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447)
성황의 아이들-447화(447/469)
447. 다키온 (4)
똑.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똑 똑.
그와 동시에 느껴지는, 코를 찌르는 악취. 성진은 무심코 얼굴을 찡그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눈앞의 풍경이 제법 낯이 익다. 오물과 이끼가 들러붙은 축축한 벽. 오러 유저의 안력으로도 내부가 잘 들여다보이지 않는 시커먼 터널.
‘어?’
뭐지? 방금 전까지 아버지와 여관방에 함께 있었는데? 다키아누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결국 인과가 넘치고 세상이 뒤흔들려서…….
“…전체에 건설된 하수도라면 분명 거미줄처럼 복잡할 겁니다.”
그때, 옆에서 성진이 잘 아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마사인 경이 심각한 표정으로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길을 안내할 자나, 적어도 내부 구조를 알 수 있는 지도라도 있어야…….”
마사인 경? 여기서 대체 뭐 하는 거지?
성진이 눈을 깜박이고 있는데, 상대편이 투덜거리며 마사인 경에게 대답한다.
“어이가 없구려. 폐허가 된 난민촌에서 지금 멀쩡한 지도를 찾는 거요?”
불만이 역력하게 묻어나는 안내인의 목소리. 그제야 성진은 지금의 상황을 얼마 전에도 겪은 적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아, 그래. 여기는 푸리아노구나. 저 작자는 자유 지하도의 안내인이었고, 우리들을 자코모 밀로가 숨어 있는 하수도로 안내했었지.
“그러면 하다못해 횃불이라도…….”
마사인 경의 항변에, 성진은 강한 기시감을 느끼며 끼어들었다.
“마사인 경.”
그러곤 예정된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인형처럼, 그를 향해 작은 램프를 들어 보였다. 얼마 전 그랬던 것과 한 치도 다름이 없이.
“괜찮아. 우리에게는 이 녀석이 있으니까.”
맞아. 점점 기억이 난다.
당시 성진은 자코모 밀로를 곧장 찾을 수 있다는 강한 예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 지도고 횃불이고 찾을 것 없이, 무턱대고 하수도 안으로 들어가고 볼 작정이었지.
그리고 기억에 따르면, 그다음에는 마왕으로부터 이런 대답이 돌아왔었지.
-에헴! 이 위대한 마왕님께 맡기라고!
“……?”
하지만 어째서일까, 마왕에게서 아무런 사념도 들려오지 않는다.
램프를 올려다보니, 녀석은 어째서인지 잔뜩 주눅이 든 채 불꽃을 희미하게 움츠러뜨릴 뿐이었다.
이놈은 또 왜 이러는 거람?
“…자, 가자.”
성진은 떨떠름한 기분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등 뒤에서 이전처럼 오웬의 밝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안내인이나 지도 따위는 없어도 괜찮을 겁니다, 형님. 뉴… 모레스가 그래도 던전에서 길 하나는 정말…….”
마왕의 반응 외에는 모든 것이 기억대로였다.
대체 지금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람?
* * *
저벅저벅.
커다랗게 울리는 발소리를 들으며, 성진은 천천히 기억 속의 광경을 되살렸다.
‘분명 저쯤에서 길이 갈라졌지.’
그러자 정말로 예상했던 지점에서 갈림길이 튀어나왔다.
‘조금만 더 가면 벽돌이 일렬로 쭉 빠진 채 방치된 곳이 있었고.’
잠시 후, 역시나 기억과 똑같이 망가진 벽이 나타난다.
“…….”
성진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제는 이것들이 정말로 예전에 겪었던 기억들인지, 아니면 평소보다 강하게 느끼는 예감인지도 헷갈릴 지경이었다.
‘아니면, 드디어 내가 미쳐 버린 건가?’
