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40)
성황의 아이들-40화(40/469)
040. 포식자 (4)
늦은 밤까지 여기저기 밝은 횃불이 타오르는 화전촌은 마치 축제라도 열린 것 같았다. 그 횃불을 들고 다니는 놈들이 살기등등한 산적 놈들이라는 것을 빼면 말이다.
“조를 나누어 수색을 펼치고 있지만 놈들의 행적이 묘연합니다. 대략 움직인 방향을 보아 북쪽의 카르타고 관문을 향한 것 같은데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애초에 일찌감치 길을 벗어난 터라 추적이 쉽지 않아서…….”
냉랭한 얼굴로 보고를 듣고 있던 제롬이 짓씹듯 말을 내뱉었다.
“수색조를 모두 풀었는데 지금까지 한 놈도 마주치지 않았다는 것이 말이 되나?”
“수색조 한 팀이 놈들의 공격을 받았소, 두목. 한데 놈들이 도주한 뒤 얼마 지나지 않은 때라 이미 거기서 한참은 멀어졌을 거요.”
“행방불명인 수색조원도 하나 있습니다. 어쩌면 그놈도 습격을 받은 것이 아닌가 하고…….”
“지금은 어두워 흔적을 찾기 어렵소. 추적꾼을 투입하려고 해도 내일 해가 뜬 뒤여야 할 거요.”
로드리고는 제롬의 옆에 서서 보고를 듣다 말고 오두막 한쪽 구석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곳에 평소에 비해 얌전한 카이엔이 머리를 감싸 쥐고 주저앉아 있다. 그는 누가 보더라도 어미의 죽음에 낙담한 어린 아들로 보였다.
그러나 제법 깊이 그를 알고 지냈던 로드리고는 카이엔이 그런 일에 일일이 마음을 쓰는 놈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소년의 상태는 현재 정상이 아닌 듯 보였다.
그리고 그의 추측은 정확했다. 아까 절벽 아래에서 마르타가 죽은 이후, 카이엔은 극심한 두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수상쩍은 악마 숭배자 놈이 소년에게 무언가를 한 것이다.
‘머리 아파…….’
카이엔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단지 오랜 시간 뜯어먹던 마르타의 영혼을 죽기 전에 마저 먹어 치우려 했을 뿐이었다. 완전히 죽은 자의 영혼은 맛이 없었으니까.
[으어어어어어 카이에에에엔-] [왜 나를! 왜 나를! 왜 나를!] [아슬란아슬란아슬란아슬란…….]산 너머에서 기이하게 울부짖고 있는 소리들이 들린다. 오직 이곳에서 카이엔만이 들을 수 있는 소리들.
평소에는 그 멍청한 것들이 우는 소리가 재미있기만 했는데, 지금은 그의 두통을 점점 심하게 만들고 있을 뿐이다.
산에 여기저기 흘려 놓은 영혼 조각들은, 다 먹어 치우기도 전에 죽어버린 아까운 것들이었다. 이제는 그런 낭비는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놈이 방해를 했다.
‘뭐였을까? 그놈은…….’
처음 봤을 때는 분명 평범한 놈이라고 생각했는데, 일순 카이엔의 눈앞에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낸 그의 영혼은 범상치 않은 빛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렇게까지 찬란하고 압도적인 빛을 카이엔은 아직까지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가 모습을 드러낸 직후부터 카이엔은 기묘한 이명과 심한 두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다른 사람의 영혼에 간섭을 하려고 시도만 해도 구토가 치밀어 오른다.
식은땀을 흘리며 끙끙거리는 소년을 향해 로드리고가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최근 카이엔이 부지런히 뜯어먹던 영혼 중 하나다.
약해진 그의 영혼은 이미 카이엔의 명령을 그대로 수행하는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단지 예민한 마르타와는 달리, 로드리고는 스스로 그 위화감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멍청하고 둔할 뿐이다.
“…카르타고 관문으로 가라, 로드리고.”
카이엔은 로드리고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명했다.
어느 길로 빠져나가든 결국 그놈들은 카르타고 관문을 거쳐야 한다. 알콜 중독으로 골골거리는 영감이 함께 있으니 오래 산속에서 숨어 지내지는 못할 터.
“그놈들, 죽여 버려.”
소년의 삼백안에 기이한 광기가 흐르는 것을 본 로드리고는 저도 모르게 흠칫 몸을 떨었다. 그것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영혼 깊이 새겨진 공포였다.
“다 죽여 버려, 로드리고.”
* * *
아슬란은 이른 새벽녘에 잠에서 깨어났다.
옆에서 조곤조곤한 대화 소리 같은 것이 들렸기 때문이었다.
“…그래, 도착했나. 시간에 맞춘다고 고생했겠군. 엔리케에게도 접선 장소를 일러주거라.”
“그래서, 모레스는 어떻게 하고 있느냐?”
“그것은 조금 성급했던 것 같구나. 그리 서두를 필요가 있었느냐?”
뭐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야?
“그 지하에 있던 것 말이구나. 내가 자리를 비웠다고 당장 써먹으려 했던 것을 보면, 그자에게 그리 중요한 패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니, 일부러 피한 것이 아니라…….”
