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46)
성황의 아이들-46화(46/469)
046. 예감 (4)
잠깐 과거의 이야기를 해 보겠다.
당시 식도락 여행에 한창 빠져 있던 어린 네이트는 마침 해산물 요리에 열중하고 있던 시기가 있었다. 그는 새우 요리가 유명하다는 항구 도시에서 며칠을 숙박하다가,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오는 웬 영감 하나를 만났다.
그는 스스로를 델크로스의 수호자라고 소개했는데, 자신이 수호하는 차원에 닥쳐온 위험에 맞서 싸우느라 한창 등골이 빠지고 있는 중이었다.
-저런…….
당시에도 타고난 영안과 남다른 신성력을 가지고 있던 소년은 그 노인의 말이 허풍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진심으로 심심한 위로의 마음이 그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며 네이트는 바삭한 새우튀김을 씹었다.
-그러니까 날 좀 도와줘! 말로만 위하는 척하지 말고!
-저런…….
-이런 썩을 놈이! 내가 나 혼자 잘되자고 하는 일이더냐? 네가 사는 이 차원이 곧 멸망한단 말이다!
중요한 것은 멸망의 여부가 아니라, 그것이 언제냐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위기가 머지않았어. 백 년, 아니 적어도 몇십 년 내에 이 세상에 무서운 재앙이 닥쳐올 거란 말이다!
백 년에서 수십 년. 그의 고려 범위 밖이다.
네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도 쭉 건강하시고 계속 세계를 위해 힘써주십시오.
-뭣이?
노인의 이마에서 선명한 핏대가 솟았다.
-이 대륙에 부탁할 만한 자가 자네밖에 없단 말일세. 그저 필요할 때 나의 권능을 이따금씩 행사해 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야!
-어르신의 권능이라는 게 하고 싶다고 막 행사 가능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내 인간인 자네에게 그렇게 많은 것을 바라지도 않네! 말 그대로 보조만, 응? 일손을 조금만 거들어줘. 이러다 차원이고 뭐고 당장 내가 죽겠단 말이야!
-글쎄요. 일단은 저도 몇 년 내로 죽을 예정이라…….
크아아악! 노인은 거의 입에서 불을 뿜어낼 것 같았다.
그러나 그로부터 몇 년 지나지 않아, 델크로스의 수호자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제 발로 그에게 달려온 네이트를 보고 어안이 벙벙해지고 말았다.
-어르신, 그 세계의 위기가 언제라고요? 제가 뭘 하면 되겠습니까?
멜로디의 출산을 앞두고, 정보 길드로부터 다른 세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직후의 일이었다.
* * *
‘이게 다 그때의 응보 아닌가 합니다, 어르신.’
산적 놈에게 멱살이 잡혀 탈탈 머리가 흔들리면서 네이트는 처량맞게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과로에 시달리던 노인네를 좀 일찍 도와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처음부터 팔을 걷어붙이고 적극적으로 그를 도왔다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무분별하게 연애나 하고 다니는 일은 좀 줄어들지 않았을까.
하긴, 그랬다면 이 아이들을 만나지는 못했겠지. 이미 만나 버린 아이들이 없는 세상은 그로서는 더 이상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너 이 새끼! 무슨 배짱이냐? 끝까지 입을 다물 생각이냐!”
그의 멱살을 쥐고 흔들던 놈이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주먹을 휘두른다. 반사적으로 슬쩍 상체를 틀어 아슬아슬하게 주먹이 스쳐 지나가게 만들며 네이트는 멍하니 생각을 이어갔다.
그나저나 카이엔 그 아이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자신처럼 영안을 가지고 태어난 것으로 보이나, 설마 영혼을 뜯어먹는다는 발상을 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혹시 어린 시절 굶주렸던 기억이 있는 것인가? 제롬 같은 자 아래에서 학대를 받다 보니 성격이 비뚤어져 버린 것일까? 아니면 어릴 때 머리라도 크게 다쳐 더 이상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게 되었나?
