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367)
성황의 아이들-367화(367/469)
367. 돌아온 탕아 (2)
리자베스 황비를 조사하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난관들이 있었다.
그녀의 주위에는 성황이 안전을 위해 붙인 대단한 정보원들이 포진해 있었고, 아세인 대공 또한 수많은 세작들을 부려가며 황비를 감시 중이었으니까.
그런 사람들의 눈을 피해 조사를 진행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 그래서 다샤는 부득이하게 황비의 정보원 하나에게 협조를 구했다고 한다.
“아직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계시는 전설적인 선배님이 한 분 계십니다. 저하의 요청이 있었다고 전하니 흔쾌히 협조해 주시더군요.”
황비의 어린 시절은 특별할 것이 없었다.
아세인 대공의 1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난 리자베스 아세인. 그녀는 대공의 자식들 중에서 그다지 특출한 편은 아니었지만, 여느 귀족가의 아가씨들처럼 적당한 교육을 받으며 저택에서 고이 자라났다.
어린 시절에는 지금과 달리 그리 사교적인 성격이 아니었던 터라, 저택 밖으로 나가는 일이 매우 드물었다고. 거기다 몸도 약하다고 알려져, 어릴 때부터 주치의와 약을 달고 살았다나?
그러다 보니 황비를 아기 때부터 전담했다는 늙은 주치의, 갈레노에 관해서도 조사하기에 이른 것이다.
“갈레노는 이미 죽고 없었지만, 저택에 남아 있는 진료 기록들을 확보하여 황비님이 당시 무슨 치료를 받으셨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당시 주치의는 놀랍게도 어린 리자베스에게 불임 치료를 하고 있었다.
임신에 좋다고 알려진 수많은 약재들과 함께, 말린 돼지 자궁을 달여 꾸준히 복용시켰다고 하니까.
‘…불임? 리자베스 황비가?’
충격도 잠시.
성진의 머릿속에 곧바로 이런 의문이 찾아들었다.
‘어린 나이부터 불임 치료라고? 대체 무슨 수로 그런 걸 진단했다는 거지?’
솔직히 말하자면 성진은 이 세계의 의학을 믿지 않았다. 역병 환자에게 향수를 뿌리고, 외상 환자에게 사혈 치료를 하는 미친 세상이 아닌가.
하물며 여성의 불임 진단은, 현대 지구에서도 상당히 어려운 축에 들지 않았던가?
상식선에서 생각해 봐도 그렇다. 일단은 결혼 한 이후에 수년간 아이가 생기지 않아야, 병원으로 가서 이런저런 검사 같은 걸 하기 시작하는 거지.
한데 2차 성징도 없는 어린 시절부터 불임을 진단하다니, 어떻게 그런 것이 가능하다는 말이지?
‘거기다 황비는 나… 모레스를 낳았잖아? 그렇다면 결과적으로는 불임이 아닌 거 아냐?’
백번 양보하여 리자베스 황비가 정말 불임이었다 한들, 이 세계의 의학 수준으로 그런 걸 치료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린 성진이 물었다.
“누구야? 그 갈레노라는 자식은. 대체 어디서 의술을 배웠기에 그런 병신 같은 진단을 한 건데?”
그렇게 해서 성진은 다샤로부터 갈레노의 진료 노트를 통째로 넘겨받았다.
팔락팔락.
노트를 넘기자, 황비가 보였던 증상들과 그에 따른 처방을 대충 휘갈긴 메모들이 보였다. 잔뜩 날려쓴 악필 중의 악필이었지만, 어째서인지 성진은 그 제국어들을 해독하는 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다른 공녀들은 모두 건강하게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단전에 오러 층을 쌓는 연습을 시작했다. 하지만 리자베스 아가씨만은 대공비께서 조산을 한 탓인지, 유난히 키가 작고 뼈대가 가늘어 미처 연공을 익히지 못하였다 한다.
하여 딸의 건강을 염려한 아세인 대공이, 당시 역병회 회원들 중 가장 실력이 뛰어난 본인을 찾아와 리자베스 아가씨의 치료를 담당하도록 요청하셨다.
그리고 성진의 곁에 서 있던 다샤는, 일순 그의 눈에서 희미한 안광 같은 것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착각인가?’