“…미안하구나. 체스를 두기 싫어 도망친 것은 절대 아니란다.”
아, 이건 바트의 목소리였다. 그런데 대화가 아니라 혼잣말을 하고 있는데.
“그래, 그러자꾸나. 당분간 체스는 주 2회로…….”
“…그러니까 싫은 것이 아니라…….”
뭔진 몰라도 정말 싫은 거 같은데? 목소리가 점점 기어들어 가고 있다.
아슬란은 눈을 뜨며 엉겁결에 그를 불렀다.
“…바트?”
동굴 입구에 기대어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이 보인다. 분명 혼자 있는데 누구랑 대화를 하고 있었던 걸까.
그런데 아직 잠이 덜 깨어 흐린 시야로 무언가 이상한 것이 보였다. 바트의 앞에 희뿌연 연기 같은 형체 두 개가 아른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유령인가? 옅은 분홍색과 옅은 푸른색의 그림자가…….
아슬란이 눈을 깜박거렸는데, 어느새 그 묘한 그림자는 사라지고 없었다. 다시 눈을 비비며 살폈지만 동굴 입구에는 바트 혼자뿐이다.
피곤해서 헛것을 보았나?
그러나 잠결에 본 유령 따위보다 아슬란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바트의 얼굴이었다. 잠자코 그를 바라보고 있는 바트의 얼굴이 어째 묘하게 낯설게 느껴졌던 것이다.
아슬란이 긴가민가하며 물었다.
“저, 바트. 머리가 원래 그런 색이었던가요? 조금 검어진 느낌이…….”
짙은 갈색이라고 생각했던 그의 머리가, 희미한 아침 햇살 아래서도 확실히 어제보다 검어 보인다.
얼굴도 어째 살짝 변한 느낌이었다. 이전에는 이목구비가 반듯하니 잘생겼지만 인상이 조금 흐리다는 느낌이었는데, 뭔가 인상이 확실해지고 어쩐지 좀 더 잘나진 것 같은? 어어?
이전과 다르지 않은 것은 이따금 묘한 광택이 흐르는 은회색의 눈동자뿐이었다.
바트는 아슬란의 말에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이리저리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제법 여기 오래 있었으니까 말이다. 동조율이 서서히 오르는 것이겠지.”
동조율? 그게 뭔 소리야?
멍하니 그를 바라보고 있는데 뒤에서 뒤척거리던 막스 영감이 눈을 뜨더니 하품을 했다.
“끄으으으. 이 나이에 노숙이라니. 그런데 어째 아침마다 아프던 허리도 괜찮고, 거 버틸 만하구먼.”
그는 바트에게서 별다른 이상을 느끼지 못한 듯 보였다. 워낙 미묘한 변화라 그런가?
아슬란 혼자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바트가 일어나 로브 자락을 툭툭 털며 말했다.
“지금부터는 시간 싸움이니라. 그들이 결국은 카르타고 관문으로 쫓아올 테니, 이제는 흔적을 남기는 것은 신경 쓰지 않고 최대한 빨리 관문에 도착하는 것을 목표로 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흔적에 신경을 썼다는 투다. 추적을 피해서 무턱대고 도망친 줄 알았는데?
아슬란이 멍청히 입을 벌리자, 바트가 한쪽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아마도 그들이 정석대로 추적하려 한다면 조금은 헤매야 할 것이다.”
자, 그럼 출발해 볼까.
곧 두 사람의 머리 위로 앞으로의 강행군을 예고하는 신성력 폭포가 쏟아져 내렸다.
그들은 놀랍게도 정오가 되었을 무렵에는 잘 정비된 통행로에 다다를 수 있었다. 무려 나이 지긋한 노인을 데리고 단 하루 만에 험한 서쪽 산맥 정상을 가로지른 것이다. 물론 걸으면서 건량을 씹고, 수시로 신성력을 덮어쓰는 지옥의 행군 끝이었지만.
몸은 계속 회복되어 괜찮은데 힘들기는 마찬가지라, 정신력을 심하게 소모하는 일정이었다.
이제 통행로를 따라 쭉 내려가기만 하면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카르타고의 관문에 도착할 것이다. 아슬란과 막스 영감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스쳤다.
“안심하기는 아직 이르다. 그들이 어제부터 정비된 통행로를 통해 말을 달렸다면 아슬아슬하게 따라잡힐 수도 있다.”
그렇게 말을 하는 바트 역시 안색이 파리해 보였다.
아슬란은 조금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오러 활성이 되지 않는 몸은 언제 넘어갈지 몰라 불안하기 짝이 없었고, 어제부터 이리저리 휘두르고 다닌 수갑 아래의 천은 이미 여기저기 피에 젖어 있었다. 물론 천을 풀어보면 정작 팔은 멀쩡하겠지만.
무엇보다 신성력이라는 것이 저렇게 막 퍼부어도 괜찮은 것이었던가?
바트는 비척비척 길옆으로 걷더니 커다란 돌 위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시간이 조금 촉박하나 우리는 여기서 접선책을 기다려야 한다.”
“접선책이요?”
