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59)
성황의 아이들-59화(59/469)
059. 파종 (3)
결론부터 말하자면, 마담 쥬스티느는 그 명성에 걸맞은 괜찮은 디자이너였다.
지난한 사이즈 측정 과정 이후, 약간의 수정을 거쳐 가봉된 옷을 입어본 성진은 조금 놀라고 말았다. 완성된 옷이 제법 그럴싸했기 때문.
무지갯빛을 흩뿌리는 요란한 재질에다 큼지막한 호랑나비 문양, 그리고 덕지덕지 수놓아진 화려한 보석 자수들.
이상한 요소란 요소는 모두 모여 있어 우주 무당 같은 꼴이 될 거라 예상했었던 성진은, 의외로 무난하고 제법 세련되어 보이기까지 하는 완성품에 멍하니 입을 벌렸다.
마담 쥬스티느가 쥘부채로 입을 가리며 작게 웃는다.
“호호홍. 저하께오서는 과감한 디자인을 충분히 받쳐줄 수 있는 외모니까요오.”
패션의 완성은 결국 얼굴이라는 건가.
새삼 감탄하고 있는데, 슬그머니 다가온 마담이 옷 여기저기 꽂혀 있는 시침핀을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어쩌면 저하께서 연회복을 아직 주문하지 않으신 것이 참으로 다행이랄까요오. 어차피 모조리 새로 재단해야 할 뻔했으니까요오.”
“…연회복?”
모레스의 방에 잔뜩 쌓인 게 옷인데, 또 주문을 한다고?
“네에. 탄신연 기간에 새로 맞춰야 하는 옷이 최소 5벌은 될 겁니다아. 내로라하는 집안의 공자님들은 10벌 이상을 맞추시는 경우도 허다하죠. 시즌 신상 디자인을 싹 쓸어 가신답니다아.”
“10벌…….”
“그나마도 타국 왕실 행사에 비해서는 무난한 편이죠. 성황가 분들은 대체로 고상하고 정갈한 디자인을 좋아하시고, 주문량도 그리 많지 않아 컨셉이 겹치는 일이 드무니까요오.”
혹시라도 왕실 인사의 연회복과 비슷한 옷을 입고 나가면, 예의를 제대로 모르는 자라고 두고두고 손가락질받는단다.
“그래서 예비 디자인만 수십 벌을 준비하는 곳도 있답니다아. 혹여 예약한 옷이 왕실 디자인과 겹치기라도 하는 날에는, 제작되던 옷들이 모조리 폐기되어 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니까요오.”
그래서 연회의 주체가 되는 왕실 사람들은 되도록 빨리 연회복을 정하는 것이 미덕이란다.
“탄신연이 한 달 반도 채 남지 않았사옵니다아. 지금도 많이 늦은 편이니, 이곳에 납신 김에 연회복까지 모조리 맞추시는 것이 좋겠습니다아.”
탁탁. 마담 쥬스티느가 옷깃을 힘주어 당겨 펴더니, 성진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만족스러운 듯 코를 울렸다.
“흠흠, 이렇게 제가 직접 뫼시게 되니 옷의 태가 이리 달라지지 않사옵니까아? 진주궁에 직원들만 출장 보내다 보면, 아무리 손발이 잘 맞는 직원들이라고는 해도 이리 만족스럽게 일을 해내지는 못한답니다아.”
“…그렇게 못 미더우면 자네가 진주궁으로 오면 되잖아?”
“저는 황궁에 들어갈 수 없어서 그렇사옵니다아.”
“……?”
무언가 되묻기도 전에, 마담 쥬스티느는 성진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생긋 미소를 지었다.
“자, 이제 뒤쪽 가봉 상태도 한번 살펴볼까요오?”
그리고 그는 성진을 가볍게 밀어 거울 앞으로 돌려세웠다.
“……!”
순간, 성진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뭐지?
왜 이렇게 불쾌하지?
텅 빈 뭔가를 건드린 기분.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무언가를 접한 기분이…….
갑자기 뻣뻣해진 성진의 움직임에 의아해하며 고개를 내린 마담은, 어쩐지 심상찮은 성진의 표정을 발견하고는 순간 화들짝 놀라며 손을 떼어냈다. 그대로 한 걸음 뒤로 물러서는 마담의 얼굴에는 더 이상, 아까까지와 같은 관성적인 웃음은 찾아볼 수 없었다.
“…….”
성진 역시 굳은 채로 말없이 마담 쥬스티느를 노려보았다. 뭔가 크게 잘못된 느낌인데, 어째서 그런지 이유를 모르겠다.
그러나 마담의 착 가라앉아 있는 눈을 보건대, 본인은 분명 그 이유를 알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싸늘한 침묵.