그녀는 잠시 의아해했지만, 황자의 상태에 별다른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자 곧 그가 손에 들고 있는 노트로 시선을 옮겼다.
기록에 따르면, 갈레노는 크샨트라의 역병회라는 곳에 소속된 의원이었다. 당시는 아세인을 중심으로 활동을 이어가던 꽤나 급진적인 역병회라는 모양이었다.
“지금도 활동하는 단첸가?”
자연히 그런 의문이 들었다.
후원하고 있는 역병회 관련으로, 성진은 한때 대륙에서 활동하는 유명한 역병회들을 죄다 조사하라고 명한 적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크샨트라 역병회라는 곳은 들어본 적도 없었다.
“지금은 활동하지 않습니다, 저하. 그들은 이단 논란이 일어, 수년 전에 모두 재판을 받고서 화형당했으니까요. 당시 그들과 관련된 기록들도 모조리 불살라졌으니, 이 진료 노트가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도 기적에 가까운 일입니다.”
“흠.”
성진이 보기에 어느 역병회든 미개하기는 매한가지였지만, 그래도 크샨트라 역병회는 당시에 꽤나 파격적인 치료를 시행하는 실력파 학파였다고 한다.
덕분에 갈레노라는 자 역시, 인체의 오러 활성도까지 감지해가며 진단에 이용하는 탁월한 능력을 보이기도 했다고.
-다른 공녀들과 비교하면, 리자베스 아가씨는 특히 복부의 오러가 현저하게 약한 것을 알 수 있었다. 복부에 찬 기운이 가득하여 소화를 잘 시키지 못하고, 이른 아침에 일찍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다. 이는 불임 여성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증상이다.
성진은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아니, 오러 연공을 하지 않았으니 당연히 단전의 오러가 약하겠지. 멀쩡히 오러 활성도를 감지해 놓고는, 지금 무슨 개소리를 갈겨놓은 거람?
-아마도 자궁의 기운이 약하고 간 기능이 정체되어 울혈이 생겼기 때문이라. 의심할 여지 없는 불임의 증상인 것이다.
아아, 벧엘라. 주신이시여. 안타깝게도 아세인 대공가의 귀한 아가씨는 불임을 앓고 계신다.
엉뚱한 추론의 과정을 거쳐 내린 진단은 역시나 처참하기 짝이 없었다.
잠깐. 그런데, 벧엘라?
“이건… 주로 암흑 교단이 사용하는 성호가 아닌가?”
성진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었다. 이제는 죽고 없는 참회의 교구장 벨린다가, 성진과 대화하던 중에 이런 성호를 읊었던 적이 있었지.
거기다가 레오나드는 또 어떠했나.
-벧엘라.
로한의 그 재수 없는 제비 자식 역시, 성진에게 처음에 이렇게 인사를 건네지 않았던가.
-그것을 알고 있소이까? 잊힌 옛 형제들이 그대의 명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소.
성진은 언제부터인가 레오나드가 암흑 교단과 모종의 관계가 있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껏 놈이 줄기차게 만나자는 서신을 보내와도 철저하게 무시로 일관하는 중이고.
“네, 그렇습니다. 지금은 완전히 사장되었습니다만, 수년 전까지만 해도 활발하게 활동하던 지하 교단이 이 성호를 널리 사용하곤 했었죠.”
성진의 물음에 다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갈레노가 정말로 이단이었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어째서 그렇지?”
“그가 활동하던 당시는 지하 교단이 아직 이단으로 낙인찍히지 않았던 때니까요. 현 성황 폐하께서 지하 교단을 [암흑 교단]으로 명명하고 완전히 퇴출하신 것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그때만 해도, 신민들은 정교회와 지하 교단의 구분 없이, 그저 주신께 드리는 찬양으로 이 성호를 곧잘 사용하곤 했죠.”
흐음.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었지만, 성진은 달리 반문하지 않고는 노트를 빠른 속도로 넘겼다.
-하여 라무스의 열매를 달여 먹여, 먼저 복부의 찬 기운이 자연히 빠져나가도록 유도하였다. 하지만 설사를 하면 할수록, 리자베스 아가씨는 호전되지 않고 점점 말라가기만 할 뿐이었다. 아마도 치료를 견디기에는 아가씨의 몸이 너무나 연약하기 때문이리라.
