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67)
성황의 아이들-67화(67/469)
067. 회색 역병 (3)
원숭이 망루.
목 좋은 분수 광장 앞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는 값싼 흑맥주를 취급하는 술집.
일전에 성황이 폐관 기도에 들었을 때, 성진은 헤르나와 가데스 쌍둥이에게 이끌려 주인장 브레만에게 인사를 하고 왔더랬다.
-인사는 잘 받았소. 조만간 답을 드리리다.
설마 그 답인사를 황궁 담장을 넘어와서 할 줄은 몰랐지.
검은 잠행복을 입은 여인은 자신의 이름을 [다샤]라고 소개했다.
그녀는 평소 성진이 보는 델크로스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른 외모를 가지고 있었는데, 짙은 갈색의 피부에 길게 굽이치는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미녀였다.
조명에 따라 풀색으로 보이기도 하는 에메랄드의 눈동자가 장난스럽게 반짝거렸다.
“음? 바르샤 사람은 처음 보시나요? 저는 이교도는 아닙니다.”
소파에 길쭉한 다리를 꼬고 앉아, 다샤는 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어쩐지 시원해 보이는 미소를 가진 여자였다.
‘바르샤 사람’이란 대륙의 남쪽에 사는 이민족들을 통틀어 지칭하는 말이다.
그들은 여러 소수 부족들로 나뉘어 있어 서로 언어도 다른 경우가 많고, 외모도 천차만별이었다. 그러나 대륙 중앙의 사람들은 그런 소소한 차이점들을 구별하지는 못하고, 그냥 피부색이 조금 짙으면 바르샤 사람이라고 일컫곤 했다.
물론 이교도 중에서도 중앙대륙 사람처럼 하얀 피부의 사람들이 있었고, 다샤처럼 짙은 피부지만 태생부터 중앙대륙에서 살았던 사람도 있다. 그래서 엄밀히 따지면 델크로스에서 태어난 다샤는 바르샤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흔히 보기 힘든 독특한 외모를 지니고 있는 한, 그녀는 언제나 타인에게 ‘바르샤 사람’으로 통할 것이었다.
“그래서, 다샤는 원숭이 망루에서 왔다는 말이지? 잠행복을 입고 외상값이라도 수금하러 다니는 건가?”
“하하하. 그러면 좋겠지만, 원숭이 망루는 평범한 술집이 아니랍니다, 저하.”
다샤의 말로는 그 작은 술집이 무려 성황 직속의 정보기관이란다.
중앙정보부 내에서도 제법 상위의 정보를 습득하고 처리하는 부서이며, 이용자의 요청에 따라 정보 수집은 물론 개인 비서실의 기능까지도 수행해 준다고.
의회나 행정부에서도 존재를 모르는, 성황가 전속 비밀기관.
원숭이 망루에 인사를 하러 온다는 것은, 곧 그 기관을 적극적으로 이용할 테니 정보원을 배치해 달라는 요청이라나.
요 쌍둥이 녀석들. 그런 건 미리 설명을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진작 답을 드렸어야 했는데, 전속 정보원을 배정하는 데 조금 시간이 걸렸습니다. 황자님도 아시다시피 진주궁이 좀 특수한 곳이라…….”
최근 방문자 제한이 풀렸다고는 하나, 진주궁은 아직까지 성황에 의해 출입 인원이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는 곳. 잠행 능력을 가진 자가 드나든다는 것은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더욱 허가가 까다롭다나.
게다가 전속 정보원은 쥐도 새도 모르게 대상과 접선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진주궁은 그 난이도가 본궁을 훌쩍 넘어선다는 것이다.
여러 기사단에서 검증된 실력을 가진 상주기사들이 차출되어 있고, 전담 시녀마저 상당한 오러 유저인 궁에 감쪽같이 잠입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즉, 다샤는 원숭이 망루의 정보원들 중에서도 최상급 요원이라는 말이었다.
“그런 인재가 내 전속 정보원이 되다니, 이거 영광인데?”
“의심하지는 않으시나요? 저라면 늦은 시간 갑자기 다짜고짜 찾아와서 이런 소리를 하면 의심부터 할 거 같은데.”
글쎄. 그럴 가능성을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일단 성진의 감은 그녀를 향해 딱히 위험 신호를 보내지는 않았다.
생각해 보면 저렇게 대단한 잠행 능력이다. 마왕 놈 덕에 늦지 않게 깨달았을 뿐, 성진 정도 되는 헌터가 쉽게 그 기척을 감지하지 못했을 정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모레스 따위는 한 번에 쓱싹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텐데, 이렇게 공들인 거짓말이 다 무슨 소용인가. 모레스의 입지를 생각하면 괜한 에너지 낭비라고.