문 앞에 서 있던 클로디아 경이 갑자기 무거워진 공기에 당황하며 그를 불렀다.
“…저하?”
얼마나 그렇게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을까.
이윽고 정적을 깨고 마담 쥬스티느가 입을 열었다. 어딘지 힘이 빠진 듯 허허로운 목소리였다.
“…기감이… 무척 예민하시군요.”
“…….”
“역시 폐하의 핏줄은 뭐가 달라도 다른가…….”
그는 뭔가를 더 말하고 싶은 듯 주춤거렸지만, 곧 입술을 짓씹으며 고소를 지었다.
“…디자인 시안들을 가져오겠습니다.”
눈을 내리뜨며 시선을 돌린 마담은 묵묵히 성진에게 고개를 조아려 보였다.
그리고 그대로 몸을 돌려 특실 밖으로 나가 버린다. 이 와중에도 여전히 가볍기만 한 걸음걸이였다.
“저하?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클로디아 경이 당황하여 재차 물었지만, 성진은 한창 머릿속으로 마왕과 이야기하느라 그녀에게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
‘…야.’
[응?]‘너 아까 저놈이 신기하다고 했지? 어디가 어떻게 신기한 건데?’
성진의 물음에 마왕 놈이 으음, 하고 잠시 뜸을 들였다.
[글쎄,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 어… 뭐라 콕 집어 말하기는 어려운데, 어쩐지 몸이 좀 이상하달까? 제대로 움직이는 게 아닌 거 같은. 영혼과 딱 들어맞지 않는 듯 어색한 느낌? 생명력이 조금 부족한 느낌?]‘…뭐야, 그게?’
[그러니까 설명이 어렵다고 했잖아. 어쨌든 이 세계의 사람과는 많이 다른 느낌이 들어.]이 세계의 사람과 다르다?
[그래.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저놈 어쩐지 다른 세계의 냄새가 나. 그러니까 그게 어디냐 하면… 아, 맞다!]끙끙거리던 마왕이 갑자기 뭔가를 깨달은 듯, 확 밝아진 기색으로 외쳤다.
[규상세계! 딱 규상세계의 인간 같은 느낌이야!]미처 예상치 못한 대답에 성진은 아연실색해졌다.
규상세계.
시구르트 34지구나 게헤나 같은 염상세계보다 한 단계 높은 차원이라고 일컬어지는 곳.
차원을 관통하는 거대한 하나의 흐름을 따르며, 그로 인해 극도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세계.
마왕의 설명에 의하면, 이러한 규상세계들은 대부분 정형화된 모습을 보이는 것이 특징이란다. 세계의 모든 법칙들이 같은 흐름에 구애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세계들은 변화의 폭이 좁은 만큼, 그 기조가 염상세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견고하다. 타 차원에서 억지로 게이트를 열고 침입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라나.
즉, 규상세계에 속한 것들은 여간해서는 염상세계나 본상세계에 나타날 수가 없다는 거다.
그런데 그런 차원의 인간이 어떻게 이 델크로스에 있는 건가?
[그렇다고 완전한 규상세계의 인간이냐 하면, 그건 또 아니야. 규상세계에 속한 영혼은 조금 독특해서 보면 바로 알 수 있거든. 근데 저놈의 영혼은 델크로스의 영혼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그래서 마왕 놈이 설명하기 어렵다고 한 것이다.
[하지만 저놈의 몸은 다르지. 규상세계의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저 몸을 지배하는 하나의 거대한 흐름이 느껴져. 그래서 이 세계와 제대로 섞이지 못하고 자꾸 어색한 느낌이 드는 것 같아.]겉보기에는 큰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신체를 구성하는 물질도, 그를 지배하는 법칙도 다르기 때문에 분명 무언가 차이점이 나타나기 마련이라나.
예를 들자면, 질량부터가 다르다.
다른 인간보다 조금 무겁거나, 혹은 조금 가벼울 수 있다는 것.
‘아, 그래서……!’
그제야 성진은 자신이 느낀 위화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아까 느꼈던 불쾌한 기분은 다른 것이 아니다. 남들보다 잘 발달된 그의 기감이, 몸에 약간의 힘이 가해진 것만으로 묘하게 부적절한 하중이 걸리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규상세계의 몸을 가진 본상세계의 인간. 그렇다면.
‘혹시 그놈도 나처럼 빙의 같은 걸 하고 있는 건가?’
염상세계의 인간인 성진이 본상세계의 모레스가 되었다.
조금 다른 케이스이긴 하지만, 그들은 다른 세계 인간의 몸속에 들어온 영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렇다면 마담 쥬스티느에 대해 조사함으로써 성진의 현재 상태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지는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이치에 맞는데…….’
근데 왜 이렇게 내키지 않지?
