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428)
성황의 아이들-428화(428/469)
428. 불로불사의 비서 (1)
‘예비된 자가 어떻게?’
자코모 밀로는 그야말로 혼이 빠질 지경이었다.
‘거기다 어찌 호위하는 자 하나 없이, 저런 허름한 행색을 하고 이곳에 있단 말인가!’
털썩!
완전히 허를 찔린 자코모 밀로가 넋을 잃은 채 바닥에 주저앉는다. 그러자 성진은 나름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내려다보았다.
“대화를 위한 자세가 되어 있네. 얘기가 빠르겠는데.”
안타깝게도 그 미소가 자코모 밀로를 완전한 패닉 상태에 빠뜨리고 말았지만.
‘아아, 이제 끝이다! 예비된 자는 끝내 이곳에서 날 죽일 셈이구나!’
자코모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귀중한 검은 비약을 움켜쥐었다.
겨우 이것을 수중에 넣었건만! 이제야 나와 내 상단을 무너뜨린 것들에게 복수할 수 있다 여겼는데!
‘샐로스! 왜 하필 이런 중요한 때에 샐로스는 응답이 없는 건가!’
계약자의 감정이 격해지자-
스르륵.
일순 자코모 밀로의 그림자로부터 희미한 검은 안개가 일렁이는 듯했다.
[조심해, 이성진! 저 녀석, 지금 옅게나마 마기를 흘리고 있어.]마왕이 램프를 깜박이며 경고했다.
[저놈, 악마 계약자라고 했지? 저건 분명 계약 파기의 조짐이야. 아무래도 악마가 저자를 포기하려고 결심한 모양이야!]“그래? 포기하면 어떻게 되는데?”
[인간 쪽의 유책이 다가 아니니만큼, 영혼이 곧바로 마계로 끌려가지는 않아. 하지만-]마왕은 빠르게 설명을 이어갔다.
[놈과 계약한 악마 역시 마기로부터 계약자를 보호할 의무가 사라지지. 악마가 완전히 연결을 끊는 순간, 아마 저 인간은 곧바로 죽어버릴 거야.]자코모 밀로는 이미 사형선고를 받은 바 있다. 그러니 여기서 죽든 황도에서 사형당하든, 그것은 그리 큰 문제는 아니겠지.
하지만 놈과 계약한 악마의 경우는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는 모양이었다.
[임의로 계약을 파기한 악마는 실로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해. 너무나도 무거운 나머지, 겸사겸사 몇 가지 죄목을 추가하는 것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느낄 만큼의 형벌이지.]그리고 그러한 위기에 빠진 악마는 거의 대부분 사고를 치려 들었다. 악마가 괜히 악마가 아니란 거다.
[차원의 규칙을 무시하고, 인과로부터 눈을 감으며, 희생양이 된 인간의 몸을 통로로 이용해 최대한의 마기를 지상에 풀어버리곤 하지. 그것만으로도 인간 세계는 큰 혼란에 빠지곤 하니까.]즉, 지금의 자코모 밀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마기의 시한폭탄이란 뜻이다.
자유 지하도의 수장, 조반니가 한사코 놈에게 직접 손대는 것을 꺼린 이유가 다 있었던 거다.
“그럼 내가 여기서 저놈을 먼저 죽여버리면?”
“으힉……!”
자코모 밀로의 안색이 희게 질린다.
[계약을 이행하지 못한 인간의 영혼은 마계로 끌려가겠지. 그리고 저 몸은 급격한 침식을 일으키며 소멸할 거야. 제법 많은 양의 마기를 이곳에 남긴 채 말이야. 너야 멀쩡하겠지만, 아마 주변의 인간들은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을걸?]그리고 인간은 미약한 마기에도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말지. 마왕은 그렇게 덧붙였다.
“그렇군.”
성진은 턱을 문지르며 생각에 잠겼다.
‘이거 좀 곤란하게 됐는걸.’
그 어느 쪽이 되었든, 난민촌이 마기에 노출되는 것은 기정사실이란 뜻이다.
바서스트령에 대형 악마종이 출현했던 경우와는 조금 사정이 달랐다. 그때는 거대한 공룡이 그 난리를 치고도 인명 피해가 전무하다시피 했지.
