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364)
성황의 아이들-364화(364/469)
364. 입단 (7)
입구를 막고 있던 천이 열리자, 캄캄한 천막 가운데로 환한 빛줄기가 쏟아졌다.
“저하.”
나직하게 그를 부르는 목소리에 오웬은 천천히 눈을 떴다.
“…알리샤?”
“네, 접니다.”
“벌써 아침인가?”
“예, 저하. 어서 서두르셔야 합니다. 오늘이 바로 바르샤의 대부족회의가 열리는 날 아닙니까?”
추수 감사절!
번쩍 정신이 든 오웬이 침상에서 튕겨지듯 일어났다.
“알리샤. 내가 언제 잠이 들었지?”
“어제저녁 식사를 가져왔을 때, 이미 침상에서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그래?”
오웬은 눈썹을 찡그렸다.
참으로 이상한 일 아닌가. 어제는 그리 피곤하지도 않았는데,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의 일이 도통 기억이 나질 않았다.
남부 지도를 펼쳐두고서, 늦게까지 대부족회의에 대해 이런저런 고민을 한 것까지는 기억하는데 말이지.
심지어 지도 위에는, 벗어놓은 검은 토끼 안대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안대도 없이 자다니, 내가 정신이 나갔군. 그나마 악몽을 꾸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다행히 컨디션은 그리 나쁘지 않다. 기억에는 없지만, 꽤 행복한 꿈을 꿨던 것 같기도 하고.
오웬은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넘기며 습관적으로 퀘스트 창을 열어 보았다. 최근 그에게 동기부여는 물론 삶의 활력소가 되어주는 소중한 퀘스트였다.
[특별 퀘스트 ? 황도로 돌아가자!] [퀘스트 등급 : E] [한 차원을 지배하는 여신이, 누군가의 특별한 요청을 받아 삼라만상의 정수를 한곳에 담았습니다. 그 보이지 않는 노력 덕분에 당신은 생각보다 손쉽게 ‘궁극의 엘릭서’를 손에 넣게 되었습니다. 귀한 물건에는 언제나 귀한 쓰임새가 있음이 당연지사. 이제 당신은 황도로 돌아가, 이 아이템을 선물할 사람을 찾아내야 합니다.] [보상 : 30 P캐시] [*본 상품은 판게아 클로니클 상점 창에서 사용 가능합니다.]궁극의 엘릭서.
모든 상태 이상 회복과 능력치의 영구적인 상승은 물론, 사망 페널티를 받은 플레이어마저 멀쩡하게 일으켜 세운다는 초희귀 아이템.
그 아이템이야말로, 오웬이 매일같이 판게아 클로니클에 접속하던 이유였다.
처음에 불친절한 상태창 씨는, 이것을 얻으라는 퀘스트만 주고서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전혀 가르쳐 주지 않았더랬다.
덕분에 오웬은 이러다가 평생 황도로 돌아가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좌절감에 휩싸이기도 했었지.
다행히 최근에 사귄 귀여운 뉴비로부터 얼음 심장을 양도받아, 생각보다 쉽게 퀘스트 아이템을 얻을 수 있었지만.
‘그런데 황도로 가서, 이 엘릭서를 누군가에게 줘야 한단 말이지…….’
퀘스트 창을 바라보는 오웬의 눈매가 깊어졌다.
드디어 황도로 돌아간다, 그런 기쁨도 잠시. 퀘스트의 내용을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걱정과 함께 이런 의문이 인 것이다.
‘이런 아이템이 왜 필요한 거지?’
그가 황도에서 선물을 주고받을 만한 사람들이라면, 성황을 포함한 성황가 사람들이 전부.
하지만 그들 대부분이 이미 강한 신성력을 보유하고 있거나, 혹은 그 신성력의 도움을 즉각적으로 받을 수 있는 사람들 아닌가.
‘게다가 이제까지의 퀘스트들이 그러했듯, 이번 퀘스트도 메인 스트림과 연관 있을 가능성이 높다.’
서둘러 황도로 돌아가고자 의욕적으로 퀘스트를 수행한 덕에, 최근 들어 쭉쭉 진도가 나간 메인 스트림은 어느새 마지막 퀘스트를 앞두고 있었다.
아마도 오늘 있을 대부족회의에서 성공적으로 전선의 안정을 이끌어낼 수만 있다면, 메인 스트림 2는 이대로 완료되리라 기대해도 좋을 테지.
그리고 그다음으로 수행해야 할 메인 스트림은 바로…….
[메인 스트림 3 ? 성□을 (를) 구하라!]역시 여기에 ‘궁극의 엘릭서’가 쓰인다는 뜻이겠지?
그런데 대체 내가 누구를 구해야 하는 거지? 정말로 성녀를 구하는 퀘스트인가? 부디 꼬마 시슬레에게 위험한 일이 생기지는 않아야 할 텐데.
