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351)
성황의 아이들-351화(351/469)
351. 신성한 바람 (2)
다행히도 마사인이 우려하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급격히 바닥이 가까워지자, 성진의 속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으니까.
공기 미끄럼틀은 어디까지나 슈니슈헤의 응용. 그 기술의 요체는, 오러로 마찰력을 높여 빙판에서도 미끄러지지 않는 것이다.
톡.
가뿐하게 바닥에 착지한 성진이, 늑대개의 등에서 내려서며 뿌듯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어?”
그리고 창백해진 마사인의 얼굴을 마주하곤 대단히 의아해졌다.
‘마사인 경, 왜 아까보다 더 안색이 나쁘지? 워낙 걱정하는 거 같기에 빨리 합류하려고 달려왔는데?’
나 좀 잘하지 않았나? 로건의 흉내도 제대로 냈고, 괜히 왔다 갔다 하지 않게 내 쪽에서 잘 따라왔잖아?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것은 순전히 성진의 착각이었다.
“저하…….”
부들부들 떨리는 기사의 손이, 천천히 위로 올라오더니 성진의 양어깨를 턱 짚는다.
‘방금, 멱살 잡으려다 방향을 튼 거 같은 기분이……?’
성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에이 설마, 마사인 경이 그럴 리가.
“마사인 경, 조심해. 아까도 말했지만, 내 몸에 마기가 들어와서…….”
“그딴 건 이제 아무래도 좋습니다.”
마사인은 드물게도 성진의 말을 자르며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꾸욱, 아래로 내리누르는 그 악력에, 어째 감정이 실린 느낌이 들었다.
“마사인 경?”
“어디까지 하실 셈이십니까?”
“뭐?”
“저하께서 멋대로 위험 속으로 뛰어드시는 걸, 제가 언제까지 그냥 보고 있어야 하는 겁니까?”
으르렁거리듯 끓어오르는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저하의 안전을 위해 지금껏 최선을 다해왔다 자부합니다. 한데 막상 저하께서 위험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시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제는 제가 대체 무엇을 위해, 어떤 방향으로 노력을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 이런.
성진은 슬그머니 시선을 피하며 그의 눈치를 살폈다.
마사인 경, 정말 화가 많이 났나 보다.
휘익-
쿠웅!
그때 로건이 강한 검기를 날려 또다시 공룡을 주저앉혔다.
그렇게 손짓 한 번으로 거대한 악마종을 제압한 녀석은, 성진의 옆으로 다가오더니 여상한 얼굴로 이렇게 귀띔하는 게 아닌가.
‘어서 잘못했다고 비는 게 좋겠다, 이성진.’
‘아니…….’
성진은 대단히 억울했다.
‘잠깐만, 내가 대체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증원을 기다리지 않고, 겁도 없이 혼자 1급 악마종에게 덤볐으니까.’
하지만 그래야 할 것 같았단 말이야! 어쩐지 아슬아슬한 고비를 여러 번 넘겨, 최고의 결과를 도출했다는 기분이 든다고!
이건 모두 성황가와 델크로스를 위한 일이었어. 근데 왜 나한테 화를 내는 거지?
‘그게 전부가 아니다. 아까도 죽을 뻔해놓고는, 그새를 못 참고 또 악마종을 타넘어 왔잖아?’
‘그거야……!’
로건이 왔으니 이미 위험하지 않다고 느꼈을 뿐이다. 그래서 서둘러 합류하는 게 여러모로 이득이라 생각했다고.
거기다 미끄럼틀, 엄청 재미있었는데!
“너도 즐겁지 않았니, 막스?”
한데 늑대개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으며 묻자, 녀석이 처량한 눈망울로 성진을 바라보며 코를 울리는 게 아닌가!
끼잉, 낑!
-그거 뭐였어? 이제 안 하면 안 돼? 난 좀 무서웠는데…….
어, 그래?
