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375)
성황의 아이들-375화(375/469)
375. 모레스 탐구 일지 (3)
그날 저녁.
캐리에게 감화되어 다시 긴가민가하고 모레스를 찾은 오웬은, 이내 자신의 생각을 후회하게 되었다.
‘응. 역시 모두가 너의 착각이었을 뿐이야, 캐리. 모레스 저 자식은 대륙에서 가장 성격 더러운 애새끼야! 구제할 수 없는 고집불통 멍청이라고!’
아무리 애를 써도, 한번 막무가내로 나가기 시작한 모레스와는 전혀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어째서지? 나름 진지하게 설명했다고 생각했는데, 왜 내 말을 요만큼도 들어먹지 않는 거야?’
모레스를 설득하기 위해,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엘릭서의 출처까지 그럴싸하게 꾸며냈다.
살아 있는 성자이신 바트 사제님께서, 손수 몸에 좋다는 약초들을 달인 후 매일같이 기도하며 축성을 들인 만능 치료제라고!
물론 당사자의 허락을 구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마도 바트 사제님은 다 이해해 주실 거라 굳게 믿으며 말이지.
“야! 이게 얼마나 귀한 치료제인지 알기나 해? 서버에서 아예 동이 난 아이템을, 우리 뉴비가 얼마나 고생고생해서……!”
어찌나 열을 냈던지, 하마터면 진짜 출처가 튀어나올 뻔했다.
오웬이 황급히 입을 틀어막자, 모레스가 힐끔 그를 바라보더니 또다시 뚱한 얼굴로 대꾸한다.
“…아무리 좋은 치료제면 뭐 해? 어차피 지금은 나한테 소용없어. 안 들을 거야.”
“아니, 그러니까 소용이 있는지 없는지 일단 써 보기는 하란 말이야!”
“싫어. 빤히 아는 걸 왜 굳이 먹어서 확인해야 해? 어차피 아버지의 신성력보다 강한 치료제는 없는데.”
“그래도 만에 하나의 가능성이란 게 있잖아!”
오웬은 초조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는 소리쳤다. 더 늦어지면 또 언제 이렇게 설득할 기회가 생길지 몰랐다. 슬슬 그를 바라보는 마사인 경의 눈초리가 심상찮게 변해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의 애타는 속도 모르는지, 모레스 녀석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응. 없어. 그리고 그거, 엄청 맛없어 보인다고.”
“크아아악!”
결국 뒷목을 잡으며 넘어간 오웬은, 잠시 후 나타난 성황에게 신성력을 나눠 받은 후에야 겨우 진정할 수 있었다. 그 와중에 모레스가 또 한차례 고열이 올랐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고집을 부리는 거지? 저렇게 힘들어하는 주제에.’
쌕쌕 가쁜 숨소리를 내는 모레스를 바라보며, 오웬은 허탈하게 엘릭서를 움켜쥐었다. 그러자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성황이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전부터 계속해서 그것을 들고 오는구나, 오웬. 용도가 무엇인지 내게 말해줄 수 있느냐?”
“…아, 네. 아버님.”
설마 성황의 주의까지 끌게 될 줄이야.
번뜩 정신을 차린 오웬은, 잠시 주저하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이건… 남부에서 어렵게 구한… 몸에 좋은 약입니다.”
차마 그에게까지 장황한 거짓말을 늘어놓을 수 없어 어색하게 말을 흐렸더니, 성황은 크게 개의치 않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리 보이는구나.”
“…….”
“모레스가 지금은 소용없다 말하니, 다음에는 다를 수도 있다는 뜻이 아니겠느냐. 부디 잘 간수하거라. 내 거기에 축성을 해 주마.”
어쩐지 의미심장한 말을 던진 성황은, 엘릭서 위에도 한 차례 신성력을 쏟아준 후 이내 집무실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
전혀 예상치 못한 사태에 당황한 것도 잠시. 오웬은 엘릭서를 갈무리하며 침상 옆에 걸터앉았다.
그래도 덕분에 한 가지 좋은 점은 있었다. 엘릭서를 바라보는 마사인 경의 눈초리에서 약간이나마 힘이 빠졌다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오웬은 한숨을 쉬며 시선 아래에 떠 있는 작은 창을 일별했다.
