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343)
성황의 아이들-343화(343/469)
343. 붉은 저주 (2)
바서스트 백작은 완전히 얼이 빠진 표정으로 돌아갔다.
‘개를 탄다는 게 그렇게 충격이었나?’
성진은 도통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듣자 하니 유명한 성인도 개를 타고 다녔다며? 경전 동화까지 만들어졌다며? 근데 뭐가 문제야?
[진심이냐? 일부러 저놈을 약 올린 게 아니라?]흠, 예리해졌구나, 마왕아.
사실 사냥도 충분히 했겠다, 막스도 운동시켰겠다, 먼저 황도로 돌아가지 못할 것도 없지.
하지만 우리 일행을 떼어놓으려는 수작이 빤히 보이잖아? 그러니까 괜히 놀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거지.
[하여튼 성격 나쁜 놈.]‘닥쳐!’
그나저나 아까부터 이상하게 휑한 기분이 들었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던 성진은, 곧 그 이유를 깨닫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마사인 경은 대체 어디 간 거지? 저녁부터는 통 보이질 않네?’
한껏 기감을 곤두세워 봤지만, 역시 캠프 근처에서는 그의 기척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한테 말없이 어디 갈 양반이 아닌데?’
의아해하며 천막 밖으로 나가보니, 마침 상주기사들이 커다란 모닥불을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술을 푸고 있었다.
제대로 야외에 놀러 온 분위기를 내고 있군.
“저하!”
“저하, 어서 이쪽으로 오십쇼!”
클로디아 경이 성진을 발견하곤 소리치자, 상주기사들이 열심히 손을 흔든다.
그들은 진심으로 성진을 반기는 듯 보였다. 처음 이 몸으로 눈을 떴을 당시의 흉흉한 분위기와 비교하면, 참으로 장족의 발전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로한산 증류주의 힘이 대단하구나. 베르트란 & 리의 다음 사업 아이템은 증류주로 해 볼까?’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자리에 앉았더니, 에디스가 시커멓게 우려진 멜보른 차를 내밀었다. 진주궁을 지키고 있을 브루노 단장을 대신해, 오랜만에 자신의 본업으로 돌아온 모양.
“저하. 모임 회원들과 동석하지 않으세요? 이곳까지 와서도 진주궁 사람들과 어울리면, 기껏 사교 모임에 참석한 의미가 없잖아요.”
그녀의 물음에 성진은 캠프 반대편을 힐긋 바라보았다.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성진의 의사가 제대로 전해졌는지, 아까보다 한층 우중충해 보이는 회원들의 모습을.
“뭐, 알아서들 놀라고 해. 저치들과는 딱히 친분을 맺고 싶은 생각도 없는데.”
“그럼 여긴 왜 오신 거예요?”
“사슴 고기 먹으러. 겸사겸사 강아지‘들’ 산책도 시키고.”
“네? 강아지들요?”
에디스가 반문했지만, 성진은 딱히 대꾸하지 않고서 따뜻한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흠, 좋아. 마치 고향의 맛처럼, 변함없는 쓸개즙 향이 난다.
“헉!”
“정말로 그걸 드셨어!”
상주기사들이 기겁을 했다. 반응들을 보아하니, 이미 한차례 에디스의 쓸개차가 돌았던 모양이지.
“독이 아니라는 말이 사실이었어?!”
“제가 뭐랬어요? 못 먹을 걸 만든 게 아니란 말이에요.”
“그런데 에디스 씨는 왜 안 드세요?”
“전 맛없는 건 안 먹어요!”
“당신, 양심은 있는 거야?”
특히나 칼멘 경은 해쓱해진 얼굴로 이를 딱딱 맞부딪혔다. 얼마 전의 트라우마가 생생하게 떠오르는 모양.
성진은 그를 향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뭘 겁먹고 그래? 그때 내가 딱히 자네에게 못 할 짓 한 건 아니라니까 그러네.
호록.
다시 차 한 모금을 들이켜자, 미친놈 보듯 하던 상주기사들의 시선에 곧 존경과 경탄의 빛이 어린다.
“다들 적당히 마셔. 당직 근무자는 마시면 안 되는 거 알지?”
