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338)
성황의 아이들-338화(338/469)
338. 사슴 사냥 (2)
“그나저나 도시락은 좀 어떠십니까? 입에 맞으십니까?”
오늘 다과상 위에는 새로운 요리가 올라와 있었다.
예전에 클로디아 경에게 추천받았던 플란도르식 정통 돼지고기 파이. 당시 꽤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어서 싸 왔지.
‘치즈를 곁들이는 게 좋다고 했었나?’
그렇게 사이드 메뉴까지 손수 풀어놓은 성진이, 조금 긴장하며 성황의 반응을 기다렸다.
참연어가 아닌 다른 음식을 준비한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매일매일 같은 것만 먹다 보면, 아무리 참연어를 좋아하는 아버지라도 금방 질리지 않겠어?
‘만약에 오늘도 도시락을 먹이는 데 성공한다면, 이제부터는 참연어 도시락 말고도 틈틈이 황도 맛집들을 돌아다니는 거야!’
다행히도 성황은 파이 접시를 천천히 비워냈다. 곰 고기는 썩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는데, 의외로 파이 속 돼지고기의 촉촉한 육즙은 마음에 드는 눈치.
좋아, 이건 입에 맞는구나! 기억해 두자.
‘근데 매일 맛집 요리만 먹어도 괜찮을까? 건강에는 그리 좋을 것 같지 않단 말이지. 내가 이 양반의 편식을 더더욱 부추기고 있다는 생각도 드는데…….’
잠시 이런 회의감이 밀려들었지만.
‘뭐, 아예 아무것도 안 먹는 것보다는 낫지. 게다가 강대한 신성력이 있어서 영양소 불균형 따위 크게 문제 되지 않는 양반이잖아.’
그러면 그냥 맛있는 걸 잘 먹는 게 최고 아니겠어?
일단 깨작거리는 밥상머리 버릇부터 고치자! 그리고 나중에 건강식으로 천천히 바꿔 가면 되는 거겠지.
성진은 속 편하게 생각하며, 따뜻한 멜보른을 홀짝거렸다.
“…바서스트 백작의 사냥 모임을 선택한 이유가 있더냐?”
달그락.
잠시 입을 다물고 식사를 마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성황이 식기를 내려놓으며 나직하게 질문을 던졌다.
“음, 이유요? 글쎄요.”
생각해 보면 딱히 큰 이유는 없었지. 그저 막스가 물고 온 서신이 유독 눈에 띄었을 뿐.
반짝이는 걸 유난히 좋아하는 막스가, 금박 사슴이 아로새겨진 초청장에 끌린 것이 분명했다.
“상주기사들이 그러더군요. 바서스트 백작령이 있는 황도 서남쪽은, 숲이 울창해서 사냥감이 꽤 풍부한 편이라고요. 사슴과 노루가 많고, 때때로 곰이나 멧돼지도 출몰한다고 하더군요.”
여러 가지 동물을 잡을 수 있으면 좋잖아? 고기도 다양하게 맛볼 수 있고.
운이 좋으면 마왕 놈이 좋아하는 곰 고기도 확보하는 거다. 지그스문트령에서 가져온 것들은 이미 바닥난 지 오래니까.
“하면 며칠간 황도를 벗어나야 하겠구나.”
“네, 아마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그래.”
사냥 모임은 주최자의 영지에서 수일에 걸쳐 이뤄진다. 그렇다 보니 아예 천막을 치고 사냥터 근처에서 숙박한다고 하던데.
성진은 나름 기대하는 중이었다. 이세계에 와서, 팔자에도 없는 캠핑 감성을 느껴볼 수 있다니!
‘지구에 있을 때는, 뭐 그런 귀찮은 일에 시간과 노력을 쏟나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입장이 완전히 달랐다. 나는 황자잖아?
아마도 천막 치기나 요리하기 같은 잡다한 일들은, 에디스나 상주기사들이 알아서 다 해주겠지, 뭐.
‘난 그냥 막스와 놀면서 여유를 즐기고, 틈날 때마다 명상이나 하면 되는 거야!’
밀로 상단의 조사도 다 끝났겠다, 이제 별로 급한 일은 없었다. 이참에 막스랑 상주기사들에게 기분 전환이나 시켜주지, 뭐.
남아있는 유일한 걱정거리는 아버지의 식사 정도일까. 내가 도시락을 챙겨야 하는데, 교외로 나가 있으면 이 양반은 며칠 동안 굶어야 하는 거 아닌가.
‘일단은 카트리나 단장이 참연어 도시락을 가져다주기로 했지만.’
사실 이런 소소한 일을 부탁하기에, 그녀는 과하게 거물이었다. 하지만 어쩐지 단장이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단 말이지.
그래서 도시락 배달을 부탁하러 갔더니, 프란시스의 반응이 대단히 격렬했다.
-우리 단장님은 신성제국에서 가장 강력한 기사단 중 하나인 성 아우렐리온의 단장이십니다! 아무리 성황 폐하를 위한 일이라고는 해도, 왜 그분이 시종들이 하는 일을 직접 하셔야 합니까? 차라리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하지만 성진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이 성격 더러운 부관이 가져다주는 도시락이라니.
