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42)
성황의 아이들-42화(42/469)
042. 포식자 (6)
인퀴지터들이 코른시임 일족의 본거지를 습격하기 하루 전.
사전에 이를 알아챈 길드는, 성황이 지시한 대로 학자들과 연구 기록 일부를 빼돌리는 작업을 행했다.
그러던 중 실험실 한쪽에 줄지어 놓여 있는 인공 생명체들을 본 성황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쓸 만하군. 몇 개 빼돌리게.
길드의 간부들이 모두 아연실색하며 성황을 바라보았다. 아닌 게 아니라 코른시임이 악마 숭배자로 규정된 결정적인 원인이 바로 이 인공 생명체 연구가 아니던가.
한데 그는 덤덤한 얼굴로 영문 모를 소리를 했다.
-이건 악마종이니 뭐니 하는 것들과는 관련이 없다. 규상세계의 규칙에 속하는 기술이구나.
대 숙청의 기간 동안 대부분의 인공 생명체–호문클루스–는 불살라졌지만, 결국 길드는 3개의 인형을 인퀴지터 몰래 빼돌리는 데 성공했다.
-이건 그냥 사람의 모양을 한 텅 빈 인형에 불과합니다.
-영혼이 들어가면 제대로 움직일 것이다. 그런 구조로 되어 있노라.
그러니까 그 영혼을 어떻게 넣습니까.
모두가 의아해하는 가운데, 성황은 직접 인형에 자신의 영혼을 옮겨가며 이것저것 시험을 해 보기 시작했다.
마음대로 영혼이 들락날락하는 것 자체가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뭐 성황 폐하가 하시는 일이니까 하고 길드의 모두가 납득을 했다. 단지 처음에는 사람의 형상을 한 인형들을 뭐에 쓰나 싶었을 뿐.
곧 길드 사람들은 조용히 누워 있던 인형이 갑자기 눈을 뜨거나 일어나 걸어 다니는 순간을 부지불식간에 목격하게 되었다.
성황의 말대로 영혼이 들어가는 순간 인형은 정말 사람처럼 움직이기 시작했으며, 들어온 영혼에 동조하며 서서히 성황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신기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성황의 호문클루스 시범 운행은 예상외의 난관에 부딪혔다. 억지로 인공 생명체에 영혼을 동조시키다 보니 들어왔다 나가는 데 너무 큰 정신적 에너지가 소모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번 인형에 들어오고 나면 본신의 몸을 쓸 때처럼 쉽게 영혼을 이동시킬 수가 없었다.
감각 또한 대단히 무뎌져 성황은 여기에 적응하는 데 한동안 애를 먹어야 했다.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이 세계의 규칙 밖에 있는 인형이 오러를 전혀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것.
숨 쉬듯 오러를 다루던 성황이 대단히 불편해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오러는 생명의 근간이 되는 힘. 그것이 부족하다는 말은 곧 죽을 사람처럼 기운이 없어진다는 말과 마찬가지였으니까.
다행히도 신성력을 쓰는 데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었는데, 아마도 신성력은 그의 영혼에 함께 속한 것이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성황이 설명했다.
그래서 그걸 어디 쓰실 겁니까.
가벼운 손짓 하나만으로 길드 건물을 박살 내던 성황이 인형 안에 들어와 병자처럼 비실거리며 걸어 다니는 꼴을 보며 길드 간부들이 의아해했다.
성황은 조금 만족스럽지 못한 것 같았지만, 어쨌든 실험을 끝내고 인형들을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길드의 주요 지부에 각각 배치시켰다.
그리고 실제로 성황은 2년 전 남부 전선에서 그 인형의 진가를 보여주었다. 무한의 신성력을 가진 사제 하나가 참전하는 것으로 열세이던 남부 전선이 순식간에 전세를 회복했던 것이다.
최전방에서 미친 듯이 날뛰는 1황자 오웬의 활약까지 더해져, 전선은 남하하고 또 남하하여 현재의 위치로 안착되기에 이르렀다.
