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6)
성황의 아이들-6화(6/469)
006. 성황 알현 (1)
갑자기 수석 시종장이라는 사람이 찾아와 말하길, 조만간 최종 보스와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단다.
게다가 알고 보니 이 천하의 개망나니가 그 최종 보스에게 겁도 없이 상습적으로 개기곤 했단다.
성진은 순간 아찔해졌다.
“…저하?”
“어… 음, 그래. 아니! 내가…….”
너무 당황한 나머지 동공이 사정없이 떨리고 말이 헛돌았다.
최종 보스일지도 모르는 인간에게 이 이상 점수를 깎이면 안 되겠다는 절박함이 성진의 입에서 겨우 그럴싸한 문장을 뱉어내게 만들었다.
“이번에는 내가 직접 찾아뵙겠다고… 폐하의 배려에 감사… 드린다고, 그리 전해 주시게.”
성황씩이나 되는 분을 오라 가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본래 모레스의 말투는 어땠는지, 이게 예법에는 맞는 건지 좀 알 수 있으면 좋으련만. 평소에는 쉴 새 없이 머릿속에서 떠들기 바쁘던 마왕 놈이 이상하게도 지금은 가만히 침묵을 지키고 있다.
다행히 성진의 대답은 시종장을 기쁘게 한 것 같았다.
“황자님이 이리 의젓하시니 폐하께서 얼마나 흡족하시겠습니까. 신이 알현에 소홀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나이다! 그럼 곧 진주궁에 사람을 보내어 기별 드릴 터이니 보중하시옵소서.”
루이스는 품위 있는 동작으로 다시 예를 갖춰 보이고는, 담담한 얼굴 그대로 연무장을 떠났다.
그러나 오랜 전투로 단련된 성진의 눈썰미는, 애써 입꼬리를 내린 것이 무색하게 시종장의 광대가 움찔거리며 솟구치려 하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대체 내가 뭘 했다고 저렇게나 좋아하나…….’
겪으면 겪을수록 이전의 모레스가 얼마나 막돼먹은 놈인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멀어져 가는 시종장 일행의 모습을 잠시 눈에 담던 성진은, 가볍게 한숨을 쉬면서 몸을 돌렸다.
생각지도 않은 만남 탓에 예상보다 휴식이 길어졌다.
성진은 마음을 다잡고 다시 연무장을 돌기 시작했다. 적어도 어제보다 몇 바퀴는 더 돌아야 나름 발전하고 있다 자신할 수 있지 않겠는가.
물론 굳은 결심이 무색하게 반 바퀴도 걷기 전에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연무장 구석에서 시종장의 눈치를 보며 삼삼오오 모여 있던 기사들은, 곧 돌아갈 줄 알았던 황자가 다시 경보를 시작하자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일부는 짜증을 드러내며 연무장 밖으로 나가버렸고, 나머지는 주저앉아 장비를 손질하는 시늉을 하면서 이따금 성진을 향해 불경한 눈초리를 보내왔다.
지금까지는 건방진 태도를 보이건 말건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있던 성진이었지만, 꾸준히 보내오는 적대감에는 그도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성가시더라도 언젠가 한 번은 기사들을 싸잡아 손 봐 줄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헉, 헉.”
그렇게 얼마나 연무장을 돌았을까.
숨이 너무 찬 나머지 기침을 해가며 비틀거리던 성진은, 휘청휘청 몇 걸음 더 내딛고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누워 버렸다.
“쿨럭! 쿨럭! 켁, 으헥, 헥! 흐엑!”
눈앞이 노랗다.
와, 죽을 거 같아.
예전 파주시 전선에서 일주일간 쪽잠 자면서 마물과 싸웠을 때도 이 정도로 힘들지는 않았던 거 같은데.
가쁘게 숨을 헐떡거리고 있자니, 기어들어 가듯 작은 목소리가 슬그머니 말을 걸어왔다.
[…야. 그래서 결국 만나는 거냐? 성황.]‘…어?’
산소가 모자라 머리가 멍한 통에 처음에는 잘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이놈 이상하게 조용하지 않았던가?
‘그래야 하지 않을까? 그나저나 넌 뭐 하고 있었냐? 시종장한테서 정보라도 좀 알아보지. 하도 조용하기에 드디어 소멸했나 했네.’
분명 발끈할 타이밍이었는데 마왕은 이상하게 별 반응이 없었다.
[알아보긴 했지. 했는데…….]묘하게 풀이 죽은 소리로 마왕이 대꾸했다.
[시종장은 영혼 탐지에 저항이 있는 놈이었어. 쉽지 않은 일이라 제법 집중하고 있었지.]성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탐지 저항? 지금까지는 그런 말 없었잖아. 혹시 시종장이 성직자라도 되냐?’