“하하. 경호 책임자인 마사인 경도 계시는데, 어떻게 그런 간 큰 짓을 하겠습니까?”
“그런데 저녁은? 자네들 지금 빈속에 술 마시고 있었어?”
“저기서 요리사가 막 손질 끝난 사슴 고기를 굽고 있습니다, 저하.”
그 말대로 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고기가 익어가는 진한 향기가 코끝으로 전해져왔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냄새.
‘그러고 보니, 아까 클로디아 경이 잡은 멧돼지 고기를 못 먹었네.’
가벼운 아쉬움과 함께 어딘지 나른한 기분에 젖은 성진이, 익숙한 맛의 차를 재차 호로록 들이켰다.
“으힉!”
옆에서 칼멘 경의 괴상한 비명이 들려온 듯도 했지만, 그냥 기분 탓이겠지.
챱챱챱.
모닥불에서 조금 떨어진 공터에서는, 오늘 사냥의 일등공신인 막스가 생고기 한 덩이를 뜯고 있었다. 에디스가 가장 먼저 챙겨준 사슴 고기다.
왁자지껄!
또 바로 앞에서는 한껏 술이 들어간 상주기사들이, 실없는 우스갯소리에도 배꼽을 잡고 웃어댄다.
저렇게 놀기 좋아들 하면서, 그동안 답답해서 진주궁 근무를 어떻게 했다지?
‘그래도 다들 좋아하네. 일부러 시간 내서 이곳에 온 보람이 있어…….’
타닥, 타닥.
그렇게 떠들썩한 와중에도, 일행의 한가운데서 모닥불은 조용히 타오르고 있다. 이따금 땔나무가 쩍 하고 갈라지며, 파스스, 가벼운 불똥이 하늘하늘 흩뿌려진다.
‘평화롭다…….’
성진은 멍하니 불꽃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제는 눈 뜨고도 명상을 하십니까, 저하?”
갑자기 옆에서 들려온 마사인의 목소리에, 성진이 움찔 놀라며 눈을 깜박거렸다.
“음? 마사인 경, 언제 왔나?”
그런데 뭐? 내가 명상을 하고 있었어?
하지만 그에게 물어볼 것도 없었다. 단전에서 이제까지와 달리 충만하게 차오르는 오러가 느껴졌으니까.
언제부터인가 지지부진하던 오러 쌓기가 드디어 끝나, 이제 성진의 오러는 완벽한 8층을 완성하며 활발하게 돌고 있었다.
‘…엉?’
잔뜩 당황하고 있는데, 마사인이 성진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으며 고개를 휘휘 저었다.
“매번 놀라는 것도 새삼스럽습니다. 제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그새를 못 참고 또 경지가 눈에 띄게 오르셨군요.”
“…….”
성진은 머쓱하게 볼을 긁적였다.
음. 마사인 경. 이건 내게도 전혀 예상외의 사태라고.
“그런데 프란시스 경은 어디 갔어? 사슴 고기 안 먹는대?”
“그는 급한 볼일이 있어 바로 황도로 돌아갔습니다, 저하.”
“그래?”
급한 볼일이라.
그러고 보니 마사인 경, 아까 프란시스와 뭔가 심각한 이야기를 나눈다 싶었지.
딱히 해결된 것은 아닌지, 지금도 영 낯빛이 좋지는 않았다.
‘이 양반이야 워낙 표정에 다 드러난단 말이야.’
하지만 뭔가를 물어볼 틈은 없었다. 어느새 완전히 요리된 음식들이 성진의 앞으로 날라져 왔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소금과 후추를 뿌려 구운 사슴 고기였다. 모두들 그가 먼저 들기를 기다리는 눈치라, 성진은 지체 없이 식기를 잡고서 고기 한 점을 들어 올렸다.
“흠…….”
고기를 씹으며 마왕에게 미각을 공유해주던 성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법 부드럽긴 하지만, 약하게 잡내가 남아 있다.
“생각만큼 나쁘지는 않아. 그런데 특별히 맛있다고 하기도 애매한데?”
“그러게, 말씀드렸잖아요? 애초에 황궁의 최고급 식재료들과 비교하시면 안 돼요, 저하.”
