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347)
성황의 아이들-347화(347/469)
347. 쥐라기 아일랜드 (2)
갑작스럽게 일어난 천재지변이었음에도 인명 피해는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마침 사냥 모임이 있던 터라, 해당 지역 영지민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된 덕분이다.
사냥 캠프에 있던 이들도 용케 제때 철수한 것 같고.
“으아악, 해수! 아니, 괴물 개다!”
경작지 부근에서 흙더미에 깔린 영지민 하나를 더 구출한 성진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괴물 공룡의 뒤로 다가갔다.
놈은 이제 구덩이에서 몸의 절반 정도를 밀어내며, 거의 뒷다리와 꼬리만을 아래에 남겨두고 있었다.
‘마기 때문에 더 이상 다가갈 수는 없다. 하지만 마사인 경의 오러 폭사가 닿기에는 거리가 조금 애매하군. 차라리 측면으로 더 다가가볼까.’
정면을 노리면, 놈이 더 빨리 구덩이를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칠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고 괜히 뒤를 잡겠답시고, 마기로 가득한 구덩이 아래로 뛰어내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저하. 저것은 1형 악마종, 그중에서도 1급 악마일 겁니다.”
검을 겨눈 마사인이 굳은 얼굴로 경고했다.
“저 거대한 것을 제대로 상대하려면, 많은 수의 성기사들이 모여 신성 결계를 펼쳐야 합니다. 그러니 부디 신중히 생각해 주십시오.”
“알고 있어, 마사인 경.”
성진은 번져나가는 마기로 인해 죽어가는 대지를 바라보았다.
‘예전에도 이런 광경을 본 적이 있었지.’
참회 교단 잔당이 마계수를 소환했을 때.
당시 샤론 경이 들려준 얘기에 따르면, 과거에 출몰했던 마계수를 처치하기 위해, 5대 성황을 포함해 도합 서른이 넘는 성기사와 사제들이 방어 결계를 펼쳤다고 했다.
‘지금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인원이 필요할 거야.’
거대한 빌딩도 훌쩍 웃도는 크기의 공룡이 아닌가. 길고 두꺼운 꼬리를 제하더라도 체장만 족히 100미터에 근접해 보인다.
기어가듯 움직이지만 마계수보다 이동도 빨랐다. 이러니 마기가 번져나가는 속도 역시 비할 바가 아니지.
‘놈을 도로 구덩이에 밀어 넣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의 전력으로는 불가능.
결정은 빨랐다. 뭐, 마기로 인해 늘어나는 경작지의 피해는, 아버지가 어떻게든 해 주시지 않을까.
“이 이상은 다가가지 않도록 하지, 마사인 경. 우리는 이쯤에서 놈을 잡아두자.”
조금 더 괴물의 옆으로 이동한 성진이 막스를 멈춰 세웠다.
쉬이익-
오러 운용을 멈추자, 막스가 급격하게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자연히 뒤에 타고 있던 마사인 역시 바닥으로 내려서며 미심쩍은 시선을 보내왔다.
“진심이십니까, 저하?”
“왜? 마사인 경. 설마 내가 저 마기 속으로 대책 없이 달려들 거라 생각한 건가?”
한 점 티 없는 눈으로 마주 보았더니, 움찔 놀란 마사인이 슬쩍 시선을 피했다.
“…아니, 그건 아닙니다.”
“그래. 그렇겠지. 미친놈도 아니고, 내가 그런 짓을 하겠어?”
“…….”
뭐지, 마사인 경?
아, 안 간다고! 그러니까 그런 의심스러운 눈초리는 그만둬!
“이제 믿을 건 마사인 경뿐이야. 이 먼 거리에서 놈에게 타격을 입힐 방법은, 경이 외기를 날려 보내는 것뿐이니까.”
신성력이 전무한 것은 성진이나 마사인이나 마찬가지. 과연 어느 정도 유의미한 타격을 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하지만 적어도 오러 폭사 정도라면, 공룡의 주의를 끌어 몸을 돌리게 만들기에는 충분하지 않을까?
“네. 알겠습니다, 저하.”
다행히 성진이 직접 공격할 생각이 없어 보이자, 마사인은 조금 안심하고 자세를 잡았다.
