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376)
성황의 아이들-376화(376/469)
376. 모레스 탐구 일지 (4)
청장미궁으로 돌아온 오웬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소파 위에 주저앉았다. 한손에는 마사인 경이 만들어 준 작은 고깔이 들려 있는 채였다.
[특별 퀘스트 – 황도로 돌아가자! (완료)]눈앞에서 깜박거리는 작은 창을 바라보고 있자니, 어쩐지 묘한 허탈함이 밀려들었다.
‘궁극의 엘릭서는 아마도…….’
모레스에게, 혹은 모레스를 위해 쓰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높은 확률로, 메인 스트림 3 역시 모레스를 중심으로 돌아가게 될 터.
‘어차피 퀘스트와 상관없이 그 녀석에게 줄 생각이었지만.’
그럼에도 막상 진상을 알게 되니, 의욕이 한풀 꺾이는 것만은 어쩔 수가 없었다.
오웬은 지금껏 한시도 퀘스트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스스로 강해지기 위해. 그다음으로는 성황가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 위해. 그리고 최근에는, 사랑하는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밤낮으로 퀘스트에 매진해 온 나날.
하지만 그렇게 노력해서 구하고자 하던 상대가, 하필이면 지금껏 아웅다웅하던 그 얄미운 녀석이라니!
물론 오웬은 모레스에게 어떤 위기가 닥쳐오든, 결국에는 그것을 못 본 척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진작 사실을 알았더라도, 과연 지금까지처럼 발을 동동 굴리며 퀘스트에 온 힘을 쏟을 수 있었을까?
솔직히 오웬은 그것을 장담할 수 없었다. 어쩌면 상태창 역시 이를 잘 알고 있었기에, 일부러 ‘성□을 (를) 구하라!’ 같은 애매한 제목을 만들었을지도 모르지.
‘그거 압니까? 나 어쩐지 크게 속은 기분이 든다고요, 상태창 씨!’
허공을 향해 투덜거려봤지만, 상태창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바로 그때-
똑똑.
창을 두드리는 작은 소리와 함께, 잠행복을 입은 왜소한 신형이 스며들 듯 방 안으로 들어왔다. 오랫동안 그를 보필해 온 원숭이 망루의 정보원이었다.
“저하. 제가 조금 늦었슴다.”
털털하게 인사를 건네는 동글동글한 얼굴의 여인을 향해, 오웬이 반가움을 감추지 못하며 외쳤다.
“9호!”
그녀는 제법 나이가 지긋한 베테랑 정보원으로, 오웬이 떠난 후에도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지금껏 남부 전선에 남아 있었다.
언어와 풍습이 다양한 이교도들의 부족을 오가는 복잡한 업무를 금방 다른 이에게 인계하는 것은 아마도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후임 정보원에게 되도록 꼼꼼하게 업무를 인계해 준 후, 뒤늦게 오웬을 따라 황도에 도착한 것이다.
“잘 돌아왔다, 9호. 요즘 남부 분위기는 좀 어떤가?”
“현재로서는 조용함다. 아마도 가장 호전적인 카라잔이 답지 않게 몸을 사리고 있기 때문이겠죠. 다른 부족들도 대부분은 휴전을 반기는 분위기고요.”
9호는 중견의 나이에 걸맞지 않게 빠르고 가벼운 어투를 쓰고 있었다. 본래도 성격이 급하고 말이 빠르긴 했지만, 지난 수년간 오웬과 함께 지내게 되며 그런 경향이 더 두드러지는 중이었다.
이는 부분적으로 오웬에게도 책임이 있었다. 그의 명에 따라 오랜 시간 바르샤 부족들 사이에 잠복하며 임무를 수행하다 보니, 점점 제국어 발음이 뭉개지다가 끝내 이교도들의 어투를 닮아가게 된 꼴이니.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와카나 투사이는 현재 후계 문제로 제법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함다. 이미 어린 장녀를 후계자로 낙점했지만, 장남 와카나 쿠샤트의 반발이 만만치 않은 모양이라죠.”
카라잔은 볼란타와 달리, 대부분 모계에 권력을 세습하는 부족이다. 딸에게 피가 더 짙게 이어진다고 여기는 바르샤의 오랜 믿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식 농사란 것이 늘 부모의 마음 같지는 않아, 간혹 그 모든 전통을 뒤흔들 정도로 출중한 자식이 태어나기 마련.
와카나 투사이의 장자인 와카나 쿠샤트가 그런 경우였다.
“그래. 대부족회의에서 그를 본 적이 있다. 꽤 당차고 야망 있는 자처럼 보였지.”