에디스가 핀잔을 주며 빈 찻잔을 채웠다.
“그러게. 이러면 계획이 좀 어긋나는데.”
성진은 아쉬운 마음으로 마차를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마차 짐칸에 있는 냉장고를.
부득부득 여기까지 마차를 끌고 온 건 기본적으로 막스 탓이었지만, 이왕이면 맛있는 고기들을 신선하게 챙겨 가자, 싶어서 냉장고까지 실어 왔지.
“그건 아마도 피를 제대로 빼지 않아서 그럴 겁니다.”
쿠르트 경이 까슬까슬한 수염 자국을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피?”
“네. 저하. 바로 피를 빼서 손질한 사슴 고기는, 이보다는 더 먹을 만합니다.”
“그래?”
그것은 아마도 성진의 패착이었다. 그저 사슴을 잡는 데만 급급해서, 일단 캠프 한쪽에 잔뜩 쌓아두기만 했을 뿐.
‘미리 알았으면 처음부터 영지민들에게 처리를 맡겼을 텐데.’
하지만 남아있는 고기는 또 있었다. 막스가 가장 마지막에 잡은 거대한 곰. 저건 바로 손질했으니 맛이 괜찮지 않을까?
[곰 고기~ 곰 고기~ 향이 강하고 불 맛 나는 곰 고기~]아니나 다를까. 마왕 놈이 저 좋아하는 음식 냄새를 맡고는 신이 나서 노래를 부른다.
“엉? 이거 너무 바짝 구운 거 아니야? 어쩐지 고깃덩어리가 반으로 쪼그라든 거 같은데?”
“그러고 보니 저기 곰도 어째 해체하기 전보다 조금 작아 보이고…….”
“에이! 멀쩡한 고기가 반이 되다니, 그게 말이 되나? 자네, 좀 취했구먼.”
옆에서 상주기사들이 좋을 대로 떠드는 소리를 흘려들으며, 성진은 곰 고기를 입에 가져갔다. 앞선 사슴 고기보다는 빠짝 구워져, 씹자마자 진한 맛을 내는 육즙이 흘러나온다.
[맛있어!]마왕이 탄성을 질렀다.
이놈은 그저 곰 고기라면 다 좋은 모양이지.
‘그래도 생각 외로 나쁘지는 않네.’
그런데 성진이 막상 고기를 꿀꺽, 목으로 넘겼을 때였다.
삐이이-
갑자기 귀에서 높은 이명이 들려오나 싶더니, 순식간에 시야가 캄캄하게 흐려졌다.
‘……?!’
그리고 다시 시야가 밝아졌을 때, 눈앞의 광경은 모닥불가가 아닌 울창한 풀숲으로 뒤바뀌어 있었다.
쉬익-쉬익-
귓가에서 거칠고 시끄러운 숨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뭐지?’
언뜻 아래를 내려다보니, 생각보다 시야가 낮은 듯 땅이 무척이나 가까웠다.
그리고 삐죽한 발톱이 돋은 두툼한 발이, 앞뒤로 부지런히 움직이며 땅을 박차는 것도 보인다.
…엥? 이건… 나야?
‘근데 내가 왜 바닥을 엉금엉금 기어 다니고 있는 걸까?’
아니, 긴다고 하기엔 조금 어폐가 있었다. 풍경이 옆을 스쳐 가는 속도가 제법 빨랐기 때문이다.
크릉, 킁킁.
쉬익-쉬익-
그 와중에도 거친 숨소리는 귓가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참 시끄럽고 괴상한 숨소리라고 생각했는데, 가만히 보니 그게 자신의 목에서 나는 소리인 모양이었다.
컹컹! 컹컹!
저 멀리서 희미하게 개들이 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매년 이 숲을 찾는 것들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나타났다. 성진은 자신이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음을 깨닫고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성가신 것들!
언어로 채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상념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일단 피한다! 하지만 화난다!
이게 정말 자신의 생각인지, 아니면 누군가 다른 이의 상념이 흘러들어오는 건지도 구별하기 어려웠다. 무턱대고 달리는 움직임에 저항이 가능한 것도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성진은 그렇게 몸이 멋대로 움직이도록 내버려 두며, 주변 상황을 가만히 관조하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문득 성진은 숲속 어딘가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아마도 바로 눈앞에서 붉은 돌멩이 하나가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가만히 쳐다보고 있자니, 때때로 돌의 주변에서 이상한 문양이 스르륵 나타났다 사라진다. 딱 봐도 범상치 않은 광경.