-아버지가 체하면 어쩌려고? 그만둬.
-뭐요? 저하, 지금 그게 무슨 의미십니까? 예?
하지만 정작 부탁을 들은 카트리나는 대단히 기뻐했다.
-그런 중요한 일을 제게 맡겨 주시다니, 더없는 영광입니다, 저하!
-…아니, 단장님?
봐라. 단장은 분명 해 줄 거라 그랬지?
성진은 와락 표정이 구겨지는 부관을 신나게 비웃어 주고는, 의기양양하게 본궁에 도착한 것이다.
“모레스.”
“네, 아버지.”
성황의 얼굴이 어딘지 어두워 보였기에, 성진은 자세를 바로잡고 그의 말을 경청했다.
“너는 누가 뭐래도 다음 대의 오라클이다. 그러니 네가 무심코 결정했다고 생각해도, 그 선택에는 언제나 특별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명심하거라.”
…선택의 이유?
“알겠느냐? 앞으로도 매사에 조심, 또 조심해야 하느니라.”
“…….”
성진은 이제 그의 냉막한 얼굴에서, 희미하게 스쳐가는 걱정의 감정을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하긴, 지금까지 내가 사고 친 걸 생각하면 무리도 아닌가.
“하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먼 곳도 아니고 황도 근교입니다. 마사인 경과 상주기사들도 왕창 데려갈 거예요.”
“…….”
“저는 상주기사들한테 다 맡기고 그냥 놀기만 할 겁니다. 정말이에요!”
성진은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애썼다.
어차피 막스 때문에 말을 타지도 못할 텐데, 제대로 사냥이 가능하겠는가? 소풍인 셈 치고 하루 종일 캠프 안에서 지낼 수밖에.
“설마 캠프 안에서 무슨 일이 생길 리가 있겠습니까? [사교 모임의 저주] 징크스도 이미 없어졌는데요.”
바로 그때였다. 성황의 눈에서 유난히 밝은 은빛 안광이 번쩍인 것은!
하지만 성진이 그 모습을 제대로 인식하기도 전에, 성황은 재빨리 고개를 숙이며 아래로 시선을 피했다.
“……?”
그러고 보니 이 양반과 대화를 하다 보면, 종종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찻잔만 멍하니 보고 있을 때가 많단 말이야.
‘지금까지는 그냥 버릇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방금은 마치 뭔가를 급히 피한 듯 보이지 않았나? 성진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였다.
“한데 모레스.”
“네?”
“직접 사냥한 것들을 먹어본 적이 있더냐?”
음?
“아뇨? 제대로 사냥을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은데요?”
별로 기회가 없었다. 지구에서 헌터로 활동할 무렵에는, 마물들 덕분에 이미 생태계가 아작 난 후였으니까.
뭐, 모레스 시절에는 또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말이지.
“안 그래도 사슴이나 멧돼지는 먹어본 적이 없어서 기대하는 중입니다. 요리사들이 괜찮은 요리를 만들어 주겠죠?”
“…….”
그러자 성황이 뭔가를 더 말하려는 듯 입을 달싹이더니, 이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뭐든 몸소 경험해 보는 것이 좋겠지.”
“……?”
* * *
“꽤 번거롭군.”
레오나드가 또다시 투덜거린다.
그는 아까부터 술병 하나를 손에 들고, 하릴없이 로메인을 졸졸 따라다니는 중이었다.
“오래 걸릴 테니 굳이 따라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대꾸한 로메인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는 지금 산기슭을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이따금 바닥에 뭔가를 바쁘게 그러넣는 중이었다. 그것을 정오부터 시작해서, 이제는 거의 해가 질 무렵이 되어가고 있다.
“그게 다 뭐 하는 일인데?”
“여러 번 말씀드렸습니다만, 적절한 위치에 규상 세계의 회로를 새기는 중입니다.”
“규상 세계? 그게 뭐더라?”
“그것도 이미 여러 번 설명 드렸습니다만…….”
로메인은 지금 아멜리아 황녀를 막다른 길로 몰아넣을 궁리를 하는 중이었다.
일이 잘 풀려서 그녀를 포털로 빼돌릴 수만 있다면, 자신이 그녀에게 직접 [매혹]을 시도해 볼 수 있으리라.
“네가 하는 일들을 보고 있자면, 참 쓰잘머리 없는 것들이 많다고. 일전에 사람들에게 뭔가를 부지런히 심고 다니던 것도, 결국은 다 소용없는 일이 되었잖아?”
속 편하게 지껄이던 레오나드가 병째로 술을 들이켠다. 이쯤 되면 로메인도 슬슬 인내심의 한계를 느낄 수밖에.
“왜 제가 이런 번거로운 일들을 하고 있겠습니까? 레오 님께서 처음 계획대로 움직여만 주셨다면, 이런 성가신 작업은 굳이 필요 없었을 테지요.”
황녀의 마음을 사로잡겠다고 그렇게 큰소리를 치지 않았던가.