하지만 이곳 지하도는 어떤가. 위로 몇 미터만 올라가도, 수많은 난민들이 우글우글 모여 있는 천막촌이 아니던가.
지금부터 마기를 정화할 사제나 성기사들을 빠르게 동원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혹여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 사이에 이미 난민촌에는 끔찍한 지옥도가 펼쳐지고 말리라.
‘결국 안전한 장소로 이동할 때까지는, 자코모 밀로를 멀쩡히 살려 둬야 한다는 뜻이다.’
더불어 그와 계약한 악마도 진정시켜야겠지. 지레 겁먹고서 멋대로 계약을 파기하지 않도록.
그렇게 마음을 정한 성진은, 천천히 자코모 밀로를 향해 한 발을 떼었다.
“그만 안심해. 당장 해칠 생각은 없어.”
자코모 밀로와 그와 계약한 악마, 둘 모두에게 하는 말이었다. 내적 동요를 조금도 내비치지 않는 실로 유유자적한 태도.
하지만 망자의 목에 낫을 들이민 사신처럼 자신만만한 표정과는 달리, 성진은 내심 초조하게 주위의 기척을 살피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쪽의 상황이 빨리 끝날 것 같진 않군. 마사인 경과 오웬이 잘 해줘야 할 텐데.’
* * *
사실 성진이 홀로 자코모 밀로를 맞닥뜨리게 된 데는 약간의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조금 전-
“……?”
한창 복잡한 하수도를 앞장서서 걷던 도중, 성진은 묘하게 집중력이 분산되는 듯한 느낌에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마왕의 램프로부터 몇 발자국만 벗어나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저 칠흑 같은 터널의 정면을 쏘아보았다.
‘…이게 뭐지? 어쩐지 감각이 조금 혼란스러운데?’
졸졸졸졸…….
오수의 흐름이 만들어내는 잔잔한 소리들을 한 귀로 흘리며, 성진은 한껏 정면을 향해 감각을 곤두세웠다.
‘그래. 난 가야할 길을 알아. 갈림길에서도 헷갈리지 않았어. 그런데 지금은 어쩐지, 그 길이 내가 예상한 길이 아니게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단 말이야.’
그 기묘한 예감에 성진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였다.
[이성진, 저것 좀 봐! 저기 이상한 것이 있어!]마왕이 뭔가를 발견했는지, 갑자기 포로로 램프로부터 날아올랐다. 그러고는 오수가 줄줄 흐르는 수로 아래를 빙빙 돌기 시작했다.
[이놈 좀 보라고! 분명 죽었는데, 아직 움직이고 있어!]마왕이 빛을 밝힌 곳에는 과연, 완전히 반 토막 난 시궁쥐의 사체가 놓여 있었다.
“……?”
한데 그것이 끝이 아니다. 끔찍하게도, 잔뜩 부패한 시궁쥐는 아직까지 앞발을 간헐적으로 경련하고 있었던 것이다.
꿈틀. 꿈틀.
뒤이어 성진의 어깨 너머로 수로 아래의 광경을 확인한 마사인이 훅 숨을 들이켰다.
“…주신이시여! 이건 또 무슨 삿된 것의 농간이란 말입니까?”
삿된 것의 농간이라. 확실히 상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광경이긴 했다. 정상적인 사후근경련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이, 쥐의 사체는 이미 반쯤 썩어서 거의 뼈가 드러나 있었기 때문.
그리고 그쯤 되어, 성진은 이 하수도에서 느낀 위화감의 원인 중 일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근처에 살아 움직이는 쥐들이 하나도 없어?’
어째 아까부터 조용히 물 흐르는 소리만 들린다 했지, 하수도에 으레 있을 법한 쥐들의 기척은 전무하지 않은가.
‘여긴 그냥 하수도가 아닌 건가? 쥐들조차 발을 붙이지 못하는 공간이라니,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성진이 잠시 딴생각을 하는 사이, 마왕이 사체의 주변을 부산하게 돌아다니며 또다시 소리쳤다.
