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419)
성황의 아이들-419화(419/469)
419. 자유 지하도 (1)
자유 지하도.
성진은 벨린다의 영혼을 통해 그 비밀 조직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다.
자유 지하도는 실제로 지하에 뚫려 있는 길 따위는 아니었다. 그저 이곳을 이용한 이들 상당수가 지하 교단에 투신했기에 자연스럽게 생긴 은어일 뿐.
[처음 이 조직을 만든 자는, 어느 부유한 오르토나인이었다고 합니다. 제국의 억압으로부터 사상의 자유를 찾는 이들을 자국으로 구출하려 했다는군요.]신성제국의 역사는 장장 천 년에 이른다. 그러니 많든 적든, 종교적 억압이나 가혹한 종교재판으로부터 탈출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생겨날 수밖에.
자유 지하도는 이들에게 소량의 음식과 안정적인 탈출 경로, 그리고 필요시에는 새 신분까지도 제공해 주었다. 철저한 점조직으로 운영되기에 어지간해서는 발각되지도 않고, 만일 걸린다 해도 쉽게 꼬리 자르기가 가능하다.
그렇다 보니 처음의 취지와는 달리, 나중에는 온갖 잡범들까지 몰려들게 되었다고.
[제국에 남아봤자 희망이 없는 중범죄자들이 주로 자유 지하도로 모여듭니다.]그러던 수년 전.
성황이 무력으로 교단을 통일하면서, 이 ‘자유 지하도’의 성격에 약간의 변화가 생겨났다.
황도로부터 완전히 축출된 지하 교단들이, 자신들의 세력을 온존하기 위해 자유 지하도의 탈출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남부와 서부 방면은 [파종] 교단이-
그리고 북부 일대는, 오르토나 전역으로 세를 확장했던 [참회] 교단이.
“그래서, 자코모 밀로가 지하 교단에 숨어들지 않고, 이 북부 탈출로를 이용했을 거라고?”
[그렇습니다, 주인이시여.]자유 지하도는 지하 교단의 도움을 받아 운영되기는 하되, 완전히 교단의 영역에 속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러니 마계수 사건으로 참회 교단과 조금 껄끄러운 관계가 되어버린 자코모 밀로가 은신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조직이라는 거다.
“흠.”
성진은 입가를 쓸어내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자코모 밀로가 잠적한 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 왜 그는 아예 서쪽이나 남부로 멀리 도망치려 시도하지 않았을까?”
성진의 질문은 자코모 밀로가 북부에 있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성진과 벨린다 모두, 거기에 대해서 일말의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그자의 모든 기반은 북부에 있습니다. 쉽게 버리고 떠나기는 힘들었을 테죠.]“그렇게 상단을 철저하게 압수했는데, 아직도 남은 게 있단 말이군.”
그건 좋은 소식이었다. 몰래 빼돌려서 사업에 투자해야지.
성진이 저도 모르게 씨익 입꼬리를 올리자, 마왕 놈이 화들짝 놀라며 진저리를 쳤다.
[또, 또 나왔다! 저 계약서를 들이미는 장기매매 브로커 같은 표정!]닥쳐! 네가 앉아 있는 그 값비싼 그릇들이 다 어디서 나온다고 생각하는 거냐! 응?
[은닉한 재산도 재산이지만, 자코모 밀로는 [파종] 교단과는 아예 접점이 없습니다. 그들과 새로 접촉하여 뭔가를 꾸미기에, 수배 중인 처지로는 여의치도 않았을 테고요. 거기다 그의 가문인 밀로 백작가는 본래…….]열심히 설명을 덧붙이던 벨린다의 영혼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뭔가 걸리는 듯 입을 다물었다.
“왜? 뭔데?”
[…죄송합니다, 영혼의 주인이시여. 이것은 제가 살아생전 알지 못했던 정보로, 아무래도 발설에 강한 제약을 받는 듯합니다.]“…….”
그래. 그러고 보니 ‘제약’이니 뭐니 하는 소리를 하긴 했지.
[하나 안심하십시오. 저는 알 수 있습니다. 주인께서는 분명 머지않아 필요한 진실에 스스로 도달하시게 될 겁니다.]어쨌거나 그녀가 제공한 정보를 토대로, 성진은 충실한 출장 계획을 세웠다.
일단 자코모 밀로를 수색한다는 명목하에, 거슬리는 참회 교단부터 대놓고 들쑤시는 것이 일차 계획이었다. 그러면 일시적으로나마 참회 교단의 활동은 위축될 것이요, 자코모 밀로도 섣불리 자유 지하도로부터 벗어나지 못할 테지.
밀로 상단주는 어디까지나 활개 칠 구실. 참회 교단은 예전부터 성진에게 있어서 눈엣가시처럼 거슬리는 존재였다.
안 그래도 사회 기반이 무너져 버린 곳에 사이비 교단까지 설쳐 대니, 북부의 민생이 계속해서 파탄 나는 거 아닌가. 그대로 내버려 두면 향후 ‘베르트란 & 리’가 세를 확장하고 경제를 재건하는 데 분명 크나큰 걸림돌이 될 터였다.
