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352)
성황의 아이들-352화(352/469)
352. 신성한 바람 (3)
현장에 도착한 릴리움 별동대는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것이 1급 대형 악마종…….”
온갖 해수며 악마종 소탕엔 잔뼈가 굵은 이들에게도, 공룡 악마의 크기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작은 산 하나는 가볍게 능가할 덩치는 차치하고서라도, 마기로 검게 오염된 땅만 벌써 반경 수백 미터에 이르렀으니까.
다행히 공룡은 이리저리 꿈틀거리기만 할 뿐, 더는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로건이 놈에게 깊숙이 찔러넣은 오러 블레이드 덕분이다.
“어떻게 저게 아직도 남아 있지?”
성진이 긴 꼬챙이 같은 은청의 블레이드에 시선을 고정한 채 물었다.
보통 오러 유저의 몸을 떠난 외기는 공기 중으로 빠르게 사그라지기 마련. 그런데 아까 날린 외기가 아직도 선연한 형태로 남아있다니,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네가 나한테 그걸 물으면 어떻게 해?”
그런데 로건은 오히려 의아한 듯 반문했다.
“응?”
“너야말로 지금도 떨어져 있는 늑대개한테 계속 오러를 보내고 있으면서.”
로건에게는 그 둘이 비슷한 재주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아마도 성진과 막스를 잇는 권속의 연결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겠지.
“오히려 내가 너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 같은데? 나는 움직이는 생물한테 직접 외기를 보내고, 또 그걸 지속하는 재주는 없어.”
“그렇게 말해도 난 어떻게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단 말이야. 그러니까 얼른 요령을 가르쳐 줘.”
성진이 다짜고짜 고집을 부리자, 로건은 잠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명상 중에도 무의식적으로 오러 실체화를 남발하는 이성진이 아닌가. 곧 그러려니 생각한 로건은 순순히 대답해 주었다.
“시선이 이르는 곳에는 언제나 사람의 인식이 따르잖아?”
“응.”
“그러니 그곳에 자연히 의념이 일어나고, 덩달아 오러가 이끌려 흐르는 이치일 뿐이다.”
“……?”
“중요한 건 외기와의 일체감을 절대 놓지 않는 거야. 그리고 잠시라도 시선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거지. 그렇게 하면 외기는 내 손을 벗어나되 벗어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가 되니까.”
…괜히 물었나.
아버지나 로건이나, 선문답 하는 건 똑같구나. 하긴, 그러니까 이 녀석이 소드 마스터겠지.
“저하, 그 짐승은?”
그때 오토, 엘리, 뒤상 경이 로건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한눈에 봐도, 거대한 늑대개의 모습은 범상치가 않았으니까.
“…….”
성진을 슬쩍 일별한 로건이, 그들에게 친절하게 답해 주었다.
“저것은 신수다.”
“신…수? 그게 뭡니까?”
“주신의 은총을 받은 신성한 짐승이라고 하네.”
“주신의 은총이요?”
“그래. 성 아우렐리온 기사단의 부관, 프란시스 경이 명확히 확인한 사항이라고 하지. 그러니까 이 짐승은, 음…….”
하지만 사실은 그 역시 이제 막 알게 되었을 뿐.
설명이 궁해진 로건이 말꼬리를 흐리자, 옆에서 성진이 냉큼 덧붙였다.
“[바람]이라는 신수와 같은 거라고 프란시스 경이 말했어. 성 바스티안의 경전 동화에 등장하는 귀여운 개야.”
“아, 그래. 경전 동화에도 나와 있다. 그러니 성 바스티안의 미덕을 추종하는 기사단의 일원으로서, 우리는 이 성스러운 짐승의 가치를 명확히 인지하고 이에 합당한 대우를 할 필요가 있다. 만인의 귀감이 될 수 있도록 말이네.”
“……?”