막상 아이가 그런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었지만, 따지고 보면 모든 것이 제때 아이를 찾아 보살피지 못한 자신의 탓이 아니던가.
“어쭈? 이 새끼가 지금 피했어?”
산적이 반대쪽 주먹을 치켜드는데, 빙글 하고 잡힌 멱살을 축으로 몸을 회전시킨 네이트가 양 다리로 그의 목을 휘감아 돌렸다. 놈의 몸을 쓰러뜨리기에는 하중이 조금 부족했지만, 다행히 놈은 잡고 있던 그의 로브 자락을 놓치며 허둥지둥 바닥에 팔을 짚었다.
그 사이 재빨리 옆으로 구르며 몸을 일으킨 네이트는, 아직도 멍청하게 서 있는 다른 산적 놈의 발목을 낮게 걷어내며 그 기세로 몸을 돌려 옆에 서 있는 다른 놈의 턱을 걷어찼다.
크억! 컥! 산적들이 비틀거렸지만 역시 완전히 쓰러지지는 않는다.
호문클루스의 신체가 지나치게 가벼운데다, 오러로 힘을 보충할 수도 없기에 벌어지는 참사다. 차라리 전처럼 수갑이라도 휘두를 수 있다면 좋았을 것을.
“저 새끼가? 역시 보통 죄수가 아니라, 전문 훈련을 받은 놈이었어!”
“다 같이 덤벼라! 저놈 죽여 버려!”
으아아아아. 산적들이 앞다투어 그를 향해 달려들었지만 네이트는 여전히 멍하니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찾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자.
그나마 예감이 좋지 않아 서둘러 이곳에 왔기에 망정이지, 길드의 조사를 기다리며 넋을 놓고 있었더라면 어쩔 뻔했나. 하마터면 토벌대가 쓸고 지나간 화전촌에서 아이의 행적을 완전히 잃어버릴 뻔하지 않았는가.
일단은 카이엔을 찾아 이야기라도 좀 나눠봐야 할 것 같다. 절벽 아래에서 이미 아이의 영혼에 결계를 씌워두었으니, 이제는 언제든지 아이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휘익. 무서운 기세로 휘둘러지는 산적 놈의 주먹을 몸을 숙여 피하며 그대로 뒤로 다리를 회전시켜 놈의 뒷목을 바닥에 내리꽂았다. 콰직!
뒤의 놈이 덤벼드는 것을 빙글 몸을 돌려 스쳐 가게 만든 다음, 그 여세로 한 번 더 몸을 회전시켜 옆에 있는 산적의 관자놀이를 걷어찬다. 빠악!
빙글빙글 회전을 주는 것이 조금 귀찮지만, 그래도 그렇게 힘을 모아가며 후려갈기니 이번에는 제대로 타격하는 느낌이 전해진다.
그는 비실비실 다음 놈을 향해 몸을 움직였다.
“…이런 미친!”
“저 새끼, 심하게 비틀거리는데 어떻게 아직도 저렇게 움직일 수가 있지?”
그 말대로 오러가 없는 몸은 정말 온 힘을 끌어모아 상대를 딱 한 대 정도 후려갈기면 바로 쓰러져 버릴 정도의 상태였는데, 다행히 그 한 대를 때리고 나면 신성력이 그의 몸을 다시 한 대 정도 더 때릴 만큼 회복시켜 주었다.
즉 네이트가 싸우는 도중 쓰러질 일은 없다는 거다. 단지 그 과정이 지독하게 힘들 뿐.
그는 입구 쪽의 산적을 향해 달렸다. 달리는 힘을 이용해 그대로 뛰어오르며 녀석의 턱을 걷어찬다. 컥!
아쉽게도 이번에는 힘이 조금 모자랐다. 놈이 휘청거리면서도 넘어지지 않고 입구를 막는 동안, 뒤에 있는 놈들이 그를 향해 달려든다.
