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417)
성황의 아이들-417화(417/469)
417. 이성진 탐구 일지 (6)
마력세.
그 유서 깊은 세금의 유래는 장장 5대 성황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신성제국 델크로스가 건국되고도 한동안이나, 대륙에는 딱히 그 외에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갖춘 나라가 없었다. 즉 지방 영주들의 권력이 하늘을 찌르던 시기였다는 뜻이다.
당시의 영주란 그야말로 주신 다음으로 전능한 존재. 이들에게 있어 ‘사회 계약’의 개념 따위, 세상 물정 모르는 철학자들의 헛소리에 지나지 않았다.
영지의 모든 것이 영주의 소유이며, 모든 권력 또한 영주의 손안에 있다. 따라서 그들이 가진 것을 점검하고 여기에 기발한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장사치가 장부를 쓰고 돈을 세는 것과 같은 당연한 일과였다.
영주들은 재산을 늘리기 위해 세금을 쥐어짤 갖가지 방법들을 고안해냈다. 낚시세나 사냥세, 저수지세, 강수유입세가 그 대표적인 예였다. 내 땅에서 수렵을 하고 농사를 지어 먹으려면, 이에 합당한 사용료를 내는 것이 인지상정 아니겠나.
또 어떤 영주들은 가진 것이 많은 자에게 세금을 더 물리겠다는 획기적인 발상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래서 ‘사치’품이라 생각되는 것들에도 세금을 부과하기 시작했다.
난로 개수를 세어 세금을 물린 북부의 ‘난로세’나, 창문의 개수대로 세금을 책정한 남부의 ‘창문세’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그런 영주들에게도 상인이란 대단히 애매한 존재였다. 영지민도 아닐뿐더러, 그들이 파는 물건 역시 자신의 소유가 아니다. 그러니 세금을 물릴 만한 명분이나 기준이 딱히 마땅치가 않았다.
-어쨌거나 놈들이 내 땅에서 이익을 얻는 만큼은 돈을 걷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처음에 영주들은 마차의 개수당 세금을 책정하는 ‘마차세’를 걷었다. 물건을 많이 파는 놈에게 많이 걷는 것이 공평하지 않겠냐는 취지였다.
한데 마차세를 걷는 기조가 대륙 전반에 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익에 눈이 먼 상인들이 괘씸한 짓거리를 시작했다. 합당한 세금을 줄여보겠다고 점점 더 커다란 짐마차를 만들어내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이런 지독한 것들…….
그래서 다음으로 시행되기 시작한 것이 ‘마차 중량세’다. 원리는 간단했다. 물건 적재량에 따라 세금을 물리면 되지 않느냐는 것.
문제는 영지마다 도량이 통일된 것도 아니거니와, 일일이 물건을 빼내어 중량을 측정하는 것이 제법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는 거다.
-주군! 징수관 수가 터무니없이 부족합니다!
-무게를 재는 동안 물건들이 상했다며, 상인들이 성문 앞에서 보상을 요구-!
그러자 영주들은 이번에는 마차의 바닥 면적을 계산하여 ‘마차면적세’를 물리기 시작했다. 징수관들이 일일이 줄자를 가지고 다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중량을 재는 중노동에 비하면 일이 한결 수월해진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한데 ‘마차면적세’가 제대로 정착을 하기 무섭게, 이번에도 또 상인들이 문제를 일으켰다. 그 도리를 모르는 막돼먹은 것들이, 이제는 포장을 높게 치고 바닥 면적을 최대한 줄인 기형적인 마차를 만들어낸 것이다.
세수는 영 늘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회전 반경이 불안정해진 마차들은 수시로 전복 사고를 일으킨다.
이쯤 되자 영주들도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 말았다. 일관성은 개뿔, 그냥 내키는 대로 걷기로 한 거다.
-짐마차가 너무 높구먼. 자네는 이번에는 ‘중량세’를 내게.
-네에? 하지만 징수관님.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분명 ‘면적세’를 적용하지 않았습니까?