별동대의 기사들은 잠시 어안이 벙벙해졌다. 하지만 그들의 정신적 지주, 로건 황자의 표정은 반듯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그렇군요. 저희의 경전 공부가 아직도 미흡했습니다.”
로건 저하께서 그렇다고 하시면 그런 거겠지. 별 의심 없이 납득한 별동대의 기사들은, 감탄 섞인 눈으로 막스를 돌아보았다.
“주신의 성스러운 짐승…….”
헥헥헥!
방정맞게 꼬리를 흔들며 호시탐탐 성진의 머리카락을 노리는 똥강아지를.
“저 활기가 넘치는 모습! 총기가 넘치는 눈을 보게!”
“참으로 늠름하고 믿음직스럽기 그지없군!”
릴리움 기사들의 눈에 실시간으로 콩깍지가 씌는 모습을 목도한 성진은 조용히 식은땀을 흘렸다.
‘로건, 이 무서운 녀석. 대체 기사들을 평소에 어떻게 구워삶았기에, 네 말이라면 종교처럼 신봉할 수가 있는 거지?’
어쨌거나 별동대가 조직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악마종 토벌 계획도 활기를 띠게 되었다.
릴리움의 기사들은 피해 범위를 정확하게 파악한 후, 농경지 방향을 중심으로 넓게 산개하기 시작했다.
“그라니우스식 결계를 만들 준비를 하는 거다.”
성진이 멀뚱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 로건이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일단 소수의 인원만으로 악마를 둥글게 감싸는 반원의 진을 만든다. 정면을 방어하는 그라니우스식 1형 방어진이었다.
그렇게 급한 대로 형태를 잡아두면, 이후 다른 성기사단이 도착했을 때 완전한 구형의 0식 결계를 빠르게 구축할 수 있다나.
그러는 동안, 침식에 오래 노출되었던 마사인은 당장 황도로 이송하기로 결정되었다.
“저는 모레스 저하의 곁을 지켜야 합니다!”
고지식한 기사는 처음에는 완강하게 거부했다.
“하지만 무리한 말씀입니다, 마사인 경.”
“지금이야 로건 저하의 신성력에 억눌려 있지만, 침식의 범위가 생각보다 큽니다. 이를 완전히 치료하려면 당장 황도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괜찮습니다. 저는 버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앞을 가로막은 엘리 경은 가차 없었다.
“고집도 정도껏 부리십시오! 대체 경의 침식을 저지하기 위해 몇 명의 성기사가 매달려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지금의 인원으로는 악마종을 막기 위한 결계를 치기에도 한참 부족합니다!”
“아니…….”
“설마 스스로의 임무에만 정신이 팔린 나머지, 모두에게 그런 엄청난 민폐를 끼칠 생각은 아니시겠지요?”
그렇게 해서 마사인은 찍소리도 하지 못한 채 황도로 끌려가게 되었다.
“저하아아아…….”
멀어지는 마사인의 절규를 들으며, 성진이 애석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 주었다.
내 걱정은 하지 말고, 어서 자신의 몸이나 추슬러, 마사인 경.
그리고 화가 완전히 풀릴 때쯤 천천히 진주궁으로 돌아와. 자네는 화가 빠르게 식는 편이니까.
그 와중에 모두가 예상치 못한 조우도 있었다. 바로 지그스문트령에서 만난 이후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하게 된 록사나와 막스였다.
킁킁.
막스가 꼬리 치기를 멈추고서 고개를 들자, 아름다운 백마 또한 고고한 태도로 늑대개를 내려다본다. 일순 두 마리 사이에서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한데 예전처럼 날카롭게 신경을 세우며 서로를 견제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록사나와 막스는 꽤나 담담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찰나의 시간이 흐른 뒤-
막스가 먼저 나직하게 목을 울렸다.
크르르.
-이제 알았겠지? 나의 거대함과 강함을.
그러자 록사나 역시 가볍게 코를 울렸다.
푸릉.
