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341)
성황의 아이들-341화(341/469)
341. 사슴 사냥 (5)
크허어엉!
곰의 비명이 온 산에 쩌렁쩌렁 울려 퍼진다. 갑작스럽게 급소를 내준 곰의 눈은 고통과 당혹감으로 얼룩져 있었다.
막스의 송곳니는 단번에 곰의 경동맥을 꿰뚫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오러가 흐르는 늑대개의 송곳니는 충분히 날카로웠다.
컹! 크헝!
통증에 몸부림치던 곰이 몸을 빙빙 돌리며 막스의 등줄기를 물어뜯으려 애썼다.
그에 따라 늑대개의 몸 역시 속절없이 흔들거린다. 크기가 부쩍 커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곰의 덩치에 비하면 어미와 새끼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차이가 컸으니까.
꽈악!
그럼에도 막스는 꿋꿋하게 곰의 목을 물고 늘어졌다. 두꺼운 털가죽이 완전히 뚫리고, 곰의 상처에서 흘러내린 피가 털가죽을 흥건히 적셔간다.
“막스?! 설마?”
조금 뒤늦게 도착한 클로디아 경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소리쳤다. 제법 눈썰미가 날카로운 그녀는, 덩치가 커졌음에도 막스 특유의 외형과 털색을 알아본 것이다.
“뭐? 저게 그 개라고?”
뒤이어 달려온 칼멘 경이 당황하며 물었지만, 정작 개가 커지는 것을 목격한 쿠르트 경은 굳은 얼굴로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결국 칼멘은 성진에게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저하?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하지만 성진은 대답할 정신이 없었다. 막스와의 위태로운 연결을 놓치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집중하고 있었으니까.
지금 늑대개로부터 시선을 돌리면 이도 저도 안 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까닭이다.
‘어떻게 한 건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이 연결을 붙잡고, 계속해서 막스에게 오러를 보내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늑대개는 도로 작아질 테고, 곰에게 붙잡혀 속절없이 찌부러질 테지.
우웅-
성진의 집중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오러의 활성도도 더욱 활발해졌다. 자연히 막스에게 전해지는 오러가 늘어나며, 골격을 감싼 근육이 힘차게 꿈틀거린다.
꾸득, 꾸드득.
덩달아 곰의 기세도 한층 거세진다. 송곳니에 꿰인 상처가 점점 깊어졌기 때문이다.
지독한 통증은 물론이거니와, 생각지도 못한 생명의 위협에 당황한 놈은 숫제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쿠엉!
늑대개를 떼놓기 위해 마구 휘두른 앞발에, 나무들이 걸리며 무참하게 꺾여 나간다.
퍼걱! 우지끈!
도리질을 치며 뱅글뱅글 돌다가 바위와 나무들 여기저기에 몸을 부딪친다.
쿵! 콰앙! 쩌어억!
놈에게 매달린 막스 역시 그러한 충격들을 고스란히 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늑대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녀석의 고집도 고집이었지만, 성진의 의지에 따라 오러가 늑대개의 몸을 겹겹이 감싸 보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꽈드드득!
늑대개의 이빨이 더욱 깊게 파고들며, 상처에서 더운 피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아아…….”
상주기사들은 미처 거들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 팽팽한 접전을 멍청히 지켜보았다.
언뜻 보기에는 전혀 상대가 되지 않는 듯한 둘의 대결. 그럼에도 시간이 흐를수록, 승기는 한쪽으로 뚜렷하게 기울어가고 있다.
그즈음에 이르러, 성진은 겨우 약간의 여유를 가지고 막스의 상태를 관찰할 수 있었다.
‘지그스문트령에서 처음 본 모습과 비슷하다. 하지만 그때보다 덩치가 조금 더 커진 것 같은데.’
녀석과의 연결을 통해, 오러는 끊임없이 흘러가고 있다. 결국 막스의 변신은 오러로 인해 일어난다는 말이겠지.
그렇다면 확인해 볼 방법은 있었다.
‘야, 마왕아!’
성진이 호명하자마자, 마왕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금방 알아차렸다.
[알았어!]마왕이 염상 결정 속에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자, 성진의 동공 안쪽에서 붉은빛이 점멸하기 시작했다. 곧 영안이 열리고 세상이 오색으로 환하게 물들어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막스의 오러가 전과 달라!’
성진은 이내 막스의 현 상태를 알 수 있었다.
지그스문트령에서 영안으로 확인했을 때, 녀석은 다른 라이칸슬로프들과 마찬가지로 보랏빛의 오러를 뿜어내고 있었지. 확연하게 마기가 섞여있는 양상이었지만, 그저 마경 늑대의 피를 이어 그런가 보다 생각했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 막스를 감싸고 있는 오러는, 전과 달리 뿌연 잿빛을 띠고 있었다. 성진과 연결되어 있는 희미한 실선 역시 마찬가지.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이전에 막스가 보였던 오러는, 단지 루이제의 오러가 가진 특성을 그대로 반영했을 뿐이라는 것.
그리고-
‘지금 막스는 내 권속이야. 설마 녀석은 타인의 오러를 끌어 쓸 수 있는 건가?’