-거 무슨 배부른 투정인가? 옆 영지에서는 마차세와 중량세 둘 다 매기는 것도 모르나? 상인들을 생각하는 우리 영주님의 깊은 아량에 감사드리게.
그렇게 중구난방으로, 혹은 이중, 삼중으로까지 세금이 매겨지기를 수백 년. 이 복잡한 세금 체계에 강한 반감을 표한 자가 나타났으니, 당시 전 대륙을 여행하며 [신기한 대륙 탐방기]를 집필하던 그라니우스였다.
그는 주로 영지에서 영지로 이동하는 상단을 따라 여행을 하곤 했는데, 번번이 이 세금에 발목이 잡히다가 마침내 폭발하고 말았다.
-이 바보들아! 짐이 크든, 짐이 무겁든, 그래서 마차 개수가 늘어나든, 그걸 끄는 것은 어차피 모두 짐말 아니야? 그럼 필요한 말의 수대로 세금을 물리면 쉽잖아!
-그, 그런 간단한 방법이……?!
그렇게 해서 5대 성황의 제위 기간 중 점차 하나로 통일되기 시작한 세금이 바로 ‘마력세’였다.
짐의 적재량은 물론 짐말이 오가며 축내는 영지의 초목 소모량까지 정확하게 반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당시 영주들에게 큰 각광을 받으며 오늘날에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 유서 깊은 마력세의 초기 취지를 일깨우는 자가 있었다. 바로 돈 버는 만큼 제대로 뱉어내라 뻗대고 있는 베르세우스 다시아노 후작이었다.
-당신네들의 사업은 분명 기존 상단의 배는 넘는 수익을 발생시킬 터. 그러니 당연히 마력세도 두 배로 내시오. 이를 들어주지 않으면 더 이상 북부와의 대화는 없소.
또한 여기에, 그 뿌리 깊은 마력세의 명분에 대해 근본부터 의문을 제기하는 이가 있었다. 바로 ‘내 돈을 탐내는 놈에게는 동전 한 푼도 줄 수 없다’는 태도를 견지하는 모레스 황자였다.
“애초에 말도 되지 않은 마력세를 순순히 납부하려던 게 문제였어. 꼼수를 부려 쉽게 가려 하니, 결국은 이렇게 문제가 생기는군.”
모레스의 투덜거림에, 슈미트 지부장은 물론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오웬과 마사인까지 의아한 눈짓을 주고받았다.
제대로 마력세를 내는 것이 왜 꼼수라는 거지?
“역시 일은 정석대로 진행해야 하는 법이다.”
“…하면 저하. 그 정석대로라는 것은?”
지부장이 조심스레 질문하자, 모레스의 한쪽 입꼬리가 장난스레 솟아올랐다.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주신을 저버리는 것들에게 더는 놀아나지 않겠다는 뜻이다. 어딜 감히 주신의 종이, 주신의 땅에서, 주신의 과업을 수행하는 이에게 세금을 물린다는 건가?”
“…….”
“그러니 다소 번거로워지더라도 잘못을 엄중히 따져, 그들을 제대로 된 신앙의 길로 인도하겠다. 그것이 바로 정석이지.”
슈미트는 순간 대꾸할 말을 잃고 입을 뻐금거렸다.
그, 그야 정교회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정론일 수 있다. 그럴 수는 있는데…….
“하지만 저하. 귀족의 영지는 그가 관리하는 그의 땅입니다. 하면 통행세든 마력세든, 그 권리에 합당한 값을 지불하는 것은 당연한…….”
“하면 지부장. 주인 없는 산에 자리를 틀고 길을 관리하는 산적들은 어떤가?”
“…네? 산적, 이요?”
“그래. 만약 그들이 통행로를 제대로 관리하며 그 비용을 받겠다고 한다면, 자네는 그들에게 순순히 돈을 지불할 건가?”
…아니, 그건 정말로 억지 아닌가?
순간 사무실에 있는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지만, 모레스의 태도는 당당하기 이를 데 없었다.