-흥. 큰소리칠 만은 하군. 아직 내 상대가 되기에는 시시하지만.
으르르…….
-덤벼 볼 테냐? 나는 지지 않는다!
푸르르…….
-경거망동하지 마라, 애송아. 너와는 언젠가 결판을 낼 날이 오겠지.
마치 두 마리의 대화가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울리는 기분이 들었다.
보고 있던 마왕 놈이 머릿속에서 실소를 흘렸다.
[…저놈들 대체 뭐 하는 거지?]그러게나 말이다.
어쨌거나 별동대가 열심히 결계를 준비하는 동안, 성진은 상대적으로 한가해진 로건을 붙잡고서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이왕 오러가 넉넉한 김에, 배워둘 것은 배우고, 시험해 볼 것은 시험하고 싶었으니까.
어쩐지 서둘러야 할 것 같다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조급함이 느껴지기도 했고.
“외기를 날리는 법? 당장 여기서?”
“응. 나도 그거 한번 해보고 싶었어. 마사인 경은 물론이고, 마리아 경이나 쿠르트 경도 곧잘 써먹던데?”
“그야 그들은 상급 기사들이니까.”
그렇게 대꾸한 로건이, 잠시 성진의 상태를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뭐, 지금 정도의 오러라면 네게도 가능할지 모르겠다. 갑자기 어떻게 그렇게 많은 오러가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다 아버지한테 받은 거야. 지금까지는 아끼고 있었던 것뿐이라고.”
“…오러를 타인에게 양도받아?”
로건은 잠시 갸웃거렸지만, 곧 그러려니 생각한 모양이었다.
“뭐, 그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그런 것도 가능한가 보구나. 그럼 일단 해보자. 너 바나하스 4식 5형의 ‘작은 검막 펼치기’는 이미 알고 있지?”
“응. 연공식 자체는 완전히 익혔어. 하지만 마사인 경의 설명처럼 검막이 짠, 하고 펼쳐지지는 않던데?”
“그건 순전히 네 오러의 총량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로건은 직접 시범을 보여주었다.
우우웅-
곧 아르쥬나가 작게 울리며, 물결치는 검날 주위로 은청색의 얇은 막이 생성된다.
그렇게 주력 연공법도 아닌 바나하스 식을 아무렇지도 않게 펼쳐 보인 로건이 설명을 이었다.
“여기 검을 둘러싼 얇은 막이 보이지? 외기를 날리기 위해 준비하는 것도 이와 요령은 비슷하다. 가장 효율적으로 오러의 막을 만들어내는 방법이거든. 어때? 지금 4식 5형을 펼쳐볼래?”
“어. 알았어.”
성진이 호두까기를 들어 자세를 잡자, 로건이 옆에서 덧붙였다.
“편하게 검에만 오러를 집중하려면, 우선 그 개는 좀 떼어놓고…….”
하지만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이내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니, 아니다. 그냥 두는 게 좋겠군. 평소보다 네 오러가 부드럽게 흐르는 게, 다 그 개 덕분인 거 같네.”
“응?”
“너 혼자 움직이면 또 몸속에서 막무가내로 오러를 휘두를 거 아냐? 그러게 평소에 스스로를 좀 그렇게 아끼면 오죽 좋을까.”
“……?”
오러를 그냥 움직일 뿐인데, 대체 전과 무슨 차이가 있다는 말이지?
성진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어쨌거나 지금 그것은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금세 작은 검막 펼치기에 집중한 성진은, 몇 번의 시도 끝에 마침내 희미한 회색의 검막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넌 정말로 오러로 하는 것이라면 뭐든 곧잘 해내는구나.”
로건은 대단히 감탄한 듯했다.
“그럼 이제 그 검막을 분리해서 멀리 날려볼까? 요령은 바나하스 3식 7형, ‘물수제비뜨기’와 비슷해.”
“3식 7형… 3식 7형…….”