그 시기에 수도의 성황은 폐관 기도에 들어 있었고, 모두가 기도에 응답하신 주신의 보살핌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사건이다.
자, 그러한 전말이었건만.
이를 눈앞에서 경악하고 있는 소년과 노인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하는 것인가. 21호는 난감해졌다.
그를 구해준 것은 갑자기 옆에서 들려온 차분한 목소리였다.
“주신께서 삿된 것들을 정화하시어 대륙을 보살피는 신의 도구로 삼으셨노라.”
네에? 세 사람의 눈이 일시에 관짝으로 향했다.
성황은 어느새 고개를 들고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들은 똑똑히 보았다. 성황의 몸에 어린 대단히 성스러운 아우라를.
그는 오색의 은은한 빛에 둘러싸인 채 예언을 하듯 잔잔히 울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는 이 세계의 모든 것이 결코 주신의 의지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방증이라. 악마 숭배자들의 하찮은 몸부림조차도 이처럼 그분의 뜻 아래에 있다는 것이다.”
아아, 그것은 실로 신성한 광경이었다!
비록 그 주체가 쇠스랑을 찬 채로 관짝 안에 쭈그려 앉아 있더라도, 그 사실이 고고하기 그지없는 위엄과 은은하게 퍼져 나가는 성스러움에 조금도 손색이 되지는 못했다.
…아마도.
지난 이틀간 성황이 베푸는 신의 기적을 수차례 경험했던 막스 영감이 감동에 겨워 눈물을 글썽였다.
“용서… 용서하십시오. 아둔한 제가 눈까지 이리 어두워, 주신의 대리자를 의심하는 대죄를 저질렀습니다.”
“무지로 인한 죄를 어찌 탓할까. 용서한다.”
“아아…….”
노인은 크게 경도되어 하마터면 마차의 고삐를 놓칠 뻔했다.
아슬란은 미묘한 표정을 지었지만 대충 납득하는 것 같았고, 오직 21호만이 가늘어진 눈으로 성황을 쳐다보았을 뿐이다.
어디서 약을 파십니까?
그러게 설명하려면 좀 제대로 하던지. 너는 아직도 어설프구나, 엔리케.
* * *
수색조의 보고를 듣는 둥 마는 둥 넘기며 제롬은 오랜만에 거하게 술에 취해 있었다. 마르타의 처참했던 마지막 모습이 눈에 아른거려 도저히 제정신으로는 있을 수가 없었다.
“두목. 아무래도 플란도르 경비대의 움직임이 좀 이상합니다. 수색조를 모조리 산 위로 보낸 터라 소식이 조금 늦었습니다만, 아세인 관문 수색조가 돌아오는 길에 플란도르 경비대에 군이 밀집하는 듯한 정황을 포착했다고 합니다.”
“로드리고가 카르타고 관문으로 향했소. 곧 소식이 있을 것이니 수색 인원을 좀 줄이고 플란도르 쪽에도 신경을 쓰는 것이 어떻소?”
그러나 제롬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플란도르 관문 경비대에는 처음부터 로드리고와 내통 관계에 있던 카르타고 세작이 침투해 있었다. 수상한 움직임이 있다면 당연히 그에게서 기별이 왔을 터.
거기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누군가의 목소리가 제롬의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고 있었다.
[이미 너는 마르타를 잃었어. 남은 것은 이 멍청한 부하들뿐이지. 만일 아세인 대공이 토벌대를 보내게 되면 더 이상 네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게 될 거야.] [아세인의 첩자를 잡아.] [아세인의 첩자가 우선이다.]“아세인의 첩자가 우선이다. 그놈을 찾아내라.”
“하지만 두목…….”
“두 번 말하지 않는다. 아슬란과 그 죄수 놈을 잡아라.”
제롬이 붉어진 눈으로 매섭게 노려보자 산적들이 움찔 놀라며 시선을 피했다. 그의 눈치를 살피던 부하 놈들이 곧 하나둘 자취를 감추고, 이윽고 제롬은 오두막에 홀로 남았다. 그는 밤이 깊어지고 새벽녘이 되어서까지도 묵묵히 독한 술잔을 기울였다.