[근데 여기 이것도 좀 봐, 이성진! 많이 옅어지긴 했지만, 여기서 미약하게 규상세계의 흔적이 느껴져!]마침 안력을 집중한 성진도, 부서진 텍스트의 희미한 편린을 발견한 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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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r! 적절한 오□젝트를 확□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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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렇지. 뭔가 상식으로 설명 되지 않는 현상이 있다 싶으면, 십중팔구는 규상세계의 법칙이 끼어든 결과더라고.
한데 저건 그나마도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법칙이 아니라, 형편없이 조각나고 부서져 심각한 오류가 나 있는 상태…….
‘…어, 기분 나빠.’
성진은 생각을 멈추고는 사체로부터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어째서인지 저것을 계속 보고 있자니 스스로도 기이할 정도로 불쾌한 감정이 치솟았다. 당장이라도 속에서 뭔가가 울컥 튀어나올 것 같단 말이지.
“그냥 두기 찜찜하네. 보기 싫으니까 태워버려.”
성진이 미간을 구기며 지시하자, 마왕이 쾌활하게 대답했다.
[응! 알았어!]오랜만에 자신의 쓸모를 증명할 수 있게 된 것이 무척이나 기쁜 모양.
화르륵!
그렇게 쥐의 사체는 순식간에 거센 불길에 휩싸였다. 매케하게 타들어가는 사체에 힐긋 눈길을 준 성진은, 마왕이 램프로 되돌아오자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역시 이것이고 저것이고 마음에 들지 않아. 이런 모호한 예감은 정말 오랜만인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자신이 가야 할 장소는 이리도 명확한데, 대체 어째서 아까부터 자꾸만 탐탁잖은 기분이 드는 거지?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성진은 곧 스스로 위화감의 답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의 예민한 감각에, 언제부턴가 두 사람의 인기척이 동시에 감지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 목표가 둘이었구나!’
언뜻 느끼기에는 둘 모두 오러 활성이 낮은 일반인이다.
그중 하나가 자코모 밀로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전에 비해 조금 오러 활성이 약해지긴 했지만, 마계수가 출현했을 당시 멀리서 감지한 밀로 상단주의 기척을 성진은 아직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문제는 다른 한쪽이었다.
오러 활성을 보면 딱히 무력이 강한 것 같지 않은데, 이상하게도 계속 그 인물 쪽으로 신경이 곤두서는 느낌이 드는 거다.
‘저건 대체 누구지?’
함께 있는 걸로 보아, 아마도 자코모 밀로와 일면식이 있는 자겠지.
이곳 자유 지하도에서 놈이 만날 사람이라고는, 당장은 참회 교단의 잔당 정도밖에 떠오르는 것이 없는데.
‘어쩐지 그건 아닐 거라는 예감이 들긴 하지만.’
어쨌거나 둘 다 잡을 수 있으면 좋겠다. 성진은 그렇게 생각하며 걸음을 서둘렀다.
“……!”
하지만 조바심을 낸 보람도 없이, 성진은 이내 목표물들이 헤어져 둘로 갈라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낭패였다.
‘이대로 놓쳐선 안 돼! 일행을 나눠서라도 둘 다 쫓아야겠어.’
아무래도 신경 쓰이는 쪽은 자코모 밀로가 아닌, 다른 쪽이다. 그렇기에 마음 같아서는 성진이 직접 놈을 쫓고 싶었다.
‘하지만 자코모 밀로는 악마 계약자다. 마기에 내성이 없는 두 사람과 마주치게 두면 안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다고 두 사람만 저쪽으로 보내자니 조금 걸리는 것이 있었다. 깔끔하게 일을 끝내기에는 어쩐지 전력이 충분치 않다는 느낌.
다샤의 도움을 받거나, 하다못해 자신이 직접 권속으로 오러 은폐를 펼치고 다가갈 수만 있었어도 결과가 많이 달랐을 텐데!
‘본래는 이곳에 막스를 데려올 예정이었지.’
참으로 난감했다. 최근에는 왜 이렇게 계획대로 딱딱 맞아떨어지는 일이 없는 걸까.
“저하. 기척이 둘로 갈라졌습니다.”
그 무렵, 마사인 역시 전방의 인기척을 희미하나마 감지한 모양이었다.
주변을 바짝 경계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성진은 마침내 마음을 정했다. 어쩌면 미래의 결과를 정한 건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군.’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어엉?”
