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409)
성황의 아이들-409화(409/469)
409. 머리 탑 (7)
그렇게 하루하루 시간이 흘러, 어느덧 성진이 황도를 떠나야 하는 날이 다가왔다.
하지만 출발하는 날 아침이 밝았음에도, 진주궁의 공기는 평소와 같이 차분하기만 했다.
‘일전에 한 번 다녀와서 그런가? 이번 출장은 다들 그러려니 하는 느낌이군.’
기대인 듯 불안인 듯, 묘하게 술렁이는 기분이 드는 건 오직 성진뿐인 듯했다. 그는 애써 그 찜찜한 느낌을 무시하며 생각했다.
‘그래. 오지를 찾아가는 것도 아닌데 별일 있겠어? 얼른 끝내고 금방 돌아올 거니까!’
그사이에 성진은 성황과 한 차례 더 알현 시간을 가졌다. 물론 전적이 있기에, 대화하는 중에도 성진은 되도록 성황을 안심시키기 위해 애를 썼다.
“이번에는 정말 별일 없을 겁니다. 전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자코모 밀로의 은신처에 대한 양질의 정보를 손에 넣었거든요. 아마 잠입만 제대로 성공하면, 그를 체포하는 건 금방일 겁니다.”
“잠입.”
하필 성황이 신경 쓰이는 단어를 콕 집어내자, 성진은 조금 당황하며 눈동자를 굴렸다.
“어, 잠입… 네, 그게 그러니까…….”
“…….”
“그냥… 약간의 눈속임… 같은 걸 해 보자는, 그런 의미입니다! 기사들을 왕창 이끌고 무턱대고 찾아간들, 놈들이 순순히 자코모 밀로의 신병을 넘기지는 않을 테니까요.”
거기까지 말한 성진은 눈을 질끈 감았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대충 털어놓자!
사고 치고 나중에 들켜서 딱밤 맞는 거보다는, 미리 말하고 혼나는 편이 더 낫지 않겠는가.
“어디까지나 놈들의 작은 점조직 하나를 급습하는 것뿐입니다. 물론 마사인 경은 허락하지 않을 테니, 그 몰래 일행을 빠져나와 오러 은폐를 시도하는 게 조금 문제지만요. 그래도 어떻게 되지 않겠습니까? 제 정보원인 다샤도 따라갈 겁니다.”
“…….”
“이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버지. 더 중요한 건 그다음이에요! 일단 자코모 밀로를 잡고 나면, 돌아오는 길에 북부 토박이 귀족들을 좀 을러볼까 합니다. 그치들이 자잘하게 우리 사업을 방해하는 통에, 요즘 슈미트 지부장이 영 골치가 아픈 모양입니다.”
“그래.”
다행히 성황은 더는 ‘잠입’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기우뚱 기울이며 이렇게 물었지.
“하나 북부 토착 세력은 그리 만만치 않느니라. 온전히 힘으로 압박하기에는, 네 일행이 조금 조촐한 규모가 아닌가 싶다만.”
“음…….”
성황의 지적은 타당했다.
마물 전담반 인원이라고 해 봐야 지금은 성진과 로베르 경뿐.
거기에 마사인 경과 브루노 단장을 위시한 상주기사 대여섯이 더 따라간다 한들, 제대로 된 무력 집단이라 보기는 조금 힘들겠지.
어찌 생각하면 울프 기사단과 함께했던 첫 출장보다도 적은 인원이었다.
‘하지만 엑소시스트로서의 업무를 수행한다고 생각하면 과한 숫자야.’
이쪽은 기회를 봐서 참회 교단의 말단 조직에 몰래 잠입해야 하는 거다. 그러니 황자의 출장치고는 최대한 머릿수를 줄인 거라고.
‘게다가 북부 쪽은 또 어찌저찌 될 거 같단 말이지…….’
물론 전혀 근거 없는 예감이었기에, 성진은 재차 성황에게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섣불리 북부 세력을 자극하지 않도록 조심하겠습니다. 전처럼 위험한 짓은 절대 하지 않을게요. 정말입니다.”
“…….”
물끄러미 되돌아오는 시선을 보건대, 성황은 그다지 성진의 말을 믿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생각 외로 그의 얼굴은 평온해 보였다.
‘로건과 시슬레에게 샤론 경을 딸려 보내버렸으니, 이번에는 조금 걱정하시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참으로 의외의 일이었다.
어쨌든 성진은 이후로도 자잘한 이야기들을 더 늘어놓다가, 성황에게 조금 이른 작별 인사를 건넸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아버지. 당일 아침에도 정무 회의가 있으실 테니, 출발 직전에 인사드리러 오기는 힘들 거 같네요. 카트리나 경에게 도시락 배달을 맡겨놨으니까 제가 없는 동안 식사 거르지 마시고요.”
그러자 성황은 잠시 미묘한 시선을 던지더니, 인사 대신에 영문 모를 당부를 남겨왔다.
“모레스.”
“네?”
