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467)
성황의 아이들-467화(467/469)
467. 축언 (7)
우르르르…….
멀리서 먹구름이 밀려들며 하늘을 뒤덮어 간다.
그 음울한 공기 아래, 묘지기의 처는 마치 세상의 끝을 고하는 비석이라도 되려는 듯 홀로 오도카니 서 있었다.
“이봐요, 당신! 왜 또 여기 와서 이러고 있는 거요?”
그때 덩치 큰 사내 하나가 도끼를 거머쥔 채 다가왔다. 그는 수도원의 문지기 겸 이런저런 잡일을 담당하는 브래덕이라는 남자였는데, 한창 장작을 패던 중에 여인을 발견하곤 부리나케 달려온 듯했다.
평소 고아들에게 함부로 손찌검하던 버릇이 어디 가진 않아, 그는 묘지기의 처를 함부로 밀치며 소리쳤다.
“대체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소? 당신 애새끼는 여기에 없다니까! 지금 당장 멀리 꺼지지 않으면, 이번에야말로 정말 따끔한 맛을 보여 주겠소!”
하지만 그 흉흉한 기세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브래덕이 막 여인의 멱살을 쥐려던 찰나-
“커…컥!”
오히려 그와 반대로, 그녀의 손아귀에 맥없이 붙잡혀 대롱대롱 매달리고 말았으니까.
“……!”
아이들은 목이 졸려 무력하게 버둥거리는 남자를 공포에 질려 바라보았다. 대체 저 비쩍 마른 아낙의 팔 어디에서 저런 힘이 나오는 걸까?
“…던스턴 묘지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어린아이들의 시체가 들어와. 대체 어디서 그렇게들 애들이 죽어 나가는지 참 궁금하지 않아?”
거구의 브래덕을 한 팔로 허공에 들어 올린 여인은, 마치 지나가며 안부를 묻는 듯 여상하게 말을 건넸다. 물론 목구멍이 완전히 틀어막힌 그가 이에 대답할 수 있을 리 만무했지만.
“끄으으…….”
“대개는 영지와 이웃한 프림로즈 환락가에서 밀려온 시체들이야. 매일같이 그 불쌍한 것들을 간수해서 땅에 파묻고 있으려면, 머릿속에 별별 불경한 생각들이 떠오르곤 하지.”
거기까지 말한 묘지기의 처는, 원한이 가득 담긴 눈으로 브래덕을 노려보았다.
“환락가에 있는 것들은 분명 사람의 탈을 쓴 악마들인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애들에게 그런 처참한 짓을 할 수 있겠어? 악마들이 저리도 멀쩡히 걸어 다니는 꼬락서니를 보니, 주신께서는 이미 이 세상을 완전히 저버리셨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군.”
“꺼허……!”
“그래. 이 세상은 이미 악마들이 판치는 지옥인 게야. 누구라도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을 거야. 그 작은 몸에 새겨진 끔찍한 학대와 착취의 흔적들을 보고 있자면 말이지.”
“……!”
“그래서 생각했지. 만일 이곳이 지옥이라면, 나 또한 악마가 된들 과연 누가 날 탓할 수 있을까?”
뚜둑!
브래덕의 목이 결국 여인의 악력을 견디지 못하고 완전히 꺾이고 말았다. 그의 몸은 힘없이 바닥으로 무너져 이내 검게 변색되기 시작했다. 마기로 인한 강력한 침식 현상이었다.
“까아아악! 브래덕 씨!”
그때 멀리서 엘리슨 사제가 달려왔다. 난데없이 느껴지는 강렬한 마기에 당황한 그녀는, 이미 죽은 브래덕의 몸을 붙잡고 정신없이 신성력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브래덕 씨? 아아, 정신 차려요, 브래덕 씨! 갑자기 이게 다 무슨……!”
하지만 그 헛된 노력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등 뒤에서 번개처럼 휘둘러진 아낙의 팔이, 마치 날카로운 창이라도 된 듯 엘리슨 사제의 몸통을 꿰뚫었기 때문이다.
푸욱!
“허억……!”