“마르타…….”
막상 들을 사람이 없어지고 나서야, 평소에는 잘 부르지 않던 이름이 이리 쉽게 흘러나온다.
십수 년 전 처음 보았을 때부터 아름다운 마르타는 당연히 제롬의 것이었다. 딱히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그의 곁에 있었고, 그의 손아귀에서만 숨을 쉬었다.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은 물론, 생명까지도 자신의 손에 달려 있음을 어제까지만 해도 제롬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있었다.
그것을 과연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제롬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마르타가 지금까지 너무나 완벽하게 그에게 종속되어 있었기에, 오히려 제롬은 더 이상 그녀가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고집스럽게 술을 들이켜던 제롬은 결국 아침이 다 되어서야 탁자에 고꾸라져 코를 골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곁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그의 양아들 카이엔이다.
오랜 시간 제롬이 곯아떨어지기만을 기다리던 그는 조용히 탁자 옆으로 걸어가며 혀를 내둘렀다.
제롬은 드물게도 영혼의 방어벽이 단단한 인간이었다. 간혹 이렇게 만취하거나 곯아떨어지지 않으면 그로서도 직접적으로 간섭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차마 영혼을 뜯어볼 엄두는 내지도 못하고, 그저 술에 잔뜩 취한 제롬에게 몇 마디 언질을 하는 것이 다였다. 게다가 술은 또 어찌나 센지.
어린 시절, 마르타처럼 쉽게 생각하고 멋도 모른 채 그의 영혼에 손을 댔다가 벽에 집어 던져졌던 것을 생각하면 아직도 오싹했다. 그의 능력이 만능이 아니라는 것을 처음으로 확인했던 날이었다.
마침 다음 날 술에 취해 방어력이 부쩍 약해진 제롬의 영혼을 부추겨 마르타에게 폭력을 가함으로써 복수하는 것에 성공했다. 제롬 자신도 잘 모르는 것 같지만 그의 영혼은 언제나 마르타만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마르타에게 손찌검을 하는 다음날이면 하루 종일 그의 영혼이 푸르죽죽한 색을 띠며 눈에 띄게 기운이 없어지곤 했다.
그는 제롬의 그런 감정은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마르타의 불행이 제롬에게는 제일 효과적인 응징이 된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어제부터 부쩍 방어가 약해진 제롬의 영혼은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다.
다행히 카이엔을 괴롭히던 두통과 이명이 이제는 조금씩 잦아들고 있었다. 그는 술에 취한 제롬에게 다가가 한 손으로 그의 영혼을 잡아채었다.
마르타처럼 선량한 영혼이 신선하고 달콤한 맛을 내는 것처럼, 강하고 업이 많은 영혼 또한 나름의 깊고 풍부한 풍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조금씩 뜯어먹어 본 제롬의 영혼은 제법 괜찮은 맛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카이엔은 흐늘거리는 영혼의 팔 한쪽을 뜯어내며 비죽이 입꼬리를 올렸다.
제롬은 영혼이 모두 뜯어 먹혀 죽을 때까지도 자신의 영혼이 평생 무엇을 바라보고 살았는지 알지 못할 것이었다.
그것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 * *
아슬란 일행은 밤 동안 부지런히 이동했다. 짐말을 재우기 위해 새벽녘 잠시 마차를 세우고 눈을 붙인 것을 제외하면, 쉬지 않고 통행로를 따라 마차를 몰았던 것이다.