네이트는 그대로 뒤로 훌쩍 물러나며 가장 가까이 있는 놈의 턱을 머리로 들이받았다. 한 번으로 안 되면 여러 번 치는 수밖에.
* * *
“이런 상황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카이엔이 공터의 헛간을 찾아왔을 때는, 이미 안에 있던 산적들이 모조리 바닥에 뻗어 있는 후였다.
네이트는 그를 협박하는 데 사용된 단도로 이미 밧줄을 끊어내고 내친김에 팔을 잘라볼까 고민하던 차였다. 그가 망설이는 이유는 오러 없이 한칼에 팔을 베기에는 단도가 너무 짧았다는 점, 그리고 호문클루스의 몸으로 전투를 하는데 무거운 수갑이 제법 도움이 된다는 점이었다.
슬그머니 헛간 문을 열고 안을 살피던 소년이 예상외의 광경에 흠칫 놀라고 있는데, 네이트가 조용히 그를 불렀다.
“카이엔.”
소년은 험상궂게 인상을 구기며 입술을 비죽 일그러뜨렸다.
“뭐야? 내 이름은 어떻게 알아? 댁이 뭔데 날 불러?”
“…….”
“이건 또 무슨 난장판이야? 다 당신 짓이야?”
까만 삼백안이 희번덕거린다.
“당신, 설마 진짜로 아세인의 첩자였어?”
“너는 나와 얘기를 좀 해야겠다.”
“……?”
카이엔은 잠시 네이트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그러나 도통 얼굴 표정이 변하지 않는 그에게서 의미 있는 감정 변화를 찾아내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냉막한 네이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소년의 얼굴에서 이윽고 표정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한껏 휘어지며 구겨진 눈썹이 제자리를 찾고, 과장되게 씰룩거리던 입꼬리가 아래로 내려간다. 의식적으로 산적들의 얼굴을 흉내 내 봤자 효과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윽고 마주 보는 두 사람은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비슷하게 무미건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카이엔은 무표정한 얼굴로 헛간 안에 쓰러져 있는 산적들의 면면을 살폈다. 새로운 수갑 도장이 찍힌 놈들이 당장은 정신을 차릴 기미가 보이지 않자, 절뚝거리며 안으로 들어오더니 문을 걸어 잠근다. 그리고는 천천히 네이트를 돌아보며 물었다.
“…무슨 얘기?”
카이엔으로서는 자신처럼 영혼을 보는 자를 처음 만나는 것이었다. 토벌대가 들이닥치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의 여유도 있고, 상대가 대화를 하자는데 굳이 거부할 필요는 없겠다 싶었다.
또 얼마 전 저놈이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한 건지도 알아봐야 했고.
“너는 어째서 영혼을 먹느냐? 대체 언제부터 그랬더냐?”
“내가 왜 그걸 말해 줘야 하지?”
소년은 비꼰다기보다는 순수하게 궁금해서 묻는 듯 보였다.
“너의 대답 여하에 따라 내가 너를 어떻게 막아야 할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지난번에 네가 했던 그것처럼?”
“지난번에 했던 그것처럼.”
네이트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번에는 정말로 소년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그건 좀 곤란한데.
“그렇다면 대화는 결렬이야. 네가 어떻게든 나를 방해할 생각이라면, 굳이 너와 이야기를 하는 의미가 없지 않나?”
소년은 몸을 돌리며 말했지만 이어지는 네이트의 말에 입구로 향하던 걸음을 멈췄다.
“너는 네 스스로의 영혼을 살펴본 적이 있느냐?”
“……?”
“영혼을 포식하는 행위가 너의 영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진정 모르고 있었느냐?”
마치 스스로에게 나쁜 영향을 주고 있다는 뉘앙스였다.
카이엔은 가만히 자신의 영혼을 관조해 보았다. 평소의 몸과 그리 다르지 않은 영혼의 모습.
