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359)
성황의 아이들-359화(359/469)
359. 입단 (2)
성진은 붉게 점멸하는 마왕의 영혼을 말없이 응시했다.
‘…마왕이 돌아간다? 게헤나로?’
솔직히 말하면 꽤나 당황스러웠다. 지금까지 일말의 가능성조차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으니까.
따지고 보면 이상한 일이었다. 성진은 이미 자신의 몸에 게헤나와 연결된 통로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스스로가 통로를 통해 직접 그곳으로 튕겨나간 적도 있었지.
하면 마왕의 영혼 역시 그런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진작 알았어야 했는데.
‘어쩐지 앞으로도 녀석이 계속 이곳에 있을 거라고 근거 없이 믿고 있었단 말이야.’
마왕이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놈은 지금까지 조금씩, 꾸준하게 자기 자신을 잃어가고 있으니까.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감각은 물론 모든 힘과 격을 잃고, 이제는 놈의 이름마저도 흐지부지 없어질 지경.
그 충격으로 마왕이 주책없이 훌쩍거린 것이 지금까지 한두 번이던가.
‘하지만…….’
그럼에도 성진은 쉽게 확신할 수 없었다.
게헤나로 돌아가는 것. 그리고 이전의 모습과 힘을 되찾는 것. 그것이 진정 마왕 자신을 되찾는 길이라고 생각해도 좋은 것일까?
[게헤나로 돌아가면, 나는 이전보다 더 강한 마왕이 될 수도 있어.] [그래?] [응. 시구르트 34지구와 게헤나는 완전히 융합이 끝났으니까. 이제 내가 마왕의 격을 되찾으면, 아마도 저 두 차원은 이전보다 더욱 새롭고 견고한 하나의 차원으로 도약할 수 있을 거야.] [흠.]성진이 별 감흥 없이 대꾸하자, 조바심을 내듯 마왕의 영혼이 불규칙하게 일렁거렸다.
[이제 한동안은 다른 차원을 침범하지도 않아. 나도 내 차원의 내실을 먼저 다져야 할 테니까. 물론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 또 다른 도약을 도모해야 하는 날이 오겠지만…. 아! 물론 네가 있는 델크로스를 침범하는 일만은 절대 없을 거야!] […….] [이곳은 내가 당장 어떻게 해 볼 수도 없는 고위 차원이잖아? 거기다 괴물 같은 네 아버지와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고 상상하기만 해도… 영혼에도 없는 오금이 다 저려올 지경이라고.]그래. 우리 아버지에 대해 잘 아는 놈이니까, 감히 그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거라 기대하지는 않겠지.
‘하지만…….’
성진은 아까부터 묘한 기분을 느끼는 중이었다.
오랜 시간 놈과 부대끼며 지낸 탓일까. 로건처럼 진실을 간파하는 능력은 없었지만, 성진은 어째서인지 마왕 놈이 정말 말하고 싶은 화제를 애써 피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뭐가 그렇게 무섭냐, 마왕아?]그냥 통로를 타고 돌아가서, 다시 마왕이 되면 끝날 일 아닌가.
그 과정 중 어디에, 네가 두려움을 느낄 만한 게 있어?
[……!]그런데 그 지적이 정곡이었던 모양이다. 마왕이 움찔 놀라며 그대로 입을 다물어 버렸으니까.
그렇게 잠시 대화의 단절이 있었다. 성진과 마왕은 각자의 생각에 잠겨, 통로에서 힘없이 밀려나가는 검붉은 겁화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즈음에 이르러, 성진은 성황의 오러가 불꽃을 밀어내는 힘이 조금씩 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
뭐지?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성진이 의아해하는데, 이윽고 마왕 놈이 뭔가를 결심한 듯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성진, 그거 알아?] [음?] [처음 만났을 때, 너는 말도 제대로 안 통하는 미친놈이었어. 타협이나 회유는 애초에 불가능한 데다, 너보다 훨씬 강한 상대를 향해 겁도 없이 적의를 불태웠지. 세상에 뭐 저런 정신 나간 놈이 다 있나 싶었다고.]닥쳐라, 마왕 놈아!
결국은 내 주먹에 만신창이가 된 주제에, 너는 이 상황이 되어서까지 사람의 인격을 비방하고 싶냐?
[그런데 이 세계로 넘어오고 나서 불가항력으로 함께 지내다 보니, 너에 대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알게 되더라.]붉은 영혼은 오랜 추억을 회상하듯 아련한 빛을 뿜어냈다.