가능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성진은, 절대 그렇지 않다는 강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묘한 상황에 놓여 있긴 했지만, 그의 정신은 여느 때보다도 명확하고 차분하다. 마치 머릿속을 환하게 밝히는 등불이 하나 있어, 모호함이나 불신과 같은 짙은 안개들을 저 멀리 밀어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뭐, 스스로를 미쳤다고 생각하면, 그게 정말로 정신병자겠어?’
졸졸졸.
오수가 흐르는 소리를 따라, 성진은 일행을 이끌고 하수도 깊숙이 접어들었다. 그리고 그즈음에 이르러, 성진은 전과 달라진 점을 또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이상하다? 이쯤에서 분명 석연찮은 느낌을 받았는데?’
그랬다. 일전에는 막힘없이 일행에게 길을 안내하면서도, 어딘가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강한 예감에 사로잡혔었지.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별로 불안하지 않아.’
어쩐지 모두 잘될 것만 같다는 묘한 예감. 이런 기분이 드는 것도 제법 오랜만이었다.
‘그리고 아마 이 근처에서…….’
성진은 램프를 위로 쓱 치켜들며 오수가 흐르는 수로를 살폈다. 아마 여기서 부패한 채 움직이는 시궁쥐를 보았더랬지.
그것을 처음 발견한 것은 마왕이었다.
-이성진, 저것 좀 봐! 저기 이상한 것이 있어!
그런데 어째서인지 마왕은 조용히 입을 다물고는, 전과 달리 슬슬 성진의 눈치를 살필 뿐이다. 보다 못한 성진이 램프를 툭툭 치며 마왕을 불렀다.
“야, 야. 너 왜 그래?”
그러자 놈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마지못해 대답했다.
[으, 응…….]“왜? 뭐가 불편해?”
[아, 아냐. 아무것도.]대체 뭐가 문제지? 성진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였다.
“저하!”
갑자기 마사인 경이 사색이 되어 성진의 앞을 가로막았다.
“수로 가까이로 다가가지 마십시오! 저기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응?”
그의 시선을 따라가니-
꿈틀. 꿈틀.
역시나 그곳에 다 썩어 가는 쥐 한 마리가 징그럽게 경련하고 있었다.
“헉! 이게 뭐야? 죽었는데도 계속 움직이고 있네?”
무심결에 종종종 다가가는 오웬의 망토를 뒤로 잡아끌며, 마사인 경이 성호를 그렸다.
“아아, 주신이시여. 삿된 것들의 농간으로부터 부디 저하를 지켜 주옵소서!”
마사인 경의 어깨 너머로 목을 쭉 빼고 보니, 전과 같이 부서진 텍스트 창들이 떠오른다.
?TY□E_m_und□□d_no29□2□9?
?err! 적절한 오□젝트를 확□할 수 없습□다!?
?err! ge□아ㅋ!$2ㅗ서버를 확□할 수 없……?
이전과 마찬가지로 알 수 없는 불쾌감이 스멀스멀 일어난다.
단단하게 빗장을 걸어 잠근 문으로부터 뭔가가 요동치며, 당장에라도 뛰쳐나올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어서 빨리 저것을 눈앞에서 치워 버리지 않으면……!
“보기 싫으니까 태워 버리자.”
성진은 마왕의 램프를 흔들었다.
[…….]한데 본래라면 신이 나서 불을 질렀어야 할 마왕 놈이, 이번에도 대답 없이 쪼그라든다. 이렇게 계속 작아지다가는 언젠가 불꽃이 아예 꺼져 버리지나 않을까 걱정될 지경.
“야-”
성진이 다시 한번 다급히 녀석을 채근하려 할 때였다.
[…네가 할 수 있을 게다.]갑자기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가, 너무나도 익숙한 위치에서.
“어…….”
성진은 허공을 바라보며 눈을 깜박거렸다.
아니, 어딘가를 바라보는 것에는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 그리운 목소리는 분명 자신의 머릿속에서부터 들려왔으니까.
‘…아버지?’
성진의 물음에 답하듯, 뇌 내를 희미한 진동이 흔들고 지나간다.
그리고 목소리는 말했다.
[오러를 쓰렴.]그 말에 이끌리듯-
화악!