그냥 이대로 덮어버리고 싶다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이제 어쩔래? 내친김에 저놈 한번 족쳐볼래?]마왕이 물었지만, 성진은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
지금 성진의 옆에는 호위 기사들이 있다. 갑자기 마담을 붙잡고 다른 차원이 어쩌고 추궁할 상황은 아닐 터.
거기다 살롱 드메르시를 처음 소개한 것은 바로 그 쌍둥이들이었다. 마담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을 가능성이 다분하지.
쌍둥이가 알고 있다면 결국 성황도 알고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은가. 굳이 자신이 끼어들어 분란을 키울 필요가 있을까?
무엇보다도 성진은, 자신의 현 상태를 그리 깊게 파고들고 싶지는 않다는 묘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다. 일종의 예감이라고 봐야 할지도 모를 감각.
[그래? 네가 그렇다면, 뭐.]마왕은 기지개를 켜듯 영혼을 한차례 부르르 떨더니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너도 황자가 되니 나름 생각이 많아지는구나. 성질대로라면 이것저것 재지 않고 그냥 뒤집어엎었을 텐데.]‘…어?’
[너 궁금한 거 못 참잖아?]‘…….’
그러게나 말이다.
아, 찝찝하다. 어서 진주궁에 돌아가서 호두까기나 실컷 휘두르고 싶다.
그대로 자리를 피하듯 떠났던 마담 쥬스티느는, 잠시 후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을 한 채 특실로 되돌아왔다. 양손에 엄청나게 많은 디자인 북을 들고서.
그걸 여기저기에 잔뜩 펼쳐두고는, 그는 열정적으로 디자인 컨셉에 관해 설명을 시작했다. 물론 성진으로부터 적절한 거리를 유지한 채였다.
“자, 저하아. 이 디자인은 어떠십니까아? 날카롭게 떨어져 내리는 라인이 각진 전통 문양과 어우러져 참으로 격조 높아 보이지 않사옵니까아? 이것은 ‘칼날의 대제’라 이름 붙였습니다아!”
“여길 보십시오, 저하아. 이 디자인은 ‘달빛의 영광’입니다아. 초대 성황의 개선을 알린 달의 요정의 동화가 모티브죠. 은빛으로 빛나는 보석들이 참으로 아름답지 않습니까아?”
성진이 보기에는 대체 뭘 기준으로 감상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낙서들이었다.
뚱한 얼굴로 건성건성 반응하고 있는데, 의외로 여기에 열중하기 시작한 인간이 있었다.
“외국 귀빈을 모신 자리에 개선을 주제로 한 디자인은 좀…….”
“아, 여기서는 채도가 좀 더 어두운 쪽이…….”
“이거 좋군요! 절제된 미장센이 아우르는 품격이…….”
클로디아 경. 이런 걸 좋아했었나?
“클로디아 경이라고 하셨나요오? 어쩜, 저랑 말이 통하는 분은 너무 오랜만이다아. 어떻게 기사분들 중에 이렇게 패션 센스가 뛰어난 분이 다 계시죠오?”
“헤헷! 제가 이래 봬도 어릴 때는 유학 가려고 한창 브르타뉴 문화를 공부하던 때가 있었거든요.”
“어쩜! 역시 그러셨구나아.”
“에헤헤.”
죽이 척척 맞는 열띤 토론 끝에, 5벌이나 되는 연회복이 순식간에 정해졌다. 성진이 뭐라고 참견할 여지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그의 최종 의향을 묻는 두 사람에게, 성진은 알아서 하라는 뜻으로 손을 설렁설렁 흔들어 보였다.
옷이 다 거기서 거기지, 뭐 고를 것이 있다고.
그래도 클로디아 경 덕에 의외로 시간 절약을 했으니 빨리 돌아가서 수련이나 하자.
그렇게 생각한 성진은 지체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하아.”
한데 배웅을 위해 살롱 드메르시의 입구까지 따라 나온 마담 쥬스티느가, 조심스레 그에게 다가와 입을 열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자세한 설명을 드리기는 어렵습니다아. 그러나 주신께 맹세코 이것만은 단언드릴 수 있사옵니다아.”
그리고 조금 더 자세를 낮춘 마담이 성진의 귓가에 나직이 속삭였다.
“저하아. 저는 오래전부터 폐하를 위해 일해 온 폐하의 사람이랍니다아. 그것만은 믿어주셔도 좋사옵니다아.”
“…….”
성진은 마담을 가만히 노려보았다.
[맥박이 안정적인데? 딱히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아.]옆에서 마왕 놈이 슬그머니 언질을 준다.
그 말대로, 성진의 눈에도 평소보다 진중한 마담의 태도는 진실되어 보였다.
단지…….