우웅-
곧 미스라가 은은한 금빛 오러를 뿜어낸다. 제국의 몇 안 되는 성유물이라고 했지.
과연 자세가 안정적으로 변하자, 마사인의 검은 유감없는 위력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쇄애액! 쇄액!
미스라가 몇 차례 휘둘러지고, 그에 따라 날카로운 검기가 공룡의 옆구리를 향해 날아든다. 공격은 어김없이 적중하여 공룡의 몸에 긴 자상들을 남겼다.
퍼퍼퍽!
판금 같은 비늘이 갈라지며 검은 마기가 분수처럼 쏟아져 나온다. 놈에게 제대로 된 타격을 입힌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주의를 완전히 끌기에는 조금 역부족이다.’
문제는 공룡의 몸이 이미 정상 체중의 수천 배에 달하는 질량으로 짓눌리고 있다는 점이겠지.
스스로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몸 여기저기가 처참하게 터져나가는 걸 생각하면, 마사인의 공격 따위는 그저 긁힌 상처에 불과했다.
“역시 경의 장기인 ‘오러 폭사’를 쓸 수밖에 없어.”
성진의 말에, 마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
고른 숨과 함께 미스라가 점점 찬란한 금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긴 들숨과 함께 호흡이 멈추고-
쉬익-
깔끔한 종베기의 궤도를 따라 빠르게 날아가는, 긴 금빛 달의 잔상.
퍼펑!
오러 폭사는 여지없이 큰 폭발을 일으켰다. 공룡의 등에서 검은 마기가 폭포수처럼 터져 나오며, 처음으로 놈이 격한 반응을 보였다.
크워어어어어!
공룡은 하늘을 향해 거세게 비명을 내질렀다.
퍼엉! 펑! 퍼펑!
이어서 터져 나오는 큰 폭발음.
몇 차례 더 오러 폭사를 얻어맞은 공룡이, 마침내 목을 꿈틀거리며 힘겹게 몸을 돌리기 시작했다.
“좋아!”
연이은 기술 사용으로 지친 마사인이 잠시 오러를 가다듬는 동안, 성진은 옆에서 영안으로 공룡의 상태를 꼼꼼하게 관찰했다.
‘겉만 번드르르한 폴리곤 덩어리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지만…….’
마사인 경이 폭파시킨 공룡의 몸체는, 제법 제대로 된 살과 뼈로 이루어져 있는 듯 보였다.
‘그저 얼음덩어리인 빙수들과는 완전히 다르군. 같은 게임에서 튀어나온 놈들인데, 어째서 이런 차이가 나는 걸까?’
생각해 보면, 빙수들은 본래 예티처럼 디자인된 게임 속 형체를 완전히 잃어버리고 있었지.
어디 그뿐인가. 본상세계의 물리 법칙마저 완전히 무시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가.
한데 저 공룡은 명백하게 델크로스의 중력에 강하게 속박되어 있었다.
[글래쳐 트롤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니까. 그 녀석들이 단순히 규상세계의 법칙을 어설프게 본상 세계에 옮겨 놓은 것에 불과하다면, 저 괴물은 그 규칙을 바탕으로 고위 악마가 새로이 탄생시킨 악마의 권속인 거야.]그러니까 악마종 특유의 마기를 뿜어내는 거지. 마왕이 그렇게 덧붙였다.
[단지 저 마기는 놈이 자체적으로 생성하는 건 아닐 거야.]‘그럼?’
[놈을 만든 악마로부터 직접적으로 공급받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 저건 마기를 자연스럽게 생성하는 살아있는 개체라기보다, 이미 존재하는 마기를 응축한 힘의 덩어리에 더 가까우니까.]그렇지 않으면 갑자기 급격하게 늘어난 마기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고 마왕이 설명했다.
[그러니까 이 사태를 저놈의 주인은 이미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지. 이렇게 대량의 마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눈치채지 못할 악마는 세상에 없으니까.]‘그럼 그 주인이란 놈이 이곳에 나타날 수도 있다는 말이야?’
[가능성은 충분하지 않을까? 어쨌거나 이곳은 네 아버지의 은총 바깥의 장소니까.]‘흠…….’
