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Holy Emperor RAW novel - Chapter (69)
성황의 아이들-69화(69/469)
069. 회색 역병 (5)
다샤. 그녀는 최정예 정보원들만이 모인 비밀기관 내에서도 손꼽히는 실력자.
그래서 지금까지는 내심 데카론 나이트급만 아니라면 겁낼 것이 없다고 조금 자만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제 막 스콰이어 수준은 될까 싶은 오러 활성도를 가진 어린 황자가, 그녀가 올 때마다 빤히 쳐다보며 기다리고 있으니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었다.
“어서 와, 다샤. 뭔가 새로운 정보가 있어?”
자신이 지금 뭘 해낸 건지도 모르고 아무렇지도 않게 멀뚱멀뚱 쳐다보는 것이 더 열 받는다!
잠시 분한 표정을 짓던 다샤는, 곧 간략하게 예를 취하고는 재빠르게 보고를 시작했다.
“아카데미 학생들은 프란시스 경의 개입으로 일단 역병 의사들의 손에서 벗어났습니다. 사혈 치료를 중단하고 황궁 의원들에게 알을 제거하는 시술을 받았습니다. 아직은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상태입니다만.”
용케도 아직까지 살아 있었구나. 다행이다.
“조금만 더 늦었으면 실혈로 생명이 위태로웠을 거라고 합니다.”
망할 라이오라의 돌팔이들 같으니!
그런데 그다음 이어진 보고는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실은 저하께서 일러주신 전언을 폐하께 전하는 중, 정보부로부터 놀라운 사실을 듣게 되었습니다. 재판부에서 발견된 역병이 사실은 어제 처음 발생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이 아니다?
“수개월 전부터 간간이 이 역병이 황도 여기저기서 발견되고 있었답니다. 단지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 주로 번지고 있어, 초기 증상을 미처 알지 못했던 거라고 합니다.”
“수개월 전부터?”
“네.”
고개를 끄덕이는 다샤의 눈매가 조금 깊어졌다.
“이미 정보부 내에서는 이것을 [회색 역병]이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회색 역병.
앓고 난 사람은 온몸의 피부가 묘한 회색빛으로 변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주로 독거노인이나 부랑자, 기존의 병자들에게서 나타났기 때문에 초기에 발견된 적은 아직 없었다. 며칠간 구석에서 혼자 앓다가, 어느 날 사람이 완전히 변해서 나타난 후에야 비로소 발견되는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
수개월 전 한 인퀴지터에 의해 보고된 그 괴상한 질병은, 마을 노인이 저주를 받아 미쳐버렸다는 어느 마을 주민의 신고로 처음 발견되었다. 아들 내외를 잃고 혼자 살던 노인이었는데, 멀쩡하던 사람이 며칠 만에 갑자기 머리가 이상해져서 나타났다는 것이었다.
신고를 받고 인퀴지터가 파견되었을 때, 그 노인은 입에서 침을 줄줄 흘리고 눈은 전혀 초점을 맞추지 못했다. 말도 하지 못하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상태로, 온몸의 피부가 마른 가죽처럼 뻣뻣한 회색으로 변해서 마치 나무 인형이라도 된 듯 딱딱하게 걸어 다녔다.
그는 결국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다 1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사망하였다.
그 사건 이후로 수도 여기저기에서 종종 회색으로 변한 미친 사람에 대한 제보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악마종의 저주라고 생각하고 발견하는 즉시 이단 재판부에 수감시켜 조사를 했으나, 결국 악마의 증거는 발견되지 않은 채 수수께끼의 역병인 듯하다는 결론에 도달한 상태였다.
거기까지 들은 성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초기 증상을 모른다며? 어떻게 둘이 같은 병이란 걸 알지?”
“마침 그 사건을 조사한 인퀴지터 중 하나가 학생들의 시술을 참관했습니다.”
황자의 타당한 지적에 다샤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다, 앞으로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고는 설명을 계속했다.
그 인퀴지터는 학생들의 가슴에 있는 변색된 피부가 회색 역병 환자의 피부 변화와 유사하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그리고 역병으로 죽은 환자들의 가슴에서 비슷한 모양의 딱딱한 돌조각이 같은 위치에서 발견되었음을 상기했다고 한다. 즉 그 돌조각은 시간이 흘러 석회화된 마물의 알로 추정된다는 것.
아. 문득 성진은 깨달았다.
이제까지 역병으로 죽은 사람들을 모조리 해부했구나.