“신성력 없는 네가 엑소시스트로서 활동하는 데는, 무엇보다도 준비된 퇴마 도구들의 역할이 중요할 것이다. 그러니 너는 가지고 간 짐들을 되도록 분실하지 않게 잘 단속하거라.”
“……?”
성진은 잠시 의아해졌지만 이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 당연히 도구들이 중요하긴 하겠지.
* * *
마침내 출발하는 당일 아침.
가볍게 명상으로 아침 운동을 끝낸 성진이 밖으로 나오자, 배웅을 위해 일찌감치 나와 있던 아멜리아가 미소 지으며 다가왔다.
“몸은 괜찮으니? 병석에서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부디 무리하지 말고 무사히 다녀오렴, 모레스.”
아멜리아는 이번에도 성진을 위해 정성스러운 선물을 준비해 왔다.
“누님, 이건……?”
“이제 너도 어엿한 엑소시스트가 아니니? 퇴마 도구들을 지니고 다니는 데 도움이 되도록 준비해 봤단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성진에게 건넨 것은, 튼튼한 벨트가 달린 작은 가방이었다. 검은 가죽에 화려한 은실 자수가 놓인 것이, 무척이나 고급스러워 보이는 가방이다.
“…이 자수는 누님이 놓으신 게 아니군요?”
가방 한가운데 새겨진 반듯한 주신의 문양과, 멋들어진 필기체로 수놓아진 경전의 문구까지.
‘이건 절대로 누님의 솜씨가 아니지.’
성진은 조금 안도했다. 만일 이것들을 모두 혼자서 하려 들었다면, 누님의 손가락은 지금쯤 바늘 자국으로 남아나지도 않았을 테지.
그러자 아멜리아가 배시시 웃으며 대꾸한다.
“후후, 들켰니? 직접 수까지 놓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내가 손대면 멋진 가방이 다 망가질 것 같았단다. 그래도 문구의 글씨는 내가 직접 쓴 거야.”
역시 우리 누님은 신성제국 최고의 명필이라니까!
성진은 아멜리아가 보는 앞에서 퇴마 도구 몇 가지를 집어넣고는, 자랑스럽게 허리춤에 가방을 맸다.
이렇게 장비하고 보니, 이제 나도 제법 멀쩡한 엑소시스트처럼 보이는데?
“기사단 정복이랑 잘 어울리네요. 감사합니다. 역시 누님의 미적 감각은 탁월하십니다.”
그러자 마왕 놈이 성진의 머리 위를 빙빙 돌며 깐족거렸다.
[검은색 일색이라서 그런 거 아닐까? 감각이랄 게 뭐가 있어? 쟨 그냥 검은색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거 같던데.]…닥쳐!
성진이 으르렁거리는 동안, 아멜리아는 사뿐사뿐 걸음을 옮겨 곁에 서 있던 오웬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이건 오웬 오라버니에게.”
그때까지도 머쓱하게 딴청을 부리던 오웬은, 갑자기 아멜리아가 선물을 안겨오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가 받은 것 역시 성진의 것과 비슷한 모양의 가방이었다. 매끄럽고 튼튼한 갈색 가죽에, 무훈시의 한 구절이 멋들어지게 새겨져 있는 고급품이다.
“뭐, 나한테까지 이런 걸 다…….”
멍하니 가방을 바라보던 오웬이 울컥한 표정을 짓자, 아멜리아가 그를 향해 애석한 듯 웃어 보였다.
“진작 챙겨주지 못해 미안해. 예전에 오라버니가 갑자기 전선으로 향했을 때, 그때의 나는 모든 게 미숙하기만 한 어린애였지. 그래서 걱정스러운 기분을 어떻게 달래야 할지, 어떻게 오라버니의 무사를 기원해야 할지를 제대로 알지 못했어.”
“아멜리아…….”
“하지만 이제는 나도 달라졌지. 소중한 가족들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마친 채 그들을 믿고 기다리는 법도 배우게 되었어.”
오웬이 시큰한 코를 훌쩍이며 뭐라 대꾸도 하지 못하자, 아멜리아는 살포시 그의 손을 잡으며 미소 지었다.
“매일 기도할 테니, 부디 모레스와 함께 무사히 돌아와, 오라버니.”
성진은 생각했다.
‘천사다! 역시 우리 아멜리아 누님은 하계를 빛내기 위해 내려오신 천사야!’
심지어 아멜리아는 빨강이를 위한 선물도 준비해 왔다. 작은 접시가 들어 있는 텅 빈 램프였다.
“여행길에 요정님의 접시를 들고 다닐 수는 없으니까. 불의 요정님이 쉴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만들었어.”
예쁘장한 램프를 받아든 성진은 조금 감탄했다.
이런 모양이라면, 설령 마왕이 속에 들어가 있더라도 그냥 보통의 호롱불인 척 위장할 수 있겠는데?
[와아아!]당연한 일이었지만, 당사자인 마왕의 반응은 그야말로 격렬했다.