“저하. 늦겠습니다.”
“아아, 그래.”
생각에 잠겨 있던 오웬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지금 바로 가도록 하지. 한데 바르토자의 준비는 어떤가?”
그러자 알리샤의 얼굴에 희미한 비웃음이 스쳐 지나갔다.
“어련하겠습니까? 며칠 전부터 꽁무니에 불붙은 개 마냥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요. 모르긴 몰라도, 어젯밤은 아마 한숨도 못 잤을 겁니다.”
푸르마의 바르토자.
그는 카라잔의 부족장 와카나 투사이가, 오웬을 암살하기 위해 보냈던 얍삽한 배신자다.
-너는 가라. 가서 와카나 투사이에게 전해. 바르샤 부족들 전체를 전란에 휘말리게 하고 싶다면, 어디 뜻대로 해 보라고.
놈의 음모를 파훼한 직후, 오웬은 그를 돌려보내 카라잔에 경고하려 했었다.
하지만 그대로 부리나케 꽁무니 뺄 줄 알았던 바르토자는 대단히 의외의 모습을 보였다. 순식간에 납작하게 부복한 채, 적인 오웬을 향해 완전한 굴종의 의사를 표한 것이다.
-나 푸르마의 바르토자는 전사 오웬의 무용과 아량에 깊이 탄복하는 바요!
-…뭐?
-그러니 훌륭한 전사인 그대에게 우리 일족의 미래를 맡기려 하오. 방금 저들의 간악한 계략을 보았듯이, 이제 바르샤에는 전사의 긍지를 잊고 수치를 모르는 겁쟁이가 늘어가고 있소. 바르샤는 점점 타락하고 있는 거요!
그 ‘간악한 계략’의 핵심 인물이었던 놈이 할 소리냐? 거기다 네가 뭔데 델크로스인에게 멋대로 바르샤의 미래를 맡기는 건데?
어처구니가 없어진 오웬이 알리샤와 눈짓을 주고받았다.
‘뭐지? 이놈?’
‘글쎄요. 겁에 질린 나머지 미쳤나 봅니다, 저하.’
오웬은 몰랐지만, 사실 바르토자는 얼마 전 와카나 투사이 앞에서 외쳤던 것과 같은 맥락의 말을 고스란히 내뱉고 있었다.
-이 바르토자, [불패]의 전사라 불리는 델크로스의 오웬과 함께, 타락해 가는 바르샤의 부족들을 쇄신해 가려 하오! 그러니 부디 나를 심복으로 받아 주시오! 다시 한번 그대의 옆에서 무기를 들 기회를 주시오!
놈은 꼬리를 친다는 말이 적절할 정도로 비굴하게 오웬에게 굽실거렸다.
바르샤의 땅 어디로 도망쳐 본들 꼼짝없이 죽을 거라는 계산이 선 거겠지. 그러니 차라리, 바르샤의 오랜 적이었던 오웬에게 붙겠다는 것이다.
‘이런 놈을 어디에 쓴단 말이지? 푸르마를 배신하고, 카라잔을 배신한 놈이, 나라고 배신하지 못할 것은 없잖아?’
물론 처음에 오웬은 그를 받아 줄 의향이 전혀 없었다.
바르토자의 다음 말을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다가오는 대부족회의! 그곳에 부디 이 몸을 함께 참석하게 해 주시오! 그러면 내 기꺼이 그곳에서 와카나 투사이의 만행을 만천하에 증언하겠소이다!
-……!
오웬은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을 느꼈다.
지금 전선을 안정화시키는 데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이 무언가. 바로 호전적인 부족장 와카나 투사이 아닌가.
그러잖아도 이번 대부족회의에서, 독침을 증거로 제시하며 와카나 투사이를 압박해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예 이를 뒷받침할 증인까지 확보하여, 종국에는 자신에게 우호적인 볼란타 부족에게 회의의 주도권을 쥐여줄 수만 있다면!
‘잠시나마 전선을 안정화시키는 것도 꿈은 아니야. 그렇게만 된다면, 나도 조금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황도로 향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오웬과 바르토자, 두 사람은 각기 다른 마음으로 추수 감사절을 기다렸던 것이다.
“오, 바르토자! 벌써 준비를 마쳤군.”
무장을 마치고 목책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던 오웬은, 입구에서 비굴하게 눈치를 보고 있는 바르토자와 마주쳤다.
무시무시한 와카나 투사이를 마주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자, 그의 안색은 날이 갈수록 초췌해지는 중이었다.
“네게 거는 기대가 크다, 바르토자. 부디 대부족회의에서는 전사다운 당당한 태도로 증언해 주게.”
오웬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자, 바르토자는 황급히 시선을 피하며 눈을 굴렸다.
듬직한 덩치며 투박한 외양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저렇게 볼수록 얍삽해 보이는지 참으로 신기한 놈이었다.