성진의 의념이 손끝으로 향하며 검붉은 오러를 일으켰다. 세상의 모든 것을 불살라 버리는, 그가 아는 가장 강력한 불꽃을.
“저하?”
마사인이 놀란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본다. 성진에게 오러 연공을 직접 가르치긴 했지만, 아직은 외기를 자유자재로 다룰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놀랍구나. 저하께서 언제 이렇게 성장하셨지?’
그 경탄의 시선을 알아챈 성진이 뿌듯하게 웃었다.
일전에 하수도를 거하게 불태운 후로, 어째 오러 사용이 좀 더 능숙해졌다는 자각은 있었다. 자신의 의지대로 일렁거리는 불꽃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아까까지의 불쾌감도 눈 녹듯 자취를 감추는 것 같기도 하고.
아마도 옆에서 초를 치는 녀석이 없었다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흠, 그래도 아직은 멀었구나? 모레스. 너 소매에서 슬슬 연기가 나려고 하는데?”
“…시끄러워, 멍청아.”
성진은 인상을 쓰며 쥐의 사체에 불을 놓았다.
화르르륵!
손끝을 떠난 불꽃은 순식간에 고온으로 변하며 쥐를 먹어 치운다. 단백질이 타들어 가는 불쾌한 내음을 맡으며, 성진은 행여나 불꽃이 사라지지 않도록 정신을 집중했다.
-시선이 이르는 곳에는 언제나 사람의 인식이 따르잖아?
-응.
-그러니 그곳에 자연히 의념이 일어나고, 덩달아 오러가 이끌려 흐르는 이치일 뿐이다.
언젠가 바서스트령에서 공룡을 잡았던 날, 로건을 졸라 배운 요령을 떠올리며.
-중요한 건 외기와의 일체감을 절대 놓지 않는 거야. 그리고 잠시라도 시선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거지.
그렇게 하면 오러가 몸을 벗어나더라도, 벗어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었지. 하여간 로건 자식, 선문답 하나는 아버지와 완전 판박이라니까.
[잘하는구나.]은근슬쩍 그를 흉본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머릿속에서 또다시 담담한 칭찬이 들려왔다.
그러는 사이 사체는 거의 전소되어, 슬슬 불길이 잦아들어 가기 시작했다.
[그래, 그러면 된다. 바이온을 강제로 묶어 둔 저주를 없애려면, 일단 그 저주의 중심이 되는 육신을 모두 불사르면 된단다.]‘하지만 아버지. 정말 그걸로 충분할까요?’
성진은 걱정스럽게 물었다.
육신을 불살라 영혼을 떼어 냈다고는 하지만, 그 손상된 영혼까지 말끔하게 불태우는 일은 아마 지금의 능력으로는 쉽지 않을 것이다.
거기다 이 하수도에는 저런 죽지 못한 괴물들이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그것들을 하나라도 놓치는 날에는, 여기 푸리아노 난민촌 사람들에게는 물론이거니와 대륙 전체에 어떤 파멸적인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일전에는, 본래라면 절대 넘지 않았을 선을 넘어가며 이 하수도를 빠르게 불태우지 않았던가.
[천천히.]성진의 조급한 마음을 깨달은 듯, 침착한 목소리가 그를 달랬다.
[어차피 시간을 다투는 일이 아니다. 너는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저들 모두의 영혼을 도울 수 있단다.]‘…….’
[대륙이 위험에 빠지지도 않는다. 내가 지켜보고 있으마.]‘아버지…….’
더는 대답이 들려오지 않는다. 하지만 성진은 자신의 머릿속에 빛나고 있는 작은 등불의 존재를 여전히 느낄 수 있었다.
“자, 서두르자.”
쥐를 모두 불태운 성진은, 고개를 들어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아직은 무사히 자신과 시선을 맞추는 충직한 기사와, 말만 하면 언제까지고 따라올 것 같은 멍청이를.
“어서 자코모 밀로를 잡아야지.”