“관문을 몰래 빠져나갈 수는 없지 않겠느냐.”
아. 아슬란과 막스 영감의 표정이 숙연해졌다.
지금까지 그들이 애써 외면하려 했던 사실이다. 비록 무사히 카르타고에 도착하더라도 신원이 불확실한 그들이 관문을 어떻게 통과할 것인가.
다행히 바트에게 뭔가 해결책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는 무심한 어조로 허공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 친구가 너무 늦지는 않아야 할 텐데…….”
그 말과 동시에 갑자기 누군가가 그들 앞에 스르륵 내려앉았다. 탁 트인 통행로에서 어떻게 갑자기 기척도 없이 나타났는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그는 위아래로 시커먼 옷을 입은 남자였는데, 입가에서 턱으로 길게 나 있는 상처를 제외하면 마치 학자처럼 보이는 얌전한 인상의 청년이었다.
남자는 움찔 놀라며 뒷걸음치는 아슬란과 막스 영감을 힐끔 쳐다보더니, 이내 바트의 앞으로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폐하.”
바트에게는 구면인 모양이다.
폐하? 상상치도 못한 호칭에 아슬란이 얼어붙어 있는데, 바트가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감각이 이리 둔해지니 자네가 온 것도 모르고 있었군, 엔리케.”
“21호입니다. 폐하.”
“…….”
남자가 무뚝뚝하게 대꾸하자 뭔가 심상치 않은 기색을 느낀 바트가 입을 다물었다.
아니나 다를까, 곧이어 남자는 딱딱한 어조로 빠르게 불만을 쏟아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저더러는 상단과 화전촌을 조사하라 명하시고는, 다음날 밤에 갑자기 아세인 지부에 나타나셨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아십니까? 이전처럼 가만히 기다리고 계시면 제가 알아서 소식을 물어다 드리지 않습니까? 도대체 이번에는 뭐가 또 그리 급하셨습니까?”
“그건, 미안하게 되었다, 엔리케. 이상하게 이번 건은 예감이 좋지 않아서…….”
“21호입니다, 폐하. 덕분에 길드의 수도 중앙지부는 지금 난리도 아닙니다! 까다롭고 난해한 지시만 잔뜩 날려놓고 그렇게 훌쩍 사라져 버리시면,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그…….”
“어디 그뿐입니까? 뜬금없이 저 멀리 국경 너머에서 합류하자 통보하시는 건 또 뭡니까? 대륙에서 가장 빠른 파발꾼도 그렇게 움직이지는 못합니다! 그러잖아도 지난 나흘간 델크로스에서 여기까지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말을 달리느라 제가 얼마나…….”
남자가 말끝을 흐렸다. 무뚝뚝하고 평이한 어조인데도 이상하게 그 속에서 미처 갈무리되지 못하고 끓어오르는 분노가 생생하게 전해진다. 아슬란은 그저 눈만 끔벅거리며 두 사람의 눈치를 살폈다.
그의 격렬한 울분을 감지한 것은 바트도 마찬가지인 모양. 슬그머니 눈치를 보더니 주춤 남자의 이마를 향해 손을 뻗었다. 곧 그의 손에서 환한 빛이 뻗어 나온다 싶더니 거뭇하던 남자의 눈가가 순식간에 뽀송해졌다.
그런데 남자가 주목한 것은 다른 것이었다. 그가 눈앞으로 다가온 수갑을 잡아채더니 피에 젖은 붕대와 바트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물었다.
“이게 뭡니까?”
“아세인에서 눈을 뜨니 그리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나도 뭔가 했는데, 비상시에 사람을 치는데 제법 쓸 만하더군.”
남자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설마 이걸 무기로 쓰라고 채워 놨겠습니까?”
“…흠.”
바트의 얼굴이 눈에 띄게 침울해졌다.
“아세인 지부장에게 뭔가 불만이 있으면 말로 하라고 전하게.”
“노력은 해 보겠습니다만, 글쎄요. 이건 불만이 매우 많으니 직접 와서 들으라는 항의가 아니겠습니까?”
“…….”
“폐하께서 오러를 못 쓰시는 지금, 이 근방에서 폐하의 팔을 자르지 않고 오러 블레이드로 수갑만 자를 수 있는 사람이 그분 외에 또 누가 있겠습니까.”
한데 그 딱딱한 말을 들은 바트가 의외로 조금 밝아진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생각해 둔 것이 있다. 차마 저 어린아이에게 부탁하기 미안하여 저어하고 있었네만…….”
그러자 21호, 엔리케의 눈초리가 매서워졌다.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지 알 만하군요. 대충 수갑만 잘라주면 베인 팔은 알아서 붙을 거다, 팔이 떨어져도 다시 붙일 수 있다. 뭐, 그런 얘기를 하시려는 겁니까? 죄송하지만 저도 이런 쇠뭉치를 단칼에 자르는 재주는 없습니다.”
“아니, 그보다는…….”
“설마하니 그냥 팔을 잘라 달라는 말은 아니시겠죠? 저는 안 합니다.”
“…….”
우와, 회복력이 상식을 초월하니 발상의 범위도 남다르구나.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아슬란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며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