여기서 바트 폐하의 무지막지한 능력이 다시 빛을 발했는데, 짐말이 푹 퍼지려고 하면 예외 없이 강대한 신성력이 말들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강제로 팔팔해진 짐말들은 어리둥절해하며 다시 열심히 마차를 끌어야 했다. 둥글고 순한 짐승들의 눈에 깊은 혼란의 빛이 떠오르는 것을 보며 아슬란은 조금 딱한 기분이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한낮이 되었을 무렵에는 마차를 버리고 걸어서 이동해야 했는데, 화전촌 근처에 이르자 수색대가 빡빡하게 조를 짜서 돌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이대로라면 아세인 관도 분기점까지 수시로 수색조를 마주치게 될 터였다.
이미 얼굴이 잘 알려져 있는 그들 일행이 행상인 척 위장하기는 불가능하고, 차라리 수색조를 피해 가며 움직이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간단한 여장을 챙긴 그들은 마차를 수풀 안쪽에 숨기고 통행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래도 밤사이 교대로 잠을 자가며 편안하게 앉아서 이동했던 터라 일행의 체력은 팔팔했다. 아쉽게도 바트 폐하를 제외하고 말이다.
막대한 신성력으로 자체 피로 회복 중인 것 같은데도 오러가 움직이지 않는 몸이란 것은 대단히 위태위태해 보였다.
“업어드립니까?”
보다 못한 21호가 말하자 폐하는 비식 입꼬리를 올리며 그의 등을 툭툭 쳤다. 농담인 줄 알았나 보다.
도보 이동은 생각보다 원활하게 진행되었다. 21호는 정말로 귀신같은 자였는데, 아무도 없는 조용한 길에서 그가 갑자기 일행에게 정지 신호를 보내 갓길로 숨고 나면 잠시 후 예외 없이 수색조가 그 옆을 지나쳤다.
대체 이런 사람이 속해 있는 길드라는 곳은 뭘 하는 조직일까, 아슬란은 내심 궁금해졌다.
그러나 정오가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트 폐하에게 뭔가 이변이 생겼다.
“모레스…….”
갑자기 우뚝 길에서 멈춰 선 그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는데,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안색이 대단히 창백해져 있었다. 앞서 걷던 21호가 뒤를 돌아보더니 움찔 놀라며 그에게 황급히 되돌아왔다.
“폐하?”
그리고 아슬란은 보았다.
아, 또 그 눈이다. 그저 무기질이 된 것마냥 모든 것을 반사해 버리는 눈동자.
이 세상의 빛으로 이루어진 상이 맺히지 않는다면, 저 눈에 비치는 것은 과연 어디에 있는 무엇인가.
폐하는 그렇게 한참 동안 허공을 노려보듯 응시하더니 이윽고 눈을 감으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사고 치지 말라고 내 그리 일렀거늘.”
“……?”
일행은 어리둥절해하며 그에게로 다가섰다.
“엔리케.”
“…21호입니다.”
습관적으로 말대답을 했지만 21호의 얼굴에는 염려의 기색이 어려 있었다.
영문을 모른 채로 그를 둘러싼 일행을 조용히 한차례 둘러본 폐하는, 곧 한 사람씩 이마에 손을 짚으며 신성력을 나누어 주었다. 그것이 뭔가 나쁜 일에 미리 대비하는 것처럼 느껴져 아슬란은 몹시 불안해졌다.
“급한 일이 생겼다. 잠시 자리를 비워야 할 듯하니, 엔리케 네게 뒷일을 모두 맡기겠다. 조금 힘들겠지만 자네라면 할 수 있어.”
갑작스러운 말에 21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다. 거기에 대고 바트 폐하가 그의 팔을 잡으며 당부하듯 말을 이었다.
“명심하거라. 네가 먼저 수행할 것은 저 두 사람을 아세인 관문 너머로 보내는 것이다.”
“하지만 폐하…….”
21호가 뭔가 반론을 하려는 듯 입을 달싹거렸지만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하는 폐하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것이 우선이다. 알겠는가? 여의치 않으면 호문클루스를 버리도록. 아마 높은 확률로 그리될 것이다.”
“…….”
“나머지 일은 내게 맡기게.”
그리고 그 말이 끝나는 순간.
폐하의 몸이 말 그대로 실 끊어진 인형처럼 바닥으로 허물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