* * *
“저하, 기척이 둘로 갈라졌습니다.”
마사인의 보고에, 성진은 힐끔 오웬을 돌아보았다. 본래라면 이때쯤 슬슬 퀘스트가 나타났을 터다. 그래서 성진은 일행과 떨어져 행동하기로 결심하지 않았던가.
“……?”
하지만 오웬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얼굴로 멀뚱히 성진을 마주 보았다.
“왜?”
“…아직 소식이 없어?”
“응? 뭐가?”
“상태창 말이야. 분명 뭔가를 찾으라는 퀘스트를 줄 때가 되었는데?”
“뭐? 뭐어어?”
경악하는 오웬을 바라보며 성진이 미간을 슬쩍 구겼다.
아직 퀘스트가 없다고? 어째서지? 설마 내가 이번에는 일행을 나누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인가?
‘아니면… 이미 한번 다키아누스의 비서를 손에 넣은 적이 있으니까?’
그때 오웬이 다급하게 성진에게 다가왔다.
“잠깐, 모레스. 네가 대체 퀘스트를 어떻-!”
말하는 도중 뭔가를 깨달은 듯, 그의 눈이 둥그레진다. 그러곤 이내 환하다 못해 얼빠진 미소를 짓는 게 아닌가!
“하하하!”
“음?”
“으하하하! 그래! 그럴 줄 알았어!”
“…대체 뭐가?”
그러자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리던 오웬이, 냉큼 성진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소리쳤다.
“그래! 네가 그 뉴비일 줄 알았어! 나는 벌써 진작에 다 알고 있었다고!”
“…….”
“하하하하하하!”
마사인이 어리둥절하며 쳐다봤지만, 오웬은 이미 잔뜩 들뜬 나머지 그의 미심쩍은 시선을 조금도 알아채지 못했다. 녀석은 툭툭 성진의 어깨를 두드리며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인마! 대체 왜 지금까지 말하지 않았던 거야? 널 찾느라고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이 자식, 너무 시끄러운데?
자연히 손이 올라가며, 경쾌한 타격음이 울렸다.
따악!
“으악!”
오웬이 충격받은 표정으로 이마를 감싸 쥐었다.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기대를 배신당한 것이 못내 서러운 얼굴이었다.
“아니! 갑자기 왜 때려? 아프잖아!”
“시끄러워, 멍청아. 너 지금 자코모 밀로에게 우리의 위치를 대놓고 알려줄 셈이야?”
“…흡!”
황급히 입을 다무는 녀석을 힘껏 노려봐 준 후, 성진은 몸을 돌려 길을 재촉했다.
“어서 가자. 자코모 밀로가 코앞에 있어.”
“하오나 저하, 다른 한 사람은 어찌합니까? 한쪽이 정말 자코모 밀로의 기척이라면, 남은 하나는 그의 동료일지도 모릅니다.”
마사인의 초조한 물음에, 성진은 문득 머릿속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어차피 시간을 다투는 일이 아니다. 너는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저들 모두의 영혼을 도울 수 있단다.
그래. 딱히 신경 쓸 거 있나? 어차피 이전에도 한 번 놓쳤으니까. 게다가 저쪽은 어째 다음에 또 만날 것 같단 말이지.
성진은 마음의 결정을 내리곤 마사인에게 지시했다.
“괜찮아, 마사인 경. 우리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자코모 밀로니까. 하수도에 사는 쥐새끼 하나둘쯤이야 신경 쓸 것 없다.”
그러자 마사인은 잠시 고민하더니, 곧 언제나처럼 단단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 저하.”
그래. 이게 내가 아는 마사인 경이지. 성진은 조금 안심하곤 그와 함께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뒤를, 어딘가 나사가 빠진 듯한 오웬이 뒤쫓아 온다. 아까부터 들뜬 기분을 좀처럼 숨기지 못하는 모양새였다.
“하핫! 하하하하!”
어, 저 얼빠진 녀석. 은근히 사람 신경 쓰이게 만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