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422)
성황의 아이들-422화(422/469)
422. 자유 지하도 (4)
브루노 그린.
그는 스스로 상황 대처 능력이 그리 미흡하지 않은 편이라 자신했다.
비록 불의의 사고로 퇴직했다고는 하나, 한때는 유일한 평민 기사단장으로서 성황의 곁을 잡음 없이 보좌한 전적이 있지 않나.
이번에도 마찬가지, 브루노는 레지나에 남겨진 상주기사들을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다독였다.
“다들 왜 그렇게 쳐져 있는 건가?”
“단장님!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요. 우리 모레스 저하같이 부지런한 분께서, 혼자 휴식을 취하겠다고 저희를 떠나셨을 리가 없다고요! 어쩌면 저하께서 일을 하시는 데, 저희의 존재가 많이 거추장스러웠던 건 아닐까요?”
클로디아 경이 울상을 짓자, 브루노 단장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경은 모레스 저하께서 하신 말씀을 듣지 못했나? 한동안 레지나를 관광하면서 겸사겸사 자코모 밀로에 관해 공개적으로 수소문하라지 않으셨나.”
“하지만 그는 이미 암흑 교단 깊이 잠적했을 거예요. 우리가 여기서 아무리 찾아본들 달라질 게 있나요?”
“클로디아 경. 저하께서는 그를 찾아내라고 하지 않으셨네. 그저 수소문하라고만 하셨지.”
그러자 눈치 빠른 쿠르트 경이 그 말의 뜻을 바로 이해했다.
“아! 저하께서 물밑으로 뭔가를 하시는 동안, 표면적으로는 우리들이 레지나에서 열심히 수색하고 있다는 사실을 대대적으로 알리라는 말씀이군요!”
“그래. 바로 그거네. 저하의 측근인 우리들이 아니면 해낼 수 없는 일이지.”
또한 브루노는, 최근 마차를 향해 지나치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에디스도 보살펴야 했다.
어딘가 맹한 구석이 있는 이 황자의 시녀는, 오늘이야말로 소리의 정체를 밝히겠노라며 아예 밤을 새울 기세로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에디스 양. 시간이 늦었네. 빈 마차는 그만 감시하고, 이제는 방으로 들어가서 좀 쉬시게나.”
“하지만 브루노 단장님. 이건 저하의 명이십니다. 모레스 저하께서 저더러 오가며 마차를 잘 살펴보라고 하셨다고요.”
“그렇다고 그게 자네 일을 모조리 내팽개치고, 하루 종일 마차만 감시하라는 뜻은 아니지 않겠나?”
그러자 시녀는 동그란 눈을 끔벅거리며 단장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달리 할 일도 없어요. 전 평소 식사 준비도 하지 않고, 다과 준비도 하지 않고, 심지어 지금은 모셔야 할 저하도 안 계신 상황인데요?”
…이 시녀가 자신과 마찬가지로 저하의 훌륭한 월급 도둑임을 잠시 잊고 있었다.
결국 단장은 한숨을 쉬며, 그녀에게 모포 한 장과 따듯한 멜보른 차를 건넸다.
“그럼 마음 내키는 대로 하시게. 대신 춥지 않게 이거라도 좀 걸치고 있지 않겠나?”
1황자 오웬이 몰래 숙소를 빠져 나갔을 때도 그랬다.
“큰일났습니다, 단장님! 아무리 숙소를 뒤져봐도 오웬 저하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전직 데카론 나이트는 당연하게도 진작 그 사실을 알아챘지만, 황자를 제지하는 대신 또 다른 혼란이 생기는 것을 대비해 일행을 단속했다.
“괜찮네, 쿠르트 경. 어젯밤 떠나시기 전에 내게 행선지를 말씀하셨어.”
아렌쟈의 수장, 리브가의 사념을 통해 거듭 확인한 정보였다.
“오웬 황자님께서는 지금 모레스 황자님과 함께 계신다네.”
그리고 마지막으로, 브루노는 때때로 마차 짐칸에서 느껴지는 익숙하고도 그리운 기척을 무시하려 노력해야 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꺼내드리고 싶다. 그러나……!’