어이, 설사를 유도하니 사람이 점점 탈수가 생기며 약해졌겠지. 이 자식이 지금 멀쩡한 어린애에게 무슨 짓을 했던 거야?
-그래서 곧 치료 방침을 바꾸기로 결단을 내렸다. 안젤리카의 뿌리, 시나몬의 껍질, 말린 돼지의 자궁을 복용하도록 처방했다. 또한 일반 향수를 쓰지 말고, 지열을 품고 있는 구근 식물의 향기를 늘 가까이하도록…….
사락사락.
그렇게 어처구니없는 기록들을 넘겨보는 동안, 문득 성진에게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어머… 리자베스 황비는 이런 엉터리 치료를 받아 왔구나. 그러면 불임이 사실이든 아니든, 적어도 그녀는 자신이 불임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겠지?’
그러던 중, 거의 마지막 장에 이르러 문득 성진의 눈에 들어오는 문구 하나가 있었다.
-모든 방법을 강구하였음에도 치료가 이렇게 지지부진한 이유는 무엇인가. 아마도 신께서 이리되도록 미리 안배하신 까닭일 것이다.
혹한에 불꽃이 일고 사막에서 풀이 자라는 것은, 죽음께서 친히 그 숨을 불어넣었기에 가능한 기적일지니. 이를 위해서는 먼저 그 바탕이 지독히 추워야 하고, 지극히 메말라야만 하는 것이다.
성진은 눈을 깜박였다.
“어……?”
잠깐만.
어라? 나, 이거 어디선가 들은 적 있지 않았나?
‘그러니까, 아마도 이런 말이었던 것 같은데.’
애열이 혹한에 불꽃을 틔우고, 파종이 사막에 농사를 지으니, 안식이 친히 그 숨을…….
삐이-
갑자기 귀에서 이명이 들리며 의식이 아득해졌다.
“…저하? 왜 그러십니까?”
성진이 노트를 내려놓고서 비틀거리자, 화들짝 놀란 다샤가 황급히 그를 부축하며 물었다.
하지만 성진의 귀에선 이미 그녀의 목소리가 인식의 범위를 벗어날 정도로 훌쩍 멀어진 뒤였다.
대신 청신경을 한가득 메우는 것은, 지독한 열기와 함께 점점 거세지는 누군가의 심장 소리.
쿵! 쿵! 쿵!
그리고 망각으로부터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환의에 가득 찬 군중들의 함성이었다.
-기뻐하라! 그리고 경배하라!
-아기는 교단의 영광을 위해 [예비된 자]이니!
그것은 언젠가부터 잊어버리고 있던 오랜 악몽이었다.
‘아, 맞아. 언젠가 그런 일이 있었어…….’
그날, 성진은 검은 로브에 감싸인 채 높은 제단 위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똑같이 검은 로브를 입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그런 성진을 향해 줄줄 눈물을 쏟아내며, 동시에 정신없이 광소를 터뜨리고 있었지.
-예비된 자여! 주신의 사도시여!
-아아, 이제야 때가 왔도다!
-오랜 억압에서 벗어나, 지하 교단은 다시금 번성하리라!
영혼의 고통에는 결코 끝이 없음을 알고, 기다리는 구원은 아직도 멀기만 함을 깨달았지만, 다른 이들 또한 결코 구원에 다다를 수 없다는 사실에 되레 안도하며, 그저 답이 없는 기도만을 목이 터져라 외치는 자들.
이들의 얼굴에 서린 복잡하고도 강렬한 감정들을, [광기]라는 말 외에 달리 무엇이라 표현할 수 있겠는가!
성진은 그런 광신도들을 바라보며, 한없는 연민과 깊은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다.
-그래. 드디어 기다리던 때가 도래하였다!
그리고 그곳에 또한 [그자]가 있었다. 이 모든 난장판을 계획하고 실행해 온, 저주받을 안식의 대주교가.
제단 옆에 꼿꼿이 서서 이 모든 광경을 보고 있던 대주교는, 성진과 똑바로 눈을 마주하며 자신만만하게 입꼬리를 휘었다.
-보아라! 아직 그의 예비는 끝나지 않았으니!
아니, 아직은 아니야.
뚜벅뚜벅.