[메인 스트림 3 ? 진행률 0%]메인 스트림 2를 마치고 나서는, 좀처럼 진행이 되지 않는 메인 스트림이다. 아마도 선행 퀘스트가 완료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특별 퀘스트 ? 황도로 돌아가자!] [퀘스트 등급 : E] [한 차원을 지배하는 여신이, 누군가의 특별한 요청을 받아 삼라만상의 정수를 한곳에 담았습니다. 그 보이지 않는 노력 덕분에 당신은 생각보다 손쉽게 ‘궁극의 엘릭서’를 손에 넣게 되었습니다. 귀한 물건에는 언제나 귀한 쓰임새가 있음이 당연지사. 이제 당신은 황도로 돌아가, 이 아이템을 선물할 사람을 찾아내야 합니다.] [보상 : 30 P캐시] [*본 상품은 판게아 클로니클 상점 창에서 사용 가능합니다.]오웬은 상태창 최상단에 떠 있는 퀘스트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델크로스로 돌아온 지가 언젠데…….’
제목이 ‘황도로 돌아가자’이건만, 대체 이 퀘스트는 왜 완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가. 상태창 씨에게 몇 번이나 물어봤지만 뾰족한 대답이 돌아오지도 않았다.
그래서 오웬은 충족시켜야 하는 다른 숨은 요건이 있는 게 아닌가 짐작하는 중이었다.
-이제 당신은 황도로 돌아가, 이 아이템을 선물할 사람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래. 누군가를 찾아 궁극의 엘릭서를 넘겨야 한다는 뜻이겠지.
메인 스트림의 제목이 ‘성□을 (를) 구하라!’인 것을 생각하면, 그 ‘성□’이라는 사람을 찾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그런데 그게 대체 누굴까?
정말로 시슬레나 아버님을 뜻하는 걸까?
‘어쩌면 그 대상이 모레스일 가능성은 없는 걸까?’
그것은 꽤나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오웬이 퀘스트 따위 제쳐두고서 모레스에게 엘릭서를 먹여보겠다고 매달리고 있는 게 벌써 며칠째인가.
하지만 상태창 씨에게서는 여태까지 가타부타 반응이 없었다.
지금까지 그런 경우는 단 하나.
‘내 행동이 상태창 씨가 원하는 방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뜻이지.’
본래라면 부족장을 만나는 자리에서까지 자잘한 행동 방침을 지시할 정도로, 매사에 꼼꼼하고 정확한 상태창 씨였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 상태창이 이렇게 모호한 지시를 내릴 때도 있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바트 사제에 대한 퀘스트였다.
간혹 그의 방문과 오웬의 일정이 어긋날 것 같으면, 상태창 씨는 이상할 정도로 갖은 이유를 들며 진지로 돌아갈 것을 종용하곤 했다.
그저 ‘진지에서 기다리는 바트 사제를 만나자!’라는 퀘스트를 띄우기만 하면 될 것을. 마치 말을 꺼내는 것조차 힘들다는 듯, 한사코 그에 대한 언급을 두루뭉술하게 피해 가지 않았던가.
‘볼란타 부족에서 나즈랑카를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였어.’
당시 오웬이 받았던 퀘스트는 이런 것이었다.
[특별 퀘스트 ? 볼란타에서 당신을 도울 조력자를 얻으라!]그 외에는 도통 정보가 없어 헤매고 다니다, 끝내 포기하려던 차였지.
한데 장로회에서 완고해 보이는 샤먼을 만나자, 갑자기 퀘스트가 완료되는 바람에 얼마나 놀랐던가!
그녀가 조력자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볼란타의 샤먼 나즈랑카는, 오래전부터 제국에 큰 반감을 가진 것으로 유명한 자였으니까.
결과적으로 그녀는 의외로 철저한 중립을 유지함으로써, 오히려 다른 장로들의 반발이 과도하게 일어나는 것을 막아주긴 했다.
오웬이 언젠가 그 이유를 물었더니, 나즈랑카는 이렇게 대답했었다.
-위대한 영혼께서 내가 그리하길 원하신다.
그래, 그때도 상태창 씨는 아무런 언질이 없었어. 그저 오웬이 움직이는 대로, 일이 흘러가는 대로 가만히 내버려 뒀을 뿐.
오웬이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드르륵.
마사인 경이 커다란 안락의자를 끌어오더니, 침상을 사이에 두고 오웬의 맞은편에 자리 잡았다.
그러더니 품에서 주섬주섬 수예 물품을 꺼내 드는 것이 아닌가.
“그래도 모레스 저하께서 이렇게 치료실에 누워 계시니, 가슴이 아픈 반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한동안은 위험한 사고를 치지 않으실 테니까요.”
그러고는 점잖은 태도로 푸른 천에 앙증맞은 꽃잎들을 새겨 넣기 시작한다.
보고도 이게 뭔가 싶었던 오웬은, 잠시 멍하니 그가 하는 양을 바라보다 물었다.
“…자수? 형님께서 자수를 다 두십니까?”
“예. 이것도 제법 마음 수양이 됩니다. 화난 감정을 다스리기에 이보다 좋은 취미가 또 없더군요.”