뒤따라오던 오웬이 화들짝 놀라며 걸음을 멈췄다
“잠깐만, 너무 뜬금없잖아? 왜 하필 이런 타이밍에 긴급 퀘스트가?”
성진과 마사인이 돌아보니, 오웬은 황당한 표정으로 빤히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마사인이 걱정스레 물었다. 아닌 게 아니라, 텅 빈 허공을 뚫어져라 응시하는 모습이 제정신으로 보이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저게 그 상태창…….’
성진의 눈에는 이제, 오웬의 정면에 떠 있는 희미한 안개 같은 형상이 보였다.
안의 내용까지 뚜렷하게 읽을 수는 없었지만 분명했다. 저게 바로 그 성격 나쁘다는 상태창 씨인 거겠지.
“저하…….”
또다시 성진의 눈에서 기이하게 점멸하는 안광을 발견하곤, 마사인이 조금 불안한 얼굴로 성진의 눈치를 살핀다.
그에게 안심하라고 손을 휙휙 저어준 성진이, 오웬을 향해 여상하게 물었다.
“왜? 퀘스트가 대체 뭐라고 되어 있는데?”
“음? 어, 그러니까 뭔가 중요한 문서를 찾으라는데? 어디 보자…. 중부의 한 영주가 오랜 시간 보관했던 귀한 문서를 손에 넣…….”
주절주절 설명하던 오웬이, 갑자기 경악하며 성진을 돌아본다.
“…어라? 너?”
“응?”
“아니, 그러니까. 방금 너 말이야…….”
설마 성진이 퀘스트에 대해 직접 언급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으리라.
하지만 성진은 뻔뻔했다.
뭐? 왜? 뭐?
뚱하니 시선을 맞받아치자, 오웬이 우물쭈물하며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린다.
그래. 모레스, 넌 역시 알고 있었구나?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다 알고 날 찾아온 거야. 그리고 내가 이미 네 정체를 알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그 사실을 내가 어렴풋이 안다는 것까지도 알고 있었단 말이지.
그렇다면 이제 나는, 네가 알고 있는 걸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네가 아는 것까지 알게 되었으니, 그 사실을 아는 너는…….
혼란에 빠진 오웬의 동공이 거센 지진을 일으킨다. 성진은 결국 나직하게 한숨을 쉬었다.
‘이 녀석이 이런 중요한 순간에 정신을 못 차리네.’
때가 때이니만큼 성진은 빠르게 대처했다.
그의 마음이 시키는 대로,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가장 적당한 위치에, 응당 해야 할 것을 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휘익-!
따악!
엄청난 타격음이 조용한 지하도의 터널로 쩌렁쩌렁 울려 퍼진다.
마사인의 눈이 휘둥그레지고-
“으악!”
졸지에 이마를 세게 얻어맞은 오웬이, 어딘가 대단히 충격받은 표정으로 이마를 감싸 쥐었다.
“아니! 갑자기 왜 때려? 아프잖아!”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고. 얼른 정신 안 차릴래?”
“으, 응?”
“어서 가. 퀘스트를 하려면 서둘러야 할 거 아냐?”
“어, 어? 으응!”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인 오웬은, 갑자기 확 밝아진 얼굴을 했다.
“그래!”
그리고 그길로 허둥지둥 하수도를 내달리기 시작했다.
‘뭐, 마왕의 램프나 횃불은 없지만, 저 녀석의 안력이라면 어둠 속에서도 충분하겠지.’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성진은, 고개를 돌려 마사인을 똑바로 응시했다.
“마사인 경.”
“…예, 저하,”
아니나 다를까, 다음 말을 예상한 듯 마사인 경의 얼굴이 벌써부터 어두워져 있다. 이제는 그도 성진의 돌발 행동에 완전히 도가 튼 것이다.
그리고 결국 떨어진 명령.
“가서 오웬을 도와줘. 자네가 함께 가주지 않으면 저 녀석 혼자서는 많이 힘들 거야.”
“…….”
마사인은 잠시 치열하게 갈등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은 지극히 찰나의 순간으로, 이내 충직한 기사의 얼굴에 굳은 결심이 어린다.
“예, 저하. 그 무엇을 명하시든, 저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