-아멜리아, 나와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부디 [수락]을 눌러줘. 내 사랑.
계획대로 풀리기만 했다면, 이 한마디로 모든 것이 끝났을 텐데.
하지만 그의 적나라한 타박에도 불구하고, 레오나드는 조금도 기죽지 않았다.
“난 노력했어, 로메인. 황녀가 끝까지 내게 마음을 주지 않는다면, 그건 절대로 내 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단지 그녀의 취향이 조금 이상할 뿐인 거지.”
“…….”
이 인간과 싸우려는 내가 잘못이지.
로메인은 본신도 아닌 몸에서 혈압이 오르는 것을 느끼며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넌 아까부터 뭘 그렇게 찾아 헤매는 거야? 그 회로라는 거, 그냥 아무 데나 그리면 안 되는 건가?”
작업을 마친 로메인이 또다시 수풀을 헤집으며 두리번거리자, 레오나드가 그 곁으로 고개를 들이밀며 물었다.
“저는 균열의 흔적을 찾고 있습니다, 레오 님.”
“균열?”
“네, 그렇습니다.”
스르륵. 스륵.
높이 자라난 풀들을 한 손으로 헤치던 로메인이 뭔가를 발견하고는 바닥의 어느 한 지점을 가리켰다. 다른 곳과 비교해서 유난히 붉은빛이 짙은 흙바닥을.
“이것을 보십시오.”
“그게 그 흔적이라는 건가?”
“그렇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로메인이, 반가면 속의 눈동자를 고요히 빛냈다.
“수년 전 이오니아의 재앙에 휘말려, 하마터면 델크로스 차원이 조각조각 쪼개질 뻔한 흔적이죠. 불완전한 회로를 폭주시키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장소입니다.”
* * *
사냥감을 잔뜩 잡아와서 황궁 냉장고를 채우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성진의 꿈을 단숨에 날려버린 것은 그의 전담 시녀 에디스였다.
“멧돼지를 잡아먹는다고요? 저하, 그건 대단히 무리한 말씀인데요?”
평소 늘 맹한 모습을 보이던 그녀가, 오늘은 어쩐 일로 똑 부러지게 대꾸하는 게 아닌가.
“왜 안 돼?”
“멧돼지 고기가 얼마나 냄새가 고약한지 전혀 모르시는군요. 특이 이 계절에는 암컷 돼지를 잡아도 썩 냄새가 좋지 못해요.”
“…엉?”
성진은 눈을 깜박거렸다.
내가 선임한테 분명히 들었는데? 예전에 보초 서다가 짬밥 먹으러 온 멧돼지를 잡아서, 그날 부대에서 고기 파티가 벌어진 적 있다고. 엄청 맛있었다고 했단 말이야.
하지만 그런 반박에도 에디스는 단호했다.
“누군가 그걸 먹은 적이 있다면, 분명 겨울철이었겠죠.”
…그랬던가?
“아마 그나마도 어린 암퇘지였을 걸요?”
“수컷인지 암컷인지는 못 들었는데. 그러고 보니 크기가 작아서 고기가 모자랐다고 한 거 같기도…….”
뭐야. 그 정도로 맛이 나빠?
의문을 담아 바라보자, 마사인이 옆에서 잠자코 고개를 끄덕인다.
‘어, 망했다. 아버지한테 멧돼지 잡아 오겠다고 큰소리쳐 놨는데.’
물론 그 양반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단 먹었을 것 같긴 한데.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뭐든 몸소 경험해 보는 것이 좋겠지.
그게 그 얘기였나 보다. 성진이 워낙 기대하는 듯 보이니까, 차마 진실을 말해주지 못한 모양.
잔뜩 실망하고 있는데, 에디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독한 술과 향신료로 어떻게 요리하기도 합니다만, 그렇다고 맛있어지는 것은 아니죠. 어지간히 먹을 것이 없는 시골이면 또 모를까, 먹거리가 풍족한 황도에서 굳이 그런 걸 먹을 이유가 있겠어요?”
그건 그렇지.
맛집이 넘쳐나는 황도니까.
“근데 에디스, 사냥감에 대해 제법 잘 아네?”
“그야 황도에 올라오기 전에는 저도 자주 사냥했으니까요. 깊은 산골에서 살았거든요.”
“그래?”
“그리 좋은 기억은 아니에요. 사냥이 은근히 일거리가 많거든요. 해체부터 처리까지, 대단히 귀찮은 일이죠.”
“…….”
왜 에디스 정도의 오러 유저가 스콰이어 대신 전담 시녀가 되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에디스, 정말 일하는 걸 싫어하는구나.
물론 전담 시녀가 가져야 할 올바른 태도 역시 아니긴 하다만.
“저하. 사슴이나 토끼 정도는 요리만 잘하면 꽤 먹을 만합니다.”
성진이 대단히 실망한 기색을 보이자, 옆에서 마사인 경이 넌지시 말을 덧붙였다.
“어, 그래. 고맙네, 마사인 경.”
좋아,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지!
상주기사 전원에게 사슴만 노리라고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