영안으로 본 성진의 오러 역시 짙은 잿빛이다. 그리고 성진은 델크로스에서 이런 오러를 가진 자를 자신 외에는 달리 본 적이 없었다.
‘이오니아의 늑대…….’
문득 예전에 라이칸슬로프 로드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당시 바즈라를 조종하던 베르세우스 다시아노는, 막스를 탐내며 이렇게 말했지.
-그래. 이오니아 늑대의 피를 이었나. 비록 어설픈 잡종이긴 하지만, 이 차원에서는 이제 보기 힘든 혈통이겠지. 뭐, 권속으로 만들면 쓸 만할지도 모르겠구나.
또 바즈라의 영혼도 성진에게 이리 호소하지 않았던가.
-아아, 모든 것이 해결되었소! 내 영혼석을 이 개에게 맡겨 주게! 분명 로드가 계신 곳으로 날 데려다 줄 수 있을 거라오!
크와앙! 퍼어억!
그러는 와중에도 곰은 막스를 매단 채 무의미한 몸부림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런……!’
성진은 재빨리 오러 회전을 활성화시키며, 막스와 이어져있는 뿌연 잿빛 선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두근-
그러자 잔득 흥분하고 있는 막스의 상태가, 그 연결을 통해 생생하게 전해져 왔다.
-나는 아직 멀쩡하다! 나는 더 할 수 있다!
막스, 이 철없는 녀석.
하지만 어이없는 심정과는 별개로, 막스의 몸에서 넘쳐나는 활력 역시 여과 없이 느낄 수 있었다.
쿠앙!
곰이 몸부림친 자리에서 흙이 파이며 얕은 구덩이가 생겨났다. 그 우악스러운 발버둥에, 잠시 늑대개가 바닥에 깔리는 듯했지만-
-괜찮아! 나는 거대하고 강하니까!
성진의 오러가 충격에 대비하며 빈틈없이 늑대개를 보호한다. 그러곤 재차 허공으로 개를 내동댕이치려는 곰의 움직임에 맞춰, 오러가 다시 막스의 송곳니를 향해 일시에 모여들었다.
-나는 주인과 함께하고 있어!
그것은 빙수들을 조종할 때와는 또 다른 일체감이었다.
마경에서 전투를 벌일 때는, 마치 성진의 영혼이 몸에서 빠져나와 직접 빙수의 몸을 입었다는 느낌이었지.
하지만 막스와 함께하는 전투는 그와는 달랐다.
성진의 생각을 늑대개가 온전히 이해하고, 늑대개의 움직임을 성진이 고스란히 읽어낸다. 서로의 판단을 신뢰하며 전해지는 의지를 고스란히 실현하려는 마음.
‘…이것이 권속이라는 거구나!’
이보다도 굳건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관계가 또 있을까.
문득 성진은 묘한 고양감이 이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크헝!
마침내 힘이 다한 곰이 쌕쌕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몸을 뉘었다.
그러자 막스는 단단하게 바닥을 딛고 서서는, 강한 치악력으로 마지막 일격을 가했다.
푸슉!
마침내 곰의 경동맥이 완전히 찢어지며 뜨거운 피가 솟구쳤다. 쓰러진 곰은 이따금 사지를 휘둘렸지만, 이내 그것은 간헐적인 경련으로 변해갔다.
이윽고 곰의 숨이 완전히 끊어지자, 그때까지도 숨을 참고 있던 칼멘 경이 신음 같은 탄성을 내뱉었다.
“저걸 정말 혼자서 잡아냈어……!”
막스가 피에 젖은 주둥이를 든 채 허공을 향해 힘차게 하울링을 한다.
워오오오!
-봤어? 내가 얼마나 거대하고 강한지 봤어?
“그래, 그래. 잘 싸웠다, 막스.”
역시 우리 막스가 대단하긴 하지. 마구잡이로 곰에게 달려든 건 따끔하게 야단칠 필요가 있겠지만.
[네가 잘도 잡종개를 야단치겠다.]‘뭐라는 거냐? 난 한다면 하는 보호자라고!’
하지만 지금은 우선 승리에 취한 강아지를 칭찬해 줘야 할 때겠지.
그렇게 뿌듯하게 웃으며 막스에게 다가갔을 때였다. 성진은 멀리서 빠르게 달려오는 강한 오러 유저를 감지해냈다.
‘마사인 경?’
데카론 나이트를 향해가는 상급 기사는, 쏜살처럼 빠르게 성진의 기척을 쫓아왔다.
“저하!”
그렇게 헐레벌떡 달려온 그가 발견한 것은, 당당하게 곰을 내리누르고 있는 거대한 늑대. 그리고 겁도 없이 그 옆에 무방비하게 서 있는 어린 황자였다.
마사인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저하에게서 떨어져라, 이 괴물아아아!”
스릉!
번쩍이는 미스라가 뽑혀 나오자, 성진이 기겁하며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워워, 마사인 경!”
아니야, 그거 아니야! 그러니까 제발 멈춰!
* * *
성진은 황당한 심정으로 마왕에게 물었다.