성진은 즉각 태세를 바꿔 반성했다.
“그렇구나. 역시 위험한 짓이었나 봐. 걱정시켜서 정말 미안해, 마사인 경.”
그 영혼 없는 사과에, 마사인의 기세가 대번에 흉흉해졌다.
“대체…….”
으드득.
기사가 이를 가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렸다.
“대체 언제까지 말로만…….”
어디 그뿐인가.
우우웅-
미스라가 그의 거친 오러에 반응하며 위협적인 검명을 울리기까지!
성진은 식은땀을 흘렸다.
‘워워. 진정해, 마사인 경. 지금 자네 손에 과하게 힘이 들어가고 있어. 슬슬 어깨가 아프다고!’
이러다가 정말로 멱살 잡히는 거 아냐?
성진이 그런 걱정을 하고 있을 때였다.
“저하!”
“로건 저하아!”
저 멀리서 로건을 애타게 찾는 외침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오토, 엘리, 뒤상 경을 위시한 릴리움 별동대였다.
“저하! 괜찮으십니까?!”
어쩔 줄을 몰라 허둥지둥 말을 달려오는 모습들이 가관도 아니다. 어지간해서는 흐트러짐을 보이지 않는 성기사들인데, 마음이 대단히 급하기는 급했던 모양.
심지어 그들은 로건의 애마 록사나까지 데려오는 중이었다.
“또 도중에 말을 버리고 가시다니, 대체 얼마나 큰일이 난 겁니까아아!”
“아무리 저하라도, 1급 악마종을 혼자 상대하시면 안 됩니다!”
“지금, 지금 저희가 갈 테니, 조금만 기다려… 으헉! 헉!”
마사인 경의 마음고생이 무색할 정도로 절절하기 짝이 없는 외침들.
머쓱해진 기사가 표정을 풀고는, 성진의 어깨에서 슬그머니 손을 내렸다.
“아, 이제야 도착했구나. 서두르느라 고생들이 많았겠다.”
정작 장본인인 로건만이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그런 소리를 지껄이고 있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네.
“말도 내팽개치고 혼자 뛰어온 주제에, 지금 누가 누구에게 쓴소리를 하는 거야! 어?”
“흠.”
성진의 따가운 눈총을 받은 로건이 시선을 돌려 딴청을 피웠다.
* * *
방문자의 존재를 고하려던 수석 시종장은, 집무실에 들어오다 말고 발을 멈췄다.
오도카니 자리에 앉아 테라스를 바라보고 있는 성황의 뒷모습에서, 어쩐지 심상치 않은 공기를 감지했기 때문이다.
“…….”
이럴 때는 그를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걸, 루이스는 오랜 경험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그의 짐작대로, 지금 성황의 눈은 서남쪽 하늘을 향해 있었지만, 기실 그가 보고 있는 장면은 조금 다른 것들이었다.
난데없이 일어나는 큰 규모의 지진.
흙더미에 파묻힌 수많은 사상자들.
아멜리아의 실종.
바서스트령의 처절한 몰락.
그리고 로한에서 시작되어, 대륙 전체로 퍼져 나갔을 전화.
이것들은 비교적 가까운 미래에, 정말 일어났을지도 모를 재난들이었다.
“…….”
그렇게 얼마나 그것들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잠시 후, 이 모든 장면들이 마치 거짓말처럼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아마도 사고뭉치 아들놈이 뭔가를 해낸 모양.
성황은 잠시나마 안도했다.
한데 그런 그를 비웃기라도 하듯, 이내 눈앞에는 또 다른 암담한 미래의 이미지들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안배를 즐기는 어느 고위 마왕의 강림.
대륙 곳곳에서 개화하는 수많은 악마종의 씨앗.
차례차례 파괴되어 가는 종족 결계.
이윽고 황도로 진격해오며, 발에 걸리는 모든 것들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삿된 자들의 부대.