차이가 있다면 지난 며칠간 지나치게 폭식한 영혼들이 제대로 소화가 되지 않아, 그의 몸 여기저기를 뚫고 튀어나와 있다는 점일까.
[너는 아슬란을 죽이고 싶은 거잖아? 왜 나야? 응? 왜 나야?]위장 쪽에서 튀어나온 콘라드의 얼굴이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며칠 전 폭포 옆에서 로드리고와 함께 손톱을 뽑아가며 죽인 놈이다.
그의 등 쪽으로는 로드리고의 다리 한쪽이, 그의 목에는 마르타의 오른팔이 빠져나와 덜렁거린다.
그리고 방금 다 먹어 치운 제롬의 얼굴이 그의 옆구리에서 고개를 내민 채 울부짖고 있었다.
[으어어어! 마르타 마르타 마르타!]“음, 조금 난장판이기는 하네.”
평소라면 이런 일은 잘 없는데, 잠깐 동안 너무 많은 영혼을 먹는 바람에 이전에 먹었던 것들도 함께 튀어나오고 있는 모양이야.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는데 네이트의 표정이 조금 미묘해졌다. 그가 고개를 한쪽으로 갸우뚱거리며 묻는다.
“네 영혼이 느끼는 고통을 정작 너는 느끼지 못하느냐? 네가 먹은 영혼들의 어두운 감정이 동시에 여과 없이 흘러 들어오는 것은, 필시 보통의 인간이 견딜 수 있는 일이 아닐 터인데…….”
“내 영혼이 고통을 느껴?”
카이엔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말 못 하는 아기일 때부터 감정이 결여된 인간이었다. 남들과 자신이 조금 다르다는 것은 자라면서 서서히 깨닫게 되었지만, 영리했던 소년은 금세 다른 산적들의 얼굴을 흉내 내며 남들이 느낄 위화감을 서서히 지워가기 시작했다.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산적들은 대부분 늘 화를 내고 있었기 때문.
인상을 찡그리고,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는 것만으로도 산적들은 그를 자신들과 동류이며 그들의 일원이라고 믿어주었다. 그것이 지금까지 소년이 살아온 방식이다.
어쩌면 그의 영혼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감정을 느끼는지는 모를 일이긴 했다. 어쨌거나 그의 영안은 스스로의 표정을 볼 수는 없었으니 확인할 방법은 없다.
그렇지만 어차피 영혼이 어떻든 간에 지금 힘들지 않으면 그것으로 괜찮은 것이 아닌가?
카이엔의 말에 네이트가 고개를 저었다.
“영혼이 그렇게 망가져 가고 있는데 몸이 멀쩡할 거라고 생각하느냐? 결국은 어떤 방식으로든 너는 그 감당을 해야만 할 것이다.”
“음…….”
그러고 보니.
영혼이 찢어진 제롬이 순식간에 반편이가 되어버렸더랬지.
어제까지만 해도 소년은 제롬의 영혼을 뜯어먹으며, 자신의 영혼이 진정 원하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는 양아버지의 멍청함을 비웃은 바 있었다. 그러나 설마하니 자신도 그 어리석은 자와 다를 것이 없었단 말인가?
“그래, 그건 그렇다고 치고. 그래서 왜 당신이 나를 방해하려는 거야? 내가 먹은 놈들은 당신과는 별 관계 없는 놈들이잖아? 만약 문제가 생기더라도 그건 내 문제일 뿐인데, 당신과는 상관없는 일 아냐?”
그러자 네이트가 가만히 소년과 시선을 맞춰왔다.
“상관이 없지는 않지. 너의 모든 잘못이 결국은 나의 책임이 될 것이며, 네게 생기는 문제는 곧 나의 문제가 될 것이니까.”
“뭐? 그게 왜 그렇게 되는 건데?”
소년은 뚱한 얼굴로 되물었지만, 이어진 네이트의 다음 말에는 천하의 카이엔도 멍청히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너의 아비이기 때문이다.”
어? 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