[넌 생각보다 화를 잘 내지 않았어. 충분히 그럴 만한 상황이 몇 번이고 반복되는데도 말이야. 뭐든 네 좋을 대로 밀어붙이기만 하는 사이코패스일 거라 생각했는데, 몇몇 특별한 경우만 아니면 어지간해서는 좋게좋게 넘어가는 호구 같은 면도 있지 않겠어?]…뭐? 호구?
성진은 하도 어이가 없어서 오히려 대꾸할 마음이 사라졌다.
지금 이게 누구더러 호구래? 나만큼 제대로 손익과 실리를 따지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딱히 표현의 자유 같은, 그 녀석들의 기본권을 존중하겠다는 마음가짐은 아니었다.
그저 그들의 행동이 성진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기 때문이지.
딱히 신경 쓸 가치가 없잖아? 걷는 중 발에 툭툭 채여 나가는 돌멩이들을, 조금 성가시다는 이유로 일일이 청소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그래서 깨닫게 되었지. 너의 적의는 기본적으로 네 사람들을 위협하는 것들, 그리고 너의 생존을 위협할 정도로 강한 것들에 한해서만 작동한다는 것을.]거기까지 말한 마왕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조금은 힘겹게 말을 이었다.
[그럼, 나는 어떨까?]뾰오옹.
붉은 영혼이 둥실 떠오르더니 성진을 마주보며 흐릿하게 깜박거렸다.
[이성진. 너는 나를 죽이기 위해 헌터가 됐다고 했잖아. 그리고 끝끝내 그 목적을 이루고 말았지.]그래. 그랬었다.
동료들은 물론 스스로의 몸까지 완전히 불살라가며, 마침내 마왕 놈을 완전히 끝장냈어.
[내 영혼을 어쩌지 못하고 내버려 둔 것도, 사실은 날 어떻게 죽여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잖아? 그런데 내가 만약 힘을 되찾아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면…….]잠시 말끝을 흐린 작은 영혼이, 불안감을 반영하듯 불규칙적인 빛을 내뿜었다.
[네 사람들을 해친 적 있고, 더는 네가 아량을 베풀 정도로 약하지도 않은 나는… 그런 나는 네게 있어서 어떤 존재가 되는 거지?] […….] [그때도 네가 지금처럼 날 대해줄까? 아니, 날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있어? 또다시 모든 것을 바쳐가며 날 죽여 버리겠다고 한다면, 나는…….]성진은 그 물음에 섣불리 대답할 수 없었다. 스스로도 힘을 되찾은 마왕 놈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 수 없었으니까.
그럼에도 이런 의문은 들었다.
‘마왕 놈은 왜 굳이 이런 걸 묻는 거지? 설마 힘을 되찾는 데 내 허락을 구하는 건가?’
대체 왜? 그저 내가 무서운 거라면, 그냥 저 멀리 도망가 버리면 되는 것 아닌가.
이제 델크로스에서 모레스로 살기로 결심한 성진은, 전처럼 모든 것을 버려가며 놈을 쫓지 못할 텐데.
그러다가 문득 성진은, 게헤나의 불꽃에 잠식되어 가던 절체절명의 순간을 떠올렸다.
-이성진. 아마 아직 늦지는 않았어. 지금이라면 남은 오러로 게헤나의 불을 저지할 수 있어.
그때, 마왕 놈이 치열하게 갈등하던 이유를 이제는 알 수 있었다.
마왕이 게헤나로 되돌아가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었으리라.
성진이 게헤나의 불길에 휩싸여 죽어버리고, 그래서 통로가 게헤나의 불에 완전히 지배당하는 것.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설령 통로의 존재를 알았더라도 마왕 놈이 돌아갈 길은 요원했겠지.
아무리 아버지의 결계를 두르고 있다고 해도, 신성력이 가득 배어있는 오러를 뚫고서, 그 긴 통로를 넘어갈 수는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결국 마왕 놈은 게헤나로 돌아가 힘을 되찾는 대신, 성진을 먼저 살리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나는 놈이 부모님의 원수라는 사실을 절대 잊을 수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놈이 자신을 위해 애써줬다는 사실 또한 변하지 않는다. 받은 호의를 그대로 돌려주는 것은 성진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정말 간절히 돌아가고 싶었다면, 애초에 나와 이런 대화를 시작하지도 않았을 거야.’
마왕의 진짜 속내를 짐작할 단서는 충분했다.
놈이 직접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넌 이곳을 꽤 좋아하잖아?
아마 놈은 그때 성진의 생각을 대변해 줬을 뿐이라고 여기겠지.
하지만 내심은 마왕 놈 역시 이곳을 무척 좋아하는 거다.
곰고기 스테이크가 있고, 맛있는 여러 요리들이 있는 곳. 얼뜨기라고 타박할 브루노 단장이 있고, 그 외 시끌벅적한 인간관계로 가득한 곳.