힘을 잃고 축 늘어진 엘리슨 사제를 팔에 매단 채, 묘지기의 처는 하늘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아니, 어쩌면 나 역시 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든 악마들 중 하나였는지도 몰라.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지금껏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으니까. 그 불쌍한 아이들이 실은 이곳에서 환락가로 값싸게 넘겨진 연고 없는 고아들이라는 걸 눈치챈 지 오래였으니까!”
주르륵.
여인의 눈에서 시커멓게 변색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럼에도 난 지금껏 그 일에 대해 한마디도 할 수 없었어. 혹시라도 마티유 수도원장에 대해 나쁜 소문이 퍼질까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다고! 왜? 내가 왜 그랬을 것 같아? 응?”
묘지기의 처는 마치 답을 재촉하듯 엘리슨 사제의 몸을 흔들어 댔다. 그에 맞춰 울컥울컥, 붉은 핏물이 엘리슨의 입에서 솟구쳐 올랐다.
“마티유가 내 아이를 해코지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니까!”
“커어…….”
“혹시라도 마을 묘지기가 소문을 퍼뜨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이번에야말로 그가 내 새끼를 환락가에 넘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니까!”
가슴을 뚫고 나온 검은 손을 멍하니 바라보던 엘리슨 사제의 눈동자가 서서히 빛을 잃어 간다. 이어서 그녀의 살점 역시 마기에 오염되며 검게 바스라지기 시작했다.
파스스스…….
“아아! 이 얼마나 어리석은 걱정이었을까! 실제 마티유는 아무것도 몰랐을 텐데! 영지의 묘지기가 고아원에 아이를 맡긴 사실을 기억조차 하지 못했을 텐데!”
뚜둑. 뚝.
하늘에서 눈물처럼 빗방울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차가운 빗물은 공포에 얼어붙은 고아들의 몸을 적시고, 죽은 브래덕과 엘리슨 사제의 몸을 적시고, 또한 자식을 잃은 불쌍한 어미의 몸을 적셔 갔다.
“…결국 나는 그 어리석음의 대가를 받고 만 거겠지.”
얼마나 비를 맞으며 서 있었을까, 한풀 꺾인 여인의 목소리가 습한 공기 사이로 축축이 번져 나왔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다샤에게는 그런 그녀의 목소리가 오히려 피에 젖은 절규보다도 더욱 처절하게 느껴졌다.
“페터를…. 환락가에서 갖은 학대와 모욕을 받고 죽어 간 내 새끼의 시체를…….”
“…….”
“따뜻한 밥 한 끼 제대로 먹이지 못하고 품에서 떠나보내야 했던 내 새끼…….”
스스스스.
묘지기의 처를 에워싸고 있던 검은 연기가 점점 짙어져 간다.
‘…위험해!’
다샤는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그녀가 풍기는 마기로부터 본능적으로 지독한 악의를 감지했기 때문이다.
그래, 아마도 묘지기의 처는 마티유 원장을 증오하는 만큼 고아원의 아이들을 미워하는 것이리라. 자신의 아들, 페터가 환락가에 팔려 가는 대신 멀쩡히 살아 숨 쉬고 있었을 가증스러운 고아들을.
다행히도 지금 아이들은 감히 도망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굳어 있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이 너무나도 충격적이기에 오히려 현실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 테지.
어쩌면 섣불리 여인을 자극하는 것보다는 나을 터. 하지만 힘의 균형 관계가 분명한 이 대치 상황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못할 거다.
그렇게 판단한 다샤는, 저도 모르게 묘지기의 처 앞으로 한 걸음 다가서며 입을 열었다.
“수도원장! 마티유 수도원장은 지금 동관의 기도실에 있어요! 요즘 매일같이 그곳에 틀어박혀 간절히 기도를 드리거든요.”
그러자 여인의 섬뜩한 눈동자가 빙글 방향을 돌려 다샤를 응시해 왔다.
“…기도?”
“네, 그래요.”
그렇게 말하는 다샤의 뇌리에는, 일전에 바트가 속삭였던 축언의 내용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중이었다.