천천히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대주교로부터 황급히 시선을 돌리며 성진이 생각했다.
‘아직은 때가 아니야! 지금은 저자를 봐서는 안 돼!’
분명 자신의 기억 속 어딘가에 뚜렷이 남아 있을 안식의 대주교.
그런 그의 얼굴을 똑바로 인식하지 않으려 애쓰며, 성진은 다급하게 눈을 감고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어서! 어떻게든! 지금 당장 이 악몽을 벗어나지 않으면……!’
[모레스!]바로 그때, 어디선가 그를 부르는 다급한 사념이 들려왔다.
그날과 똑같은, 하지만 그때는 차마 화답하지 못했던, 그럼에도 성진이 무의식중에 언제나 간절히 기다리고 있던 구원의 목소리였다.
‘…아버지?’
성진이 반사적으로 그 목소리에 대답한 순간이었다.
쏴아아-
폭포처럼 쏟아지는 강대한 신성력과 함께, 이내 악몽이 저만치 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피로 물든 검은 제단과, 이를 경배하는 섬뜩한 광신도들의 모습이. 그리고 악착같이 성진에게서 눈을 떼지 않던 대주교의 모습까지도.
그 모든 기억들이 이내 인식의 저편으로 사라졌지만, 성진은 이번만큼은 그것이 조금도 아쉽게 느껴지지 않았다.
“모레스, 괜찮으냐?”
열기가 서서히 가라앉는 것을 느끼며 성진은 깜박, 눈을 떴다.
예상했던 대로 그의 눈앞에는 성황의 모습이 있었다.
평소와 같이 침착한 그의 회색 눈을 마주하자, 어째서인지 절대적인 안도감이 밀려들었다.
후우.
언제부터 참고 있었는지 모를 숨을 내뱉으며, 성진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그의 눈에, 새파랗게 질린 채로 방 한쪽에 달라붙어 있는 다샤의 모습이 들어왔다.
“서, 서서서, 성황 폐하!”
갑작스러운 성황의 등장에 미처 도망치지도 못한 다샤는, 어쩔 줄을 모르며 바짝 얼어붙어 있었다.
“대체 어, 어떻게? 어디서 갑자기? 이 근처에서는 분명 그 누구의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아.
성진은 조금 딱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상할 것도 없어, 다샤. 아버지는 옆에 있는 집무실에서 잠시도 움직이지 않으셨을 테니까.
아마도 네가 기회를 엿보며 근처를 맴돌고 있으니까, 그냥 편하게 들어오라고 기척을 완전히 지워주셨던 게 아닐까?
하지만 다샤의 수난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저하아!”
콰앙!
문을 거의 부수듯 밀어젖히며, 마사인 경이 치료실 안으로 뛰어들었다. 잠시 로건에게 끌려 나갔다가, 성진의 이상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온 것이다.
“로건 저하께 들었습니다! 또 열이 오르시는 것 같다고…! 이제 괜찮으십니까?”
“어, 응. 괜찮아.”
그런 마사인의 뒤로 로건이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걸어 들어왔다. 그러고는 방구석에 바짝 웅크리고 있는 다샤를 향해 곧장 다가가, 애석한 표정으로 사과의 말을 전했다.
“아직 용무가 다 끝나지 않은 것 같은데 미안합니다. 모레스의 상태가 상태라서 말입니다. 하지만 안심하십시오. 금방 마사인 경과 자리를 비켜드릴 테니, 다시 모레스와 천천히 대화하시면 됩니다.”
“……!”
다샤는 일언반구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굳어버렸다.
어, 그래. 뜬금없이 야간 산책을 한답시고 마사인 경을 끌고 나갔을 때부터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지만.
“로건. 역시 너, 다샤가 온 걸 알고 일부러 자리를 피한 거냐?”
녀석이 자리를 뜬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샤가 찾아왔으니 아마도 틀림없겠지.
그러자 로건이 난처한 듯 대답했다.
“음. 그게, 밖에서 네 정보원이 너무 오랜 시간 기다리는 것 같길래…….”
결국 다샤의 움직임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조리 알고 있었다는 뜻.
“헉!”
다샤는 깊은 내상을 입고는 비틀거렸다.
원숭이 망루 최정예 정보원의 [믿음]이 실시간으로 산산조각 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