틈만 나면 뚜껑을 콩콩 두드려 보는 것이 참으로 안쓰럽기 그지없었지만, 브루노는 이제 성황과 일말의 접점도 가져서는 안 되는 몸.
기적과 같은 힘으로 자신을 치료해 주셨지만, 아직도 시선조차 부딪칠까 조심하시는 그분의 뜻을 어찌 함부로 저버릴 수 있으랴.
그래서 그는 당장이라도 상자를 열어젖히고 싶은 충동을 힘들게 억눌렀다.
‘크흑! 이 모두가 저의 불찰입니다. 부디 못난 저를 용서하십시오, 폐하!’
하지만 그런 브루노도, 다음 날 아침 클로디아 경이 이런 보고를 해왔을 때는 평정심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단장님, 큰일 났어요! 황궁 마차가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오웬 황자님께서 데려오신 바르샤인이 마차를 끌고 도주했다는 거 같아요! 지금 추격할까요?”
“…뭐?”
멀쩡히 여관에서 마차를 관리하고 있었을 텐데, 대체 그자가 어떻게?
브루노가 크게 당황하고 있는데, 연이어 쿠르트 경이 숙소로 뛰어 들어왔다.
“서둘러야 합니다, 단장님. 경비들의 말로는 이미 그가 레지나를 벗어났을지도 모른다더군요.”
“아니, 왜 경비들이 진작 막지 않고……?”
“처음에는 그들도 말려보려 했답니다. 하지만 바르샤인과 도통 말이 통하질 않았다더군요. 그렇다고 힘으로 저지하자니, 그 바르샤인의 무력 역시 무시하지 못할 정도였던 터라……!”
게다가 그 또한 엄연한 황자의 일행이라, 차마 강하게 손을 쓸 수 없었다는 설명이었다.
띠잉-
브루노는 현기증이 이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섰다.
“괜찮아. 내가 가지. 아직 늦지 않았을 거네. 지금 당장 말을 준비-”
한데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번에는 칼멘 경이 후다닥 달려 들어오며 소리치는 게 아닌가!
“크, 큰일 났습니다, 스승님! 에디스 씨가……!”
“그녀는 또 왜?”
“아무래도 계속 마차 안에서 잠을 자고 있었나 봅니다. 폭주하는 마차로부터 젊은 시녀 하나가 거세게 튕겨 나가는 걸 목격한 사람이 많습니다!”
전력으로 달리는 마차에서 떨어져, 무방비하게 길바닥에 내팽개쳐졌다고?
최악이었다. 사고가 나기 전에 진작 그녀를 말렸어야 했는데!
“그, 그래서, 에디스 양은 지금 얼마나 다쳤나? 살아는 있나?”
“근데 멀쩡해 보였답니다. 오히려 씩씩거리며 한참 마차를 따라 달리기까지 했다는데요?”
“…뭐?”
“그러다가 기어이 사고를 쳤습니다. 글쎄 지나가던 용병의 말을 빼앗아 타고는 그대로 마차를 따라 사라졌다는 겁니다! 지금 그 용병이 숙소 앞으로 찾아와 거세게 항의하고 있습니다!”
“……!”
어질어질했다.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손을 써야 한단 말인가!
그러다 문득 브루노는, 마차 짐칸 한편에 놓여 있던 귀중한 짐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그의 얼굴이 삽시간에 새파랗게 질렸다.
“폐, 폐하……!”
* * *
바르토자는 미친 듯이 레지나의 거리를 질주했다.
“으아아아! 비켜라! 모두 비켜어어!”
“으악!”
“뭐야? 마부가 미쳤나 봐!”
“모두 피해!”
아무도 폭주하는 마차를 세우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몰고 있는 것이 지엄한 황궁의 문양이 새겨진 마차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아무에게도 제지받지 않은 마차는, 어느새 레지나의 외곽을 넘어 황량한 평야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델크로스의 오웬은 결국 나를 버렸다! 이제 이 바르토자가 몸을 의탁할 곳은 아무 데도, 세상 아무 데도 없구나!’
슬픔과 패닉에 빠져 있었지만, 바르토자는 본능적으로 레지나의 북서쪽으로 마차를 몰았다. 왔던 길로부터, 황도로부터, 되도록 멀리 떨어져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무렵, 누군가가 빠르게 말을 달려 그의 뒤를 쫓아왔다.