이곳을 쉽게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은 아마 성진 혼자만의 것은 아니리라.
그래서 성진은 조금 편안해진 마음으로 제안할 수 있었다.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는지, 마왕의 영혼이 당황한 듯 깜박거렸다.
하지만 이어지는 성진의 말은 청산유수였다.
[내가 살아있는 한 통로는 어차피 계속 남아있을 거고, 언젠가 한번은 다시 열릴 일이 있겠지. 넌 언제든 게헤나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뜻이야.]그래. 길은 조만간 다시 열릴 거다.
어째서인지 성진은 그런 강한 예감이 들었다.
[그러니 서둘러서 갈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저 너머에는 이미 아무것도 남아있는 것이 없을 텐데. 게헤나의 불이 지구와 게헤나의 모든 것을 불살라 버렸을 거 아냐.] […그건 그런데…….] [그렇다면 어차피 돌아가 봐야 다 부질없는 짓이 아닐까. 너, 거기 가서 혼자 뭐 하려고?] [아니, 하지만 이성진. 전에도 말했다시피, 융합한 두 세계가 가진 엄청난 잠재력은…….] [그러면 뭐 하냐. 거기에는 곰고기 스테이크도 없는데.] [……!]내면의 갈등을 나타내듯 강하게 점멸하는 마왕을 향해, 성진이 입꼬리를 씨익 끌어올리며 쐐기를 박았다.
[그리고 네가 없으면 나도 꽤 불편한 점이 많다고.] [응?]의외의 말이었는지 마왕이 다급한 빛을 흩뿌리며 성진에게 물었다.
[내가… 내가 너에게 필요해?] [그래. 당연하지. 넌 영안을 가지고 있고, 거짓말 탐지도 가능하고, 황도 밖에서는 꽤 멀리까지 정찰하는 것도 가능하잖아?]거기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꽤 똑똑하기도 하지. 마왕답게 아는 것도 많고.
[게다가 생각해 봐라, 마왕아. 네가 내 옆에 붙어 있어야, 만약 나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내 길동무가 되어 주지 않겠어?] [어……?] [내가 죽으면 너도 같이 죽는 거야. 설마 내가 너만 살려두고서 순순히 갈 것 같아?] [……!]마왕은 잠시 얼이 빠진 듯 깜박임을 멈췄다.
그러는 사이 그들이 머물고 있던 공간에도 서서히 변화가 생겨났다.
게헤나의 겁화가 뿜어내던 불길한 빛이 저만치 밀려나고, 사위가 눈부시게 흰빛으로 뒤덮여 나간다.
성황의 오러가 어느새 통로의 절반가량을 수복한 것이다.
‘생각보다 느려. 아버지, 뭐 하고 계신 거지? 이번에는 단번에 밀어내지 않으실 셈인가?’
성진이 주변을 둘러보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에휴…….]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마왕 놈이, 곧 어이없다는 빙그르르 성진의 주위를 맴돌았다.
[그게 뭐야? 그게 뭔데? 다른 사람을 상대로는 잘만 협상을 하는 놈이, 나한테 하는 제안은 대체 왜 그 모양이야?]뭐? 왜? 뭐?
여기에 협상의 여지가 있냐? 네놈한테 곰고기 스테이크 말고 뭐가 더 필요한데?
성진이 뻔뻔한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조만간에 이곳을 나가, 눈을 뜨게 될 것 같다는 강한 예감이 들었으니까.
[…그래. 어쨌든 날 당장 끝장낼 생각은 없다는 거구나.]잠시 주저하던 마왕은 곧 포옥 한숨을 휘며 성진의 손아귀로 내려앉았다.
[그리고 곁에서 쫓아내지도 않는다는 거고. 그래도 이왕이면 말을 좀 곱게 해 줄 수는 없는 거냐, 이 매정한 놈아?]하지만 그렇게 한탄하는 놈의 목소리에는 미약하게나마 안도감이 어려 있었다.
이놈은 그게 뭐가 그렇게 마음이 놓이는 걸까. 늘 함께 부대끼면서 어지간한 건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알 수 없는 부분이 많은 놈이다.
[훌쩍. 그래도 내가 갈 때는, 너도 길동무가 되어 준다는 말이지? 그지, 이성진?] [시끄러워. 이제 그만 좀 징징거려.] [훌쩍. 훌쩍. 이성진, 이 멍청아.]성진은 더는 대꾸하지 않고는 마왕의 영혼을 감싸 쥐었다.
그때-
-모레스.
누군가가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부름을 기쁜 마음으로 반기며, 성진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