“잘 알아두라고, 슈미트 지부장. 오르토나가 멸망한 이후, 그곳을 다스리는 영주들은 더는 우리 외교부의 정식 외교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제국의 입장에서 그들은, 그저 주인 없는 땅과 백성들을 멋대로 점거한 산적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신용도 없고, 신뢰도 없지.”
“그-”
“마력세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가 순순히 그 돈을 내려 한 이유는 그들이 정당한 권리를 가졌기 때문이 아니야. 그저 내란으로 오랜 시간 고통 받아온 그 땅을, 다시 무력으로 짓밟지 않기 위함일 뿐이다.”
탁.
거기까지 말한 모레스는, 서류철을 닫으며 지부장을 오만하게 내려다보았다.
“그러니 다시아노 후작에게 다시 정중히 우리의 입장을 전하게. 그 땅에 있는 흙 한 줌과 풀 한 포기까지, 그 모든 것이 주신의 소유임을 결코 잊지 말라고. 그곳을 오가는 주신의 백성들에게 이제 더는 도적질을 하지 말라고.”
전혀 정중히 전할 수 있는 발언이 아니었다. 이건 아예 싸우자고 시비를 거는 거 아닌가.
“알겠나? 앞으로 우리 상단의 지출에 더는 ‘마력세’는 없네.”
“…….”
“왜 그런 얼굴이지? 기뻐하라고, 지부장. 북부 재건 사업에 들어가는 예산이 획기적으로 줄어들지 않았나?”
말릴 수가 없구나.
결국 낙담한 슈미트 지부장은 고개를 숙였다. 이제 북부 전 지방을 아우르는 대규모 사업 계획이 모조리 수포로 돌아가리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잘 알겠습니다, 저하. 그럼 다섯 영주들에게 조속히 그리 답을 보내겠습니다.”
한데 그 말을 들은 모레스가, 갑자기 고개를 기우뚱 기울이며 대꾸했다.
“응? 뭣 하러 다섯에게 다 보내? 우리는 그냥 한 놈하고만 싸우면 돼.”
“…네?”
“내가 말한 건 다시아노뿐이었잖아? 본보기는 하나면 충분하지.”
순간 사무실에 싸늘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본보기.
모레스 황자의 그 발언이 내포하는 것이 무엇인지, 눈치 없는 오웬조차 모를 수가 없었으니까.
“걱정 마, 슈미트 지부장. 일을 크게 벌이지는 않을 테니까. 난 어디까지나 한 놈만 때릴 거거든.”
아무렇지 않은 듯 덧붙이는 그 말에, 오웬은 문득 오싹한 한기를 느꼈다.
* * *
이후로 모레스의 업무는 일사천리였다.
이제까지의 점검은 물론 앞으로의 계획까지 빠르게 의논을 마친 그는, 슈미트 지부장에게 사적인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새로운 거처를 요구했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잠시 출장 일정을 미루고 한동안 레지나에 머물겠다는 모양이었다.
‘대체 이곳에서 뭘 더 하시려고요?’
그런 의문이 목구멍까지 치솟았지만, 슈미트는 차마 그것을 황자에게 대놓고 물어보지 못했다.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난 모레스는, 드디어 오웬에게 기다리고 있던 질문을 던졌다.
“그래, 오웬. 그동안 계획서는 좀 읽어 봤어?”
“으응? 그, 그야 물론이지.”
슬쩍 마사인을 일별한 오웬이 덧붙었다.
“나는 구리 광산 쪽이 괜찮아 보이던데? 그래서 여기에 좀 투자를 할까 하는데…….”
“흠, 그래. 거기도 좋지.”
모레스는 순순히 대답했지만, 슬쩍 미간을 구기는 걸 보니 그리 마음에 드는 답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근데 그거 말고 그냥 곡물 사업에 투자하지 그래? 아직은 실적이 없지만, 이제는 마력세가 아예 없어져서 판매 차익이 고스란히 수익으로 돌아올 예정이거든.”
‘아니, 어차피 네가 정할 거였으면 왜 나한테 읽어보라고 했냐?’
물론 정말로 그렇게 따질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스스슥.