이것들 또한 아들의 작은 발걸음이 아슬아슬하게 피해간 재난들이었다.
이제는 다시 돌아올 일 없는, 그래서 성황이 비로소 정면으로 응시하는 것이 가능한 미래들.
‘하나 이래서는 끝나지 않는다.’
그의 어린 아들만이 홀로 미래를 향해 아등바등 몸부림을 치고 있다.
정작 그런 아이를 보호해야 하는 자신은 한탄이 나올 만치 무력할 뿐이거늘.
“…폐하.”
“…….”
성황이 대답 없이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에서 예의 은빛 광채를 발견한 루이스가, 대단히 죄스러워하며 머리를 조아렸다.
“방해를 드려 송구하오나, 방문하신 분께서 오래 기다리고 계십니다.”
“방문.”
“예, 지금 서이서 성녀님께서 폐하를 뵙길 청하십니다.”
성황은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시종장의 안내를 받아 들어오는 성녀의 눈이 밝은 금빛으로 번쩍이고 있었으니까.
카드모스.
평소에도 달갑지 않았지만, 지금 그의 기분으로는 도저히 반길 수 없는 작자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다니, 참으로 별일이 다 있구나.]카드모스는 허락도 받지 않고서 성황의 맞은편에 털썩 주저앉았다.
[저 삿된 것이 위험에 빠지면, 가장 먼저 허겁지겁 달려갈 거라 여겼거늘.]성황은 대답 없이 그를 노려보았다.
저것이 1급 악마종의 출현을 모를 거라 생각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비위를 거스를 것을 알면서도 굳이 찾아와 들먹이는 이유가 무엇인가.
[너를 이해 할 수가 없다, 후손아. 왜 저 악마를 가만히 두고 보느냐?]“이미 성기사단을 보냈다. 그들이 필요한 조치를 할 테지.”
[우습구나. 그 못미더운 것들이 뭘 제대로 할 수 있다고!]천하에 오직 자신의 힘만이 의미 있다고 믿는 오만한 반신은, 진심으로 궁금한 듯 성황을 응시했다.
[모처럼 황도 근처에 나타난 악마종이 아니냐? 여기서 고작 지척이니라. 네가 그렇게 몸을 사릴 만큼 많은 인과가 필요하지도 않을 텐데.]아무것도 모르는 작자가 좋을 대로 [인과]를 들먹이고 있다.
‘하지만…….’
원인과 결과.
간단하게는 그리 부를 수도 있었지만, 성황이 바라보는 인과는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직접 악마종을 쳐 죽인다. 그 간단한 행동 하나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인과가 엮여 있었다.
그것은 비단 악마종의 존재 자체를 말소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신의 대리자를 정의하는 세간의 인식. 자칫 주신을 향한 광신으로도 치달을 수 있는 신앙. 이에 좌우될 현재와 미래의 수많은 신민들.
성기사단, 나아가 제국의 일에 관여하는 모든 기관들의 존재 의의. 그리고 질서와 절차가 불안해지며, 덩달아 가속화될 델크로스의 혼란까지.
아마도 대륙의 정세는 빠르게 변화할 테고, 십중팔구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지는 않으리라. 이를 틈탄 삿된 것들의 장난질 역시 도를 더할 것은 자명한 일이고.
이렇게, 때로는 아무것도 아닌 듯 보이는 행동 하나가 대륙의 미래에 돌이킬 수 없는 평지풍파를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다시 그 모든 것들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또 그만큼의 많은 인과가 소요될 수밖에.
‘하지만 저 죽다 만 것에게 일일이 설명해 줄 의리도 없지.’
성황이 입을 꾹 다물고 있자, 카드모스도 대답을 기대하진 않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재미있는 게 뭔지 아느냐? 이 모든 것이, 너 스스로가 만든 인과의 감옥이라는 사실이다. 후손아.]“…….”