“이봐, 멈춰! 어서 저하의 마차를 세우라고!”
졸지에 마차에서 튕겨 나갔다가, 뒤늦게 용병의 말을 빼앗아 쫓아온 에디스였다.
물론 그녀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던 바르토자는 더욱 패닉 상태에 빠졌지만.
“우워어어! 오지 마라, 여자! 이쪽으로 오지 마!”
“대체 뭐라는 거야? 어쨌든 당장 세워! 거기에는 저하의 중요한 물건들이 잔뜩 들어있단 말이야!”
“아아, 오웬이여! 신의를 저버린 자여! 어찌하여 이 바르토자를 버렸는가! 오웬이여어어어!”
마부가 평정을 잃고 고삐를 이리저리 휘두르자, 마차를 끌던 말들 역시 공황 상태에 빠져 비명 같은 울음을 내지른다.
이히히히히힝!
그러는 사이에도 주변의 풍경은 조금씩 변해갔다. 드문드문 풀밭이 보인다 싶더니, 어느새 마차는 완만한 산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길에 경사가 생기며 겨우 마차의 속도가 조금 느려졌다 싶은 시점.
파앗-!
에디스는 달리던 말에서 훌쩍 뛰어올라, 겨우 마차의 한쪽 귀퉁이를 잡아채는 데 성공했다.
“윽! 어서 멈추란 말이야!”
그러자 힐끔 뒤를 돌아보던 바르토자가, 마차에 매달려 대롱거리는 에디스를 발견하곤 기겁을 했다.
“으아아아! 떨어져라! 떨어져라, 여자!”
덜컹덜컹!
그의 어설픈 조종 실력에, 마차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좌우로 위태롭게 흔들린다.
“이익!”
긴 스커트가 바람에 부딪히며 거센 저항을 일으킨다.
한동안 두 손으로 매달려 이를 악물고 버티던 에디스는, 겨우 발 하나를 마차 벽에 고정해 몸을 지탱했다. 평소 맹하기만 하던 그녀의 눈은, 이제 강한 투지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저하께서 내게 마차를 잘 살피라고 하셨어! 안 그래도 하는 일이 없어 눈치 보이는데, 이것까지 잃어버리면 앞으로 저하를 무슨 면목으로 뵈어야 하냔 말이야!’
물론 그런 그녀의 모습에 바르토자는 더더욱 겁에 질렸지만.
‘저 여자는 분명 부족장의 차남을 지키는 전사였지! 오웬의 곁에 있는 알리샤처럼, 저 여자 역시 노련한 전사가 분명하다!’
그렇다면 마땅히 주인의 소유물을 훔친 내 목숨을 노리겠구나!
“으히익! 안 돼!”
바르토자가 잔뜩 긴장하며 고삐에 힘을 주자-
덜컹!
마차가 크게 뒤흔들리며, 순간 에디스 몸이 부웅 허공으로 떠오른다.
“으윽!”
하지만 끝내 마차를 놓지 않은 그녀는, 눈동자를 이글이글 불태우며 천천히 마차의 지붕을 향해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오지 마라! 오지 마!”
하지만 바르토자의 난폭한 운전에도 불구하고 끈기 있게 몸을 움직이던 에디스는 마침내 마부석 가까이에 이르렀다.
그러자 이제 바르토자는 아예 고삐를 놔 버리고는, 그녀를 향해 마구잡이로 도끼를 휘둘러대기 시작했다.
붕웅! 붕!
“저리 가라아아!”
“좋은 말 할 때 당장 고삐 내놓으라고!”
“죽어라아아!”
“이익! 이 자식이 끝까지……!”
한데 바로 그때, 우연히 전방에서 뭔가를 발견한 에디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헉?
“어어어? 앞을 봐! 저 앞을 좀 보라고!”
“저리 가라, 여자! 오지 말란 말이다!”
“야야! 절벽! 바로 앞에 절벽이 있다고! 어서 고삐 잡아! 어서!”
“으아아아! 날 내버려둬라!”
“이봐! 지금 그럴 때가……!”