게다가-
‘아무래도 로건의 환생이, 이들 참회 교단과 깊이 얽혀 있는 거 같아.’
차마 당사자에게는 상담하지 못했지만, 성진이 전부터 꾸준히 신경 쓰고 있는 지점이다.
로건도 일전에 그렇게 말했지. 환생한 사람이 또 있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은 없으며, 왜 자신만이 그렇게 된 건지도 잘 모르겠다고.
성진은 여기에 참회의 교단이 깊이 관여했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언젠가 벨린다도 성진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지 않은가.
-그는 참회의 대주교께서 공들여 엄선하신, 오직 주신에게 바쳐지기 위한 ‘참회의 제물’이다!
하지만 막상 권속이 된 벨린다에게 다시 질문해 보니, 이번에는 이런 대답이 돌아올 뿐인 거다.
[그, 도움이 되지 못해 참으로 송구합니다, 영혼의 주인이시여. 그러나 당신께서는 머지않아 홀로 진실에 도달하시라 믿어 의심치…….]“어어, 알았어. 됐어.”
물론 마음 한편으로는 괜찮다는 예감도 있었다. 지금껏 아버지가 로건을 가만히 내버려 두는 데도 다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고.
하지만 아무래도 가족의 일이니만큼, 과하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그릇된 목적을 가지고 시행된 일이, 어찌 제대로 된 과정을 통해 이뤄졌을 거라고 낙관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까 일단 참회 교단을 패자. 손 가는 대로 때리다 보면 로건에 관해서도 뭔가가 나오겠지.’
그런 연유로, 처음에 성진은 날뛸 만큼 날뛴 다음, 적절한 시기에 자코모 밀로를 잡아들일 생각이었다.
그리고 참회 교단을 만족할 만큼 족치고 나면, 그다음에는 북부를 한 바퀴 돌아보며 사업을 방해하는 영주들의 기강이나 잡아볼까 생각했던 것이다.
한데 막상 레지나에 도착해 슈미트 지부장의 보고를 받자, 성진은 자신의 생각이 너무나도 물렀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북부 토박이 영주들의 태도가 생각보다 완고한 데다, 저희끼리 연계하며 제법 조직적으로 사업을 훼방 놓는 중이 아닌가!
아마도 이 방해 공작은 꽤나 장기화되겠지. 그렇다면 그들 중에서 계획적으로 모두를 부추기는 자도 있을 법했다.
-예, 맞습니다, 저하. 그 다시아노 후작의 태도가 너무나 강경합니다. 한데 그걸 어찌 아셨습니까?
슈미트 지부장의 대답을 다 듣기 전에, 성진은 머릿속은 이미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래, 어차피 다시아노 후작에게는 갚아줘야 할 빚이 있다.
놈에게는 루이제의 복수를 해야 하고(아마도 살아 있지만), 지그스문트령을 박살 낸 대가도 받아야 하고(성진은 지그스문트령과 아무 관련 없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보는 앞에서 막스를 탐낸(탐내지 않았다) 대가를 치러야 하지 않겠는가!
‘그럼, 순서를 조금 바꿔도 괜찮지 않을까?’
제대로 난장을 치려면, 조금 더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지. 그러나 딴짓을 하느라 자코모 밀로의 신병 확보가 너무 늦어져도 곤란하다.
그래서 성진은 슈미트 지부장에게 순순히 그의 별장 하나를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그러고는 마사인 경과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또다시 이런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사실 난 한동안 이곳을 떠나 있을 생각이야, 지부장. 남몰래 해야 하는 일이니, 그동안 나의 부재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지부장이 알아서 손을 써 주게.”
갑작스레 황가의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느라 사용인들을 분주하게 부리던 슈미트 지부장의 얼굴이 삽시간에 해쓱해졌다.
“아니, 이렇게 요란하게 손님맞이 준비까지 했는데, 어떻게 사용인들 몰래 저하께서 계신 척을 합니까?”
“그거야 자네가 알아서 할 일 아니겠나? 뭣하면 메에메에를 불러서 사람들에게 최면이라도 걸든지.”
“네에? 그런 억지가……!”
“어쨌거나 자네의 능력을 신뢰하고 있으니까. 믿겠네, 지부장.”
“저, 저하! 저기, 잠시만!”
애절하게 매달리는 지부장을 뒤로하고, 성진은 척척 걸음을 옮기며 생각했다.
‘일단 다샤는 데려가야겠지. 잠행에는 그만한 인재가 없으니까. 여기까지 온 마당에 마사인 경도 떼어 놓을 수는 없으니, 함께 가고…….’
그렇게 계획을 세우던 성진의 머릿속에 불현듯 오웬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어쩐지 아까부터 녀석을 데려가면 딱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던 차였다. 바쁜 다샤 대신 바르샤 인으로 위장하기도 좋고, 만에 하나의 사고가 생겨도 제 한 몫은 충분히 해낼 텐데.