성진은 막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만일 공룡의 주인이 정말로 여기 나타난다면 일이 대단히 까다로워지겠지. 자신의 권속에게 이 정도의 마기를 스스럼없이 나눠줄 수 있는 악마가 아닌가. 못해도 마왕 정도의 급을 가진 대단한 놈이 아닐까?
‘그래도 이왕이면 여기 와 주면 좋을 텐데.’
성진의 말에 마왕이 기겁했다.
[뭐? 진심이야? 대체 왜?]‘그렇다면 저 공룡이 놈의 회심의 한 수라는 뜻이 아닐까? 그러니 어떻게든 우리를 막으려 안간힘을 쓰겠지. 하지만 만약 저대로 본체만체 내버려 둔다면…….’
성진의 지적에 마왕이 침음을 흘렸다.
[그, 그렇구나. 저놈이 파괴되는 걸 무시한다면, 그걸 대체할 권속이 얼마든지 있다는 의미가 되는 거야.]그리고 저 정도의 마기 손실은 눈도 깜짝하지 않을 정도로 강한 악마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성진은 잠시 기감을 곤두세워 보았지만, 마사인과 다샤 외에 다른 이들이 다가오는 기척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만약 이곳에 로건이 있었다면, 아무리 미약한 마기라도 감지할 수 있었을 텐데.’
뭐, 곧 이곳으로 달려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퍼펑! 펑!
그때 마사인의 공격이 재차 시작되었다.
덕분에 고통을 이기지 못한 공룡이 몸을 뒤틀며, 기껏 빠져나오던 뒷다리 일부가 다시 구덩이 안으로 미끄러져 내렸다.
쿠우우웅!
족히 수백 톤은 넘어갈 몸체가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자, 사방이 지진이라도 난 듯 거세게 흔들렸다.
“잘했어, 마사인 경!”
웡웡!
-우리도 가자! 가서 저걸 물어뜯자!
워우우우!
-어서 나를 강하고 거대하게 해라아아!
잔뜩 흥분한 막스를 진정시키며, 성진은 마사인과 함께 놈의 시야각 밖으로 재차 후퇴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성진의 영안은 부지런히 놈의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어쩐지 성기사들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예감이 들었으니까.
‘아직 놈에게 규상세계의 특징이 남아있다면, 분명 어딘가에 치명적인 급소가 있을 거야. 대부분의 보스몹은 공략에 용이한 약점이란 게 있게 마련이니까.’
글래쳐 트롤에게도 그런 급소가 있었다. 바로 가슴에 있는 심장이었지. 지그스문트령의 병사들은 항상 조를 이루어, 그 심장을 중점적으로 공략하곤 하지 않았나.
‘같은 게임에서 온 거라면, 이놈도 비슷한 게 있을 가능성이 크지!’
과연 그 노력이 헛되지 않아, 성진은 곧 놈의 코끝에 솟아있는 뿔에서 옅은 붉은빛이 점멸하는 것을 발견했다.
영안으로도 겨우 판별할 정도로 희미하기 짝이 없는 표식이었지만, 만약 게임 내에서 만난 몹이라고 생각하면 꽤나 그럴싸한 위치.
‘어쩐지 한 번쯤 때려보고 싶게 생겼는데?’
[뭐어? 잠깐만, 너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마왕이 기겁했지만, 성진은 점점 강렬한 충동에 사로잡혔다. 빨갛게 빛나는 코라니, 이건 무조건 때려야 할 것 같지 않은가!
‘나중에 성기사단이 도착하면, 다짜고짜 신성 결계부터 치고 시작하겠지.’
아무리 약점 같다고 말해본들, 그 말을 믿고 달려들어 악마종의 코끝부터 공략할 정신 나간 놈은 없을 테니까.
그러면 또 놈을 토벌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인력이 소요될 것인가. 성기사단의 피해 역시 만만치 않으리라는 것을, 성진은 불 보듯 빤히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전에 내가 조금 두드려 두면 얘기가 달라진다. 피해를 훨씬 줄일 수 있는 데다가, 나중에 합류하는 성기사단에게도 정보의 근거를 제공할 수 있는 거야!’
판단을 마친 성진이 슬그머니 옆을 돌아보았다.
단기간에 십수 차례의 오러 폭사를 난사하느라, 꽤 지쳐 보이는 마사인 경의 얼굴을.
“마사인 경. 막스는 주신의 은총을 받은 신수야. 그건 알지?”