-들어라. 조만간 네가 저지른 죄악의 대가가 최악의 결과가 되어 너를 찾아올 것이다.
분명했다. 그가 말한 죄악의 대가란, 아마도 저 묘지기의 처를 일컫는 것일 테지. 그렇다면…….
-그러니 어서 도망쳐라. 누구도 찾지 못하는 곳에 홀로 숨어라. 부디 네 죄를 사해 달라 신에게 간절히 기도드리거라.
그가 설마 정말로 원장이 구원을 얻으라고 그리 지시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 강렬한 직감에 휩싸여, 다샤는 또박또박 울리는 목소리로 열심히 묘지기의 처에게 고자질을 했다.
“마티유 원장은 신에게 구원받기를 원해요!”
“구원…….”
“네, 그래요! 감히 주신께 죄를 사해 달라 기도드리고, 마침내 저 혼자 천국에 가겠다는 속셈인 거예요! 불쌍한 고아들은 환락가에 내다 팔아 죽게 내버려둔 주제에-”
“구원? 구워어언?!”
묘지기의 처는 더 이상 다샤의 뒷말을 듣지 않았다. 그녀는 핏발 선 눈으로 번쩍 고개를 쳐들더니, 이내 폭포수처럼 피눈물을 쏟아 내며 허공을 항해 길게 절규했다.
“마티유우우우우!”
슈우우욱-!
검은 마기를 휘감은 여인의 신형이 바람이라도 된 것처럼 쏜살같이 내쏘아진다. 수도원장을 향한 분노가 극에 달한 나머지, 이제 다른 아이들이야 어찌되든 상관없어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날이 오면,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너 홀로 그 결과를 감내하거라.
퍼엉!
저 멀리, 수도원 동관 건물의 지붕이 처참하게 터져 나가는 광경이 보인다.
검은 마기가 하늘로 솟구쳐 오르고, 이내 그 속에서 검고 길쭉한 형체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 세상에 절대 존재해서는 안 되는 불길한 것. 바로 악마종이었다.
다샤는 그것이 긴 팔을 채찍처럼 휘둘러 수도원 건물을 박살 내는 광경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으윽!”
그때 옆에서 작은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무심코 고개를 돌린 다샤는 검게 변색된 라미라의 손을 보고 기겁했다.
“라미라!”
하필이면 묘지기의 처가 스치고 지나간 경로에 라미라가 서 있었던 모양이었다. 마기에 검게 변색되어 가는 오른손을 바라보며 소녀가 얼빠진 신음을 흘렸다.
“아… 아……!”
‘저걸 저대로 두면 안 돼!’
다샤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브래덕과 엘리슨 사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지 않았던가. 그들의 시체는 검게 변색되다 못해 불에 그슬린 것처럼 바짝 말라비틀어지고 말았지.
만약 저 검은 것이 몸에 퍼지도록 내버려두면, 라미라 역시 그들과 같은 꼴이 되고 말 거야!
“……!”
정신을 차려 보니, 다샤는 어느새 손에 커다란 도끼를 들고 있었다. 브래덕이 죽으며 바닥에 함께 내동댕이쳐진 장작 패기용 도끼였다.
“잠시만 참아, 라미라!”
다샤는 이를 악물고는 도끼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어?”
라미라가 뒤늦게 다샤를 돌아보았지만, 그때는 이미 도끼가 힘차게 휘둘러진 뒤였다.
콰직!
서툴게 내리쳐진 도끼날은 다행히도 가냘픈 소녀의 팔뚝을 쉽사리 두 동강 냈다.
라미라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졸지에 그루터기만 남은 자신의 팔뚝을 내려다보았다.
“…이런 씨X?”
그녀의 입에서 어이없는 욕설이 튀어나왔다. 공포와 충격에 사로잡혀 통증을 제대로 느끼지도 못하는 모양이었다.
“미친? 이 바르샤 잡것아! 너… 너! 지금 내 팔에다 대고 장작 패기를 했어? 이 정신 나간……?”