오웬 역시 와카나 쿠샤트에게서 차기 후계자의 가능성을 보고 있었다. 오죽했으면 늙은 와카나 투사이를 제치고서, 그와 먼저 천천히 친분을 다져볼까 생각했겠는가.
외부인인 오웬이 느끼기에도 그럴진대, 같은 부족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가 얼마나 아까운 인재였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덕분에 최근 카라잔의 장로회가 두 패로 갈라져 한창 시끄러운 모양이었다. 와카나 투사이, 그 늙은 여우가 휴전 협정에 순순히 응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게다.
“그나저나 저하께서는 요즘 어떻게 지내셨슴까? 어째 안색이 좋지 않으심다.”
“음. 실은 말이지…….”
본래 9호와 담소를 즐기는 오웬은, 최근 그가 가진 고민에 대해 천천히 털어놓았다. 물론 상태창이나 퀘스트에 관해서는 빼고.
그리고 9호는, 캐리가 오웬에게 했다는 말을 듣고는 이내 불같이 화를 냈다.
“그게 말이 됨까? 망할 할멈 같으니라고!”
“9호. 네 생각은 좀 다른가?”
“당연함다! 그 노인네는 정말 아무것도 모름다! 오러를 수련한 적이 없었으니, 두 분이 나누는 이야기를 자세히 들은 적도 없겠죠! 그걸 그냥 애들끼리 또 싸우고 있구나, 했단 말 아님까?!”
9호는 마치 자신이 모욕받은 것처럼 분개하며 씨근덕거렸다.
“모레스 황자님은 명백히 선을 넘었슴다! 절대로 좋게 넘어갈 만한 문제가 아니었단 말임다!”
“흠. 그렇군.”
남들의 입장은 이렇게나 명확한데, 당사자인 오웬은 오히려 헷갈리는 중이었다.
사람이 너무 변해서 그런가, 어째 최근 들어 모레스에 대한 미움이 조금씩 희석되고 있는 기분이 들었으니까.
“뭐, 어찌 보면 무리도 아님다. 캐리 할멈은 베스세바 황비의 충실한 전담 시녀가 아니였슴까? 그러니 남들이 뭐라 하든 성황가 사람들 일이라면 그저 좋게 보아 오냐오냐하고 넘어가는 수밖에요!”
그 말대로 캐리의 이전 주인은 현 성황의 어머니인 베스세바 황비였다. 듣기로는 선대 황후가 다른 별궁으로 내치기 전까지, 물심양면으로 버림받은 황비를 섬기고 따랐다고 하지.
어쩌면 매일같이 독살 시도가 난무하던 별궁에서, 신성력 하나 없는 베스세바 황비가 그리 오래 버틸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캐리의 덕일지도 모른다.
그런 그녀였기에, 갑자기 굴러들어와 성황가에 입적한 오웬 또한 진심으로 보살필 수 있었으리라. 황궁에 오래 몸을 담은 전담 시녀쯤 되면, 대부분은 쓸데없이 콧대가 높아지게 마련이니까.
하지만 그런 캐리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는 오웬과는 달리, 9호는 매번 그녀의 무던하고 무심한 처사에 불만이 많은 모양이었다.
“감히 저하를 그런 허술한 마음가짐으로 보필해 왔다니, 용서할 수 없슴다! 하긴, 그 고약한 할멈은 예전부터 늘 그랬을 테죠! 그러니까 남들은 다 꺼림칙해하던 정신병자 황비를 아무 생각 없이 섬길 수 있……!”
정신병자?
오웬이 움찔 놀라자, 당황한 9호는 황급히 말을 주워 삼켰다.
“…아, 아무것도 아님다. 제가 실언을 했으니 그냥 잊어주십쇼.”
뭔가 엄청난 소리를 들은 것 같지만, 오웬은 거기에 대해 자세히 캐묻지는 않았다.
전대 황비는 경애하는 아버님의 어머니가 아닌가. 그러니 아무리 헛소문이라도 그녀에 대한 험담을 귀에 담고 싶지 않았다. 그와는 별개로, 과열된 9호의 기분을 풀어줄 필요성을 느끼긴 했지만.
“진정해, 9호. 나 역시 그때 모레스의 말을 고분고분 듣고만 있지는 않았잖아.”
“그건……!”
발끈하던 9호는, 순간 과거를 떠올리고는 무심코 혀를 씹었다.
확실히 그랬지. 모레스 황자에게 무식하다고 욕을 먹으면, 오웬은 그 무식함에 걸맞은 걸걸한 쌍욕을 퍼부어대곤 했으니까. 무려 로한의 변두리에서 습득한 엄청난 강도의 욕들이었다.
적어도 캐리의 말이 하나는 옳았을 것이다. 오웬은 모레스를 상대할 때면 늘 기운이 넘쳤고, 절대로 뒤로 물러선 적이 없었다.