거기다 모레스의 뒤에는 성황이 있다.
알고 보면 한계를 짐작할 수 없는 대단히 무서운 사람인데다, 지금까지 그 양반을 겪어본 바로는 제법 모레스를 아끼고 있는 것 같단 말이지. 모레스를 속여 해를 끼치면 과연 그 뒷감당이 가능할까.
무엇보다도.
이쪽에는 열일하는 간이 거짓말 탐지기가 있었다.
[맥박 변화 없음. 혈압 정상. 호흡도 정상.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높음.]성황의 결계를 덮어쓴 후로 이전처럼 영혼에 직접 간섭하는 능력을 쓸 수는 없지만, 이 정도만 되어도 꽤나 쓸 만하다고 평할 수 있지 않은가.
[음하하하핫.]머릿속에서 마왕이 뿌듯하게 웃는 것을 느끼며 성진은 속으로 혀를 찼다.
그래도 나름 한 차원의 마왕이었던 녀석인데, 지금은 이 정도의 쓸모만으로 보람을 느끼는 놈이 되어 버리다니.
어쨌든 이왕 믿고 쓰기로 생각한 것, 성진은 쓸데없는 탐색전을 벌이는 대신 다샤와 탁 터놓고 잘 지내보기로 결심했다.
그러잖아도 요즘 마음대로 움직일 만한 수족이 없어서 고심했는데, 누구든 에디스보다는 낫지 않을까.
“당신 정도의 실력자가 굳이 날 속여서 뭘 하겠어? 게다가 다샤는 보고 있으면 어쩐지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어. 앞으로 잘 부탁해.”
성진은 밝게 웃으며 약간의 립서비스를 했다.
“어머?”
다샤의 눈동자가 이채를 띠며 반짝거린다.
“저하는 바르샤 사람에 대한 거부감이 전혀 없으시군요.”
“날 도와주기 위해 온 사람에게 왜 거부감이 들겠어? 다샤는 유능한데다 인상도 좋은데.”
웃는 얼굴이 근사하고, 거기다 미인이니까.
그러자 그녀는 의외의 말을 들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곧 푸스스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실은 저도 저하를 처음 뵙고 조금 놀랐답니다. 소문과는 다르게 영민하시고 훤칠하셔서 모실 보람이 있달까요. 게다가…….”
게다가?
“저하에게서 몹시 좋은 향이 납니다. 은은한 장미 향이군요.”
빌어먹을 놈의 라이오라 역병 의사들!
아무튼 다샤와의 첫 만남은 만족스러웠다.
그녀는 성진과의 신뢰 관계가 성공적으로 형성되었다고 생각했는지, 묻지도 않은 여러 가지 정보들을 아낌없이 풀었던 것이다.
예를 들자면, 다샤는 일전에 성진과 마찰을 빚었던 브르타뉴인들의 근황에 대해서도 제법 자세히 알고 있었다.
“그놈들이 모조리 브르타뉴로 끌려갔다고?”
“예, 저하. 라비주리 공자가 단호한 결정을 내렸더군요. 아마 끌려간 기사들은 본국에서 큰 처벌을 면치 못할 겁니다. 이를 본보기로 일행들에게 입단속을 단단히 하라고 명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고 해요.”
“그건 기대 이상이군.”
성진은 칼단발에 볼연지를 하고 있던 라비주리 공자, 샤를을 떠올렸다.
클로에도 그렇지만, 브르타뉴 출신 꼬맹이들은 다들 어딘가 똑 부러진 데가 있나 보다.
다샤는 또 라이오라 돌팔이들의 손에 떨어진 애슬리와 조나단의 생존 소식도 전해주었다.
아직까지는 혈압이 떨어질 정도로 사혈 치료가 진행되지 않았다나. 이후로도 그들의 상태를 밀착 감시하며, 피를 너무 뽑힐 것 같으면 바로 알려주겠단다.
성진은 속으로 다샤에 대한 평가를 한 단계 상승시켰다.
‘…정말 유능한데?’
일머리가 있다고 할까, 성진이 가려워할 곳을 미리 파악하여 착착 긁어주지 않는가.
이대로 조금 더 신뢰가 쌓이면 모레스가 이전에 후원했다던 단체들에 대한 조사도 부탁해 봐야겠다 싶었다. 꽤나 민감한 부분이지만, 성진이 직접 뛰어다니는 것에는 분명 한계가 있을 테니까.
“아, 그리고 다샤. 궁금한 게 있는데. 원숭이 망루를 이용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가진 정보를 역으로 전달하는 것도 가능할까?”