“자네가 황궁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건, 그것이 아버지의 뜻이라고 봐도 되겠나?”
“…….”
“그래. 적어도 자네가 아버지의 손바닥 안에 있다는 것은 믿어주겠다.”
파삭. 마담 쥬스티느의 얼굴을 덮고 있는 견고한 미소에 금이 간다.
잠시 그 굳은 얼굴에 눈길을 주던 성진은 속으로 코웃음을 치며 마차에 올랐다.
그래. 고분고분한 척한다고 쉽게 믿을 수 있을 리가 없지.
마담을 처음 봤을 때부터 날이 서 있던 성진의 감은, 여전히 저자를 향해 경보를 울리는 중이었으니까.
* * *
클로디아 볼링은 잔뜩 신이 나 있었다.
실로 오랜만에 황궁을 벗어나 시내로 나온 날이었다. 최근에는 훈련이 늘고 궁의 경계가 강화되어 비번인 날에도 숙소에 뻗어 있기 바빴으니까.
거기다 살롱 드메르시에서 구경한 수준 높은 디자인들이 그간 잊고 있던 그녀의 탐미적인 욕구를 완벽하게 충족시켜 주었다.
자신의 취향이 한껏 반영된 연회복들. 그것을 모레스 황자님이 입어주신다면 얼마나 근사할까!
옆에서 마리아 경이 은근히 눈치를 주었지만, 클로디아는 이따금 실없는 웃음이 새어 나오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헤헤헷.”
다른 선배들이 들었다면 기함했을 테지만, 정식 기사가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클로디아는 그녀가 모시는 3황자님이 그리 싫지 않았다.
이전의 소문이야 어찌 되었든, 그녀가 본 황자님은 보기 드문 검술 천재에다가 부지런하기까지 했으니까. 순식간에 살을 빼더니만 그야말로 동화 속 왕자님 같은 외모가 되었지.
‘가끔은 나이답지 않은 묘한 분위기를 풍기기도 하고…….’
그녀의 이런 생각을 알 리가 없는 어린 황자는 평소와 같은 뚱한 표정으로 창밖에 시선을 주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마차는 도무지 전진을 하지 못하고 가다 섰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늦은 오후가 되면서 거리의 인파가 더욱 늘어났기 때문.
“진주궁에 도착하는데 꽤나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저녁이 지나야 조금 한산해지려나 봅니다.”
마리아 경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밖을 살피고 있는데, 모레스 황자가 뜻밖의 말을 내뱉었다.
“그럼, 어차피 늦을 거 그냥 밥을 먹고 들어갈까?”
“네?”
“식사를 미리 하고, 한산해진 후에 돌아가는 쪽이 시간이 훨씬 절약될 거 같아서. 두 사람은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순간 클로디아의 머릿속에 유명한 맛집 목록이 주르륵 떠올랐다. 하급기사의 봉급으로는 여간해서 엄두가 나지 않는 고급 레스토랑들까지.
“비… 비싼 것도 됩니까, 저하?”
떨리는 그녀의 물음에 황자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거나 먹고 싶은 게 있으면 거기로 가지. 뭐든 사줄게.”
와아! 황자님 최고!
그러나 클로디아의 들뜬 기분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그들이 자리를 잡고 앉은 식당에, 한 무리의 브르타뉴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온 것이 문제였다. 놈들이 브르타뉴어로 대단히 상스러운 말들을 떠들어대기 시작했던 것.
“…성황가… 새끼 돼지… 개망나니…….”
“…꼴이… 델크로스… 가소로운…….”
한때 브르타뉴로 유학 준비를 했던 그녀는 드문드문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분명 망나니로 소문난 모레스 황자의 험담을 하고 있다!
당황한 클로디아가 슬쩍 눈치를 살폈지만, 황자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작게 썬 고기 조각을 입에 넣을 뿐이었다.
‘하긴, 황자님이 브르타뉴어를 알 리가 없나…….’
다행이라 해야 할지. 괜히 혼자서 불편해진 클로디아가 식사를 깨작거리고 있을 때였다.
“…계집… 천한 출신…….”
“…비천한… 격이 떨어지는…….”
“…창녀…….”
저 나쁜 놈들이 이번에는 아멜리아 황녀님까지!
도를 넘는 험담에 클로디아의 얼굴이 점점 창백해지고 있는데.
드르륵.
갑자기 모레스 황자가 의자를 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떨결에 그의 얼굴을 올려다본 클로디아는 순간 흠칫 놀라고 말았다.
황자는 전에 없이 사나운 표정을 한 채,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그리고 성큼성큼 브르타뉴인의 무리에게 다가선 모레스 황자는, 대단히 유창한 브르타뉴어로 정확히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자. 다시 한번 개소리 지껄여 봐라. 이 새끼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