[이몸의 눈을 속이지는 못한다. 겉으로는 어떻게든 버티고 있는 듯 보이나, 델크로스는 이미 서서히 무너져 내리고 있지.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과거의 너도 모르지는 않았을 터.]그래서 카드모스는 언제나 궁금했다.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후손은 인간이면서도 신의 영역을 넘보는 자. 델크로스에서 유일하게, 반신인 자신과도 비견될 수 있는 존재였다.
한데 어떻게 그 모든 힘을 내려놓고서, 순순히 황도에 틀어박혀 무력한 옥살이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왜 그런 짓을 했느냐? 그때의 일을 후회하지는 않느냐? 그 과오를 돌이키고 싶다는 생각은 조금이라도 들지 않더냐?]이제라도 제대로 예언을 시작하는 건 어떠하냐. 그렇게만 한다면, 아마도 세계는 예언자로서의 너에게 일말의 인과를 허락하겠지.
그렇게 거듭해서 질문을 가장한 권유를 던지던 카드모스의 홍채가, 일순 요사스러운 금빛을 뿜어냈다.
[아니면 지금이라도 걸림돌이 되는 것을 없애고, 네 권리를 되돌려 받는 것은 어떠냐?]그 어이없는 수작에 성황은 내심 실소를 흘렸다
제까짓 것이, 지금 누구의 자비로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지 정녕 모른단 말인가.
[그렇게 해서라도 네게 필요한 모든 인과를 돌려받으면, 이 무너져가는 세계는 또다시 소생의 기회를 얻을 수…….]“제 처지에 대해 이리도 무지하니, 관짝에 누워있던 700년의 긴 세월이 아무짝에도 쓸모없었음이다.”
[…뭣이?]민감한 주제가 흘러나오자, 카드모스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래. 네 처지가 내 아들의 인과에 얽혀 있는 것을 드디어 알게 된 모양이구나. 그래서, 네 눈에는 그 아이가 마치 너를 가두고 있는 간수라도 되는 듯 보이더냐?”
정곡을 찔린 카드모스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를 향한 성황의 냉소는 계속되었다.
“작금의 상황이 어려워 보이니, 드디어 그 아이를 눈앞에서 치울 기회가 왔다 싶었나 보구나. 반신을 자처하고도 어찌 이리도 모자랄 수가 있나.”
[너 이놈이……!]카드모스는 잠시 발끈했지만, 거기까지였다. 그를 노려보는 성황의 은회색 눈동자에, 전에 없이 살벌한 기색이 어렸기 때문이다.
“그래. 내 예언을 듣고 싶다면 기꺼이 들려줄 수 있다. 그러니 그 모자라는 머릿속에 똑똑히 새기거라. 지금의 네가 규상세계 인간에 빌붙어서나마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것은, 다 그 아이의 인과가 너를 허락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렇지 않고서야, 감히 시슬레를 노린 시점에서 이미 네 목숨을 보존할 까닭이 없지 않느냐?”
제국의 근간을 만든 반신.
그 위대한 존재를 마치 타다 남은 쓰레기 취급하는 발언이었지만, 카드모스는 성황의 말이 어디까지나 진심이라는 것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알겠느냐? 내 눈에 보이는 그 어떠한 미래에도, 지금까지 네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세계는 달리 없었느니라.”
그 추상같은 예언에 당황한 카드모스가 눈을 잘게 떨었다.
[… 그게, 그것이 정녕……!]하지만 더는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대신 카드모스는, 성황의 손이 은가시를 향해 천천히 이동하는 것을 보았다.
더 이상의 대화는 없으리라는 간접적인 의사 표현.
[…어디까지나 내가 세운 델크로스를 아끼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괜한 말을 했다 싶구나!]잔뜩 토라진 카드모스가 인사도 없이 휑하니 집무실을 떠나버렸다.
그제야 겨우 혼자가 된 성황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테라스 밖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아직…….”
재차 서남쪽의 하늘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가 어둡게 침잠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