[미쳤냐? 내가 신성력 있는 영혼이랑 접촉하게? 차라리 다시 자살을 시도하고 말지.]마왕의 설명에 따르면 영혼 탐지라는 것은 수면 중인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과 비슷하단다.
위기 상황이나 스트레스 상황이 아닌 경우, 영혼은 보통 반쯤은 자고 있는 것처럼 무방비한 상태라고.
거기에 묻고 싶은 것을 사념파의 형태로 강하게 쏘아 보내면, 관련 기억이 무의식으로부터 표면으로 산발적으로 떠오른다는 것이다.
이 편리해 보이는 능력에도 한계는 있었는데, 일단 마왕은 성진의 영혼으로부터는 기억을 직접 읽을 수는 없었다. 정확한 이유는 자기도 잘 모르겠단다.
[이렇게 허술하고 단순한 놈이 답지 않게 은근히 까다롭단 말이지.]‘뭐, 인마?’
또한 정신력이 강하거나 신성력을 가진 영혼도 건드릴 수가 없었다.
정신력이 강한 인간의 경우는 극도의 긴장 상태에 놓인 영혼과 비슷하게 사념파에 저항이 크다고.
그리고 신성력을 가진 영혼은 접촉을 시도하는 순간 마왕의 영혼이 통째로 소멸해 버릴 거란다.
[그런 의미에서 시종장은 자아 방어가 대단히 단단해. 깐깐하고 자기 통제가 강한 인간이라고. 그런 사람은 원하는 기억을 쉽게 떠올려 주지도 않을뿐더러, 정신적인 방어벽이 워낙 단단해서 영혼 손상 없이 그걸 헤집고 다니기가 쉽지 않아.]그럼에도 마왕은 최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노력했다. 조만간 대륙에서 가장 강력한 성직자 앞에 끌려가 꼼짝없이 처분을 기다려야 할 판이었으니.
과연 성황은 아들의 몸에 빙의되어 있는 이세계인과 마계의 찌꺼기를 알아볼 수 있을까?
‘그래서 뭐 알아낸 건 있어?’
[아쉽게도 당장 도움이 될 만한 정보는 없었어. 저 노인네는 일단 황궁에서 대단히 잔뼈가 굵은 사람이야. 생각보다도 거물이더라고. 가진 정보가 너무 방대해서 오히려 원하는 걸 집중해서 알아볼 수가 없었다니까.]하긴, 한눈에도 관록 있어 보이긴 했다.
[그래서 일단 성황에 관해서라도 대충 알아보려고 했거든? 근데 그 인식이 뭐랄까, 대단히 편향되어 있다고나 할까…. 그래서 썩 신뢰가 가지 않는다고.]‘신뢰할 수 없다? 성황을 바로 곁에서 모시는 시종장의 정보를?’
성진의 의문에 마왕의 영혼이 슬쩍 동요한다. 아마도 실체가 있다면 한숨을 내쉬는 느낌일 것이다.
[일단 시종장이 성황가에 가지는 충성심은 진짜야. 오죽하면 개차반으로 욕먹고 있는 모레스에게까지 저렇게 호의적이겠어. 거기다 성황에 대한 믿음은 너무나 확고해서, 뭐… 좋게 말하면 충성이고, 나쁘게 말하면 광신이라 해야 하나.]‘광신이라고 할 정도냐?’
[그래, 성황을 거의 전지전능하게 생각하던데? 이게 믿을 만한 정보겠어?]성진이 눈을 깜박거렸다.
전지전능?
[저놈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건 아닌가 봐. 그저 좋은 성황 아래서 충성을 다하고 있다고 스스로 만족하고 있을 뿐이지. 하지만 적어도 저놈의 무의식 속에서는 성황이라는 놈은 절대 단순한 인간이 아니야. 고금을 통틀어 가장 위대한 성황이자, 의심할 여지 없는 주신의 대리자라고 굳게 믿고 있다고.]‘…….’
[근데 진짜 웃기는 건 뭔지 알아? 정작 저놈은 주신에 대한 신앙심은 별로 없어. 종교 자체에 큰 관심이 없다고.]뭐냐 그건. 신은 믿지 않는데, 신의 대리자는 믿는다?
[그러니까 웃긴다는 거지. 완전 모순이잖아? 근데 저 깐깐한 놈이 그걸 몰라! 한 인간에 대한 존경과 경탄, 그리고 믿음이 어디까지 극단적으로 치달으면 저렇게 되는 거냐?]성진은 말없이 몸을 일으켰다. 어느새 호흡은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달궈져 있던 몸이 빠르게 식으면서 오슬오슬 소름이 돋아왔다.
