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369)
성황의 아이들-369화(369/469)
369. 돌아온 탕아 (4)
동굴 안에 앉아 있던 로메인은 갑작스러운 오한을 느끼며 미간을 찌푸렸다.
‘…뭐지?’
그저 밤공기가 차갑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지금의 둔한 몸은 그의 본체가 아니기에, 어지간히 극심한 온도 차가 아니고서는 추위를 감지하기조차 힘들었으니까.
“무슨 일인가, 로메인?”
맞은편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갈래머리 소녀, 탐욕이 의아한 듯 물어온다.
로메인은 잠시 한쪽 눈을 감고서 주변을 유심히 둘러보다가 이내 고개를 휘휘 저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탐욕의 군주시여. 그저 기분 탓이었나 봅니다.”
오랜 시간 안락한 은신처가 되어주던 오두막을 잃은 로메인은, 두 마왕들의 닦달에 부랴부랴 새로운 접선 장소를 물색해야 했다.
그것이 바로 델크로스 남쪽에 위치한 이 작은 동굴이었다.
황도와 어느 정도 거리가 있으면서, 현재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는 바서스트령과도 제법 멀찍이 떨어져 있는 곳.
급하게 마련하느라 아직은 변변한 가구 하나 없는, 춥고 누추한 장소였다.
인간의 감각에 둔한 두 마왕들이 그다지 불편함을 느끼지는 못하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랄까. 물론 좁은 동굴 안에 쪼그리고 모여 앉은 모습들이 지독히도 궁상스럽긴 했지만.
“아, 그나저나 정말 미쳐버리겠네!”
늙은 사제의 모습을 한 파종이 분통을 터뜨렸다.
“어쩌면 일이 이 지경으로 꼬일 수가 있는 거지? 잠시 빚을 갚으러 다녀온 것뿐인데, 그 짧은 시간 동안 어떻게 이렇게까지 일이 최악으로 치달을 수가 있냔 말이야!”
애열의 독촉에 못 이겨 강제로 판게아 클로니클에 접속해 있는 동안, 파종은 엄청난 양의 마기를 잃고 말았다.
만일 거기서 조금만 더 나갔더라면, 휘하의 마왕들이 세대교체를 하겠답시고 들고 일어났을 정도로 심각한 양이었다.
“왜 이렇게 된 거지? 황도 주변에 겨우 심어 둔 씨앗이, 왜 하필이면 그때 멋대로 깨어나 그 난리를 치냔 말이야!”
“이 근방에는 제법 많은 ‘균열의 흔적’이 있다. 인과를 거스르고 법칙과 경계를 파괴하는 [재앙]의 흔적들이지. 파종, 혹시 네가 부주의하게 그 흔적 근처에 씨앗을 숨긴 것이 아닌가?”
작은 소녀의 지적에, 노인이 벌컥 화를 냈다.
“이봐, 탐욕. 내가 그 정도로 생각이 없는 줄 아는 거냐?”
“네 권속은 분명 균열의 영향을 받아 폭주한 듯 보였다만.”
“아, 물론 씨앗 몇몇은 균열 근처에 심어두긴 했어! 나중에 제대로 델크로스를 뒤흔들려면, 언젠가는 균열의 힘을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내 나름의 대비를 다 해뒀다고!”
파종이 황도 근처에 심어둔 씨앗들은, 애열로부터 비싼 대가를 치르고서 구해온 규상 세계의 산물이었다.
정해둔 조건이 아니면 절대 활성화되지 않는 규상 세계의 육체야말로, 고위 마왕의 권속이 풍기는 짙은 마기를 몰래 숨기는 데 제격이었으니까.
덕분에 지금껏 황도를 오가던 수많은 성직자들이, 아무도 그 씨앗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던 게 아닌가.
“물론 ‘균열의 흔적’이 권속을 불안정하게 만들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예상했지. 그래서 만에 하나의 사태에 대비해, 따로 컨트롤러를 만들어 근처에 숨기는 수고까지 했단 말이야!”
“컨트롤러?”
“그래. 그것도 애열로부터 비싸게 산 물건이다. 수틀리면 조건에 상관없이 권속을 통제할 수 있는 절대적인 물건이지. 씨앗 근처에 잘 파묻은 다음에, 누가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게 커다란 바위로 덮어두기까지 했다고!”
아마도 그 바위야말로, 성진이 상주기사들을 시켜 붉은 돌멩이들을 차곡차곡 쌓아올린 장소였으리라.
물론 모든 것이 흔적도 없이 무너져버린 지금, 파종이 그 사실을 알 방도는 없었지만.
“이익!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것들이 아까워서 죽을 것 같아!”