“거기다가 성직자들은 이번에 발견된 마물의 알이라는 것에서 그 돌조각과 동일한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황자님도 아시다시피 성직자들은 삿된 것들의 기에 매우 민감하지 않습니까?”
프란시스도 그렇게 말했었다.
느낌만으로 악마종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고. 그리고 마물의 알과 반트라 모스의 애벌레가 같은 느낌이라고 했지.
“그래서 대책은?”
“성회에서 논의되는 것과는 별개로, 성황 폐하의 명에 따라 전담 대책반을 만든다고 합니다. 인퀴지터들과 엑소시스트, 그리고 관련 전문가들이 대거 투입된다고 하지요. 아마도 이 삿된 괴생명체들의 정식 명칭은 [마물]이 될 것이라 하더군요. 모두가 황자님의 전언에 따른 결과입니다.”
“…….”
음, 미묘하다.
대책이라고 하면 대책이긴 한데, 어째 적극적으로 뭔가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기보다는 일이 이렇게까지 되었으니, 이제 이 정도의 반응은 해줘야지 하는 느낌이.
잠깐, 설마 이 양반…….
성진이 슬쩍 눈썹을 찌푸리는데, 다샤가 그의 속도 모르고 조금 들뜬 어조로 덧붙였다.
“이게 모두 황자님과 프란시스 경이 나서서 병의 원인을 조기에 찾아주신 덕분입니다.”
“어째 기쁜 것 같네.”
“왜 아니겠습니까. 전담 정보원이 된 지 하루 만에 제법 큰 성과를 올렸는걸요. 일할 보람이 난다는 것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겠죠.”
다샤는 흰 이를 드러내며 예의 그 시원한 웃음을 보인다.
“아, 그리고 성황 폐하로부터의 전언입니다.”
아버지가?
“[하고 싶으면 해도 좋다]라고 하십니다.”
대체 뭘?
성진이 어리둥절하고 있으니, 다샤가 알 듯 모를 듯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 * *
그 시각.
예상치 못한 사태로 인해 큰 혼란에 빠진 자들이 있었다.
“큰일이네. 황궁 의원들이 그 아카데미 학생들로부터 씨앗을 적출했다고 한다.”
“들었습니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대체 어떻게 그걸 찾아낸 겁니까?”
머리를 맞대고 수군거리는 노년과 청년, 두 사람은 하얀 정교회의 사제복을 입고 있었다. 어둑어둑한 속에서도 그 옷에 아로새겨진 주신의 문양이 선명히 드러나 있다.
그중 늙은 사제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며 신음을 흘렸다.
“실수였어. 수확이 다가온다는 기쁨에 너무 무분별하게 파종한 것이 아닌가 하네. 내 잘못이야.”
“그렇지 않습니다! 오러도 신성력도 없는, 파종하기에 적당한 죄수가 그리 자주 들어오는 것은 아니니까요. 거기다 이단 재판부에 수감된 죄수들을 단 하루 만에 재판부로 빼돌릴 줄 누가 미리 알았겠습니까? 너무 자책하지 마십시오.”
“그건 그렇네만…….”
그리고 두 사람은 동시에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이제 수확은 어찌 되는 건가?”
“그러잖아도 지금 그 문제로 클레멘스 형제께서 주교님을 뵈러 가셨습니다.”
“그럼 형제님이 돌아올 때까지 함께 기도하세. 부디 과업을 무사히 마무리 지을 수 있기를. 벧엘라.”
“벧엘라.”
두 사제는 그 자리에 서서 경건하게 기도를 시작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피로한 표정을 지은 젊은 사제 하나가 그들 곁으로 다가왔다. 주교를 만나기 위해 황궁 밖으로 나갔던 클레멘스였다.
그리고 그가 가져온 소식은 더욱 골치 아픈 것이었다.
“누군가가 실수로 황궁 기사에게 파종을 시도한 것 같다고 합니다. 그게 발견되어 아카데미 학생들의 씨앗이 덩달아 들통 난 거지요. 주교님께서 대단히 분노하셨습니다.”
“그, 그런……!”
노 사제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대체 어느 멍청한 놈이 황궁 기사에게 파종을 한단 말인가! 성황에게 들키려고 작정한 것이 아니고서야! 어차피 오러 유저에게는 아무리 씨앗을 심어도 꽃을 틔울 수 없으리라 주교께서 분명히 말씀하시지 않았나?”