하지만-
‘…관두자. 안 그래도 이교도의 풍습에 흠뻑 물든 것 같은 녀석인데, 누군가가 녀석을 알아보기라도 했다가는 곤란하잖아.’
이교도에 이어, 암흑 교단과 내통하는 황자라니. 그 사실이 알려지면, 안 그래도 성회에서 바닥을 기는 평판이 떨어지다 못해 바닥을 뚫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녀석도 레지나는 처음일 테니까, 이참에 느긋하게 관광이나 하라고 하지, 뭐. 지금껏 계속 전장에서 고생만 했잖아.’
그렇게 생각하던 성진은 걸음을 멈추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아무래도 뭔가가 약간 부족하다는 기분이 드는데. 내가 뭘 빼 먹었나…….
‘뭐, 어떻게든 되겠지.’
자, 그럼 일단. 마사인 경에게 이실직고부터 해 보실까.
* * *
“…잠입이요.”
“응.”
“빈민으로 위장해 범죄자들의 탈출로로 숨어든다고요.”
“맞아. 바로 그거야!”
“일행을 떼어 두시는 데서 뭔가 꿍꿍이가 있지 않을까 짐작은 했습니다만… 대체 왜요?”
마사인이 의아해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애초에 자코모 밀로를 수색하기 위해 출장 인원을 꾸린 게 아닌가.
한데 왜 일행 몰래, 그들의 힘을 빌리지 않고, 황자가 손수 그런 짓을 한다는 거지?
“쯧쯧. 마사인 경. 경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고 있어. 이번 출장의 핵심은 자코모 밀로를 검거하는 게 아니야.”
“…그럼요?”
“놈을 찾는다는 구실로 여기저기 난장판을 치는 데에 의의가 있지. 그러려면 일단 우리가 그를 먼저 빼돌려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겨둬야 한단 말이야. 그래야 기한에 제약을 받지 않고, 내키는 대로 쥐 잡듯 뒤질 수 있어.”
“…….”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은 물론, 우리 일행조차도 자코모 밀로의 신병을 확보했다는 사실을 몰라야 해. 그래야 그 모든 일이 자연스러워진다고.”
마사인은 잠시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한번 쳐다본 후, 나직하게 한숨을 쉬었다.
“납득은 안 되지만 어쨌거나 이해는 했습니다. 하면 저하, 그걸 왜 모조리 제게 털어놓으시는 겁니까?”
“음, 그거야…….”
성진이 고개를 들어 충직한 기사를 빤히 바라보았다.
“말 안 하면 분명 마사인 경이 화낼 테니까?”
“…그래서, 계획을 미리 들으면 제가 화를 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셨습니까?”
“뭐, 화는 내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할 도리는 다했다는 변명거리 정도는 생길 거 아냐? 어쨌거나 명분은 중요하니까.”
턱!
마사인이 뒷목을 짚으며 눈을 감는다.
“하면 저하. 제가 저하를 막아서며 계획을 방해하면 어쩝니까?”
“뭐? 경이 그럴 리가 없잖아?”
성진이 해맑게 웃으며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어차피 내가 몰래 나가 버리면, 경은 날 절대 못 찾아.”
“……!”
뿌득.
음? 지금 이 가는 소리가 들린 것 같은 착각이…….
워워, 진정해 마사인 경! 그 주먹에 들어간 힘도 좀 빼라고!
그렇게 해서 성진은, 다샤가 도착하기를 기다려 마사인 경과 함께 빈민 분장을 시작했던 것이다.
다행히 그 무렵이 되어, 마사인 경의 분노는 제법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물론 다샤의 일거수일투족에 불만을 쏟아내긴 했지만 말이다.
“저하께 어찌 이런 허름한 옷을…….”
“저하의 용안에 그 무슨 불경한 짓을…….”
“그러고 보니, 저하께 그 시답잖은 재주를 가르친 것도 전부…….”
저하, 제발 살려주세요!
검댕을 발라주던 다샤가 간절한 눈빛을 쏘아 보냈지만, 제발이 저린 성진은 그녀의 시선을 슬그머니 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잠시 마왕과의 실랑이도 생겼다.
[싫어! 선물 받은 저 예쁜 램프를 놔두고, 내가 왜 이런 허름한 램프에 들어가야 하는 거야?]“그럼 어쩔 수 없지. 놔두고 가는 수밖에”
[뭐어? 하지만……!]“어서 선택해. 이제 시간이 없어.”
[…훌쩍!]엉엉, 오늘따라 내 완전무결한 24면체의 염상 결정이 그리워!
마왕은 잔뜩 칭얼거렸지만, 더는 반항하지 않고 얌전히 램프 안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모든 채비를 마친 성진은, 슈미트가 술수를 부려 사용인들을 재워 둔 틈을 타 감쪽같이 그의 별장을 빠져나온 것이다.
그리고-
“…오웬?”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딱딱하게 굳은 오웬의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뭐야? 너 기척도 없이 어디서 갑자기… 게다가 여기는 어떻게 알고 온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