“그리고 캐리의 말도 일리가 있지. 우리는 더 이상 어린아이들이 아니야. 언제까지나 녀석과 멱살 잡고 쌈박질만 할 수는 없지 않나.”
“저하…….”
9호는 대단히 감동한 표정을 했다.
“언제나 생각하는 거지만, 저하는 참으로 마음이 넓으심다! 모레스 황자님이 저하의 마음 씀씀이의 반만이라도 닮았으면 좋았을 텐데.”
“엉뚱한 소리는 그만하고, 이제 일 얘기 좀 하자. 실은 9호 네가 꼭 해줬으면 하는 일이 있다.”
오웬은 아픈 모레스를 신경 쓰느라 이제까지 미뤄왔던 중요한 문제를 끄집어냈다.
바로 판게아 클로니클에서 만났던 뉴비를 찾는 일.
“이성진…이라는 이름임까? 발음이 막 꼬이는 것이, 참 이상한 이름임다만.”
자초지종을 들은 9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들어도 델크로스식 작명이 아닌 듯했으니까.
“그래. 황도에 살고 있다고 했는데, 듣기로는 주변 환경이 꽤 험한 것 같았다. 그러니 되도록 빈민가 위주로 찾아보는 것이 좋겠지.”
“알겠슴다. 혹시 모르니 황도 근교 지역에도 수배를 해 두고, 정보가 들어오는 대로 보고 드리겠슴다. 그럼 이만 쉬십셔!”
9호는 황급히 오웬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자리를 떴다. 그 급한 성격에 새로운 임무를 받고 나니 손이 근질거려 참을 수 없었던 모양.
그렇게 또 혼자가 된 오웬은, 무심코 손에 쥐고 있던 고깔을 앞에 놓인 나무 조각상에 씌워 보았다.
‘이렇게 보니, 또 영감님과 제법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멍하니 조각상을 바라보며 오웬은 생각을 정리했다.
결국 그와 모레스의 관계는 어떻게든 변해야만 할 것이다. 과거의 앙금을 기억하는 것은 이제는 오웬 혼자뿐인 데다, 최근에는 모레스도 답지 않게 자신을 살갑게(?) 대해주는 것 같으니까.
‘그리고 다음 퀘스트 문제도 있지.’
오웬은 시선을 움직여 새로이 반짝이는 퀘스트 창을 열어보았다.
[메인 퀘스트 – 자신이 있을 자리는 스스로 찾아내자! new!] [퀘스트 등급 : E] [당신은 오랜 시간 이어져 온 이교도들과의 불화를 잠재웠으며, 어쩌면 완전한 평화의 시발점이 될지도 모를 휴전 협정을 이끌어 냈습니다. 그렇게 스스로를 증명하며 훌륭한 황자로서 자리매김했습니다만, 안타깝게도 당신의 모든 업적과 명성의 기반은 현재 남부 전선에 있습니다. 뾰족한 지지 기반이 없을 때 취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행동이라면, 아마도 타인에게 도움을 주고 그의 기반을 빌리는 것일 터. 이제부터 황궁 내에서 당신의 힘이 필요한 곳을 스스로 찾아내고, 여기에 조력을 아끼지 마십시오.] [보상 : 20 P캐시] [*본 상품은 판게아 클로니클 상점 창에서 사용 가능합니다.]오웬은 저도 모르게 실소를 흘렸다.
자, 보라고. 이렇게 모든 표현이 모호한 것을 보니, 이 또한 모레스와 관련된 퀘스트일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뭐, 한동안은 계속 녀석 옆에서 죽치고 있으란 말이군. 틈틈이 뉴비 탐색에 관해 보고나 받으면서 말이야.’
조각상의 푸근한 미소를 잠시 응시하던 오웬은, 곧 검은 토끼 안대를 쓰고선 천천히 눈을 감았다.
* * *
본래라면 아침이 밝는 즉시 본궁으로 향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오웬은 청장미궁을 나서자마자 바로 일정을 변경해야 했다. 아멜리아로부터 잠시 시간을 내 달라는 요청을 받았기 때문.
그리고 아멜리아가 웃으며 그를 인도한 곳은, 지금은 주인이 자리를 비우고 없는 진주궁이었다.
‘이렇게 마음대로 드나들 정도로 둘이 가까워졌다고?’
진주궁은 전과 달리 환한 분위기로 변해 있었다.
오웬이 떨떠름하게 주변을 둘러보자, 잔뜩 늘어난 사용인들이 오가며 오웬에게 정중히 예를 건넨다. 모레스가 없어도 그들이 진주궁을 드나드는 것을 자연스럽게 느끼는 듯했다.