“그래서 지금 황궁 밖 조력자들에게도 확인을 하고 오는 길입니다. 그런데 자기네들은 단지 부랑자나 술주정뱅이들을 상대로 파종을 했을 뿐이랍니다. 오러 활성이 높은 자는 아예 건드리지도 않았다 주장하고 있어요.”
“떡하니 결과가 있는데 어디 발뺌을!”
잠시 붉으락푸르락 얼굴빛이 변하던 노사제는, 곧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성호를 그으며 작게 읊조렸다. 벧엘라.
“후우. 어쨌거나 이미 일어난 일. 주교께서는 뭐라고 하시는가?”
노사제의 물음에 클레멘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일단 성황이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면 이대로 계획을 진행하라고 하셨습니다. 지금부터 조사에 착수하더라도 뭔가 알아내는 데는 제법 시간이 소요될 테니까요.”
“엑소시스트들 쪽은 괜찮겠나?”
“그쪽도 전면적인 조사는 어려울 겁니다. 본래 인력이 넉넉한 편은 아닌데다, 최근 남부 전선으로 차출되는 인퀴지터들의 업무까지 일부 떠맡았다고 하더군요.”
그러자 청년 사제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엑소시스트들의 수장이 누구입니까? 그 귀신같은 레안드로스가 아닙니까? 분명 낌새를 눈치채고 방해하려 들 겁니다.”
“어차피 어느 정도 진행된 이후에는 들킬 것이라는 걸 염두에 둔 계획. 물론 여의치 않으면 준비가 미흡하더라도 수확을 조금 앞당겨야겠지요.”
“앞당기다니, 그게 가능하겠나?”
노사제의 물음에 클레멘스의 눈동자가 진중하게 빛났다.
“마침 얼마 전 이곳에서 잊힌 교단의 다른 형제를 만났습니다. 만약 그의 협조를 얻을 수만 있다면, 과업을 이루는 것이 조금은 수월해질 겁니다.”
* * *
-하고 싶으면 해도 좋다.
성황의 알쏭달쏭한 전언의 진의는 바로 다음 날 확인할 수 있었다.
아침 식사 후 호두까기를 들고 연무장으로 뛰쳐나가려던 성진은, 진주궁 로비에서 낯선 남자 하나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추었다.
‘…누구?’
마침 그의 앞에는 마사인이 서 있었다. 손님을 맞이하는 모양새였으나, 성진의 기척을 느끼고 조금 난처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본다.
“저하…….”
그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성진이 찬찬히 눈앞의 남자를 살폈다.
그는 거의 검은색으로 보일 정도로 짙은 잿빛의 정복을 입은 창백한 중년의 남자였다.
색을 제외하면 그의 옷은 성 아우렐리온 기사단의 정복과 흡사한 모양이다. 단지 흰색에 붉은 검, 붉은 방패가 아로새겨진 아우렐리온 성기사단의 것과는 달리, 짙은 색의 옷에 은빛의 검, 교차하는 은빛의 갈고리가 새겨진 점이 달랐다.
남자는 말라붙은 고목처럼 딱딱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그 냉막한 표정은 성황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지극히 무감각해 보였다.
그는 성진 쪽을 힐끔 쳐다보더니, 가슴에 손을 얹고 경직된 자세로 예를 취해 보였다.
“3황자님을 뵙습니다.”
바싹 마른 성대를 긁어서 뽑아내는 듯 갈라진 목소리.
같은 장소에 있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공기를 가진 남자였다.
“성 테르바키아의 단장 레안드로스 경입니다, 저하.”
마사인이 나직하게 일러주었다.
다섯 개의 성기사단 중 하나인 테르바키아 성기사단.
그 기사단의 단장이자 모든 엑소시스트들의 수장인 레안드로스 경.
그가 왜 갑자기 모레스를 찾아 진주궁으로 왔단 말인가.
-조만간 성 테르바키아의 엑소시스트가 진주궁을 찾을 겁니다. 그저 자문을 얻기 위함이니 너무 염려 마십시오. 저하께서 알고 계시는 ‘마물’에 관한 정보를 주시면, 아마도 그들이 일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일전에 카트리나가 그렇게 말한 적은 있었지만, 설마 그 단장이 직접 올 줄은 몰랐는데.
‘거기다 이 사람, 어딘지 묘한 느낌이…….’
성진은 레안드로스 경을 향해 바짝 기감을 곤두세워 봤다. 하지만 뭐라 형용하기 어려운 애매하고 텁텁한 기분만 느껴질 뿐이다.