누구 때문에 화가 났는지 어째 알 것 같기도 했다.
“잠시만 기다려 보십시오. 이제 저하께도 어엿한 영감님이 생기셨지 않습니까? 제가 잘 어울리는 영감님 고깔을 하나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
영감님 고깔? 그게 뭐지?
그렇게 묻고 싶었지만, 오웬은 섣불리 입을 열지는 못했다. 마사인 경이 이내 진지한 태도로 자수에 열중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폭. 스르륵. 폭, 스르륵.
조용한 방 안에는 한동안 바늘과 실이 움직이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
그렇게 오웬이 모레스의 얼굴을 봤다가, 바늘을 봤다가 하며, 하릴없이 눈동자를 굴리고 있을 때였다.
“어린 시절… 그러니까 저하께서 아직 황궁에 오시기 전, 그 시절의 모레스 황자님은 저하께서 아시는 모습과는 많이 다르셨습니다.”
“…그렇습니까?”
“네, 참으로 상냥하고 활발한 분이셨지요. 그렇게 사랑스러운 어린 황자님은 세상에 다시없었을 겁니다.”
상냥하고… 활발? 사랑스러워?
오웬으로서는 전혀 상상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과거를 회상하는 마사인 경의 입에는 숨길 수 없는 부드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처음에는 일신의 안녕을 위해 황궁 기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모레스 황자님을 뵌 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 제 인생의 진정한 목표를 찾아낼 수 있었죠. 바로 모레스 황자님의 곁에서, 일생을 바쳐 그분을 지키는 것.”
“…….”
“그분께 해를 입히는 것은, 그 무엇이 되었든 이 손으로 직접 단죄하는 것.”
거기까지 말한 마사인 경은, 바느질을 멈추고는 오웬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그래서 이전부터 꼭 여쭙고 싶었습니다. 저하께서 모레스 황자님께 수차례 복용하라 강요하시는 그 물건 말입니다.”
일견 차분한 눈빛이었지만, 그 눈동자의 한가운데에는 강한 불길이 고요히 타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정녕 치료제입니까? 저하께서는 그것이 모레스 황자님께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 생각하고 계시기에 그런 행동을 하시는 것입니까?”
그 물음에 오웬은 새삼 깨달았다.
그저 사람 좋아 보이는 저 기사는, 모략과 암투가 횡행했던 선대 성황의 시대를 황궁 한가운데서 보낸 자였다.
달리 말하면, 이 평화로운 시간들을 마음으로 온전히 믿지는 못하는 자. 그래서 이미 모레스의 편에 서기로 마음을 정한 후, 필요하다면 언제든 비정한 선택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자인 것이다.
오소소.
갑자기 등줄기에서 미약한 소름이 돋아났다.
그럼에도 오웬은 떳떳했다. 비록 모레스에 대한 그의 감정을 완전히 정리하지는 못했을지언정, 성황가 전체를 향한 그의 애정만은 진심이었으니까.
그리고 만일 이대로 모레스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분명 크게 슬퍼하리라.
그래서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네, 그렇습니다. 이 물건을 형님께서 선뜻 믿지 못하리라는 것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건 모레스에게 이득이 될지언정, 결코 해가 되지는 않을 물건입니다.”
“…….”
“그 증거로, 방금 아버님께서 이것을 직접 축성까지 해 주시 않으셨습니까?”
그러자 잠시 빤히 그의 눈을 바라보던 마사인 경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하를 믿겠습니다.”
그 대답에 오웬은 잠시 안도했다.
하지만 마사인 경의 용건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하면, 일단 제게 그것을 맡겨주실 수 있겠습니까?”
“…네?”
“저 역시 지금은 모레스 황자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성황 폐하께서 곁에 계신 지금, 폐하의 신성력만큼 도움이 되는 치료제는 세상에 없을 겁니다. 하지만 언제고 모레스 황자님께 그것이 필요한 날이 온다면…….”
거기까지 말한 마사인 경은, 잠시 주저하더니 덧붙였다.
“그리고 폐하께서 부득이하게 황자님을 도울 수 없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반드시 이 마사인이 직접 저하께 그 치료제를 드리겠습니다. 그리하면 안 되겠습니까?”
“…….”
본래라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언제 다시 구할 수 있을지 모르는 귀중한 엘릭서.
하지만 마사인 경이 풍기는 진중한 분위기 때문일까, 오웬은 저도 모르게 홀린 듯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막 마사인 경의 손아귀에 그 엘릭서를 떨어뜨렸을 때-
띠링!
오웬은 드디어 그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작은 알림음을 들을 수 있었다.
바로, 퀘스트 완료를 알리는 갱신음이었다.
[특별 퀘스트 ? 황도로 돌아가자!(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