‘마왕아, 근방에 아렌쟈가 있냐?’
[아니? 오늘 하루 종일, 영혼 단말은 따로 보이지 않았는데?]그럼 아버지가 이 사실을 어떻게 안 거지?
[왜? 네 아버지가 보낸 것 같아?]‘당연한 거 아냐?’
성진은 눈을 가늘게 뜨며 키가 남들보다 머리 하나는 큰 성기사를 바라보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 타이밍 좋게 프란시스 경이 나타났을 리가 없지 않은가!
“이게 다 뭡니까, 저하? 사람이 준비를 채 끝내기도 전에 이런 사고를 내시면 어쩌란 말입니까?”
느긋하게 사냥 캠프로 들어선 프란시스는, 거대한 늑대개를 보고도 크게 놀라지 않은 듯 여상한 얼굴로 성진을 타박했다.
“프란시스… 경이라고 했소이까?”
바서스트 백작이 주춤거리며 그에게로 다가왔다.
갑자기 사냥터에서 본 적도 없는 거대한 곰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것을 또 거대한 늑대개가 나타나 물어 죽인 것이다.
이런 초유의 상황에서, 성 아우렐리온 기사단의 정복을 입은 자가 나타나자, 이다지도 마음 놓일 수가 없었다.
“부디 확실하게 말해 주시오. 저, 저 늑대의 정체는 대체 무엇이오? 혹시 해수나 마수인 것은…….”
윌리엄 바서스트의 얼굴은 말이 아니었다.
자신의 영지 내에서 저런 것이 나타났으니, 혹여 인퀴지터들이 달려와 영주의 부덕을 탓하면 어찌한단 말인가!
하지만 프란시스의 표정은 침착하기만 했다.
“이상한 질문을 하시는군요, 백작. 저것은 당연히 성스러운 개, ‘신수’입니다.”
“뭐요? 시, 신수?”
그게 대체 뭐지?
사교 모임의 회원 모두가 당황하며 수군거린다. 한데 이 키가 큰 성기사는 당연하다는 듯 말을 잇는 것이었다.
“성 바스티안을 곁에서 보좌했다는 그 [바람]이란 말입니다. 다들 경전 안 읽으십니까?”
성기사의 뻔뻔한 태도에 모두가 어리둥절했다. 대체 경전 어디에 그런 내용이?
뒤이어 프란시스가 잘난 척을 하며 설명을 늘어놓았다.
즉 바스티안 성인을 높은 설산까지 태워주었다는 경전의 ‘바람’. 그것이 문자 그대로의 ‘바람’이 아니라, 바람이라는 이름의 ‘신수’였다나?
“아아, 물론 모를 수도 있습니다. 경전을 겉핥기식으로 대충 익혔다면 헷갈릴 수도 있겠지요. 영지 관리며 상단 운영이며, 바쁘게 일을 하다 보면 교양을 쌓는 데 조금 소홀할 수도 있죠. 다 이해합니다.”
“…….”
단숨에 사교 모임 회원 전원을 교양 없는 자로 매도해버린 부관이 설명을 이었다.
“여러분은 잘 느낄 수 없겠지만, 성기사인 저는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저 개에게서는 주신의 성스러운 은총이 느껴집니다.”
은총?
모두가 긴가민가 하는 표정으로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성기사가 아니더라도 보면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자, 모레스 황자님을 위험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일어선 저 당당한 모습을 보십시오!”
좌중은 얼빠진 얼굴로 늑대개를 돌아보았다.
“막스, 그만둬. 지금 네가 이럴 때가 아니라고.”
할짝할짝.
개는 황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그의 머리를 핥아대고 있다. 덩치가 훌쩍 커진 만큼 흐르는 침도 두 배!
‘…당당한 모습? 어디가?’
한데 프란시스는 대단히 격앙된 목소리로 연이어 외치는 것이었다.
“성황가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선 저 신성한 자태를 보고도, 당신들은 정녕 아무것도 느껴지는 것이 없습니까?”
좌중은 눈을 비비곤 다시 개를 돌아보았다.
“좀 떨어지라고. 자 이거나 물어와!”
컹! 와그작!
황자가 던진 나무 접시가 날카로운 송곳니에 의해 꿰뚫린다.
한데 개는 정작 접시를 주인에게 가져오지는 않고, 나무 접시를 문 채 휑하니 줄행랑을 치는 게 아닌가! 아무리 봐도 제대로 교육 안 된 똥강아지의 모습.
‘…신성한 자태? 농담이겠지?’
사교 모임 회원들의 눈에 강한 의혹이 서렸지만, 프란시스는 손을 휘휘 저으며 성의 없는 목소리로 설명을 마쳤다.
“자세한 내용은 [성 바스티안과 손가락 악마]를 확인하시길. 자고로 새로운 경전 동화가 발행되면, 재깍재깍 구입해 숙지하는 것이 교양 있는 황도 신민의 태도가 아니겠습니까?”
와, 성진은 대단히 감탄했다.
선동과 날조에 이어 판촉까지 하다니. 프란시스는 참으로 다재다능한 성기사가 아닐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