뭐지? 잘은 모르겠는데 왜 이렇게 찝찝하지?
그에게서 이상한 기운을 느낀 것은 성진뿐만이 아니었다.
[이놈 뭐야? 좀 이상한걸?]‘어디가?’
[어디라고 콕 집어 말하기는 어려운데, 뭔가 이상해.]대체 네가 제대로 아는 게 뭐가 있냐?
어쨌든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 남자는 성황으로부터 진주궁 출입을 허락받은 몇 안 되는 성기사들 중 하나라는 것.
“나를 찾아온 손님인가? 그럼 응접실로 안내해, 마사인 경. 거기서 천천히 이야기하지.”
성진은 이제 눈에 띄게 안절부절못하는 마사인에게 한 번 눈길을 주고는, 응접실을 향해 앞장서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잠시 후.
성진은 기사단장이 직접 그를 찾아온 이유를 알게 되었다. 며칠 만에 [마물] 사태가 급변하고 있었던 것.
“저의 통솔하에 테르바키아의 성기사들을 주축으로 하여 이번에 [마물] 전담 대책반을 신설하게 되었습니다.”
남자는 무미건조한 어조로 설명했다.
성진 역시 다샤를 통해 이미 알고 있던 정보다.
“여기에는 엑소시스트들은 물론 신학 아카데미 교수들과 역병회의 의원까지, [마물] 관련 사건에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되는 모든 분야의 전문가들을 초빙하고 있습니다.”
거기까지 말하고는 레안드로스의 메마른 시선이 잠시 성진의 얼굴을 향했다.
“보고 받기로는 황자님의 지식과 혜안 덕분에 [회색 역병]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또한 디고리 저택 사건에서도 그 마물을 직접 베셨으며, 그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제공해 주셨다지요.”
이거 어딘가 귀찮은 일에 휘말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마사인 또한 마찬가지였는지, 불안에 떨리는 눈으로 힐끔 성진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 죽은 고목나무 같은 남자는 덤덤하게 할 말을 이어갈 뿐이었다.
“그래서 지금 테르바키아 성기사단 내에서는, 황자님과 같은 인재에게 단지 자문만을 구할 것이 아니라, 직접 마물 전담 대책반에 모셔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따라서 이 레안드로스가 모레스 황자님께 [고귀한 자의 의무]를 정중히 요청드리는 바입니다.”
“아…….”
마사인이 작게 탄식했다.
고귀한 자의 의무.
1황자 오웬이 남부 전선 최전방에서 병사들을 이끌고 전장을 달리는 것처럼.
2황자 로건이 젊은 성기사들을 이끌고 대륙 곳곳의 해수를 퇴치하는 것처럼.
이제 3황자 모레스에게도 마물 전담 대책반으로 활동하며 수도를 지키는 데 힘을 보태라고 그는 말하는 것이다.
성황이 말한 것이 바로 이거였구나.
“…저하, [고귀한 자의 의무]는 듣기 좋은 허울일 뿐, 딱히 강제력을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옆에서 마사인이 초조한 얼굴로 끼어들었다.
“아직 저하께서는 열병에서 회복하신 지 얼마 되지 않았으며, 이제 겨우 스콰이어 단계의 검술을 익히신 겁니다. 아직은 이릅니다.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천천히 결정하셔도 늦지 않으니 헤아려 주십시오.”
본래 그였다면 먼저 떽 하고 호통부터 친 후 단속했겠지만.
어제 성진에게 선을 넘지 말라고 한소리 들어서일까, 지금의 마사인은 마치 사정하는 것에 가까운 말투로 만류하고 있었다.
‘그래, 강제력은 없단 말이지.’
그러니 성황이 하고 싶으면 하라고 한 거 아니겠는가.
‘하지만…….’
늘 사고치지 말라며 성진에게 주의를 주던 성황이 [해도 좋다]고 말했다.
거기다 성진은 어쩐지 기묘한 예감에 사로잡혀 삭막한 레안드로스 경의 눈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거절한다면 썩 좋은 결과가 생길 것 같지 않다는 기시감.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말 거라는 막연한 불안감.
처음부터 최강의 반열에 들지 못했던 헌터 이성진을 결국 최후의 1인으로 남게 만든 그 예감이, 지금도 그를 강하게 사로잡고 있었다.
성진은 저도 모르게 레안드로스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고, 동시에 마사인의 얼굴에 깊은 좌절감이 떠올랐다.