“그게 조금 어렵다면, 그냥 돌 하나를 실로 묶어, 검날에 매달고 휘두른다고 생각해도 좋다.”
소드 마스터의 조언은 꽤나 직관적이며 단순했다. 그런데 그게 또 의외로 성진의 머리에 쏙쏙 들어왔달까.
‘돌을 던진다. 검날에 실을 매달고 돌을 던진다…….’
부르르르…….
호두까기가 작게 떨리기 시작하자, 결계를 준비하던 성기사들이 힐끔힐끔 성진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오러 흔들기에 집중하던 성진은 그것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몰입하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피잉-
픽!
이윽고 성진의 검에서 작은 오러 조각이 떨어져 날았다. 지금까지 봐왔던 것에 비하면 형편없이 작은 외기였지만, 그것은 분명 공룡의 몸에 적중하여 작은 마기의 분수를 만들어냈다.
“됐다!”
성진이 신이 나서 외치자, 로건도 덩달아 들뜬 눈치였다.
“하하, 잘하는데? 그럼 내친 김에 이것도 한번 배워볼래?”
그러곤 로건이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가볍게 발을 디뎌 보이는 게 아닌가. 마치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까 보여준 움직임과 요령은 비슷하지. 아마 너라면 금방 따라할 수 있을 거다.”
성진이 자세히 살펴보니, 로건의 발밑에서 그때그때 실체화되는 오러의 바람이 보였다.
“…소드 마스터는 참 신기한 재주를 많이 부리는구나?”
“별건 아니야. 나도 우연히 다른 사람에게 배웠어.”
그렇게 대답하는 로건의 뇌리에는, 허공을 박차고 적진으로 뛰어들던 한 용병 소년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당시만 해도 그런 식으로 오러를 운용하는 게 가능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지.
“음…….”
성진이 집중한답시고 잔뜩 미간을 찌푸리자, 로건이 부담을 덜어주려는 듯 말을 덧붙였다.
“검이라는 구심점 없이 오러를 한 점으로 모으는 일이야. 생소한 방식일 테니 당장은 힘들지도 모른다. 그리 급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돼.”
그런데 한참 갈피를 잡지 못하고 고군분투하는 듯 보이던 성진이, 잠시 후 허공에 작은 오러의 소용돌이를 만들기에 이르는 것이 아닌가!
로건이 드물게도 감탄한 얼굴을 했다.
“이성진.”
“응?”
“넌 역시 검과 오러 연공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어. 이참에 정식으로 헤네시스 연공법을 익혀보지 않을래?”
“…….”
성진은 황당함에 말문이 막혔다.
이 조국 사랑에 미친놈이, 이런 상황에서도 오르토나의 연공법 전수를 포기하지 못했어?
하지만 로건의 태도는 진지했다.
“들어봐. 내가 가엘 베르트란으로 살던 시기에도, 진심으로 가르쳐 보고 싶다고 느낀 인재는 일생에 단 하나뿐이었지. 아쉽게도 상황이 상황이라 무산되고 말았지만. 그 이후로는 정말로 이런 제안을 하는 건 네가 처음이다.”
“그래?”
그제야 조금 솔깃해진 성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근데 가엘이던 시절에는 왜 제자 양성이 무산 된 거야? 그 단 하나의 인재가 누구였는데?”
“예전에 전선에서 만났던 용병 소년이다.”
그렇게 대답한 로건이, 잠시 주저하더니 덧붙였다.
“…그러니까, 바로 지금의 아바마마시지.”
그 황당한 대답에 성진은 저도 모르게 입을 쩍 벌렸다.
‘아버지를 가르치려 했다고? 이런 미친 천재 자식! 너, 제자를 고르는 눈이 너무 높은 거 아냐?’
그렇게 성진이 새로운 기술 익히기에 여념이 없을 무렵.
꿈틀!
가만히 누워있던 악마종이 묘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드드드드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