“네?”
갑작스러운 성진의 말에, 호흡을 고르던 마사인이 의아한 듯 고개를 돌렸다.
“그러니까 어지간한 마기에 닿아도 끄떡없지. 참 대단하지 않아?”
“아, 네. 그렇군요.”
“그리고 나도 마찬가지야. 마기 따위가 나를 상하게 하지는 못할 테니까.”
“…네?”
뭔가 불길한 예감을 느낀 기사가 주춤거리는 동안, 성진은 그를 떼어놓을 준비를 완전히 마쳤다.
후욱-
오러를 전달받은 막스의 몸집이 삽시간에 불어난다.
“그러니까 우리는 걱정하지 말고, 마사인 경은 이 이상 다가가면 안 돼! 알겠어?”
“저하!?”
그 말의 속뜻을 알아들은 마사인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어, 어느새 성진은 막스의 등에 올라 맹렬하게 내달리고 있었다. 괴물 공룡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놈의 빨간 코를 똑바로 향해.
마사인은 아연실색했다. 아까 황자 스스로가, 그런 미친 짓은 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저하! 갑자기 혼자서 그렇게 달려드시면……!”
기사가 그를 따라 달리며 절규했지만, 뒤를 돌아보는 황자의 얼굴은 해맑기만 했다.
“따라올 생각 하지 말고, 경은 거기서 오러 폭사 좀 날려줘! 그게 날 돕는 거니까!”
그렇게 늑대개와 어린 황자의 모습이 순식간에 멀어져간다.
“그런……!”
엄호하라는 명령에 반사적으로 주춤 멈춰 선 마사인은 허망함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은 찰나의 순간으로, 이내 봇물처럼 밀려든 거센 분노로 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이…….”
후우욱-
한계까지 억눌려 있던 인내심의 끈이 마침내 끊어지고, 가슴속에서부터 복받치는 울분이 오러와 함께 거칠게 터져 나왔다.
“모레스으으! 너 이놈 자식이 정마아알!”
* * *
‘어, 마사인 경 엄청 화났나 보다.’
뒤에서 쩌렁쩌렁 울리는 분노의 외침을 들으며 성진이 식은땀을 흘렸다.
이거, 어쩌면 아버지한테 맞을 딱밤만 걱정할 때가 아닌 거 같은데?
[당연하지! 야, 이 미친놈아! 네가 지금 제정신이야? 응?]마왕 놈 역시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안절부절못하며 염상 결정 안을 빙빙 돌던 놈은, 이제 결정 바닥에 앉아 꺼이꺼이 땅을 치기 시작했다.
[아니, 아니야! 내가 미쳤지! 제정신이 아닌 건 바로 나야! 이놈이 언제고 이런 짓을 할 걸 빤히 알면서, 아무 생각 없이 또 영안을 빌려주다니!]가만히 뒀다간 아예 영안을 꺼버릴 것 같기에, 성진은 조심스레 놈을 달랬다.
‘괜찮아, 마왕아. 이래봬도 믿는 구석이 둘 정도는 있으니까.’
아예 빈말은 아니었다. 막스와 오러를 공유하게 되면서, 오러의 운용이 갑자기 눈에 띄게 좋아졌으니까.
전에는 의식하는 대로 거칠게 돌아가던 오러가, 지금은 마치 조금이라도 몸을 다치게 할 새라 조심스럽게 경로를 따라 순환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우우웅-
어느새 호두까기의 검날에 뚜렷한 회색 오러가 맺히기 시작한다. 또 다른 예리한 검날을 덮어썼다 해도 좋을 정도로 형태가 명확한 외기가.
본래는 상급 기사 정도는 되어야 보여줄 수 있는 경지였겠지만, 지금의 성진은 막스의 몸을 빌려 평소의 두 배에 가까운 오러를 운용하는 중이다.
‘그리고…….’
쓸 수 있는 오러는 그 외에도 또 있었다.
가슴께에서 언제까지나 찰랑거리는 잔물결. 바로 아버지가 넘겨준 엄청난 양의 오러들.
‘지금까지는 아버지의 주의대로 사용을 자제하고 있었지만.’
성진은 알 수 있었다. 바로 지금이야말로, 이것을 아낌없이 쓸 때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