점점 열을 내는 파종을 보다 못한 로메인이 그를 달랬다.
“진정하십시오, 파종이시여. 이미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 다행히도 이번에 잃은 것은 안배하신 씨앗들 중 겨우 하나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뭐야?”
“더는 잃어버린 것에 연연할 시간이 없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성황의 태도가 어떻게 달라질지를 예측하고, 서둘러 이에 대응하는 수를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안배한 것들을 허망하게 잃은 자는 파종뿐만이 아니었다. 로메인 역시 지난 수년간 준비해왔던 대부분의 기반을 잃어버리고 말았으니.
아멜리아 황녀를 빼돌리기 위해 공들여 만든 회로는 오두막과 함께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캐도건 남작의 살롱을 장악하기 위해 포섭한 앨튼 상단주는, 강력한 악마종이 출현하자 제풀에 놀라 멀리 줄행랑을 치고 말았지.
언젠가 회심의 한 수가 되리라 여겼던 바서스트 백작 부인은 또 어떤가. 로메인이 혼란과 충격으로 잠시 통제를 잃은 사이, 그대로 산사태에 휘말려 어이없이 목숨을 잃지 않았던가.
심지어는 ‘균열의 흔적’까지도 모조리 발각될 판이다. 이미 악마종 출몰지부터 바서스트 백작저에 이르는 모든 길목을, 황궁에서 나온 성기사들이 점령하고 샅샅이 뒤지는 중이 아닌가!
‘일이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냐고?’
로메인은 어쩐지 알 것 같기도 했다. 지금도 눈을 감기만 하면, 거대한 늑대를 타고 악마종을 향해 돌진하는 어린 소년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으니까.
‘모레스 황자……!’
3황자가 경전에 나오는 신수 [바람]을 타고서, 주신의 성스러운 은총을 내뿜어 악마종을 끝내 침몰시켰다는 소문은 대륙에 이미 모르는 자가 없었다. 지금도 황도에서는 두 사람만 모이면 그에 대한 이야기를 떠들어댔으니까.
모레스 황자가 성 바스티안의 환생이라느니, 그게 아니면 성황가에서 새로운 성인이 탄생했다느니 하는 터무니없는 소리들이다.
‘이 모든 일의 뒤에는 분명 델크로스의 수호자가 있겠지.’
성황의 새로운 말.
암흑 교단이 오래전부터 예비해온 자.
그리고, 누구도 감히 예측할 수 없는 절대적인 변수.
그렇지 않아도 복잡한 이해가 얽혀 있는 판세를, 그런 미지의 존재가 멋대로 휘젓는 꼴을 로메인은 결코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자, 이렇게 두 눈으로 보고도 모르겠습니까? 위대한 군주들이시여. 3황자는 이미 암흑 교단의 영향에서 벗어나, 성황의 손짓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습니다. 제가 저번부터 누누이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그렇기에 로메인은 매번 위험을 무릅쓰고서, 고위 마왕들에게 그를 이만 판세에서 배제하도록 은근이 권유해왔던 것이다.
“보시다시피 [예비된 자]의 존재는 군주들께 있어서 결코 이로운 것이 아니… 컥!”
하지만 그가 채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강한 손아귀가 그의 로브를 힘껏 잡아챘다. 약이 바싹 오를 대로 오른 파종이었다.
“가소롭구나. 지금 한가롭게 [예비된 자]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닐 텐데?”
한 손으로 로메인의 숨통을 바짝 조이던 노인은, 다른 손에 쥔 돌멩이 하나를 그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간혹 그 주위로 불완전한 코드가 점멸하다 사라지는 붉은색의 돌이었다.
“이것을 봐라. 하찮은 인형아. 내가 저 난리통에서 찾아낸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끄으…….”
“왜 마침 내 권속이 폭주한 곳에 이런 것들이 흩어져 있지? 왜 여기에서 네놈의 비루한 기척이 느껴지느냔 말이다!”
로메인이 식은땀을 흘리며 재빨리 변명했다.
“이, 이건 우연입니다, 파종이시여! 저는 그저 델크로스의 수호자에게 덫을 놓으려 했을 뿐…….”
“닥쳐라! 딱 봐도 수상한 물건이 아닌가? 이번 사태가 절대 네놈의 탓이 아니라고 내 앞에서 확실하게 말할 자신이 있느냐?”
겉으로는 질문하는 척하지만, 이미 파종은 모든 것이 로메인의 탓이라고 심증을 굳힌 듯했다. 반가면 위로 쏟아져 내리는 강한 살의는 진짜였으니까.
“자, 어서 말해 봐라. 내가 더 이상 네놈의 오만방자함을 봐줄 이유가 있는가?”
