성황의 옆에 자리 잡고 서서는 대단히 기대하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
프란시스 역시 안경을 추슬러 올리며, 날카로운 눈으로 힐끔힐끔 성황을 살핀다.
어디 그뿐인가. 시종장 루이스가 성진을 위해 다과를 들여오더니, 역시나 그대로 성황의 뒤에 조용히 자리를 잡는 게 아닌가!
‘어라? 이 사람들, 어쩐지…….’
어째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잠시 성황의 눈치를 보던 성진은, 묘한 열기가 느껴지는 침묵 속에서 조용히 참연어 도시락을 풀어 책상에 펼쳐 놓았다.
“…….”
그렇게 성진을 포함한 네 사람이 말똥말똥 지켜보는 대단히 부담스러운 분위기.
성황은 잠시 멈칫했지만, 다행히도 작게 한숨을 내쉬었을 뿐 크게 개의치는 않는 듯했다. 홀로 점잖게 식기를 움직이던 그는, 이내 조금 식은 찜 요리를 깨끗하게 비워냈다.
“요리사의 솜씨가 좋은 듯하구나.”
마침내 그의 입에서 맛에 대한 평가가 흘러나오자, 성황을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은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아아, 주신이시여…….”
카트리나 단장은 대단히 감격한 듯 가슴에 손을 올렸다.
“살다 보니 이런 날이 오기도 하는군요. 폐하께서 아직 모레스 황자님보다 어리던 시절, 창고에서 몰래 호두를 가져다 드린 이후로 황궁에서 뭔가를 제대로 드시는 모습은 단연코 처음 봅니다.”
성진이 눈을 깜박거렸다.
“…호두?”
“예. 당시 폐하께서는 음식이라면 죄다 경계하셨지요. 그래서 뭐든 드시게 하려고 제가 얼마나 진땀을 뺐는지 모릅니다.”
오랜 추억을 회상하듯, 카트리나의 눈동자에 푸근한 온기가 어렸다.
그러고 보니, 그녀는 아버지의 어린 시절부터 곁에서 쭉 보좌했다고 했던가.
“황도에서 구할 수 있는 먹거리란 먹거리는 죄다 찾아다녔습니다. 종국에는 호두까지 가져다드리며, 직접 까서 드시면 안전할 거라 말씀드렸더니, 겨우 손을 내미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날부터 간간이 황궁에 호두를 챙겨오는 것이 제 소소한 낙이 되었지요.”
“어…….”
잠깐만. 아버지가 젊은 날 애검으로 호두를 깨먹는 괴상한 버릇이 있었다더니, 이제 보니 그게 다 이 사람이 만든 습관인 건가!
“…카트리나.”
성황이 떨떠름하게 제지하자, 단장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자세를 바로했다.
“이런! 너무 기쁜 나머지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고 있었군요. 그럼 저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폐하. 모레스 황자님.”
척척척.
카트리나 단장은 대단히 절도 있는 걸음걸이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 뒷모습에서, 평소와 달리 묘하게 들떠있는 기색이 느껴졌기에 성진은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그럼 두 분, 말씀 나누십시오.”
고개를 푹 숙이며 찢어지는 입꼬리를 애써 감춘 루이스까지 물러나자, 성진은 의미심장한 눈으로 성황을 바라보았다.
아니, 아버지. 대체 어린 시절부터 얼마나 밥상머리 버릇이 대단했기에, 사람들이 다들 이런 반응입니까. 예?
“…모두 오해이니라, 모레스.”
“네? 저는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만?”
“…….”
* * *
참연어가 가져온 풍요로움은 진주궁의 점심 식사에서도 이어졌다. 요리사가 귀한 재료로 오랜만에 유감없이 솜씨를 발휘한 덕이다.
“참연어 요리가 이렇게 싱거울 수도 있다니…….”
“강한 염장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란다, 시슬레. 이게 모두 모레스가 도입한 저온 마차 덕분이지.”
“그래? 저온 마차란 정말로 대단하구나!”
덕분에 최근 뜸해질 기미가 보이던 점심 모임이 활발하게 재개되었다.
아멜리아 누님과 시슬레는 물론, 최근 이런저런 업무로 바쁘던 로건도 함께였다. 심지어는 황궁에 자주 들어오지 않는 헤르나와 가데스 쌍둥이까지!
“너희들은 어때? 참연어가 입에 좀 맞는 거 같아?”
뿌듯한 마음에 물었더니, 쌍둥이는 어쩐지 불퉁한 얼굴로 성진을 바라보았다. 뭔가 대단히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왜? 요리가 별로야?”
평소 과하다 싶을 정도로 들뜬 상태를 유지하는 녀석들이 아닌가. 그런데 오늘은 말수도 적고, 유난히 기운들이 없어 보였다.
성진이 의아해하고 있는데, 쌍둥이가 묘한 눈빛으로 그를 응시하더니 이내 푹 한숨을 내쉰다.
“지금 요리가 문제라고 생각해?”
“그래. 그딴 건 아무래도 좋아.”
그럼 뭐가 문젠데?
“모레스가 성질이 나쁜 건 진작 알고 있었지만 말이지…….”
“화나면 눈에 뵈는 게 없이 날뛰는 것도 익히 알았지만…….”
…응?
“뭐든 물불 가리지 않고 일단 달려드는 성미는 제발 고쳐.”
“덕분에 주위 사람들이 말리느라고 얼마나 힘든 줄 알아?”
“평소에는 그렇게나 인과를 철저히 따지더니 말이야.”
“막상 화가 나니 인과고 뭐고 아무 소용없다는 거지?”
성진은 대단히 당황했다.
“뭐?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들다니, 내가 언제 그랬다고…….”
그런데 쌍둥이는 그 항변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저들끼리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주억거리는 게 아닌가.
“하마터면 모레스 때문에 모조리 망칠 뻔 했잖아?”
“말리느라 고생한 걸 생각하면 아직도 뒷골이 쑤셔.”
“이제 다시는 그 애한테 가지 않을 거야. 절대로!”
“맞아. 또다시 그런 일이 생기면 어쩌란 말이야?”
“…….”
성진은 할 말을 잃었다.
영문을 알 수 없으니 뭔가 대단히 억울하긴 한데, 그래도 저 쌍둥이들이 아예 근거 없는 원망을 하는 것 같지는 않고.
‘대체 뭐지?’
기분 탓일까.
어쩐지 잔뜩 주사 부린 다음 날, 혼자 잊어버린 술주정뱅이가 된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