[뭐야? 이거 뭔데 이렇게 예쁘지?]놈은 부산스럽게 램프 주위를 맴돌며 호들갑을 떨었다. 워낙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놈인 만큼, 램프의 예스러운 장식들에 금세 정신이 빠진 모양.
[저 녀석, 매번 검은색 타령 일색이더니 생각보다 취향이 괜찮잖아?]성진은 안장 옆에 그 작은 램프를 단단히 비끄러맸다.
그러자 마왕 놈이 기다렸다는 듯 날아와 잽싸게 램프 안에 안착한다.
[히히히히!]아멜리아가 그 모습을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어쩜? 정말 다행이다. 불의 요정님도 선물이 마음에 드시는 모양이구나?”
성진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마왕아, 네 그 얼빠진 웃음소리를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는 게 천만 다행인 줄 알아. 누님에게는 아직도 네가 신비한 요정님의 이미지로 남아있는 거 같으니까.
그렇게 대강 작별 인사를 마치고, 성진이 드디어 말에 오르려 할 때였다.
“…설마 정말로 승마를 하실 계획이십니까, 저하?”
상주기사들과 마차의 상태를 정비하고 돌아온 마사인 경이 놀란 눈으로 물어왔다.
“응? 어. 황도 밖으로 나갈 때까지만.”
일단 황도의 은총을 벗어나기만 하면, 전처럼 편안하게 마차 안에 틀어박힐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황자로서의 인지도도 쌓았겠다, 적어도 황도 신민들 앞에서만은 멋진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겠어?
“하지만 저하……?”
“왜, 마사인 경?”
“아니, 그러니까…….”
마사인은 어쩐지 말끝을 흐리며 주변을 꼼꼼히 살피기 시작했다. 마구와 장비들을 점검하는 상주기사들부터, 마차로 짐을 옮기느라 부산하게 움직이는 인부들까지.
“…이건 또 뭐지? 아직 옮기지 않은 짐이 있었나?”
“아! 그거 오늘 아침에 행정부에서 넘어온 물건이야. 취급에 주의하라는 거 보니, 아마 성수처럼 깨지기 쉬운 퇴마용 도구겠지.”
“성수우? 설마? 길쭉하게 생긴 것이, 내 눈에는 꼭 관짝 같아 보이는데?”
“쉿! 그게 무슨 불길한 소리야? 자자! 이게 마지막이니까, 어서 마저 싣고 끝내자고.”
“자자, 서둘……!”
하지만 어디에서도, 그가 찾는 개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마사인 경은 조금 심각한 얼굴이 되어 재차 물었다.
“그러고 보니, 최근 저하의 늑대개를 전혀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만.”
“어? 아아, 막스.”
성진은 볼을 긁적였다.
“막스라면 잠시 놀러갔어. 내 심부름도 할 겸 친구를 보고 오겠다는 거 같던데?”
“…네? 심부름…….”
“걱정 마. 녀석은 마음 내키면 언제든 다시 돌아올 거야. 내가 있는 곳은 아무리 멀어도 찾을 수 있으니까.”
“……?”
마사인의 의문이 더욱 늘어가는 듯했지만, 더는 이에 대해 답해줄 시간이 없었다. 오늘 중으로 레지나에 도착하려면, 이제부터 슬슬 길을 서둘러야 했으니까.
끼이이-
황궁의 정문이 열리자, 이내 격렬한 환호가 성진 일행을 감싸왔다.
“모레스 저하!”
“바서스트령의 구원자!”
“저기 봐! 고대 요정의 축복을 받으셨다더니, 정말로 작은 불의 요정이 저하의 곁을 맴돌고 있어!”
황도 신민들은 진심으로 불의 요정을 반기며, 성진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모두가 ‘요정’의 존재를 친숙하게 느끼게 된 모양.
“…….”
예상외의 반응에 잠시 당황했던 성진은, 곧 꼿꼿하게 등을 펴고는 환호 속으로 말을 몰았다.
적어도 지금만은 자신이, 그들의 눈에 성황가의 자랑스러운 일원으로 비치기를 바라면서.
* * *
워오오오-
어디선가 희미하게 늑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별난 일이군요. 이 근방에는 야생 늑대가 서식하지 않을 텐데.”
동그란 눈으로 귀를 쫑긋 세운 남매를 향해, 암브로시우스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두 분 저하. 야생 짐승들은 감히 키프로스의 도시에 얼씬도 하지 못하니까요.”
로건과 시슬레는 현재, 암브로시우스와 함께 배를 타고 브리즈 강 하구로 향하는 중이었다.
“자, 이제 다 왔습니다.”
물살을 따라 얼마나 흘러왔을까. 등대의 맞은편에 높이 서 있는 회색 탑이 눈에 들어오자, 암브로시우스는 자랑스러운 듯 손을 들어 보였다.
“로건 님, 시슬레 님. 저 건물이 키프로스에서 가장 유명한 유적지, 바로 암브로시아의 ‘머리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