오웬은 얌전히 서명을 갈겼다. 어쩐지 지금의 모레스에게는 뻗대지 않는 것이 신상에 이로울 것 같다는 위기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평소와 뭔가 달라. 모레스 이 자식, 어쩐지 답지 않게 무섭단 말이지.’
그렇게 늦은 오후가 되어 드디어 모든 일정이 종료되었다. 마지막으로 사무실을 나서며, 모레스가 여상하게 지부장을 돌아보았다.
“아, 그런데 슈미트 지부장?”
“네, 저하?”
“자네만 괜찮다면, 이 접시는 내가 가져가고 싶네만.”
“…….”
어느 안전이라고 감히 거절의 말을 고하랴.
* * *
모레스가 레지나에 며칠간 더 머물겠다고 알리자, 일행의 반응은 천차만별이었다.
“그거 잘 됐군요! 안 그래도 클로디아 경이 음식점만 이곳저곳 끌고 다니는 통에 제대로 된 구경을 못 했습니다. 배만 터져 죽는 줄 알았지 뭡니까.”
“그런 약한 소리 마세요, 쿠르트 경. 아직 가볼 곳은 많이 남았거든요? 그런데 저하는 함께 안 가시나요?”
클로디아 경의 순진한 물음에, 모레스는 슬쩍 그녀의 앞으로 오웬의 옷자락을 끌어당겼다.
“오웬이랑 같이 다니면 되겠네, 클로디아 경. 이 녀석도 레지나는 초행일걸? 부디 잘 안내해 달라고.”
“…….”
기분 탓일까. 순간 오웬은, 모레스가 어쩐지 자신을 떼어놓으려 든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잘 되었군요. 저하께서 요청하신 정보들을 제대로 취합하려면, 며칠은 더 교회에서 엑소시스트들을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중이었습니다.”
로베르 경까지 그렇게 대답하자, 대략적인 일행의 일정이 결정된 듯했다. 칼멘 경이야 그런가보다 하고 옆에서 눈만 끔벅일 뿐, 통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이고.
“좋아. 그럼 난 오늘부터 며칠간 슈미트 지부장의 별장에 가 있을게. 그와는 사업 건으로 할 얘기가 꽤 많으니까.”
호위 인력 대부분을 떼어 놓고 굳이 다른 곳에 가 있겠다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다.
이를 이상하게 느낀 것은 확실히 오웬만이 아니었던 듯했다.
“그럼 저하. 저희도 그냥 저하의 곁을 수행하면 안 될까요?”
클로디아 경이 그렇게 질문했을 때였다.
오웬은 순간, 마사인과 브루노 단장이 서로 의미심장한 눈빛을 주고받는 광경을 목격했다.
‘…뭐지?’
워낙 찰나의 순간이라 미처 의아해할 새도 없이, 모레스가 아닌 마사인이 그 질문에 답했다.
“저하의 곁에는 내가 있을 테니 신경 쓰지들 말지. 잠시 사적인 시간이 필요하신 것뿐이니, 자네들도 당분간은 이곳에서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게,”
오웬은 여기서도 이상함을 느꼈다.
이 형님이 이럴 사람이 아닌데. 상주기사들을 굳이 임무에서 풀어두고, 자기가 홀로 모레스의 경호를 도맡겠다고 하다니?
“그런데, 저하.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전부터 뭔가 이상해요. 우리 마차에서 자꾸 콩콩 두드리는 소리가…….”
“그래? 그럼 너도 숙소에 남는 게 좋겠어, 에디스. 굳이 날 따라오지 말고, 오가며 마차를 잘 살펴봐. 알았어?”
“아니……?”
그렇게 해서 모레스는 일행과 헤어져, 마사인 경과 함께 그대로 숙소를 떠나고 말았다.
‘아, 신경 쓰인다! 아무래도 모레스 녀석, 뭔가 이상하다고!’
그날 밤. 오웬은 어딘가 찜찜한 기분에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한데 그런 그의 눈앞에, 돌연 작은 텍스트 창 하나가 휙 하고 솟아올랐다.
[돌발 퀘스트 ?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 n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