그녀의 헛소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샤는 치맛자락을 길게 찢어 피가 펑펑 솟구치는 팔을 칭칭 동여매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악마종의 재난은 수도원 전체를 빠르게 잠식해 나가고 있었다.
끼끼기기기기긱!
꺄하하하하하!
동관에서부터 번져 나가는 하급 악마들의 섬뜩한 웃음소리와-
“으아아악!”
“꺄아아악!”
공포에 질려 우왕좌왕하는 사제들의 처절한 비명 소리.
그리고 이내, 수도원 전체가 짙은 어둠에 완전히 뒤덮였다.
* * *
챙! 채앵!
다샤는 희미하게 눈꺼풀을 꿈틀거렸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음이 귀를 찌르듯 거칠게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
사람들이 악을 쓰는 소리.
“막아! 악마 하나가 그쪽으로 튀어 나갔어!”
“바트, 이 미친 자식! 대체 무슨 일을 물어 온 거야? 악마종이 나타날 거라는 소리는 따로 없었잖아!”
“이제 막 들어온 신입이 갑자기 악마가 소환될 걸 어떻게 압니까? 닥치고 집중이나 하십쇼, 저스틴 대장!”
“이익! 모르겠냐? 다들 녀석에게 속고 있다고! 여기 오기 전에 바트가 괜히 사제를 청해 무기들을 축성했겠어? 그 자식, 분명 일이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을 거야!”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지나친 억측 아닙니까?”
…바트? 아아, 그래. 바트.
사람들을 이곳에 데려온다고 했지. 정말로 약속을 지켰구나.
다샤가 내심 안도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그녀의 몸을 번쩍 들어 올리는 것이 느껴졌다.
“애들! 폴라 씨! 여기 살아 있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침식 반응도 아직은 미약합니다!”
“그래? 사제는? 살아남은 사제는 없나?”
“젠장! 정작 침식을 막아 줄 수 있는 사제들은 죄다 죽어 버렸다고요! 이게 대체 다 무슨 일입니까?”
“그럼 어서 애들을 이쪽으로 모아! 구스타프 사제님 곁으로라도 데려오라고! 빨리!”
거기까지 들은 것을 끝으로 다샤는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
그녀가 다시 희미하게 정신을 차린 것은,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이 뺨에 닿아 왔을 때였다. 뒤이어 얼굴 위로 방울방울 차가운 물방울이 떨어져 내리는 것도 느껴졌다.
“…미안하구나.”
누군가가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울고 있었다.
“얘야. 정말 미안하다. 내가… 내가 진작 네 말을 들었어야 했다. 만일 그랬더라면……!”
그의 목소리를 알아들은 댜사는 몽롱한 가운데서도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아아, 울지 마세요, 구스타프 사제님. 전 알고 있어요. 당신은 이미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걸…….’
희미한 신성력이 흘러드는 것을 느끼며, 다샤는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잠에 빠져들었다.
* * *
그렇게 애스트로스 용병단이 한창 악마종들을 상대로 고전하고 있었을 때-
막상 용병단을 이곳으로 끌고 온 소년은 조금 엉뚱한 장소에서 엉뚱한 이를 대면하고 있었다.
“멈춰라.”
수도원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나지막한 언덕.
검은 사제복을 입은 여인은 갑자기 뒤에서 들려온 명령에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 수풀을 헤치며 나타난 창백한 소년을 똑바로 응시했다.
“…당신은 누구신지? 왜 갑자기 죄 없는 사제를 위협하는 거요?”
“몰라서 묻는 건 아니겠지? 악마종의 소환은 누구든 그 자리에서 즉결 처분이 가능한 중죄다.”
“허! 악마종을 소환하다니, 그게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요? 증거도 없이 생사람 잡지 마시오.”
여인이 계속해서 시치미를 떼자, 그녀를 노려보는 소년의 눈동자가 싸늘한 은회색 안광을 흘렸다.
“하면, 글도 모르는 묘지기의 처가 복잡한 소환진을 그려 고위 악마를 소환했다 주장할 텐가? 당장 목이 베이기 전에 어디 제대로 된 변명을 해 보거라. 이 역겨운 악마 숭배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