‘…이건 단순히 신성력이 강하고 약하고의 문제가 아닌 거 같다.’
신의 대리자.
성진은 애초에 무신론자에 가까웠던 터라, 실제로 신을 대리하는 전지전능한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저 시종장이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맹신할 만큼, 성황에게 특별한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들었다.
예를 들어, 만약에 성황에게 마왕의 ‘영혼 탐지’ 같은 능력이 있다면 어떨까? 주위 사람들은 그를 뭐든지 아는 인간이라고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무엇이 되었건 간에, 확실한 것은.
‘우리, 아무래도 들킬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뭔가 대책은 있어?’
[있겠냐? 모레스처럼 그냥 약속 째면 안 되냐?]‘그건 임시방편이지. 전에도 모레스가 하도 얼굴을 내밀지 않아, 진주궁까지 직접 행차하셨다잖냐. 이번에도 쳐들어오면 어쩔 건데?’
‘준비할 시간이 있다면 모를까, 이 저질 체력으로 무슨 수로? 게다가 이 몸뚱이로는 어디를 가나 눈에 띌 텐데?’
[…망했구나.]일단 부딪쳐 보는 방법뿐인가.
머릿속에서 마왕의 영혼이 부르르 떨리는 것을 느끼며, 성진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불안감을 애써 내리눌렀다.
* * *
본궁에서는 저녁이 되기도 전에 시종을 보내 다과 시간을 알려왔다. 진주궁이 발칵 뒤집힌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저 뚱땡이 황자가 얼마 만에 가지는 공식 외출인가!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리자베스 황비는 당일 이른 아침부터 루비궁의 시녀들을 대거 이끌고 들이닥쳤다. 곧 진주궁 전체가 황비의 지휘 아래 부산해졌다.
오후의 약속이라 오전에는 내내 연무장에서 시간을 보낼 계획이었던 성진은, 방 밖을 나서기도 전에 비장한 표정의 시녀들에게 붙잡혔다.
“…어?”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대로 욕탕으로 끌려가서는 목욕재계를 해야 했다. 그것도 쪽팔리게 전담 시녀가 보는 앞에서!
버둥거리며 항의하고 있자니 에디스가 단호한 얼굴로 그의 머리 위에 향유를 쏟아부었다.
“진정하세요, 저하. 우리 빨리 끝내고 간식 먹을까요?”
너 지금 고양이 목욕시키냐?
어처구니가 없어 쏘아봤더니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흠, 전에는 잘 먹혔는데.”
“…….”
그간 개차반인 모레스의 성질머리를 혼자서 어떻게 감당했나 했더니, 아예 말이 안 통하는 동물 취급을 하고 있었구나.
“좀 나가. 목욕 정도는 알아서 할 수 있다고!”
“아프신 동안 제가 쭉 이런저런 수발을 들었는데, 뭘 새삼 부끄러워하고 그러세요?”
이 여자가 그걸 지금 말이라고.
성진이 조금도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자, 에디스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자, 저하. 순순히 협조해 주세요. 조금이라도 준비에 차질이 생기면 황비마마께서 저를 얼마나 닦달하실지 아세요?”
최근 황비의 방문이 잦아지면서 이 강철 멘탈의 시녀도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모양이었다.
“루비궁 시녀들은 또 왜 굳이 진주궁에 와서 텃새를 부리는 걸까요? 지네들 궁도 아니면서.”
마치 ‘한주먹 거리도 안 되는 것들이 말입니다. 후후.’ 하는 듯한 섬뜩한 표정으로 에디스가 웃는다. 무려 오러 유저가 저러고 있으니 두 배로 무서웠다.
서슬 퍼런 그녀의 기세에 눌려 빠르게 목욕을 하고 나왔더니, 이번에는 황비의 시녀들이 대단히 전문적으로 보이는 미용 기구들을 들고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곧 머리를 다듬는다, 손톱을 다듬는다, 눈썹을 다듬는다, 난리 법석이 벌어진다.
“아아, 황비님을 쏙 빼닮은 이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보세요!”
“어머, 살이 많이 빠지셨어요. 얼굴 윤곽이 너무 또렷해지셨네요!”
거짓말하지 마라, 이것들아.
‘단순한 알현이라면서? 이게 다 무슨 짓이야!’
이쪽으로 당겨지고 저쪽으로 꼬집히고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따로 없다.
폭풍 속을 헤치고 온 것마냥 너덜너덜해진 성진이 겨우 한숨을 돌리나 했는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양손 가득 옷가지와 장신구를 든 시녀들의 행렬이 방 끝에서 복도 밖까지 늘어서 있다.