“큭!”
로메인은 덜덜 떨려오는 이를 악물었다.
오랜 시간 부정하며 지내왔으나, 역시나 그의 본질은 한낱 인간이었다. 한 차원의 존폐마저 좌지우지하는 고위 마왕들에 비하면 그야말로 작은 벌레만도 못한 미물에 불과할 따름.
저들의 강한 시선만으로도 언제든 납작하게 눌려서 죽어버릴 수 있는 운명이다.
‘하지만… 이대로 끝나서는 안 돼! 절대로 이들 고위 마왕들과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당장이라도 그를 죽일 수 있는 절대자의 손아귀에서, 로메인은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쓰며 떨리는 입을 열었다.
“인간의 거짓 따위는 단숨에 꿰뚫어보시는 위대한 군주 앞에서, 어찌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이 사태가 제가 일부러 의도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럼 네 잘못임을 인정하는 거냐?”
“저의 준비가, 예기치 않게 위대한 군주의 계획에 약간의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번쩍-
노사제의 눈에서 흉흉한 녹색 안광이 뻔뜩이는 것을 본 로메인이 재빨리 말을 이었다.
“비, 비록 그렇다고 한들, 저에게는 당신의 자비를 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모든 질병의 군주시여! 당신이 제게 큰 빚을 지셨으니까요!”
“…뭐라?”
“제가 아니었다면 어차피 당신의 안배는 모두 무용지물이 되지 않았겠습니까? 그대로 델크로스 차원에서 역소환되어, 오랜 시간 강림의 기회만을 노리며 차원 밖을 맴돌아야 했겠지요.”
“……!”
파종이 천천히 입을 벌렸다.
확실히 그런 일이 있기는 했지. 괴상한 불꽃에 휩싸여 역소환되려는 찰나, 때마침 저 건방진 인형이 지금의 몸을 제공해 주지 않았던가?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런 형편없는 몸 따위가 무슨 빚……!”
파종은 왈칵 인상을 썼지만, 어느새 로메인을 움켜쥔 손아귀에서는 스르륵 힘이 빠지고 있었다.
다 늙어 빠졌다곤 해도, 이 노사제의 몸이야말로 차원에서 튕겨나갈 뻔했던 파종을 이 세계에 붙어 있게 만들어 준 유일한 수단이었으니까.
델크로스의 수호자가 빤히 두 눈을 뜨고 있는데, 언제 다시 대규모의 공양 의식을 치르고 이 차원으로 강림할 기회를 노린단 말인가.
“끄응…….”
결국 파종이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물러나자, 잠시 비틀거리던 로메인이 조심스럽게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자비를 베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흥! 자만하지 마라. 널 봐주는 것도 여기까지다.”
아직 완전히 분이 풀리지 않은 파종이 매서운 눈으로 로메인을 노려보았다.
“인형 주제에 용케도 주인의 흉내를 내고 있기에, 조금은 쓸모가 있을 거라 생각해서 내버려두는 것뿐이야. 다들 구분하기 귀찮아서 편의상 널 [인형사] 취급하곤 있지만, 본래의 인형사 또한 아직도 멀쩡히 살아 있지 않은가? 수틀리면 우리는 널 버리고 그쪽과 손을 잡을 수도 있어.”
“글쎄요.”
아직 잔 떨림이 남아 있는 로메인의 입꼬리가 비식 휘어지며, 일그러진 미소를 그렸다.
“제가 본래의 [인형사]보다 월등히 뛰어나다는 것을 이미 증명하지 않았습니까, 질병의 군주시여.”
“뭐? 네가 언제?”
“지금 그 증거를 직접 쥐고 계십니다.”
파종은 어안이 벙벙하여 손에 든 돌과 로메인의 반가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모든 차원에서 오직 유일하게, 본상 세계의 물건에 코드를 덧입히는 능력 말입니다.”
“엥?”
“그 돌은 언뜻 보기에 규상 세계의 물건처럼 보이고 규상 세계의 물건처럼 기능하겠지만, 정말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제가 본상 세계의 돌 위에 직접 코드를 그려 넣었을 뿐이니까요.”
“……!”
잠시 멍해졌던 파종이 마침내 그 말의 뜻을 파악하곤 커다랗게 눈을 치떴다.
“…맨손으로 규상 세계의 법칙을 그려내? 대체 어떻게? 네가 무슨 수로?”
“글쎄요. 이래봬도 인형이 되기 전의 저는, 제법 재능 있는 프로그래머였으니까요.”
로메인이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해 보이자, 파종이 황당한 표정으로 작은 소녀를 돌아보았다.
“오호라…….”