이런저런 정보를 물어다 주고 자잘한 일들을 대신 처리해 주는 것은 좋다.
성진이 궁금했던 것은 그 반대의 경우였다. 자신이 가진 정보를 성황에게 전달하는 것도 가능한 것일까?
다행히도 다샤는 긍정했다.
“원하시면 서로 연말 안부 인사도 전해 드립니다. 저희가 모시는 분들은 성황 폐하와 황자, 황녀님들뿐이시니까요.”
좋아. 성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샤, 이건 내가 아버지께 드리는 전언이다.”
갑자기 성황이 언급되자 다샤의 얼굴이 진지하게 굳어진다.
성진은 그녀가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하자마자 천천히 정보를 읊기 시작했다.
“재판부에서 생긴 역병은 단순한 병이 아니라 마물의 기생 알로 인한 것이다. 자연적으로 사람에게 알을 까는 놈들은 아니니, 나는 누군가 일부러 그들에게 알을 심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단지 몸에 심는다고 해서 기생벌이 깨어나지는 못하기 때문에, 누군가가 심었다면 그 목적을 짐작하기 위해서는 더 다각적인 방면으로 조사가 필요할 것이다. 이상.”
뭐, 이런 내용을 시종을 통해 대충 전달할 수는 없지 않은가.
갑자기 우루루 쏟아지는 심상치 않은 정보에 다샤의 얼굴에 일순 당혹한 빛이 어렸다.
“…그 정보의 출처를 알 수 있을까요?”
“말할 수 없어.”
아마 궁금해하지 않으실걸? 성황이나 그의 오른팔이라는 카트리나나, 성진에게 뭔가 물어보려 했다면 진작 했겠지.
다샤는 조금 혼란스러워 보였으나 곧 표정을 가다듬고 성진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녀가 할 일은 전언의 진위를 판별하는 것이 아닌, 이를 상대에게 전달하는 것뿐이었으니까.
“그럼, 내일 저녁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저하.”
그녀는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발코니 창문으로 걸어 나가더니, 갑자기 휙 하고 허공으로 사라져 버렸다. 눈으로 빤히 보고 있는데도 사라지는 기척을 쉽게 느낄 수 없다니,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다.
성진은 잠시 다샤가 사라지고 없는 어두운 창밖을 응시하다가 침상으로 몸을 돌렸다.
자, 이제 성진이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아버지, 성황 폐하는 어떻게 나오실까.
* * *
“저하, 마사인 경 때문에 정말 힘들어 죽겠습니다!”
평소와 같은 아침.
명상을 끝내고 막 호두까기를 뽑아 드는데, 옆에 있던 마리아 경이 성진을 향해 하소연을 했다.
최근 성진이 충실한 수련으로 만족스러운 하루하루를 보내는 반면, 상주기사들의 업무 불만은 나날이 커져가는 중이었다. 마사인 덕분에 진주궁 근무 행태에 대대적인 변화가 생겼기 때문.
기사들이 보충된 이상으로 배치 인원이 늘어나고 근무 시트가 빡빡해졌다. 다소 헐렁하던 절차들 역시 근위대 본궁 근무 수칙과 동일하게 재조정되었고.
그렇다 보니 이제는 임무 교대부터 기본 훈련에 이르기까지, 뭐 하나 편한 것이 없었다.
덕분에 상주기사들은 요즘 얼굴에 먹구름이 가득했다.
이전에는 진주궁 근무가 돈도 벌고 편하게 근무하는 꿀 보직이었다면, 이제는 그 돈을 괜히 받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 돌 정도로 빡센 근무지가 되어 버렸던 것.
그래서 요즘은 마사인이 잠시 자리를 비우기라도 하면, 상주기사들이 괜히 성진에게 붙어 징징거리기 일쑤였다.
바로 지금처럼.
“그래도 파견 근무라고 하면, 솔직히 본대보다는 좀 편한 맛도 있고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크흑! 이번 달 밀린 술값만 아니었어도……!”
“제가 진짜 당장 술을 끊든지 해야지, 요즘 너무 힘들다고요!”
마침 비번이라 옆에서 개인 훈련 중이던 마리아 경과 쿠르트 경이 침통한 표정으로 한탄했다.
두 사람은 각각 1기사단과 2기사단으로 소속은 달랐지만, 스콰이어 시절부터 알고 지낸 오랜 술친구라고 한다.
술값 좀 더 벌어보겠다고 의기투합하여 수당 높은 진주궁 파견 근무를 자처했다고.
“저런. 내가 술값이 아주 싼 좋은 술집을 하나 알고 있는데, 소개해 줄까? 흑맥주만 취급하긴 하지만…….”