“부디 일이 잘 풀려야 할 텐데.”
“주신께서 굽어 살피실 겁니다, 저하.”
“어쨌거나 네게는 큰 짐을 넘기게 됐다, 알리샤.”
말에 오르며 넌지시 사과의 말을 건네자, 호위기사가 가볍게 예를 취하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저하.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인 것을요.”
오웬은 이번 황도행에, 늘 곁에 붙어 있던 호위기사를 전선에 남기고 떠나기로 결정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남부 전선에서 알리샤의 명성은 이미 단순한 황자의 호위기사를 넘어선 지 오래였으니.
아마도 그녀라면, 오웬이 자리를 비운 동안 전선을 지탱하는 충분한 억제력이 되어주리라.
알리샤 또한 그 점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기에, 남으라는 오웬의 명을 순순히 받아들인 것이리라.
“대신 내가 전선으로 돌아오면, 네게 곧바로 긴 휴가를 주지, 알리샤.”
“됐습니다, 저하. 그냥 황도에서 달달한 먹거리들이나 좀 사다 주십시오.”
가볍게 대꾸하던 알리샤의 눈이 일순 진중하게 빛났다.
“잠시도 방심하시면 안 됩니다, 저하. 와카나 투사이, 그 늙은 여우가 또 어떤 방법으로 부족장들을 뒤흔들지 모르니까요.”
이미 암살 모략에 대한 증거와 증인까지 확보한 상태.
하지만 와카나 투사이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상대였다. 바르샤에서 가장 강한 전사라는 명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절대 방심하지 않고 기민하게 머리를 굴리는 것이 늙은 여우라는 별명에 조금의 부족함도 없다.
오웬 역시 지금까지 몇 번이나 그녀에게 당한 전적이 있지 않은가.
“흠.”
하지만 침묵도 잠시.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던 오웬이 씨익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뭐, 오랜만에 잠을 잘 자서 그런가? 어째 든든한 기분이 드는데? 오늘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절대 그녀에게 질 것 같지 않다, 알리샤.”
“…….”
“걱정하지 마라. 제대로 성과를 내고서 돌아오지.”
알리샤는 새삼스러운 기분이 되어 오웬을 올려다보았다.
어리숙한 소년일 때가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어느 모로 보나 믿음직스럽기만 한 제국의 1황자다.
한때 남부 전선에서 불패의 명장으로 이름을 떨쳤던 발타자르. 그 [불패]의 이름이, 이제는 채 약관도 되지 않은 오웬의 수식어로써 종종 세간에 오르내리는 것이다.
알리샤는 가슴에 손을 올리며 자신의 황자를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예, 저하. 누가 감히 그것을 의심하겠습니까.”
* * *
평화로운 꿈에서 깨어나 안정된 상태를 보인 것도 잠시.
이내 시도 때도 없이 오르는 고열 탓에, 성진은 좀처럼 임시 치료실을 떠날 수가 없었다.
질병이 아닌, 순전히 오러의 성질 변화로 인한 열. 그렇기에 의원의 약은 물론, 사제들의 치료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오로지 성황이 만사 제쳐두고 달려와 막대한 신성력을 쏟아부어야만, 겨우 열이 내리고 상태가 안정되곤 하는 것이다.
덕분에 성황이 업무를 위해 잠시라도 자리를 비울라 치면, 마사인은 대단히 초조해하며 집무실 방향을 기웃거리곤 했다.
“저하, 다시 열이 오르는 게 아닙니까? 지금 당장 폐하를 모셔오겠습니다!”
“진정해, 마사인 경. 아버지라면 방금 전에도 다녀가셨잖아.”
성황은 공사가 다망한 양반이다. 계속 성진의 곁에 붙어 앉아, 언제까지고 오러와 감각을 억눌러 둘 수는 없는 노릇.
성진 역시 그런 보살핌을 원치 않았다. 타인에 의해 모든 오러와 감각을 억제당하는 것은, 작은 움직임은 물론이거니와 호흡마저 일일이 통제당한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모르고 있을 때야 그냥 넘어갔다지만, 막상 인식하게 되니 어찌나 답답하던지, 사람이 견딜 만한 짓이 아니더라고.
그래서 성진은 일단 자구책으로 오러 묶기를 시도해 보았다.
‘오러를 움직이지 않는 상태로 최대한 버텨 보는 거야!’
하지만 그러한 전략도 별다른 소용이 없었다.
오러는 살아 있는 생물에게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보다 생명의 근원에 가까운 힘.
그러니 아무리 완전히 배제하려 해도 미약하게나마 꾸준하게 몸속을 맴돌 수밖에 없고, 자연히 거기에 동화된 지옥의 겁화가 성진을 불사르기 위해 수시로 날뛰게 되는 것이다.
[…훌쩍, 훌쩍.]그리고 그럴 때마다, 머릿속에서는 마왕 놈이 연신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