노인의 눈이 가늘어지며, 자글자글한 눈매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그럼 그렇지. 탐욕, 네가 웬일로 시구르트 시구르슨이 아니라 굳이 버려진 인형을 선택했나 했더니. 녀석에게 이런 비밀이 있었단 말이군…….”
* * *
성진은 고열과 고열을 반복하며 좀처럼 몸을 회복하지 못했다.
그렇게 그가 체감하지 못하는 사이,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새 보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그즈음에 이르러, 성황은 겨우 로건을 임시 치료실에서 벗어나도록 허락해 주었다.
“그간 진심으로 반성했다고 생각한다. 아마 아바마마께서도 그 점을 헤아려 주신 거겠지.”
로건은 순전히 성황이 자중하라는 의미로 치료실에 머물라 지시한 줄 아는 모양. 하지만 성진은 성황의 결정 이면에 있는 진실을 알고 있었다.
‘로건 녀석, 그때 영혼에 제법 큰 손상을 입은 것 같았단 말이지.’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이 쉽게 스스로의 영혼을 불사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아마도 소드 마스터의 초인적인 의지는 그런 엄청난 짓을 가능하게 하는 모양이었다.
당연히 성황은 이를 알아차렸으리라. 성진을 치료하러 올 때마다, 매번 로건에게도 잊지 않고 신성력을 쏟아붓는 걸 보면 말이지.
그리고, 드디어 녀석의 영혼이 완전히 회복되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내가 영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하지만 마왕 놈의 협조를 구하기가 힘들었다.
최근 염상 결정 속에 콕 틀어박힌 마왕 놈은, 이따금 훌쩍거리기만 할 뿐 좀처럼 성진의 부름에 대꾸하지 않았으니까.
‘이놈은 대체 언제까지 우울해할 참이야? 매일 곰 고기 수프를 먹는 것도 슬슬 질린단 말이다.’
그렇게 어영부영 임시 치료실에서 지내는 중, 마침내 로건과 시슬레가 키프로스로 떠나는 날이 다가왔다.
“결국 오웬 형님을 못 보고 가는 것이 아쉽다. 부디 우리가 돌아올 때까지 형님이 황궁에 머물러 있으면 좋을 텐데.”
악마종 출몰 사건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남부 전선으로부터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1황자 오웬이 바르샤의 대부족회의에 참가하여, 제법 장기간의 안정적인 휴전 협정을 이끌어냈다는 것이다.
덕분에 오웬은 몇 년 만에 황도로 돌아오게 되었고, 황궁은 지금 그의 개선식 준비가 한창이었다.
“시슬레, 아직도 너는 황도에 남을 생각이 없니? 오웬 형님은 특히나 널 귀여워했잖아. 모처럼 황도에 왔는데 네가 없다면 형님이 무척 섭섭해할 거다.”
로건의 물음에 시슬레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키프로스로 떠날 예정이라고 진작 편지를 보냈어. 휴전이 꽤 길어질 모양이니까, 아마 오웬 오라버니라면 우리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줄 거야.”
성진은 이미 시슬레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고 있었다. 일전에 꼬맹이와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으니까.
-토벌대가 꾸려진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 자꾸 뭔가 불안한 기분이 들어. 저기 키프로스의 검은 해안에서, 기분 나쁜 뭔가가 로건 오라버니를 집어삼키려 몸을 도사리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성진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시슬레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 조심해서 다녀와라, 꼬맹아.”
“뭐? 오라버니. 언제부터 은근슬쩍 날 꼬맹이라고 부르는 거야?”
“그럼 꼬맹이를 꼬맹이라고 하지, 뭐라고 부르냐?”
하지만 막상 대규모의 토벌대가 황도를 떠나는 날, 성진은 또다시 고열이 오르는 바람에 그들을 배웅하지도 못하고 치료실에서 끙끙거려야 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척척척!
갑자기 경쾌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벌컥! 하고 치료실 문이 세차게 열렸다.
“모레스 이 망둥이 자식!”
그곳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꼴사나운 가마우지 깃털을 잔뜩 머리에 꽂은 낯익은 호구 자식이었다.
“너 인마! 아무리 몸살이 났기로서니, 형님이 오셨는데 인사도 없이……!”
기세 좋게 소리치던 오웬은, 침상에 누워 있던 성진과 눈이 마주치자 순간 멍청히 입을 벌렸다.
“…모레스?”
“그래. 시끄러워, 멍청아.”
“……!?”
성진이 뚱하게 대꾸해주자, 오웬의 눈동자가 마치 지진이라도 난 듯 세차게 흔들렸다.
“너… 너, 인마… 괜찮은 거냐? 대체 얼마나 아팠기에 사람이 완전 반쪽이 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