“돈도 돈이지만, 요즘은 일 마치면 몸이 너무 피곤해서 마시러 갈 수도 없다고요!”
“저하, 제발 좀 마사인 경을 말려주시면 안 됩니까? 네?”
성진은 조금 곤란해졌다.
마사인이 아예 근거 없이 기사들을 혹사시키고 있는 거라면 모르겠는데, 본궁 근위대의 매뉴얼대로 굴리고 있으니 그로서도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사실 지금까지 이놈들이 너무 편하게 일한 거지.
거기다 고지식하게도 상주기사들 중 제일 일을 많이 하고 제일 수련을 많이 하는 인간에게 뭐라고 설득을 한단 말인가.
“자자, 힘들 내라고. 내가 시간 봐서 좋은 술 한 잔씩 돌리지.”
절절한 얼굴로 매달리는 상주기사들의 애원을, 성진은 그렇게 다독거리고 있었다.
털푸덕.
바로 그때, 옆에서 뭔가 포대 자루 떨어지는 소리 같은 것이 들려왔다.
“……?”
성진과 상주기사들이 일제히 돌아보니, 기사 하나가 연무장 구석에 대자로 뻗어 쓰러져 있었다. 아침부터 뭔가 비실비실해 보이던 하벤이었다.
“쟤 왜 저래?”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
하벤은 휴가를 마치고 막 복귀한 상태였다. 어제가 휴가 마지막 날이라고 밤늦게까지 상점가에서 술을 마셨다나.
곁에 서 있던 기사들이 별 생각 없이 다가가 그를 흔들었다.
“이놈은 왜 휴가 잘 다녀와서 이 모양이야?”
“야, 좀 일어나 봐. 몸이 안 좋으면 병가를 내지.”
그러던 중 상태를 살피던 기사 하나가 갑자기 기겁을 하며 외쳤다.
“이놈, 뭔가 이상합니다! 몸이 너무 찬데요?”
“뭔가 발진 같은 게 보이는데…….”
“…여, 역병인가?”
“역병이다!”
동요는 순식간에 일어났다. 이들도 어제 재판부에서 벌어진 역병 소동에 관한 소문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기사들이 겁에 질린 얼굴로 하벤으로부터 후다닥 뒤로 물러난다.
저체온과 발진, 의식 저하.
‘야, 저거 설마?’
[응, 맞아. 로페룸의 알이다.]마왕이 대답했다.
[알은 이미 죽었는데? 근데 저놈 상태가 왜 저런지 모르겠네.]성진은 무심코 하벤에게로 다가가려다 주변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하고 걸음을 멈췄다. 갑작스러운 역병의 공포로 인해 연무장의 기사들이 지나치게 동요하고 있었다.
‘분위기를 수습하는 게 먼저인가…….’
하벤의 진찰은 의원에게 맡기고, 일단은 잔뜩 겁먹은 기사들을 진정시키는 것이 우선으로 보였다. 패닉에 빠진 놈들이 여기저기 소문을 내고, 결국 라이오라의 역병 의사들이 몰려와 진주궁 전체에 향수를 퍼붓는 사태는 결코 반갑지 않았으니까.
성진은 재빨리 가장 연륜 있는 둘에게 명령했다.
“쿠르트 경. 마사인 경에게 서둘러 연락을 보내고, 닌니아스 의원과 사제를 기사 숙소에 대기시켜 두라 일러.”
쿠르트 경이 묘한 표정으로 잠시 성진을 바라보더니, 뭔가를 납득한 듯 정중히 고개를 숙이고는 자리를 떴다. 덜덜 떨고 있는 기사 몇 놈을 추슬러 끌고 가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마리아 경, 다른 기사들을 단속해. 저건 역병이 아니니 괜히 동요하지 말고 자리를 지키도록.”
마리아 경은 심하게 떨리는 눈으로 쓰러진 하벤과 성진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성진이 차분하게 그녀를 마주 보자, 곧 눈에 띄게 안정을 되찾았다.
그녀는 주먹을 꽉 움켜쥐며 떨리는 손을 추스르더니, 몸을 돌려 사방팔방 뛰어다니고 있는 기사들을 향해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모두 진정해! 역병이 아니니 괜한 억측은 하지 마라! 이깟 일로 평정심을 잃어서야 너희들이 진정 이 델크로스의 자랑스러운 황궁 근위대인가!”
그렇게 마리아 경이 기사들을 한곳에 모으며 진정시키는 동안, 성진은 하벤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아직도 근처에 얼어붙은 채로 서 있는 나머지 기사들에게 지시했다.
“자네들은 일단 함께 하벤 경을 숙소까지 옮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