“이곳이야.”
마침내 아멜리아가 걸음을 멈춘 곳은, 진주궁 안뜰이 환히 내다보이는 커다란 아틀리에였다.
햇살이 내리쬐는 창 아래에서 작업에 몰두하던 젊은 화가가, 그들이 들어서자 꾸벅 고개를 숙여 보인다.
“저 사람은 황도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난 초상화 화가야. 모레스가 그를 평생 고용하기로 계약하고서, 무려 진주궁 내에 전용 아틀리에까지 마련해 줬지.”
“그래?”
모레스 녀석이 예술가를 후원하다니 상당히 의외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어지는 아멜리아의 말은 더욱 놀라운 것이었다.
“앞으로 성황가 사람들을 전담하는 초상화 화가가 될 거야. 평생에 걸쳐 가족들의 모습을 그리겠다고 했지.”
“…가족들을, 그린다고?”
그 모레스가?
오웬은 새삼스레 화가가 한창 작업하던 그림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대단히 웅장한 그림이었다. 너른 들판을 뒤로 한 채, 거대한 검을 들고 선, 위풍당당한 소년의 모습.
“이건… 모레스의 초상화야?”
아직은 미완성에 불과했지만, 그림에 문외한인 오웬이 보기에도 대단히 뛰어난 초상화였다.
검은 옷과 어두운 배경 사이로, 인물의 말간 얼굴과 밝은 금발 머리가 환하게 부각되고 있다.
정면을 응시하는 소년의 깊은 회색의 눈동자는, 어쩐지 그림 너머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는 듯했다. 마치 대부님의 눈을 볼 때마다 오웬이 종종 느끼곤 했던 것처럼.
“잘 그렸네. 그런데 모레스치고는 너무 어른스러워 보이지 않냐?”
오웬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아멜리아를 돌아보았다. 왜 아니겠는가. 그가 생각하는 모레스는 조막만 한 어린애에 불과했다.
물론 오랜만에 돌아와서 본 모습이, 하필이면 침상에 웅크리고 골골거리는 모습이었던 탓이 크지만.
“걘 아직 작은 꼬맹이잖아?”
꼬맹이라고 소리 내어 말하고 보니, 문득 최근에 사귀었던 귀여운 친구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고 보면 모레스가 뉴비와 비슷한 또래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혹 말하는 중에 그의 눈앞으로 손을 내미는 것도, 어쩐지 그 작은 친구의 버릇을 연상하게 만든단 말이야.
황궁에서 좋은 것만 먹고 잘 지냈을 텐데, 대체 모레스 녀석은 왜 아직도 그렇게 작은 걸까?
그러자 아멜리아가 오웬을 돌아보며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무슨 엉뚱한 소리를 하는 거야? 모레스는 또래에 비해 키가 큰 편인걸. 그저 오라버니가 갑자기 너무 자라버리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는 거지!”
“…그래?”
“그럼. 거기다 얼마나 생각이 깊고 의젓한데? 오라버니가 그 앨 어린애 취급하니 어쩐지 생소하다.”
생각이 깊고… 의젓해?
말이 통하지 않는 그 고집불통 모레스가?
하지만 그렇게 말하며 모레스의 초상화를 바라보는 아멜리아의 눈에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애정이 담겨 있었다.
오웬은 어쩐지 의아해졌다.
생각해 보면 모레스와 제일 으르렁거리며 지낸 건 자신이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가 체면 차릴 것 없이 큰소리로 맞섰기 때문이었지.
따지고 보면 당시 모레스 녀석에게 가장 많이 상처받았던 건, 아멜리아나 로건 쪽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어떻게 지금은 이렇게들 잘 지내고 있는 거지?
“그런데 아멜리아. 왜 날 여기서 보자고 한 거야?”
“아, 그래. 이번 기회에 오라버니의 초상화를 그리면 어떨까 하고 불렀어.”
“내 초상화?”
오웬이 멍청히 되묻자, 아멜리아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아직 첫 번째 그림이 미완성이지만, 순서를 조금 바꿔도 좋을 것 같아서. 모레스가 그랬거든. 또 언제 남부 전선으로 불려갈지 모르니까, 아무래도 오라버니의 초상화를 먼저 그리는 쪽이 좋겠다고.”
“모레스가…….”
가족 전담 화가에게 내 초상화를 그리자고 했다고?
“정 오라버니가 원한다면, 이번만큼은 닭털을 붙이고 그려도 아무 말 않겠다고 모레스가 전해달랬어.”
농담처럼 이어진 아멜리아의 말에 갑자기 말문이 막힌 오웬은, 한동안 멍하니 초상화 속의 소년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