‘이게 뭐지?’
하지만 오래 궁금해할 틈이 없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성진의 몸이 그 돌을 냅다 목구멍 너머로 삼켜버렸으니까.
킁킁, 꿀꺽!
‘……!?’
쩝쩝쩝.
‘자, 잠깐! 그런 수상한 걸 먹으면……!’
당황한 성진이 급히 돌을 뱉어내려 했지만,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의지대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꼴깍!
작은 덩어리가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감각이 생생하게 전해지고-
꾸드드드득.
동시에 몸에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근골이 두껍게 자라나고, 근육이 이리저리 뒤틀리며, 몸이 밖으로 밖으로 팽창하는 느낌이 밀려들었다.
크워어어엉!
성진은 한층 거대해진 몸을 일으키며 허공을 향해 거세게 포효했다.
고통은 없었다. 그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충만해짐과 동시에, 제어할 수 없는 흉폭한 기세가 사방으로 마구 뻗어나갔을 뿐.
머릿속에서 누구의 것인지 모를 강한 상념이 메아리친다.
-그래. 왜 저것들을 피해 달아나야 하는가! 지금 당장 보금자리로 돌아가, 저 성가신 것들을 모조리……!
“…하!”
[…진!]“저하! 왜 그러십니까, 저하!”
[이성진! 어서 눈을 떠! 이성진!]마왕 놈이 어찌나 시끄럽게 소리를 질러대는지, 머릿속이 윙윙 울릴 지경이다.
연이어 억센 손이 양어깨를 잡고서 강하게 뒤흔드는 바람에, 성진의 정신은 서서히 현실감을 되찾았다.
“…마사인 경?”
“네, 저하! 이제 정신이 드십니까?”
[이성진! 이성지이이인!]‘어…….’
깜박.
눈을 깜박이며 코앞에 바짝 다가와 있는 마사인 경의 얼굴을 확인한 성진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불가를 내려다보았다.
‘곰… 고기…….’
식기와 함께 아무렇게나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고기들이 눈에 들어온다.
순간, 성진은 본능적으로 방금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한데 모레스.
-네?
-직접 사냥한 것들을 먹어본 적이 있더냐?
그때, 아버지는 뭔가를 더 설명하고 싶은 눈치였지. 직접 사냥하고, 또 그것을 먹는 행위에 대해.
‘아아. 그렇구나. 저 곰은 내가 사냥한 것이다.’
성진의 머릿속이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절대 직접 사냥하지 않고 몸을 사리겠노라, 아버지에게 약속했지.
하지만 저 곰만은 성진의 권속이, 성진의 힘을 받아 잡아낸 것. 결국은 성진이 직접 사냥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죽은 것들이 남긴 업은, 그 죽음을 취한 자의 업이 되기 때문이다.’
머릿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잔잔하게 울려왔다.
‘그래. 이것은 죽은 곰의 업, 곰의 기억이야.’
성진은 자신을 부축하고 있는 마사인을 밀어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갑자기 죽은 곰의 기억을 엿보았다고 해서, 특별히 몸이 힘들거나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그저 아직도 꿈에 덜 깬 듯 몽롱한 기분이 들었을 뿐.
“내가 먹었어.”
성진이 입을 열자, 마사인이 당황하며 되물었다.
“네? 저하. 그게 무슨…….”
“마사인 경. 저 숲에서, 내가 돌을 먹었어. 어둠 속에서 붉게 빛나는 이상한 돌이야.”
“……!”
잠시 정신을 잃었던 황자가 엉뚱한 소리를 내뱉자, 에디스와 상주기사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시선을 교환한다.
하지만 성진은 어쩐지 알 수 있었다. 그의 충직한 호위기사만은 분명 그 말을 알아들었으리라는 것을.
그리고, 그 예감은 적중했다.
성진을 바라보는 마사인의 얼굴이, 전에 없이 새파랗게 질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