성진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야, 이거 좀 어떻게 할 수 없어? 이 짓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거야!’
근데 평소라면 성진의 꼴을 미친 듯이 비웃었어야 할 마왕이 영 상태가 이상했다.
[후후. 마지막 가는 길, 때깔이라도 고와야지. 아무렴. 후후후후.]‘…….’
다행히도 리자베스 황비의 취향은 제법 고상한 면이 있었다.
한동안 프릴이 잔뜩 달린 옷들이 오고 가기에 내심 걱정하고 있었으나, 마침내 완성된 그의 모습은 현대인인 성진의 시각에서도 꽤나 괜찮은 것이었으니.
은실이 수놓아진 짙은 감색 재질의 제복은 일견 깔끔했으나, 자세히 살피면 돈과 장인과 시간을 얼마나 갈아 넣었는지 알 수 있는, 보면 볼수록 화려한 옷이었다.
살이 빠졌니 어쩌니 하는 것이 완전히 빈말은 아닌 듯, 옷들의 품이 제법 넉넉하게 남아 한동안 시녀들이 옷을 수선한다고 바쁘게 움직였다.
물론 아무리 치장해 봐야 예쁘게 포장한 돼지였다.
성진은 몰래 한숨을 쉬었지만, 그래도 그의 모습이 황비의 눈에는 그렇게 흡족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오오, 모레스. 어쩜 이리도 훌륭한 모습이라니!”
이에 질세라 시녀들의 영혼 없는 찬사가 이어졌다.
“더없이 헌앙하신 자태이십니다!”
“어두운 옷이라 그런지, 황자님의 멋진 머리카락이 더욱 돋보이지 않나요?”
“커프스와 브로치는 또 어떤가요. 어쩜 황자님의 보석 같은 회색 눈과 이렇게나 어울리는지!”
“아아, 한눈에 반해 버릴 것 같은 아름다움이어요!”
어이, 넌 너무 나갔다.
* * *
본궁에서는 시간에 맞춰 마차를 보내왔다. 차질 없이 준비하겠다더니, 수석 시종장은 생각 이상으로 꼼꼼한 사람이었다.
에디스의 시중을 받으며 마차에 오르자, 호위 기사 둘이 말을 타고 뒤를 따라붙었다.
‘황궁 마차는 참 화려하네. 자동차와는 확실히 다른 승차감인데?’
[어이구 좋겠다. 니가 어린애냐? 나이는 먹을 만큼 먹은 놈이 이게 황천행 마차인 줄도 모르지?]‘닥쳐.’
그런데 진주궁을 벗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왕이 부르르 떨며 성진을 불러왔다.
[야, 아무래도 예감이 좋지 않아.]편하게 널브러져 있던 성진이 바짝 긴장하며 자세를 바로 잡았다.
‘뭐? 왜?’
[밖을 봐, 멍청아.]‘……?’
[본궁은 아직 멀었지? 그런데 벌써부터 주변에 불길한 빛이 가득해.]커튼을 슬쩍 들어 창밖을 바라보니, 광활한 황궁 정원의 전경이 펼쳐졌다.
경계가 눈에 다 들어오지도 않는 드넓은 초록 잔디 위로, 마차 3대가 나란히 질주할 수 있을 만큼 넓은 황궁대로가 뻗어 있다. 그 길 끝에 희게 빛나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본궁이 보인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본궁 앞 넒은 정원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주변을 경계하는 기사들, 삼삼오오 몰려있는 귀족들, 서류 더미를 들고 바쁜 걸음으로 오가는 사무원들.
그리고 하얗게 빛나는 정복을 멋들어지게 빼입은 엄청난 수의 사제들.
‘와, 이건 좀…….’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전체 인파의 반은 넘어 보였다.
수수한 로브에서부터 금실로 수놓아진 극히 화려한 법복까지, 하얀 옷에는 어김없이 태양과 검이 형상화된 주신의 문장이 아로새겨져 있다.
새삼 이곳이 성직자들의 소굴이라는 것이 실감이 났다.
[아아, 잘못 생각했어! 몸속에 잘 숨어 있으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어. 신성력을 가진 놈들이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영혼이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따갑다고!]‘…….’
마왕 놈의 호들갑에 덩달아 긴장한 성진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저 많은 성직자들이 당장이라도 성진을 알아보고는, 황자님의 몸을 빼앗은 악령이라고 외치며 달려들 것 같았다.
[앞뒤 잴 것 없이 기회가 있을 때 그냥 도망쳤어야 했는데…….]처량한 마왕의 한탄과 동시에, 마차가 멈추었다.
성황의 거처, 본궁 입구에 도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