에디스의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까마득한 절벽은 순식간에 눈앞으로 다가왔다. 바르토자가 뒤늦게 상황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한참은 늦은 뒤였다.
후웅-!
마차는 엄청난 속도로 허공을 향해 쏘아졌다. 그러고는 일순 중력을 잃은 듯 멈추더니, 그대로 절벽 아래로 거세게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으아아악!”
“끄아아아아아아!”
* * *
“…어?”
성진은 고개를 들어 먼 남서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왜 그래? 뉴… 뭔데? 뭔데에?”
어딘가 심상찮은 낌새를 느꼈는지, 오웬이 곁에서 집요하게 물어온다. 성진은 잠시 미간을 찌푸리고 있다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냐. 아무것도…….”
정작 그렇게 대답하는 성진 스스로도 완전히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뭐지?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게 맞나?
왜 갑자기 이렇게 가슴이 술렁거리고, 발아래가 허전한 기분이 들지?
“…저하.”
바로 그때, 마사인이 눈을 뜨며 나직하게 경고했다.
“아까부터 우리 뒤를 쫓는 자들이 있습니다.”
“응.”
성진은 동요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실은 마사인보다 훨씬 먼저 그들의 존재를 감지한 까닭이다.
다음 목적지인 베르드론에 가까워지자, 조용하기만 하던 주위 환경에도 조금씩 변화가 생겨났다. 반파된 집들과 엉망으로 부서진 집기구들이 드문드문 보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그들의 뒤를 따르는 몇몇 ‘오러 은폐’의 기척이 느껴졌던 것이다.
마사인이 뒤늦게 눈치챈 것으로 보건대 제법 괜찮은 실력들 소유자들이다.
‘다샤가 무사히 따라와야 할 텐데…….’
처음보다 부쩍 멀어져 버린 그녀의 기척을 재차 확인한 후, 성진은 마사인을 안심시켰다.
“걱정하지 마, 마사인 경. 우리는 중간 과정을 건너뛰고, 조금 빨리 상위 관리자를 만나러 가는 것뿐이야.”
어느 정도는 성진의 노림수가 통했던 것이리라.
약간은 어설픈 분장. 뜬금없이 참회에 귀의하겠다는 수상한 바르샤인. 그리고 자세히 관찰해 보면 결코 범상치 않은 마왕의 램프.
미끼는 충분히 던져뒀다. 만일 자유 지하도가 벨린다의 말처럼 북부 대부분의 지역에 정보망을 펼치고 있다면, 분명 성진의 노림수에 어떻게든 반응하겠지.
물론 아무 일 없이 여타 광신도들처럼 통과할 수 있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좋을 일이었다.
-이번 배달은 ‘특송’이야. 이대로 짐들을 인수해서 베르드론까지 수송해 주게.
다행히도 이들은 제법 적절한 대처를 보이는 듯했다. 단지 조금 의외였던 점은, 이들이 성진의 예상보다 더욱 빠르고 민감하게 반응했다는 것이지만.
설마 경유지를 거의 거치지 않고, 하루 만에 핵심 거점으로 냅다 내달릴 줄이야.
“그래도 모든 것은 상정 범위 내야.”
“…그렇습니까?”
“응.”
어찌 그런 것을 아십니까?
마사인은 그렇게 묻지 않았다. 대신 미스라를 고쳐 쥐고는, 기도를 좀 더 날카롭게 가다듬었을 뿐.
하지만 그들이 폐허가 된 베르드론에 도착해 마침내 ‘특송’이 완료되었을 때-
“오시는 길, 불편한 점은 없으셨습니까?”
성진도 미처 이것만은 예상할 수 없었다. 기대보다 더욱 대단한 거물이 직접 그들을 맞이하러 나오리라는 것은.
“귀한 분께서 친히 자유 지하도를 이용해 주시다니 참으로 영광입니다. 저는 이 보잘것없는 자유 지하도의 총 책임자-”
거기까지 말한 남자는, 어딘가 묘한 미소를 머금으며 성진을 바라보았다.
“아니, 우리의 소중한 후원자님께는 [푸른 공화혁명전선]의 수장이라고 소개 드리는 쪽이 더욱 적절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